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84강(마26:47-5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12. 04:44

마태복음 강해 제184(26:47-5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512()

 

영광스러운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비천한 피조물 사람들에게 붙잡혀가는 사건이 발생하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26:47-56).

 

예수님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4복음서는 한결같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는 그 주장의 근거로서 예수님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 곧 성육신, 공생애, 대속의 십자가 죽음, 무덤 속 부활과 승천 등이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의 본뜻을 만민구원사상으로 풀이하여 온 세상에 복음으로 전하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사역이 하나님의 뜻에 합치가 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의 현장에는 항상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참고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대목을 복음서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1:18),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1:1),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1:3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5:25).

그런데 그와 같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어째서 어처구니가 없게도 일개 피조물에 불과한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과 그 하인들에 의하여(22:52) 체포를 당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요? 그와 같은 의문에 답을 해주고 있는 실마리가 본문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문의 내용을 우선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국면을 전환시키는 하나님의 반전(反轉, reversal)의 지혜가 터져 나오고 있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세력들 곧 사탄과 악한 영들은 이 세상을 어느 정도로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요?

(1)  그들은 마치 이 세상이 완전히 자신들에게 등기가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 다음과 같이 제의를 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또 그(예수님)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4:8-9). 물론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사실은 여전히 창조주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강력하게 질책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4:10).

(2)  그러나 예수님의 강력한 항의와 질책이 있기 전까지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사탄과 악한 영들의 지배력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사탄이 내세우고 있는 죄와 사망의 논리에 묶여서 꼼짝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함이라”(6:1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3)  그렇다면 예수님이 어떻게 처신을 하여야 사람들이 죄와 사망의 논리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한 마디로, 어두움의 세상에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다시 번쩍이어야만 합니다(1:3-4). 죄와 죽음으로 가고 있는 세상을 용서와 생명의 길로 되돌려야만 합니다(8:1-2). 그 방법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1:29) 십자가에서 유월절 대속의 제물로 바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탄의 조종을 받고 있는 유대교 대제사장들의 손을 빌려서 바치도록 하는 것입니다(26:47, 55-56). 하나님의 아들을 곧 포도원의 상속자를 죽여버리고 주인의 포도원을 완전히 차지하고자 획책했던 농부들이 어떠한 징계를 받게 되는지를 생각해보면(21:37-41) 하나님의 지혜가 국면을 전환시키는 반전의 지혜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고육지책’(苦肉之策, 자신의 살을 내주고 상대방의 뼈를 얻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대적자 사탄 사이에는 큰 능력의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사탄은 죄와 사망을 지배할 수는 있으나 죽은 자를 살리는 창조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창조주의 능력을 사이비로 모방할 수는 있지만 결코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창조주의 능력을 행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차이를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로 보내고 계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묵상해보면 그것은 하나의 고육지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육신을 십자가에서 처형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을 비롯한 어두운 사탄의 세력들은 좋아들 합니다. 얼른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버리고 영구히 이 세상을 지배하고자 획책합니다. 하지만 깜박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에게는 재창조를 의미하는 부활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한 순간 잊어버리고 방심한 것입니다. 사탄 그 죽음의 세력은 예수님이 벗어버리고자 하고 있는 육신만을 음부의 세계로 끌고 가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그 영혼은 창조주가 주시는 부활의 몸을 입고 무덤 속에서 삼 일만에 되살아나고 있습니다(28:1-10). 요컨대, 썩어질 수 밖에 없는 몸을 주고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부활의 몸을 입는(고전15:42)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이며 하나의 고육지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사석작전’(捨石作戰,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얻는 전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를 지고 대속의 제물이 됩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범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 제물이기에 그 자체 영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속죄이므로 하나님을 만족시키고 있습니다(7:24-28). 그때부터 죄인들은 십자가 앞에서 회개를 한다면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마치 한 사람 아담을 통하여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듯이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그 몸으로 드렸기에 그 사실을 믿고서 회개를 하는 자는 의인이 되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고전15:21-22). 그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석작전이라고 하겠습니다.

넷째로, 아들까지 버리셨으니 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25:29, 11:21). 십자가를 쳐다보게 되면 두 가지 사실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1)  자신의 아들을 속죄의 제물로 내려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천하고 천한 피조물인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영원한 속죄의 제물로 보내어주셨으니 그 사랑 앞에 할 말이 없습니다. 따라서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하나님의 종으로 기꺼이 살아가고자 결심합니다. 그러한 자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2)  십자가에서 두려우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죄인인 인간들을 처벌하시는 대신에 자신의 아들을 처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을 처벌하셨으니 차후 잘못을 범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두렵습니다. 용서함이 없이 단호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예수님이 진작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로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1-32).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옷깃을 한번 더 여미어야만 합니다.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의 제물로 내주시기에 서슴지 아니하셨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십자가를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희생시켜가면서 죽을 목숨을 살려주셨으니 그 은혜가 참으로 큽니다. 동시에 아들을 처형하면서까지 죄를 미워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면 진심으로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우심을 구해야만 합니다(26:41-42, 16:22-24). 그리하면 진리의 성령님이 그 형편을 아시고 능력으로 함께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완악하게 행동을 한다면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두려운 심판을 맞이할 따름입니다(9:34, 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