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45강(민27:12-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1. 24. 12:41

민수기 강해 제145(27:12-1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323()

 

아론처럼 광야에서 죽게 되는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동족들을 위하여 간구하고 있는 것 한가지가 무엇인가?(27:12-17)

 

출애굽 제40년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여호와의 명령으로 출애굽시키고 40년 동안 동족들의 광야생활을 이끈 지도자 3남매 곧 미리암과 아론과 모세에게 있어서 운명적인 해입니다. 그들이 그해에 광야에서 모두 죽게 됨으로써 이스라엘 기성세대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이 전부 끝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출애굽 제26월경 가데스 바네아에서 발생한 10정탐꾼들의 반역사건과 그들에게 동조한 이스라엘 기성세대들의 패역한 행동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음과 같이 여호와를 불신하고 여호와께서 세운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불신임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하여 10정탐꾼들이 악평을 했으며 거인인 아낙 자손들이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격을 가진 자신들로서는 도저히 그곳을 정복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13:31-33). 그러나 2정탐꾼인 갈렙과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약속과 능력을 믿고서 정벌에 나서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13:30, 14:6-9). 그 가운데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들은 10정탐꾼의 주장에 동조를 하고 갈렙과 여호수아를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14:10).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여호와를 불신한 증거입니다.

(2)  둘째, 이스라엘 12지파의 군인들과 기성세대는 가나안 땅으로 북진하지를 말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남쪽으로 되돌아가자고 합니다(14:4). 여호와의 뜻을 따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자고 하는 모세와 아론을 불신임하고 그들은 새로운 노선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쪽에 살고 있는 약한 족속들의 땅을 뺏아서 편하게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쫓아서 전진하는 삶이 아니라 세상적으로 약육강식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선택입니다.

(3)  셋째, 그에 따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성세대들을 징계하시고 그들은 일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 광야생활 40년 동안에 전부 죽게 될 것이라고 심판의 판결을 내리십니다(14:28-38). 다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 제외가 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사장 가문만은 예외가 되고 있습니다(24:29-33). 그에 따라 출애굽 제40년이 되기 전에 대부분의 기성세대가 시내 광야에서 죽고 맙니다(2:14-16). 이제는 새로운 세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세는 새로운 세대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으로 믿고서 그들을 이끌고 다시 북상을 하여 가데스 바네아에 들어옵니다(20:1). 그때가 출애굽 제40년 정월입니다. 그때 그곳에서 두가지 사건이 발생합니다; ①하나는 이스라엘 여성들의 등불이 되어주던 여선지자 미리암이 마침내 향년을 맞이하게 됩니다(20:1). ②또 하나는 38년만에 다시 찾아온 가데스 바네아의 우물에서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자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입니다(20:2-12). 그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모세와 아론의 앞날이 결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1)  첫째, 모세와 아론은 새로운 세대로 물갈이가 되었지만 백성들이 여전히 옛날의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절망합니다. 함께 여호와께 나아가 기도하고 그 도우심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무조건 지도자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그들의 행태가 악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자비로운 말씀을 벗어나서 그만 백성들에게 모세와 아론이 진노하고 화를 터뜨리게 됩니다(20:10). 모세는 지팡이로 화가 나서 반석을 두 번 내리치면서 다시는 백성들을 위하여 물을 내게 하지 않겠다고 막말을 합니다(20:9-11a). 그러나 자비로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십니다(20:11b).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징계하십니다. 그들이 끝까지 여호와의 사랑을 백성들에게 드러내기 아니하였기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20:12).

(2)  둘째, 여호와의 예언 그대로 대제사장 아론이 세일 산맥의 허리에 해당하는 호르 산에서 죽고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새로운 대제사장이 됩니다(20:22-29). 그때가 출애굽 제4051일입니다(33:38-39). 그곳에서 한달간 애곡을 한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에돔의 땅을 우회하여 모압의 남쪽 국경인 세렛 시내에 다다르게 됩니다(20:29, 21:12). 그때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이제 가데스 바네아 반역사건이 발생한지 38년이 지나 군인들이 새로운 세대로 완전히 물갈이가 되었으므로 그들을 이끌고 세렛 시내를 건너 모압 광야를 지나 아르논 강 북쪽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정복하라고 지시하십니다(2:13-25). 그때부터 11월말까지 6개월 동안 모세의 이스라엘 군대가 아모리 족속의 두 왕국 곧 시혼 왕국 및 바산 왕국과 전쟁하여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대승을 거두고 그들의 땅을 점령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21:13-35, 2:24-3:11).

모세는 이스라엘 군대와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 강 건너 길갈과 여리고 성읍이 바라다 보이는 모압 평지에 들어와서 싯딤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여호와의 명령으로 세가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  첫째, 2차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20세 이상 장정으로서 전투에 나갈 만한 자의 수를 전부 계수합니다(26:1-4). 그들이 이스라엘 12지파 군대의 병사가 되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병사의 수에 따라 12지파의 땅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하는 원칙을 발표하고 있습니다(26:51-54). 물론 12지파의 동의를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12지파의 땅의 위치는 가나안 땅을 점령한 다음에 그 땅을 조각으로 나누어 제비 뽑기를 하여 결정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고 있습니다(26:55-56).

(2)  둘째, 요단 강 동편에 이미 점령한 아모리 족속의 땅을 경작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필요합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가 자원을 하므로 그들에게 조건부로 허락을 합니다(32:1-32). 그들의 군대가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데 끝까지 동참을 한다면 그렇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므낫세 지파 마길 종족에게는 바산 왕국의 북쪽에 남아 있는 잔당들을 소탕하는 조건으로 그 땅을 차지하도록 허락을 하고 있습니다(32:33, 39-42).

(3)  셋째, 이제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일이 두가지입니다. 그것은 서로 연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①하나는 모세가 죽고 ②또 하나는 새로운 최고지도자가 세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 일이 모세에게는 마지막 남은 일입니다;

1)    그런데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요단 강 서편의 가나안 땅을 내려다본 후 그곳에서 향년을 맞이하라고만 말씀하십니다(27:12-13). 그것이 아론과 함께 신(zin) 광야 초입에 있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벌이라는 것입니다(27:14). 당시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끝까지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고 여호와의 긍휼과 사랑을 보여주라고 말씀하셨는데(20:7-8) 그들은 그 말씀을 어기고 제멋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노하면서 더 이상 그들을 위하여 물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20:9-11). 그 책임을 지고서 모세 역시 요단 강 동쪽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20:12).   

2)    모세는 자신의 잘못이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한 일 그리고 마음이 쓰이는 일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누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벌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모세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시면서 그 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말씀을 아니하시는 것일까요? 마치 이 세상에 남겨 두고 떠날 자식들처럼 모세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그 점이 걱정입니다.

목자 없이 떠돌게 된다면 이스라엘 자손들의 앞날이 참으로 불쌍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다음과 같이 여호와께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27:15-17).

그러한 모세의 기도를 참으로 기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라고 하시는 말씀이 곧 이어지고 있습니다(27:18-21). 모세가 얼른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27:22-23).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27:12-13);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27:12a); 모세가 향년을 맞이한 곳이 신명기 제34장에서는 느보 산이며 그곳은 비스가 산 꼭대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4:1). 그런데 본문에서는 여호와께서 아바림 산이라고 말씀하십니다(27:12a). 그러므로 느보 산, 비스가 산, 아바림 산이라고 하는 세가지의 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첫째, 아바림은 산맥인데 그것은 사해 동편 남에서부터 북으로 마치 등뼈처럼 뻗어 있습니다.

2)    둘째, 아바림 산맥 북단에서 동북쪽으로 비스듬히 산지가 뻗어 나가고 있는데 그것이 비스가 산지입니다.

3)    셋째, 그 산지의 중앙에는 높은 브올 산이 있으며 바알 신을 섬기는 산당 벧브올이 그곳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북서쪽 4km지점에 싯딤이 있는데 모압 평지의 중심부입니다.

4)    넷째, 비스가 산지가 서남쪽으로 흘러와서 아바림 산맥 북단과 만나는 꼭지점에 높은 봉우리들이 솟아 있는데 그것이 느보 산입니다. 3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 곧 가장 서쪽에 있는 봉우리로 모세가 올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5)    참고로 느보 산에서 브올 산까지는 남북으로 8km거리이고 느보 산에서 가나안의 북단인 단까지는 165km나 됩니다. 따라서 보통사람의 육안으로는 도저히 단까지 볼 수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모세가 그곳까지 보았다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도우심이 있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34:1).

(2)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27:12b);

1)    지금 모세는 모압 평지의 중심부인 싯딤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때는 출애굽 제4011월말경입니다. 이제 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아바림 산맥 북단에 있는 느보 산에 올라가게 되면 장차 이스라엘 자손들이 점령하여 살게 될 가나안 땅을 모두 볼 수가 있게 됩니다.

2)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여기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27:12b)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미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시며 그것은 벌써 그들의 소유라고 언급하십니다.

3)    아직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땅은 그들에게 준 것이므로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의미는 두가지입니다; ①첫째, 그 사실을 믿는 순간 약속의 땅은 그들의 것입니다. ②둘째, 믿지 못하게 되면 그들의 것이 되지를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3)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27:13);

1)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면 장차 이스라엘 자손들이 믿음으로 요단 강을 건너가서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하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그는 기쁜 마음으로 이 땅에서의 자신의 사역을 마치고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있습니다.

2)    그러한 맥락에서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느보 산에서 건너편 가나안 땅을 모두 내려다 보고나서 편히 눈을 감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27:13).

3)    요컨대, 믿음의 열조들이 그리스도를 만나 함께 천성으로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49:31-33, 11:16, 26, 5:25-29, 고전15:20-25). 약 반년 전에 세일 산맥 호르 산에서 먼저 향년을 맞이한 친형 아론도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20:27-28, 33:38-39, 27:13).

둘째로,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27:14); 역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27:14a);

1)    여기서 회중이라고 하는 말은 두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좁은 의미로 불 때입니다. 그때에는 여호와를 모신 회막 앞에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②또 하나는 종족별로 또는 가문별로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넓은 의미의 회중입니다.

2)    여기 신 광야에서의 회중은 두가지 의미를 모두 포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도자들과 백성들 모두가 분쟁하고 원망하기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7:14a). 이스라엘 백성들이 38년만에 신(zin) 광야 초입에 있는 가데스 바네아에 돌아왔더니 그 옛날의 우물이 모두 물이 없어서 메워져 있습니다(20:2).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들끼리 서로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를 따지면서 분쟁하고 있는 것입니다(27:14a).

3)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계십니다. 사람이란 본래 일이 틀어지게 되면 남을 원망하기를 먼저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호와를 불신하고 여호와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불신임하는 불신앙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면 그것은 강력하게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27:14b);

1)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먹을 물이 없어서 모세와 아론을 찾아와서 따지고 있는 것을 불쌍하게 보십니다. 광야에서 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그들의 능력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간구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한 직접적인 부르짖음과 간구라고 하는 신앙생활의 기본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불쌍한 자들입니다. 그러한 자들을 먹이고 입히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사용하겠다고 하시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19:4-6, 8:11-18).

2)    그런데 모세와 아론은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세대나 신세대나 모두 지도자를 원망하고 물을 만들어내라고 떼를 쓰고 있으니 조금의 신앙의 성숙도 없는 그들이 보기가 싫습니다. 따라서 조용하게 반석에게 명령하여 샘물을 내도록 조치하라고 말씀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백성들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습니다(20:10). 백성들에게 화를 내면서 물을 내지 않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밝히려는 듯이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두차례나 내리치고 있는 것입니다(20:11).

3)    그 장면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도자를 교체하려고 결심하십니다(20:12). 더 이상 모세와 아론에게 새로운 세대를 맡길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양들을 돌보느라고 너무 지쳐 있습니다. 이제는 편히 쉬게 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할 때입니다. 그 일이 출애굽 제40년 그해에 모두 마무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33:38-39, 27:12-13, 1:3, 34:1-7).

(3)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27:14c);

1)    므리바라고 하는 말은 다툼이라는 뜻입니다(17:7).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모세와 다툰 최초의 장소가 미디안 땅 호렙 산이 있는 르비딤 광야입니다(17:1-2, 6).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물이 없다고 모세와 다툰 장소가 가데스 바네아입니다(20:2-12). 가데스 바네아는 바란 광야가 끝나고 신(zin) 광야가 시작이 되고 있는 접점입니다.

2)    두 사건 가운데 ①하나는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시작하던 때이며 ②또 하나는 마치는 해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건의 본질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제2므리바 물이라고 여기서 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을 명명하고 있습니다(20:13. 27:14c).

셋째로,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 여호와, 모든 육체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27:15-17); 다음과 같이 역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 여호와, 모든 육체생명의 하나님이시여”(27:15-16a); 여기서여짜와 이르되라고 하는 표현은 상당히 생소한 것입니다. 영어로는 그냥 말하다는 의미로 ‘said to’, ‘told’, ‘spoke’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옛날 선교사들이 한국어로 옮기면서 그 의미를 새겨서 특별하게 “(하나님께) 묻는 형식으로 말하다는 의미를 담아서 여짜와 이르되라고 하는 표현을 채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 하나를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든 육체를 만드시고 생명을 불어 넣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러므로 그 생명을 가진 인간을 불쌍하게 보시고 필요한 보호 조치를 취해 주시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27:15-16a 의역).

(2)  원하건대, 한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27:16b-17a); 모세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 달라고 말씀 올리고 있습니다; ①첫째, 모든 백성 위에 마치 모세 자신처럼 한 사람의 최고지도자를 세워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27:16b). ②둘째, 그 사람은 신정국가의 최고책임자로서 모세가 그러했던 것처럼 백성들과 여호와 하나님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27:17a). 그 사람은 백성들의 고충을 살펴 여호와께 말씀드리고 그 처방을 여호와께로부터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소위 하의상달(下意上達)과 상의하달(上意下達)이라는 두가지 일을 백성들의 진중과 회막을 출입하면서 동시에 행하는 것입니다.

(3)  여호와의 회중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27:17b);

1)    모세가 생각하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이 목자가 없는 양과 같은 자입니다. 사람이 한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말씀의 뜻을 깨달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 경외자로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15:6, 21:33, 22:12). 그러한 인생으로 백성들을 인도하고 깨우침을 주는 자가 바로 목자입니다. 백성들이 그러한 영적인 목자를 따라서 꼴을 먹으며 하나님의 일을 실천할 때에 가장 의미가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2)    지금 모세 자신이 아바림 산맥 끝자락에 올라가서 눈을 감고 나면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이 오기 전에 빨리 여호와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립니다; “부디 이 백성을 목자 없는 양같이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모세 자신과 같은 목자를 세워 주십시오, 그것이 저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모세가 가장 염려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목자를 주시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자를 달라고 하는 기도가 참으로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모세가 느보 산에 올라가서 요단 강 건너편에 펼쳐지고 있는 가나안 땅을 모두 살핀 다음에 과연 어디를 쳐다보았을까요? 그의 평생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모세에게 남아 있는 소원이 무엇일까요?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믿음의 조상에게로 돌아가면서 진실로 열조들이 소망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11:16).

(2)  또 하나는 그곳으로 인도할 그리스도를 원하고 있습니다(11:26). 마치 목자 없는 어린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목자를 여호와께서 보내어 주시듯이 모세 자신에게는 그리스도를 보내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 제11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이한 문장을 적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11:26).

그러므로 아무쪼록 이 세상에서는 참된 목자를 주시고 또한 영생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사해 주변의 지형도; 사해 동편에 아바림 산맥이 등뼈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북단에서 동쪽으로 비스듬히 비스가 산지가 형성되어 있음. 아바림 산맥과 비스가 산지가 만나는 지점에 느보 산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요단 강 건너편을 조망할 수가 있음. 참고로 느보 산에서 가나안 북쪽 단 까지는 165km의 먼 거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