누가복음 강해 제20강(눅2:1-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5월 24일(화)
누가복음 제1장을 되돌아보며; “의사 누가가 그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하게 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의사 누가는 나사렛 예수가 누구인지 그의 정체와 사역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상당기간 현지를 방문하고 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를 정리하여 자신의 상관이며 파견자인 데오빌로 각하에게 비밀리에 보고한 것으로 보입니다(눅1:3-4). 그러나 의사 누가의 작업은 그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현장검증과 자료수집의 과정에서 크나큰 사실을 발견하게 되어 그것을 오랜 세월 묵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수집하고 분석한 그 결과에 대하여 깊이 묵상한 후에 얻은 자신의 결론이 확실한 진리인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나사렛 예수가 예언한 일들이 실제로 역사 가운데 발생하게 되는가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 누가는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에 들어갔으며 사도들의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그는 헬라파 유대인이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 바나바, 바울, 실라, 디모데, 마가 등과 행동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자연히 헬라파 유대인들이 앞장을 서고 있는 소아시아와 유럽선교에 깊이 관여하게 됩니다. 그 결과를 수집하여 그는 사도들의 행적을 적은 사도행전을 저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데오빌로 각하에게 이미 보고한 내용을 더욱 증보하여 여러 초대교회에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발견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간략하게 그가 발견하고 확인한 진리를 정리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진리라면 지금도 사람들의 생각과 인생을 바꿀 것입니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가 예언하고 몸소 보여준 일들이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교회의 건설과 선교의 과정에서 그대로 증명이 될 것입니다. 그가 확인한 결과, 예수님의 생각대로 역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사 누가는 나사렛 예수를 자신의 구속자이며 구원주로 인정하고 받아 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글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처럼 나사렛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잉태가 된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된 연유(눅2:1-7)
로마의 초대 황제인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재위기간은 로마의 유일한 최고권력자가 된 옥타비아누스가 원로원으로부터 ‘존엄한 자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은 주전 27년 1월 16일부터 주후 14년까지임)가 주전 5년경 제국내의 모든 백성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을 만들라고 지시를 합니다(눅2:1).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 많은 로마총독들은 황제의 명령을 일시에 수행하게 됩니다. 비록 헤롯 왕가가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나안 땅에서도 그 호적정리가 시행이 되고 있습니다. 감찰기관은 시리아와 그 서쪽지역을 전부 관할하고 있는 수리아 총독부입니다(눅2:2).
이에 따라 갈릴리 나사렛 산골에서 숨어 살고 있던 목수 요셉 부부도 주전 4년경 불가피하게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하게 됩니다(눅2:3-4). 마리아의 경우에는 만삭의 몸이지만 동행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눅2:5-6). 베들레헴을 고향으로 삼고 있는 수많은 다윗의 후손들이 그 전해부터 일제히 몰려들고 있으므로 방 구하기가 어렵습니다(룻1:1-2, 19, 2:4, 4:17-22, 눅2:7b). 따라서 마구간을 빌려서 유숙을 하던 중에 마리아가 아들 예수를 순산하게 됩니다(눅2:7a).
이제부터 의사 누가가 현장조사를 통하여 기록하고 있는 본문의 말씀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 구절 씩 음미하면서 그 깊은 내용과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가 영을 내려 천하(the entire Roman world)로 다 호적(戶籍, 가구를 등록하고 민적을 만드는 것, a census)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Quirinius)가 수리아 총독(governor of Syria)이 되었을 때에 처음(the first census)한 것이라”(눅2:1-2); 로마황제의 칙령에 따라 수리아 총독인 구레뇨가 처음으로 인구 센서스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1)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는 로마의 초대황제입니다;
1) 본래 로마는 공화정의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로마공화정의 주요 특징은 국가권력의 분리와 견제입니다. 오늘날 민주국가의 입법부에 해당하는 원로원이 있습니다. 원로원은 로마의 귀족과 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며 국가의 주요정책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정과 국방의 책임을 복수의 정치지도자에게 위임하며 필요한 견제를 하고 있습니다.
2) 그러한 공화정에 도전이 나타납니다. 가이사로 불리기도 하는 시저가 정적들을 제거하고 홀로 최고의 권력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최초의 로마황제로 인정을 받으려고 은근히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주전 44년 3월 15일에 공화정을 고수하려는 젊은 원로들이 단합하여 시저를 암살하고 맙니다.
3) 그로 인한 로마의 분열과 권력다툼을 긴 세월에 걸쳐서 수습하고 시저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가 드디어 천하통일을 합니다. 따라서 로마의 원로원은 정치현실의 변화를 받아들여서 옥타비아누스를 ‘아우구스투스’(그 뜻은 ‘존엄한 자’이며 황제의 칭호에 해당함)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때가 주전 27년 1월 16일이며 황제가 다스리는 로마제국의 시작입니다.
4) 로마의 황제로서 무려 41년간이나 드넓은 제국을 통치하게 되는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는 통치 중반기부터 제국의 각종 세금을 정확하게 징수하기 위하여 매 5년 마다 인구 센서스를 실시하라고 지시를 합니다. 그 정책의 첫 번째 시행이 주전 5년경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본문에서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호적 정리입니다. 로마 제국에 속하는 모든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정리를 하라는 황제의 명령입니다.
(2) 구레뇨(Quirinius)가 수리아 총독(governor of Syria)으로 재임하고 있는 시기가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의하여 주후 6년부터라고 알려졌기 때문에 한동안 신학계에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1) 하지만 구레뇨가 주전 12년경부터 약 10년 동안 수리아의 군정장관 또는 총독으로서 세금부과 및 호적정리에 관여를 했다는 증거가 나타남에 따라 그 논란이 가라앉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의사 누가가 주전 5-4년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서 ‘첫 번째 호적’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눅2:2). 그것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을 두 번 지내는 동안에 첫 번째 재임기간 동안에 실시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어쨌든 로마황제의 호적정리 명령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당시 수리아 총독은 전체 시리아와 그 서쪽의 땅을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전부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헬라 시대 시리아의 셀루시드 왕조가 다스리고 있던 그 영토가 수리아 총독부의 관할입니다. 따라서 구레뇨 총독은 자신의 관할 하에 있는 여러 지역에 황제의 명령을 시달합니다. 그 가운데 헤롯 왕가가 위임통치를 하고 있는 가나안 땅이 들어 있습니다.
3) 여기에서 의사 누가가 당시 수리아 총독의 이름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의사 누가는 자신도 모르게 수리아 총독의 이름을 적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시리아 안디옥 출신인 의사 누가는 당시의 수리아 총독부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로마의 정치권력관계를 잘 알고 있는 의사 누가이기에 훗날 그의 복음서 및 사도행전에는 로마의 정책과 초대교회의 운영 그리고 이방선교와의 관계 등이 흥미롭게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디베료 황제 통치 15년에 세례 요한의 공생애가 시작된다는 언급(눅3:1),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의 수도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한 일(행18: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이 되었을 때에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추방하고자 한 일(행18:12-16) 등이 모두 그러합니다.
둘째로,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눅2:3); 고대사회라고 하더라도 인구의 이동이 상당히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그래서 호적정리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습니다;
(1)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이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되고 백성들이 대부분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것이 첫 번째 인구이동입니다.
(2) 주전 539년 신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시아제국의 시대가 시작이 됩니다. 고레스 황제는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주고 원하는 자는 고토로 돌아가서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줍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귀향한 자는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것이 두 번째 인구이동입니다.
(3) 그나마 조그만 규모의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나서 제대로 경영을 못하게 됩니다. 십일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아니하여 어쩔 수 없이 레위인들이 지방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들도 여러 지방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들이 다시는 다윗의 왕조를 이루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레위인들의 하스모니안 왕조가 성립이 되자 유대인들은 조용히 숨을 죽이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세 번째 인구이동입니다.
(4) 이에 따라 일반 유대인들도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
1) 특히 유대교내에서도 종파가 발생하여 분열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사두개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합니다. 그렇지만 권력에 부합하지 아니하고 백성들 사이에 들어와서 율법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는 바리새인들은 전국의 회당으로 흩어집니다. 그리고 엣세네 파는 아예 먼 곳 외진 곳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그것이 네 번째 인구이동입니다.
2) 그러한 상태이므로 주전 5년경부터 로마의 황제 칙령에 따라 수리아 총독이 호적정리를 재촉하고 있지만 그 진행속도가 느립니다. 따라서 멀리 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는 요셉 부부가 고향 베들레헴을 방문한 것은 그 다음해로 보입니다.
셋째로,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눅2:4-5); 목수 요셉이 다윗의 후손이라고 의사 누가가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언급은 제1장에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눅1:27).
(1)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1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베들레헴이 다윗의 고향이라는 사실은 룻기와 사무엘상에서 다음과 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룻2:4), “네(보아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룻4:11),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4:21-22), “내(여호와)가 너(사무엘)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삼상16:1).
(2) 다윗의 후손인 요셉이 어째서 베들레헴 고향에서 직선거리로 치더라도 130km나 북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갈릴리 산골마을 나사렛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거의 숨어서 지내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 이유는 이미 여러 번 설명을 드린 바와 같이 다윗 왕조의 부활을 외세와 레위 인의 왕조가 반기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윗의 왕손들은 가급적이면 자신들의 신분을 드러내지 아니하려고 합니다.
(3) 그래서 로마황제가 칙령으로 명령하고 있는 호적조사에 있어서도 그들은 미온적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회피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미적거리고 있지만 그것이 용이하지가 않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전부 고향으로 가서 호적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제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수 요셉을 비롯한 나사렛의 다윗 자손들이 마지막으로 베들레헴을 찾아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특히 여기서 의사 누가는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눅2:5)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1) 그것은 누가 보아도 임산부라는 말입니다. 거의 만삭이 다 되어서 배가 엄청 불러 있다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제사장 사가랴의 아내인 엘리사벳이 처녀 마리아를 보고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언한지가 벌써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눅1:41-42). 따라서 그렇게 만삭인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먼 길을 갈 수밖에 없는 목수 요셉의 사정이 딱합니다.
2) 다윗의 자손인 요셉은 할 수만 있으면 고향방문을 하지 아니해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1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로마의 호구조사가 강력한 정책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어쩔 수가 없어서 만삭인 아내를 데리고 긴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젊은 부부인지라 다행히 유산을 하지 아니하고 그나마 여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넷째로, “거기(베들레헴에) 있을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2:6-7); 몇 가지 용어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봅니다;
(1) ‘해산할 날이 차서’; 해산할 날이 다 되어서 분만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의 복중에서 10달 동안 충분히 자라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직선거리 130km이상의 긴 여행을 하면서도 조산의 위험을 방지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배려가 두드러지게 엿보이고 있습니다(창21:1-2).
(2) ‘첫 아들’; 목수 요셉은 자신과 약혼만 했을 뿐 합방한 적이 없는 처녀 마리아가 배가 불러오고 있음을 눈치채고서 깜짝 놀란 사람입니다(마1:18-19).
1) 두 집안은 빈촌 나사렛에 살고 있지만 나름대로 명문가입니다. 다윗의 왕손과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이 정혼을 한 것입니다(눅1:5, 27, 36). 그런데 아비도 모르는 자식을 약혼녀 마리아가 배고 있으니 그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지만, 그 일의 처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깔끔하게 하십니다. 목수 요셉을 설득하여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깨끗하게 낳을 수 있도록 만드신 것입니다(마1:18-25).
2) 목수 요셉은 예수를 자신의 첫 번째 아들로 키웁니다(눅2:7a). 남이 볼 때에는 틀림이 없는 요셉의 친아들과 같습니다. 하지만 제사장 사가랴 부부는 알고 있습니다(눅1:40-42, 69). 나사렛 예수는 사실 요셉의 의붓아들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목수 요셉은 예수를 장자로 대접하고 사랑합니다. 그 상급을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훗날 받게 됩니다. 그들 사이에 4명의 아들과 여러 명의 딸들이 줄줄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마13:55-56).
(3) ‘구유’; 마구간이나 외양간에는 마소(馬과 소)가 여물을 먹을 수 있도록 구유 통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가축에게 있어서 사람들이 밥을 담아 먹는 밥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1) 그 구유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그곳에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를 놓아두고 있습니다(눅2:7). 참으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십니다. 그 메시아는 사람들만을 위한 구원자가 아닙니다. 마소와 같은 생물들을 위한 구원자이시기 하십니다. 비록 머물 방이 없어서 외양간을 빌려서 잠을 자고 아기를 낳고 있지만 그곳이 온 세상의 피조물을 구원하실 메시아가 태어난 곳입니다.
2) 그러한 의미에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시작하는 장소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장소는 화려한 곳이 아닙니다. 마치 구유와 같이 가장 소박하고 낮은 그곳이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장 작은 형제를 도와주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그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가르침을 베풀고 계십니다(마25:40).
(4) ‘여관’; 여행자들이 머물 객점이나 여관이 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고대사회에서 대단히 희귀한 기록입니다;
1) 왜냐하면 중세 봉건사회인 유럽의 경우 여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여행객이 식사를 제공받을 수 있는 식당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길을 나서면 수도원을 찾아가서 잠자리를 청해야 하고 식사를 부탁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인구의 이동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중세 봉건사회의 진면목입니다.
2) 그런데 유대인사회에서는 여관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일년에 3차례 모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와서 참배를 해야만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해외와 전국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의 여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외곽지역에 민박집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 동쪽 오리에 위치하고 있는 베다니가 그러한 곳입니다(눅10:38-40, 요11:18).
3) 여기 본문에서는 베들레헴에도 여관이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 해부터 호적정리를 하고자 전국에서 몰려들고 있는 다윗의 후손들을 재우고 먹이기 위해서 여관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조선시대에도 그러한 여관과 식당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주막입니다. 과거제도의 시행 및 중앙관료의 지방 파견근무 때문에 길손들이 상당히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흔히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출생했다고 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출생지는 다윗의 고향인 유다의 베들레헴입니다. 일찍이 미가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메시아의 출생지역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5:2). 그러므로 훗날 예수님이 자신에 대하여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하고 있다고 강조하십니다(눅24:44).
선지자들의 예언 그대로 그 신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속자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고 있습니다(눅2:4-7). 그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의사 누가는 신명이 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로 알려지고 있는 예수님의 출생지가 갈릴리 나사렛인 줄로만 알고 있던 제자 빌립과 나다나엘과 같은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가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요1:45-46).
그 두 사람의 대화는 신기하게도 또 다른 의미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못사는 동네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냐? 아니면 다윗 대왕의 고향 베들레헴 출생이냐?를 두고서 갑론을박(甲論乙駁)을 할 이유가 사실은 없습니다. 선지자들이 아무리 정확하게 예언을 하고 있으면 무엇을 합니까? 예수님께서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하신 그대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지 아니하시면 그 예언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더구나 만민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시지 아니하시면 또한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부활의 소망이라고 하는 것도 저와 여러분들이 자신의 회개를 통하여 인생 가운데 거듭난 삶으로 풍성하게 누리지 못하면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요컨대,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남은 인생 가운데 그리스도처럼 살아감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창조의 능력을 체험하고 보게 되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말씀은 말씀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생명의 능력으로, 그리고 영생의 기쁨으로 폭발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아무쪼록 이제부터라도 그와 같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경험하시는 성도님들의 영적인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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