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67강(민32:20-2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2. 10. 18:19

민수기 강해 제167(32:20-2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418()

 

모세가 향후 르우벤과 갓 자손의 장래를 여호와의 손에 어떻게 맡기면서 요단 강 동편의 땅을 미리 분배하여 주고 있는가?(32:20-24)

 

본문에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서 기업을 주시고 또한 그 기업을 회수하시는지에 대하여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32:20-24). 그 주요내용을 먼저 제시하고 설명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사람은 무장을 하고 반드시 여호와 앞에서 싸워야 합니다(32:20);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그 칼을 휘둘러야 하는 것이지(31:1-8) 제멋대로 판단하여 휘두르게 되면 무죄한 자를 해치게 되는 폭력의 도구가 될 따름입니다(34:25-31, 26:51-54).

(2)  둘째, 무장을 한 자는 여호와 앞에서 요단 강을 건너가야 합니다(32:21a); 요단 강이라고 하는 것은 동쪽의 아모리 땅과 서쪽의 가나안 땅을 갈라놓고 있는 자연적인 국경선이며 양쪽 계곡 사이의 강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군대가 동쪽 아모리 땅에서 요단 강을 건너가서 서쪽의 가나안 땅을 얻고자 합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침공해오는 이스라엘 군대를 막기에 참으로 유리합니다. 화살부대를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놓으면 골짜기 아래에서 강을 건너오고자 첨벙거리고 있는 이스라엘 군대가 그대로 노출이 되고 그들은 전부 화살 받이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적들이 노리고 있는 그 호구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이스라엘 군대는 여호와 앞에서 부디 보호해 달라고 간구하면서 요단 강을 건너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셋째, 사람은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원수를 자기 앞에서 쫓아내신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32:21b); 가장 중요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신명기에서 다음과 같이 반복하여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9:5-6).

(4)  넷째, 우상을 섬기던 그 땅이 여호와 앞에 항복을 하고 그 원주민들이 복종을 할 때까지 싸우게 되면 여호와 앞에서나 이스라엘 공동체 앞에서나 죄가 없다고 선언이 되는 것입니다(32:22a); 가나안 땅에서 우상문화를 완전하게 청산하는 그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시는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선민 이스라엘은 여호와 신앙이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우상문화와 싸우며 여호와 신앙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지를 못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여호와 앞에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 선민 이스라엘이나 주님의 제자인 성도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5)  다섯째, 르우벤과 갓 지파의 군대가 그렇게 가나안 땅에서 전투를 행하면 그들의 가족과 친지들이 이미 살고 있는 요단 강 동편의 땅이 완전하게 자신들 지파의 땅으로 인정이 됩니다(32:22b); 여호와의 군사로 끝까지 싸우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두가지의 상급을 주십니다. ①하나는 이 땅에서 기업을 주십니다. 르우벤과 갓 지파의 경우에는 요단 강 동편의 기업을 주시는 것입니다(32:22b). ②또 하나는 천국에서 영생의 상급을 주십니다(5:29, 11:16, 26).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의 권세와 천하 권세를 모두 부활하신 주님께서 행사하실 것이므로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도 성도들에게 유효합니다(28:18-20, 5:25-29, 12:31, 14:1-3).

(6)  여섯째, 두 지파가 그렇게 행하지 아니하게 되면 이스라엘이 이미 주기로 한 그 땅을 더 이상 그들의 소유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동족인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가 그들을 요단 강 동편에서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두 지파에게 죄를 물으시고 그 땅에서 쫓아내실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32:23). 그 이유는 두 지파가 여호와께 맹세한대로 실천하지 아니하였기에 여호와께서는 감히 거짓 맹세를 한 그 죄를 물어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신다는 것입니다.

(7)  일곱째,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가축을 치기 위하여 우리를 만들고 넓은 들판을 확보할지라도 그것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켜 주시는 분은 자신들의 군사력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명심하고서 성읍을 건축하고 우리를 지으라는 것입니다(32:24a).  그러므로 여호와의 보호하심을 얻기 위하여 누구나 여호와 앞에서 서원하고 믿음의 공동체 앞에서 맹세한대로 끝까지 실천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32:24b).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만일 이 일을 행하여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가서 싸우되”(32:20); 두가지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1)  첫째, 무장을 한 자는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그 병장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자신의 뜻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병장기를 휘두르게 되면 이 세상은 생지옥으로 변하게 됩니다. 따라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가 칼을 휘두르면서 스승을 경호하려고 할 때에 그것을 말리고 계십니다;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26:51-52). 칼로써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2)    이스라엘 군대가 무장을 하고서 요단 강을 건너가 가나안 족속과 전쟁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가나안 땅에 만민구원의 터전이 마련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과 수호신을 쳐부수고 그 땅에서 우상문화를 근절할 뿐입니다. 여호와를 모르고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께 범죄한 그들을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군대를 도구로 사용하여 그 땅에서 전부 몰아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주민들이 모두 개종하여 여호와신앙을 가지는 성도가 되는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 따라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가나안 원주민들이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전히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 이 세상이 비록 생존경쟁의 현장이라고 하더라도 성도는 반드시 여호와 앞에서 그 뜻을 묻고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을 배워서 그대로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민이나 성도가 여호와의 목적과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의 방법에 합치(合致, 뜻에 합하는 것)를 하고 있을 때에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 땅을 차지하며 그곳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찬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말씀의 원형을 아브라함 시대에 다음과 같이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아브람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3)  참고로, 훗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10:37-38).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일은 악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것이며 그것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일입니다(3:4). 그 일을 행하는 자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둘째로,너희가 다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를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고”(32:21); 

(1)  때는 여호와의 명령으로 미디안 5부족을 쳐부수고 온 직후입니다(31:12, 32:20-21). 이스라엘 12지파는 지파 당 1,000명씩 기마병을 선발하여 도합 12,000명의 정예 기마대를 원정군으로 삼아 미디안 땅으로 보냈습니다(31:1-6). 그런데 25만명으로 추산이 되는 미디안 5부족국가의 군대와 전쟁을 하여 단 1명의 전사자도 없이 대승을 거두고 개선을 한 것입니다(31:49). 그 사실을 이스라엘 진영에 도착하여서야 확인을 하고서 원정대의 지휘관들이 경악을 하고 있습니다.

(2)  그것은 이스라엘의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쟁이며 여호와께서 사자를 보내어 다 이겨 놓으신 전쟁에 이스라엘 원정군이 이삭줍기에 참여한 모양새에 불과합니다(31:6-12). 따라서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착복한 모든 금붙이를 거두어 여호와의 전에 거제로 바친 것입니다(31:50-54). 그와 같은 놀라운 승전보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39년 전에 호렙 산 앞에서 갑자기 기습해온 아말렉 족속을 여호와 앞에서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 그 놀라운 역사가 재현이 된 것입니다(17:6, 8-15).

(3)  이제 요단 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그 전쟁이 여호와의 전쟁이며 자신들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전투에서 다시 이삭줍기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의 군부는 그들의 가나안 전쟁이 미디안의 전쟁과 같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모세 역시 이번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전쟁이 여호와께서 직접 사자를 보내어 싸우시는 전쟁이 되기를 다음과 같이 간구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다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를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고”(32:21),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9:3).

(4)  오늘날에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성도들이 복음사역을 하게 되면 그와 같은 이삭줍기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지적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과 유대 땅의 유대인들이 오로지 자신들만이 여호와신앙을 가진 선민이고 사마리아인들은 혼혈이며 여호와신앙을 버렸기 때문에 이방인이 되어 버렸다고 멸시하면서 천대를 하고 있는 시대입니다(4:9). 그러한 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 수가 성을 방문하시면서 그곳에서 벌써 영적으로 추수할 때가 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이삭줍기에 나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4:35-38).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자도 예수님이시고 성도들에게 성령님을 아버지 하나님께 요청하여 보내어 주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제자들은 영적인 수확에 나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4:39).

셋째로,그 땅이 여호와 앞에 복종하게 하시기까지 싸우면 여호와 앞에서나 이스라엘 앞에서나 무죄하여 돌아오겠고 이 땅은 여호와 앞에서 너희의 소유가 되리라 마는,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32:22-23);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 땅이 여호와 앞에 복종하게 하시기까지 싸우면”(32:22a);

1)    땅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육신의 고향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육신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2:7a). 그런데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 달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유일하게 그 코에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만이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서 독특한 혼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2:7b). 여기서, 그 혼적인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특이하게 보여주고 있는 다음 세가지의 기능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①지식의 성장 및 체계화와 대물림, ②다양한 감정의 표현과 예술로의 승화, ③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행위 등입니다.  

2)    그러한 혼적인 기능을 발휘하면서 만물의 영장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이 세상을 경영하고 있는 인류가 큰 고통 가운데 헤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4-25). 땅의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이 이기적인 탐욕에 젖어서 영이신 하나님의 생명의 법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을 죄 가운데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영적인 죽음이 사람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3)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할 수 있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끝까지 육신을 따르지 아니하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8:1-4).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자신의 육신의 욕심과 끝까지 투쟁하고 마침내 그 육신을 굴복시키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 땅이 여호와 앞에 복종하게 하시기까지 싸우면”(32:22a);.

4)    그와 같은 깊은 뜻을 잠시 접어 두고 생각하게 되면, 본문의 내용은 그저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그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모두 이스라엘 자손들에 의하여 정복이 되어질 때까지 르우벤과 갓 지파의 군대는 전장을 떠나지 아니하고 끝까지 전쟁을 치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끝까지 이스라엘 10지파의 군대와 함께 가나안 정복전쟁을 완성하게 되면 그들에게 진작 분배한 요단 강 동편의 땅이 확실하게 그들의 차지가 되는 것입니다.

(2)  여호와 앞에서나 이스라엘 앞에서나 무죄하여 돌아오겠고”(32:22b); 두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하나는 두 지파의 군대 곧 르우벤과 갓 지파의 군대가 형제들인 이스라엘 10지파와 함께 가나안 정복전쟁을 끝까지 수행하게 되면 그들은 가족과 친지들이 기다리고 있는 요단 강 동편의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전하지 아니하고 도중에 돌아가버린다고 하면 그것은 동족인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며 더구나 여호와께 맹세한 자신들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선민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원주민을 모두 쫓아내고 그 땅에 여호와신앙을 심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끝까지 수행하지 아니하게 되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죄를 범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끝까지 세계선교에 나서야 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사역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거듭난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의 뜻입니다.

(3)  이 땅은 여호와 앞에서 너희의 소유가 되리라 마는”(32:22c);

1)    르우벤과 갓 지파의 군대가 요단 강을 건너가서 나머지 10지파의 군대와 함께 가나안 땅의 원주민을 모두 쫓아내고 그 땅에 여호와신앙을 심게 된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로 말미암아 그들이 두가지의 상급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①하나는 여호와와 이스라엘 동족들 앞에서 맹세한 그들의 말을 실천한 것이므로 무죄한 자로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약속을 지켰으므로 요단 강 동쪽의 땅을 영원히 그들의 기업으로 확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오늘날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①첫째,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의 사역지로 나아가서 그 땅에서 우상문화를 몰아내고 여호와신앙을 심는 그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끝까지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이 생명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에 돌아가는 길입니다. ②둘째, 이 땅에서도 그 일을 수행하는 자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기업을 주시고 자녀를 보호하시며 그 재산을 지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르우벤과 갓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주시는 여호와의 말씀이 오늘날에도 성도들에게 그대로 효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4)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32:23);

1)    만약 르우벤과 갓 지파의 군대가 가나안 땅에서 형제들 10지파를 도와서 정복전쟁을 수행하다가 도중에 돌아가버리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가나안 땅의 원주민을 쫓아내기 위하여 정복전쟁에 열심인 기타 10지파의 군대가 배신한 2지파의 뒤를 쫓아가서 요단 강 동편에서 다시 전쟁을 벌일 여유가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그 일을 누가 어떻게 해결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대답이 바로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32:23)는 구절입니다.

2)    배신한 2지파의 군대를 기타 이스라엘 10지파의 군대가 뒤쫓아가서 징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십니다. 그들의 배신행위에 대하여 그 죄를 반드시 물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기업이 사라지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과 영생이 여호와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그 마음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유혹을 이기는 비결이기도 합니다(22:12, 4:4, 7, 10, 10:28, 26:39).

넷째로,너희는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라. 그리하고 너희의 입이 말한 대로 행하라”(32:24);

(1)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 돈은 크게 보아 두가지 목적으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자녀들을 잘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자녀들의 양육을 위하여 교육환경이 좋은 안전한 동네의 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위하여 사람들은 좋은 지역에 마치 요새와 같은 성읍을 건축하는 것입니다(32:24a). 더구나 그 성읍에서는 자녀들이 자라서 안전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복지제도까지 잘 갖추고자 합니다. ②또 하나는 재산을 모으기 위한 것입니다. 재물을 많이 모아 놓아야 자신들의 노후를 대비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이 고대 목축사회에서는 양을 키우기 위하여 우리를 많이 짓는 것입니다(32:24b).

(2)  그와 같은 목적으로 사람들이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그들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역사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그리고 자녀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 주기 위하여 인류가 열심히 노동을 하고 발명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원자의 세계까지 탐구를 하면서 평화적으로 과학의 힘으로 이 세상에 낙원을 만들어보려고 시도를 했지만 그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주후 1945년에 어처구니가 없게도 원자폭탄을 만들어서 일본의 두 도시를 순식간에 초토화시켜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유증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유전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핵폭탄의 피폭으로 말미암은 유전적인 장애가 대를 이어가면서 계속 발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므로 본문에서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하고 너희의 입이 말한 대로 행하라”(32:24c). 자녀들을 위하여 안전한 성읍을 건축하고 재산을 불리기 위하여 가축의 우리를 많이 만들고 있지만 그것과 더불어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앞에서 서원한 대로 실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서원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여호와의 종으로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에 자신의 종을 보호하고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발휘가 됩니다. 그 여호와의 능력이 바로 자녀들의 성읍을 보호하고 우리의 가축을 지켜주는 가장 확실한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향년을 앞두고 있는 모세는 동족인 이스라엘 12지파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전진하는 것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요단 강 동편에서 자신들의 기업을 얻게 되는 두 지파 르우벤과 갓 지파의 군대가 이스라엘 10지파와 함께 요단 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할 때까지 참전하여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르우벤과 갓 지파의 지도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10지파의 지도자들 앞에서 맹세한 그대로 약속을 지킨다고 하면 그들에게 배분된 요단 강 동편의 땅은 영원한 그들의 기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가나안 전쟁의 도중에 말머리를 돌려서 고향으로 돌아가버리게 된다면 그들은 여호와께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 죄를 가나안 정복전쟁에 바쁜 동족들이 현실적으로 묻지를 못한다고 하더라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물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종말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생도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성도들의 복음사역이란 자신의 향년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잘 되며 함께 영생의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 길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이 여호와 앞에서 충성하시고 영생의 천국을 기업으로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