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26강(마20:24-2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11. 00:35

마태복음 강해 제126(20:24-2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37()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치심(20:24-28)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시면서 그 마음이 무겁습니다(20:17). 이미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예언의 말씀을 전해주신 바 그대로 이번 예루살렘 입성을 통하여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받으시게 되기 때문입니다(20:18-19, 17:22-23, 16:21). 비록 대속의 십자가의 죽음의 결과 영광스러운 부활사건이 삼일만에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십자가 처형이라는 통과의례가 너무나 끔찍합니다. 제자들과 동일한 육체를 가지시고 함께 공생애를 살고 계시는 예수님의 입장으로서는 인류가 고안한 가장 고통스러운 처형의 방법을 그 연약한 육체로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리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모든 사람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희생제물로 바쳐지는 고귀한 희생이라고 하더라도 그 고통만은 끔찍하기 그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승 예수님의 그와 같은 무거운 마음을 제자들이 전혀 헤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마음을 제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동년배 수제자 시몬 베드로의 경우에도 그러합니다. 그는 스승에게 그와 같이 힘든 대속의 어린양 그리스도의 길을 가지 마시고 부디 모세와 같이 이방인들에게 재앙을 크게 내리는 메시아의 길을 힘차게 나아가시라고 진언하고 있습니다(16:22-24). 그리고 갈릴리에서부터 자신의 공생애를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 예루살렘으로 동행하고 있는 후원자인 여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20:20-23, 8:3). 그들은 모두 예수님이 이제 능력 많은 메시아로서 외세를 몰아내는 큰 기적을 행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제자들과 함께 총 진군하고 계시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제국과 같은 메시아의 나라가 곧 성립하게 되면 미리 높은 자리를 얻어보겠다고 벌써 경쟁들을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10:35-37, 20:24).

답답하고 심히 어처구니가 없는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신 예수님께서 차제에 제자들이 반드시 명심해야만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섬기는 리더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5-28). 그 뜻을 한번 음미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이미 말씀하신 제자도’(弟子道, the way of disciple)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4-25).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라서 자기의 권리와 이익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의 기도를 드리며 진심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하는 제자들에게는 스승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가 부활시켰듯이 부활의 은혜와 영생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자신들의 세상적인 이익을 위하여 예수님을 모세나 다윗과 같은 메시아로 모시고 감히 하나님의 능력을 동원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칼로써 선민의 영광을 온 세상에 떨치고자 하는 경우에는 결국에 제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16:25, 26:51-52).

둘째로, 어린아이가 부모의 뜻을 잘 따르는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잘 따르고 어린 성도를 잘 섬겨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예수님의 평소 지론과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18:4-6).

셋째로, 본문은 결코 먼저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고 하여 텃세를 부려서는 아니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취지의 말씀을 예수님이 이미 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9:30).  본문의 말씀 그대로 세상임금이나 관원들과 같이 교회에서 세도를 부리게 되면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으로부터 질책을 받게 될 것입니다(20:25-26).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더 많이 충성하고 헌신했다고 하는 사실을 가지고 자신을 교회 내에서 차별화하여 나중에 믿게 된 성도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면 마치 바리새인들과 같이 예수님의 눈밖에 나는 외식주의자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18:11-12, 23:5-13). 그것은 마치 포도원의 품꾼의 비유의 결론과 같습니다(20:9-12);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20:16).

결론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메시아의 역할과 예수님이 자각하고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그리스도의 사명은 다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고대하고 있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능력과 칼로써 이 땅에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영웅이라면 예수님이 실현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사명은 선민 이방인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을 섬기며 자기 목숨을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20:28).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가 되려고 하는 자는 백성들을 섬기고 대속의 제사를 드리는”(20:26) 이른바, “제사장으로서의 삶(20:27, 19:6, 벧전2:9)을 끝까지 신실하게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