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09강(민21:5-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0. 31. 21:45

민수기 강해 제109(21:5-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29()

 

에돔 땅을 남쪽으로 우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불뱀 사건과 놋뱀의 기적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사건들인가?(21:5-9)

 

출애굽 제40년 정월에 바란 광야와 신(zin) 광야가 만나고 있는 가데스 바네아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도착한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하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됩니다. 광야생활 40년의 형벌이 끝나는 해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가나안 땅으로 정탐꾼을 보내고 실정을 잘 파악해 두어야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약속의 땅으로 진군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해 정월에 그곳에서 누나 미리암이 죽게 됩니다(20:1). 그리고 그곳에서 마실 물을 충분하게 얻지를 못하게 된 백성들의 불만과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20:2-5). 모세는 그동안 38년 동안 시내 광야에서 헤매는 동안에 기성세대가 모두 죽고 그 자녀들로 구성이 된 새로운 세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마저 그 옛날 그들 부모들과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화를 내지 말고 조용하게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도록 하라고 지시하십니다(20:8).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그만 백성들에게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화를 내게 됩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20:10). 구 세대나 신 세대나 전혀 달라진 바가 없기에 너무나 화가 납니다. 그래서 모세가 분풀이 삼아 자신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차례나 내리치고 있습니다(20:11a).

그 순간 참으로 역설적으로 그 반석에서 샘물이 폭포수와 같이 터져 나옵니다(20:11b). 모든 백성과 가축들이 흡족하게 마실 수가 있는 충분한 양입니다(20:11c). 진정으로 끝까지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고 살길을 열어 주시는 분은 모세와 아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하시는 사실이 정확하게 드러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 자리에서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벌을 내리십니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며 용서하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진노하였기에 두가지 죄를 범하였다는 것입니다; ①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를 그대로 이행하지 아니한 불순종입니다(20:12a). ②또 하나는 백성을 용서하시고 샘물을 주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거룩하심을 백성들에게 그대로 드러내지 아니한 죄입니다(20:12b). 그 때문에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영광을 얻지 못하고 그해 광야에서 죽게 되고 마는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20:12c).

그 즈음 정탐을 나갔던 자들이 일부 돌아오면서 모세와 아론에게 급보를 전하고 있습니다. 네게브 지역을 탐지하다가 그만 그 신분이 발각이 되어 가나안 족속 아랏 왕에게 정탐꾼 일부가 생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21:1).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이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운명이 되었기 때문에(20:12) 백성들로 하여금 직접 여호와께 서원기도를 드리라고 종용합니다(21:2). 그 서원기도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부디 적들에게 사로잡힌 정탐꾼들만이라도 구출할 수 있도록 가나안 남부 네게브 지역으로 북벌에 나서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하면 가나안 족속 아랏 부족의 성읍만 불태우고 그 북쪽으로는 더 이상 진군하지 아니하고 곧바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21:2 의역). 그 맹세의 기도가 받아 들여져서 이스라엘군대는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네게브 호르마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21:3).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군대가 가데스에서 곧바로 북진하여 헤브론과 세겜 등지를 점령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모세로 하여금 백성들을 이끌고 에돔 땅을 남쪽으로 우회하여 모압의 동편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사해와 요단 강 동편 아모리 족속들의 땅을 정벌하도록 허락하십니다(2:4-6, 13-17). 그래서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에돔 땅 세일 산맥의 남쪽인 호르 산 근처에 왔을 때에 두가지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1)  첫째, 출애굽 제4051일에 대제사장 아론이 향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명령으로 아론의 3남인 제사장 엘르아살이 대제사장의 자리를 호르 산에서 승계하게 됩니다(20:22-28).

(2)  둘째, 대제사장 아론의 죽음을 30일 동안 애곡한 백성들이(20:29) 세일 산맥 남부의 광야를 통과할 때에 모세에 대한 불평과 여호와에 대한 불만이 보통이 아닙니다(21:4-5). 에돔 땅을 동서로 관통하는 좋은 길 왕의 대로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신 여호와가 원망스러운 것입니다(20:17-21, 2:4-6). 그리고 자신들을 자꾸만 물이 없는 광야로 인도하고 있는 최고지도자 모세가 꼴 보기 싫은 것입니다.

그 결과 본문에서 기술하고 있는 세일 산맥 남부의 광야에서의 불뱀 사건과 모세의 놋뱀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21:6-9). 그 내용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사실이 깊이 함축이 되어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께서는 에돔 족속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이스라엘 자손들과는 동족이라고 말씀하시며 골육상쟁의 전쟁을 불허하십니다(2:4-6).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렇게 여기고 있지를 않습니다. 길을 빌려주지 아니하면 무력으로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쉬운 방법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서 남쪽으로 멀리 우회하고 있는 모세가 원망스러운 것입니다.

(2)  둘째,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구 세대나 신 세대나 솔직하게 말해서 별로 그 성품이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마실 물을 당장 주지 아니하면 물을 달라고 떼를 쓰면서 지도자 모세와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신 세대는 광야생활 40년 마지막해가 되었는데 어째서 아직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여보내어 주지 아니하시는지 여호와를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불뱀을 동원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을 물게 하십니다(21:6). 죽음의 심판이 찾아오자 그제서야 백성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모세에게 대신 중보의 기도를 해달라고 간청합니다(21:7).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라고 하시며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나음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1:8). 그 말씀 그대로 치유와 구원의 역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21:9).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훗날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로 설명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백성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21:5);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백성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21:5a);

1)    누가 누구에게 원망을 하느냐?에 대하여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똑같이 원망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다음 세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피조물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감히 원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피조물의 분수를 완전히 망각하고 있는 교만한 행위입니다.

2)    ②둘째,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까지 원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권위체계를 아예 무시하고 있는 반역 행위입니다. ③셋째, 그 피조물은 보통 민족이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의 은혜를 가장 크게 입은 족속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장 나쁜 배은망덕한 행위입니다.

3)    요약하여 정리를 해보자면 본문의 성격은 ①첫째가 창조주에게 대항하는 사탄적인 것이고 ②둘째가 신정국가의 권위체계를 거부하는 것이며 ③셋째가 참으로 배은망덕한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패역(悖逆, 패륜과 반역)인 것입니다.

(2)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21:5b);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언제부터 여호와를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한 것일까요? 모세는 출애굽 당시부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호와께서 그들의 믿음의 조상과의 언약을 생각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킬 것이며 그들을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살게 할 것이라고 하는 약속의 말씀을 모세가 그들에게 전해 주었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두들 기뻐하였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4:29-31).

2)    그러나 모세와 아론이 애굽의 황제인 바로를 방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했더니 해방이 아니라 더 고된 중노동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지게 됩니다(5:6-11).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5:21). 그후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끊임없이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15:24, 16:2-3, 17:2-3, 14:1-4, 20:3-4, 21:5). 마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기 위하여 광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만 같습니다.

(3)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21:5c);

1)    광야라고 하는 곳은 사람이 살기가 어려운 지역입니다. 수백명이 광야를 헤매게 되면 십중팔구는 죽고 말 것입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기본적으로 결여가 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광야를 24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떠돌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굶어 죽지도 아니하고 갈증으로 죽지도 않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이시고 마실 물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모세가 신명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8:15-16).

3)    그러나 본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이 여호와께로부터 공급받은 것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광야에서 제때 물과 먹거리를 공급 받지 못하여 고생했던 그 일만을 불평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정당하지 못한 비판입니다. 여호와의 은혜를 망각하고 있는 일종의 배신 행위와도 같습니다.

(4)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21:5d); 매일같이 아침에 그들의 진 바깥에 이슬처럼 만나를 내려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16:14-21). 지금까지 그 만나를 요리하여 먹고서 광야생활 40년간 생존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그러므로 만나를 주시는 여호와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렇게 하지를 않습니다. 별로 맛도 없는 만나를 매일같이 먹고 사느라고 고생이 많다는 것입니다. 고급 음식을 주지 아니하고 하찮은 만나와 같은 음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좋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21:5d). 참으로 그 끊임없는 원망과 불평불만 때문에 매를 벌고 있는 족속이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21:6-7);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21:6);

1)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살림의 마음과 그 고마우신 구원의 은혜를 모르는 피조물은 사실 살려 둘 실익(實益)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그 구원하심의 영광을 찬양하지 아니하는 백성들을 어디다 사용할 것입니까? 별로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지난 40년 세월을 광야를 헤매다가 죽어간 기성세대나 이제 그들의 자녀들로 구성이 된 새로운 세대의 이스라엘 자손들이나 별로 여호와를 원망하는 점에 있어서는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강력하게 징계를 하십니다. 사막의 불뱀을 그들 백성들에게 보내어 삽시간에 독아(毒牙, 독이 있는 이빨)로 물게 한 것입니다(21:6a). 불뱀들이 공중을 나는 듯이 비상하여 많은 백성들을 물고 있으므로 짧은 시간에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21:6b). 불뱀을 피하느라고 24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2)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21:7a);

1)    여호와의 강력한 징계를 받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교만하여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창조주 여호와를 원망하였으며 신정국가의 최고지도자인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은 것이 잘못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구 세대처럼 행동한 자신들을 불뱀으로 모두 죽여버리려고 작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시간이 늦기 전에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2)    그런데 회개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참으로 볼거리입니다. 자신들이 스스로 회막을 향하여 모두가 무릎을 꿇고서 부디 죄를 용서하시고 살려 달라고 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부르짖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실종이 되고 없습니다. 그 대신에 마치 무당을 찾아가듯이 모세를 찾아가서 매어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21:7a).

(3)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21:7b); 모세 자신에게 중보의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 백성들의 간접신앙의 모습이 미성숙한 믿음 그대로입니다. 모세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모든 백성들에게 임하여 그들이 성숙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11:29).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가 못합니다. 따라서 모세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섭니다. 그는 회막 앞에 엎드려서 여호와 하나님께 부디 백성들에 대한 진노를 거두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며 뱀의 독으로부터 치유함을 달라고 하는 기도를 간절하게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21:7b).

셋째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21:8-9);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21:8a);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처방의 말씀에 어리둥절합니다. 갑자기 놋으로 불뱀의 형상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21:8a). 그것이 과연 백성들이 입은 불뱀의 독을 치유하는 처방이 될까요?

(2)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21:8b); 반신반의를 하고 있는 모세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설명을 해주십니다. 그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보는 자마다 무조건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21:8b). 생명을 건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라는 확언이십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빨리 백성들에게 알리고 그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3)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21:9a);

1)    모세의 위대한 점은 여호와의 말씀이 다소 의심스럽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창조주의 말씀인 줄 알고서 그대로 실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의 믿음은 그 옛날 아브라함의 다음 믿음과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의 것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2)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매우 이치에 맞고 현실성이 충분하므로 그 점을 인정하고 납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당히 이상한 처방을 말씀하신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방책이라고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확언을 해주셨기 때문에 창조주의 권능을 믿는 그 마음으로 그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3)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고 있습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21:9a);  그리고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습니다; “물린 자마다 그것(놋뱀)을 보면 살리라”(21:8b).

(4)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21:9b);

1)    모세가 전해 주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서 그 장대 위의 놋뱀을 쳐다본 백성들은 아무리 불뱀에게 물려서 독성이 전신에 퍼지고 있는 자라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목숨을 건지고 있습니다(21:9b). 참으로 신기한 노릇입니다. 그 장대에 매달린 놋뱀이 무엇이기에 그러한 여호와의 치유의 능력과 생명살림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요?

2)    그것은 일찍이 마라의 샘물에 한 나무를 던져서 그 물을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생명수로 바꾸어 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구한 경우와 같은 처방입니다(15:25). 같은 맥락에서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

결론적으로, 창조주 여호와의 생명살림의 은혜와 그 사랑을 무시하고서 교만하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만 늘어놓는 그러한 배은망덕한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더 이상 돌보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뱀을 보내어 전멸시켜버리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모세에게 여호와께 기도하여 부디 살길을 열어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 참상을 보고서 모세가 중보의 기도를 드립니다. 여호와께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처방을 말씀하십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고 그것을 뱀에 물린 백성들이 쳐다보게 하라는 것입니다.

창조주 여호와의 구원하심과 생명사랑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모세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 그대로 그 장대 위의 놋뱀을 쳐다본 백성들이 치유와 구원의 은혜를 얻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장대 위에 매달린 놋뱀이 바로 만민을 치유하고 구원하고자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바쳐지게 되는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3:14-15).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와 같은 이치를 생각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은혜와 깨달음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