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41강(마22:7-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19. 17:47

마태복음 강해 제141(22:7-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320()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라”(22:14)는 말씀 그대로 만민구원의 넓은 길에 위치하고 있는 세 개의 좁은 관문(22:4-13)

 

첫째로, 이방인들에게 천국잔치의 초청장이 발부가 되고 있습니다(22:9). 왜냐하면 선민들이 초청장을 먼저 받고서도 참석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22:2-6, 8). 그러므로 이방인들에게 천국잔치 참석의 관문이 열린 것은 천국잔치에 초청을 받은 선민들이 집단적으로 불응하게 되는 사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배척하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로마총독에게 압력을 가한 것입니다(26:64-68, 19:12-16). 그 결과 예수님이 선민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따라서 복음은 이방인에게 넘어가게 되고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만민구원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습니다(11:12).

그와 같은 전환의 시기에 몇 가지 대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1)   비유의 말씀 그대로 선민에 대한 심판이 응하고 있습니다. 왕자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은 귀인들이 임금을 싫어하여 참석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재차 종을 보내어 참석을 종용하였으나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완강한 반대자들은 심부름꾼인 종을 살해합니다. 그 결과 초청대상자인 선민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22:7).

(2)   임금의 진노와 선민에 대한 토벌의 예언은 예수님이 비유로써 주후 30년경 예루살렘 성전에서 선포를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21:7-11, 23, 22:1). 그런데 단지 엄포에 그치고 있지를 않습니다. 실제로 역사 가운데 실현이 되고 있습니다; 예언이 있고 나서 며칠 후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이 되고 40년이 지나면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버리게 됩니다(24:1-2). 여기서 임금이 보내고 있는 군대는 역사적으로 로마의 군대입니다.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이 학살을 당하게 되는데 그 참상이 엄청납니다.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여 로마의 검으로 살해한 유대인의 수가 110만명에 이르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내 사람이 살 수 있는 동네가 모두 불에 타버리게 됩니다(22:7).

(3)   예루살렘이 망하고 나자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 모두 이방지역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막내 사도인 요한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소아시아 에베소에 가서 주변의 이방교회들을 보살피게 됩니다. 뒤늦게 헬라의 철학과 학문을 공부하여 제4복음서를 저술합니다. 요한복음은 헬라인과 로마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서양인들의 학문체계와 논리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를 진술하고 있으니 복음을 이해하기에 참으로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작업이 이루어짐으로써 만민구원의 첫 관문 곧 선민 유대인의 넘어짐과 이방인들의 접붙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11:17).

둘째로, 이방인 누구나 천국잔치에 초청을 받고 있습니다. 임금의 종들이 네거리 길에 가서 만나는 사람을 모두 잔치에 초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2:9). 그렇지만 초청에 응하는 자와 응하지 아니하는 자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오랜 세월을 제멋대로 살아온 이방인들입니다. 천국잔치에 초청을 받았다고 하여 심기일전하여 금방 초청에 응할 리가 없습니다.

종들이 임금의 명령으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상관없이 길에서 만나는 대로 모두 초청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22:10).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자와 성도들이 차별 없이 온 세상에 전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악한 자는 주춤할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그리 쉽지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가 천국잔치에 참석하기 위하여 믿음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관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초청을 받아들여서 이제부터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자 결심을 하는 자가 두 번째의 관문을 자기도 모르게 통과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임금이 잔치를 시작하기 전에 참석한 손님들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천국잔치에 참석할 자격이 있는지를 최종 점검하는 순서입니다. 자격의 기준은 예복을 입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22:11-12)입니다. 도대체 마지막 관문이 되고 있는 그 예복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보통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서 그리스도의 가리움을 받고 있는 것을 예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하나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왕 예복을 입고 참석할 생각을 하고 있다면 천국잔치의 주인공인 왕자에게 가지고 갈 선물까지 준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선물이 무엇일까요? 일종의 예물입니다. 그것은 믿지 아니하는 자를 믿음의 사람 곧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 주님께 예물로 올려드리는 것입니다(66:20, 12:3).

예복을 입지 아니한 자를 가려내어 임금이 결박을 지우고 바깥 어두운 곳에 던져버리고 있습니다(22:13a). 실로 가혹한 처벌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22:13b)는 언급은 영원한 처벌을 지옥에서 받고 있는 장면을 연상시키고 있습니다(8:11-12, 13:42). 따라서 이왕 천국잔치에 참석하고자 마음을 먹고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열매를 많이 맺고서 그것을 예물로 주님께 바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약을 해보자면, 이방인들은 선민들이 복음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죽음의 자리에 넘겼기에 그 덕택에 천국잔치에 초청장을 받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공로를 전혀 자랑할 거리가 없는 사람들입니다(11:18).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으로 첫 번째 천국 행의 관문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관문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새로운 믿음의 인생을 살아보고자 악한 길을 떠나는 것이 두 번째 관문입니다. 마지막 관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그 제자로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와 같이 세 개의 관문을 모두 거쳐야만 하기에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22:14)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