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5강(민3:49-5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2. 04:24

민수기 강해 제15(3:49-5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0 20()

 

레위인보다 273명이 더 많은 이스라엘 장남들에 대해서는 속전을 거두어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고 있는데 그 깊은 의미가 무엇인가?(3:49-51)

 

본문은 세상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 하나님의 조치가 참으로 이상합니다. 12지파로부터 무려 1,365세겔이라고 하는 막대한 은을 거두처서 그것을 모두 대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이며 제사장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4:49-51). 따라서 그 연유와 그렇게 조치하고 계시는 이유에 대하여 먼저 다음과 같이 분석을 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출애굽기 제28장과 29장의 기록에 의하면 아론의 아들로서 제사장이 된 자는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엘르아살과 이다말 등 네 사람입니다(28:1, 29:1). 그런데 레위기 제10장에서 불행하게도 장남인 나답과 차남인 아비후가 성전에서 율법에 정한 향불이 아니라(30:34-38) 다른 향불을 향로에 담아서 여호와께 드리다가 그만 여호와께로부터 나타난 불에 타 죽게 되는 비극이 발생하게 됩니다(10:1-2). 따라서 본문에서 여호와의 명령으로 모세로부터 그 막대한 은을 수령하고 있는 자는 대제사장인 아론과 살아 남은 그의 두 아들인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라고 하겠습니다(3:51).

(2)  둘째, 그들이 받게 된 그 막대한 은의 가치에 대하여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세겔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하게 은 11.4g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소의 세겔로 계산하라고 말하고 있으므로(3:47, 50) 시중에서 통용이 되는 무게의 두배입니다. 1성소 세겔은 은 22.8g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그 값어치를 쉽게 파악하기 위하여 시대가 많이 다르지만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제20장의 기록을 참조하고자 합니다. 당시 선민 유대인 사회에서  장정의 하루 품삯이 1세겔의 4분의 1 1데나리온이라고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20:2). 그것을 오늘날 선진국의 임금수준으로 바꾸어서 1데나리온이 약 100달라라고 가정을 해봅니다. 그렇다면, 100달라x4x2=800달라인데 그것이 성소의 1세겔의 가치가 됩니다.

2)    그런데 1,365세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남의 수가 레위인 수보다 273명이 더 많기 때문에 한 사람 당 5세겔씩을 속전으로 계산하여 만들어진 은의 양입니다(3:46-47, 50). 그러므로 273x5=1,365세겔입니다. 그것을 아론과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균등하게 배분하여 주었다고 가정을 한다면 한 사람이 91명의 속전에 해당하는 455세겔씩 받게 된 것입니다. 그 가치는 455세겔x800달라=36 4천 달라입니다.

(3)  셋째, 민수기의 기록은 출애굽후 제2 2 1일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1:1). 애굽에서 430년만에 출애굽을 맞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12:40-42). 그들은 같은 셈족인 힉소스인들이 애굽의 신왕국에 의하여 동쪽 국경 바깥으로 쫓겨나자 그때부터 120년 이상을 대를 이어가면서 애굽제국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당시 그들은 개인적인 재산이 없습니다. 단지 유월절 밤에 줄초상이 난 애굽인들에게 은과 금 그리고 각종 물품을 청구하여 그것을 얻어서 애굽을 떠나온 것입니다(12:35-36). 그 가운데 상당한 은과 금 그리고 물품은 성막의 건설에 사용이 됩니다(25:2-9, 38:24-31). 이제 남은 패물 가운데 은을 모아서 제사장들에게 나누어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최초의 부자는 대제사장 아론과 제사장인 그의 두 아들이라고 하겠습니다.

(4)  넷째, 그것은 세상적인 정의의 눈으로 보게 되면 불공평한 것입니다.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의 사회가 최초로 형성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공의의 정신과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정의의 개념이 완전히 다른 것일까요? 그것이 아닐 것입니다. 좀더 깊고 오묘한 이치가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이 숨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    여호와를 섬기는 인류최초의 신정국가가 시내 산 앞에서 성립이 되고 있습니다(19:1-6). 그때 여호와의 말씀이 모세를 통하여 신정국가의 법률인 율법으로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제사장과 제사장을 세우는 방법이 들어 있습니다. 우선 대제사장은 모세의 형인 아론이 되고 그의 아들로서 30세가 넘은 자들이 제사장이 됩니다(28:1, 29:1).

2)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예법과 성막의 뜰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방법이 심히 엄격합니다. 예를 들면, 율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예복을 입지 아니하고 성소에 들어가게 되면 죽임을 당합니다(28:35, 43). 그리고 관유와 가루향을 만드는 방법도 율법의 규정에 따라야 합니다(30:22-38).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어긋나는 복장을 갖추거나 제례의식에 어긋나는 제사를 드리거나 다른 재료로 관유나 가루향을 만들어서 사용하게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28:42-43, 30:18-21, 33, 38).

3)    애초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여호와의 음성이 너무나 두려워서 가까이 나아가지를 못했습니다. 산 아래 경계를 넘어서게 되면 누구나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19:12-24). 따라서 모세에게 부탁하여 홀로 시내 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배워서 하산하여 자신들에게 알려 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20:18-19, 5:24-27). 그리하면 율법을 정확하게 지키겠다고 맹세를 한 것입니다(24:1-3, 5:27).

4)    그에 따라 율법을 어기게 되면 신분고하(身分高下)를 막론하고 죽임을 당하는 엄격한 율법사회가 형성이 된 것입니다. 그 최전선에 모세와 제사장들이 서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먼저 죽임을 당한 자는 아론의 장남과 차남입니다. 율법의 규정에서 벗어난 향재료로 향로에 불을 피워서 성소에서 사용을 하다가 여호와의 불에 타 죽게 된 것입니다(10:1-2). 그와 같은 슬픔을 당한 대제사장 아론, 그리고 그러한 위험에 항상 노출이 되어 있는 그의 아들인 제사장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위로와 상급을 약속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5)    그 보상은 제사장나라로 살아간 거룩한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그 상급을 말하고 있습니다(19:6). 유일한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서(4:14-16)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서 복음전파의 삶을 살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대속의 죽음을 앞두시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천국에서의 상급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6)    제사장으로 평생을 헌신하고 희생한 자들이 죽은 다음에 천국에서만 그 상급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이 세상에서 미리 그것을 약간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한 놀라운 상급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 것이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엄청난 은의 양이라고 하겠습니다(3:50).

(5)  다섯째, 그렇다면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12지파가 모아서 준 그 은을 함부로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평생을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 주기 위하여 헌신하는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재물도 그러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기뻐할 따름입니다. 만약 그러하지를 못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여생을 즐기며 낙을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한 부자의 비유처럼 어리석은 부자의 말로(末路)가 되고 말 것입니다(12:19-21).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모세가 레위인으로 대속한 이외의 사람에게서 속전을 받았으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태어난 자에게서 받은 돈이 성소의 세겔로 1,365세겔이라”(3:49-50);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모세가 레위인으로 대속한 이외의 사람에게서 속전을 받았으니”(3:49);

1)    레위인들이 대속자’(代贖者)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대속이란 단순한 의미입니다. ,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장남들은 여호와의 것으로 살아가야만 하는데(13:1-2) 그 의무를 레위인들이 대신 짊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3:41, 45). 그것은 마치 조선시대에 평민들이 군역(軍役)을 담당하고 있는데 자신들이 군에 나가지 못하는 경우에는 대신 다른 사람을 군에 보내야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신 군인의 자리에 세운다고 하는 의미에서 대립군’(代立軍)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2)    이스라엘 12지파의 장남의 수와 레위인 남자의 수가 일치를 해야만 11’로 대속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레위인 남자의 수가 273명 부족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방법이 돈으로 대신 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름하여 속전’(贖錢)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조선사회에서 군역을 옷감이나 돈으로 대신 내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3)    속전’(贖錢)의 본래의 뜻은 종살이를 하던 사람이 돈을 주고서 종의 멍에에서 풀려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장정의 몸값이 은 30세겔입니다(21:32). 미성년자는 은 20세겔입니다(37:28). 그러므로 그 돈을 지불하면 자유를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돈을 지불하고 종이 양민이 될 수가 있으므로 달리 속량’(贖良)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4)    대속의 개념과 속전의 개념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더 넓고도 깊은 의미를 얻게 됩니다. 대속자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만민구원을 위한 제물로 오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 의미가 확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은 그 대속의 넓이가 이스라엘 12지파의 장남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류와 피조세계에서 생명을 지니고 있는 모든 것들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넓어지는 것입니다(3:16, 8:18-23).

5)    그러므로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이 누구에게나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고전15:20)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은 생애를 지상명령을 실천하면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서 살아간 성도들에게는 역시 영생의 부활과 하나님나라에서의 상급이 약속이 되고 있습니다(22:28-30, 고전15:21-24). 유한한 인생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는 그것이 대속의 깊은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곧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태어난 자에게서 받은 돈이 성소의 세겔로 1,365세겔이라”(3:50);

1)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 가운데 태어난지 한 달 이상이 되는 장남의 수가 2 2,273명입니다(3:43). 그런데 레위인들 가운데 태어난지 한 달 이상이 된 남자가 2 2천명에 불과합니다(3:39). 애석하게도 273명이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12지파의 장남 가운데 273명을 어떻게 분류하면 될까요? 한 사람 당 성소 세겔로 5세겔씩 지불하여야 하므로 그 분류가 쉽지가 않습니다.

2)    어느 지파의 장남이 그 속전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12지파가 모두 평등하게  273명의 속전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지파가 22명씩의 속전을 우선적으로 책임을 집니다. 그리고 나머지 9명에 대해서는 장정의 수가 작은 3지파 곧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가 빠지고 그 나머지 9지파가 한 사람씩의 속전을 더 부담하면 되는 것입니다(1:21-43).

둘째로,모세가 이 속전을 여호와의 말씀대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느니라”(3:51);

(1)  이스라엘 12지파의 장남 가운데 273명이 성소의 세겔로 5세겔 씩 속전을 내도록 되어 있으므로 그 은의 양이 무려 1,365세겔이나 됩니다. 오늘날의 화폐로 대충 계산을 해보면 109 2천 달라가 됩니다. 그 많은 돈을 전부 여호와의 명령으로 모세가 대제사장인 아론과 제사장인 아론의 두 아들에게 주고 있습니다(3:51). 그 세 사람은 그 돈으로 무엇을 하는 것일까요? 여호와께서 천국에서 주실 상급을 미리 이 땅에서 일부 주셨다고 생각하고서 호의호식(好衣好食)을 하는데 사용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2)  그 이유는 여호와를 섬기는 인류 최초의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에서 대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인 제사장들이 맡은 중차대한 역할과 사명이 다음과 같이 명시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위  지파는 나아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할지니,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맡기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온전히 맡겨진 자들이니라.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3:5-10).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레위 지파의 모든 자손들과 함께 성막에서 여호와를 섬기며 성막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3)  그런데 성막을 유지하고 관리하는데 있어서 경비가 많이 들고 있습니다. 성소에 바치는 진설병 떡과 등불의 기름, 그리고 가루향과 관유 등이 계속 필요합니다. 또한 속죄의 제물로 바치는 가축도 상당합니다. 더구나 성막의 기구와 성물이 거룩하게 유지가 되자면 계속 보수를 해야 합니다. 그 많은 경비를 조달하여야 하기에 훗날 성전세가 속전으로 제도화가 됩니다. 당장은 본문에서 273명 분의 속전을 12지파로부터 거두어서 그것을 사용하도록 대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인 제사장들에게 맡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개인적인 상급이나 보상으로 보기에 앞서서 그러한 공적인 성격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는 돈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아직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지 못하고 광야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와 달리 레위인들은 모두 성막 봉사에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막을 유지하고 관리하며 제례의식을 행하는데 경비가 많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경비를 12지파가 부담한다는 의미에서 273명에 대한 속전을 거두어서 여호와의 명령으로 모세가 제사장들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훗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레위인들의 생계를 위하여 매년 십일조를 성막에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막에 드는 경비를 지원하기 위하여 성전세를 속전의 개념으로 매년 내게 됩니다 물론 그 납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하여 성전의 운영에 막대한 차질이 발생하기도 합니다(대하24:6, 3:7-12).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2:21)고 강조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것을 드려서 그 뜻을 이루어 드리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