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07강(마17:1-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2. 23:02

마태복음 강해 제107(17:1-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218()

 

충격적인 변화산상의 모습과 제자들에게 주고 있는 교훈(17:1-9)

 

예수님은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예언을 했습니다(16:21). 그때 한 말씀을 더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16:28). 부활하신 예수님이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이 세상에 온다는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하여 그 모습을 한번 보여주겠다는 약속이 들어있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로 새겨볼 때에 그 약속의 말씀이 있고 나서 6일 후에 발생하고 있는 변화산상의 영광스러운 변형의 모습(17:1-9) 왜 발생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갑자기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형이 되고 있는 당시의 모습은 다음과 같은 이상한 네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함께 동행하지 아니했습니다(17:1). (2)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는데 그 앞에 갑자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함께 말씀을 나누시는 것입니다(17:2-3). (3)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지어놓고 거기서 살고 싶다고 말했지만 하나님의 음성에 의하여 거절이 되고 있습니다(17:4-5). 하산하여 예수님의 말씀만을 듣고서 그대로 행하라는 명령이며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17:6-8). (4) 예수님은 제자들이 본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17:9). 일종의 한시적인 뉴스 엠바고’(news embargo)와 같은 것입니다. 침묵의 기간은 예수님의 부활이 발생하기 전까지입니다. 그와 같은 이상한 특징이 왜 나타나고 있는지 한번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어째서 예수님은 그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등 세 사람의 제자만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갔을까요? 그리고 왜 그때에 그러한 변화산상의 변형이라는 대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눈에 보기로도 그 사건은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16:28)는 예수님의 예언을 성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소에도 예수님은 제자 가운데 특별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세 사람만을 데리고 따로 다니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26:37, 겟세마네 동산에서 따로 기도하실 때, 5:37,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칠 때). 그렇게 깊숙한 현장까지 대동하고 있는 수행제자 세 명과 함께 있을 때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어째서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는데 그 앞에 갑자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는 것일까요? 그 사건은 다분히 예수님의 권위를 몰라보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시비를 걸어온 일과(15:1-2, 16:1)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의 오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적을(16:1) 많이 행한 민족의 해방자 모세를 존경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편 바리새인들은 모세오경뿐만 아니라 다른 선지자의 글도 모두 공부하고 있습니다(23:8). 그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선지자가 될 수 있기를 평생 동안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중의 선지자로 불리고 있는 엘리야를 엄청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변화산상의 모습에는 모세나 엘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는 예수님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있습니다(17:2-3, 6-8). 그 대신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하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만이 들려오고 있습니다(17:5). 요컨대, 해같이 빛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앞에 모세나 엘리야 역시 반딧불과 같은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지어놓고 변화산 위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지만 하나님의 음성에 의하여 거절이 되고 있습니다(17:4-5).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의 요청은 한 마디로,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에서 예수님과 선지자들 그리고 모세를 모시고 영원히 함께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치 인생의 목표같이 보입니다. 눈물과 고난의 이 세상을 떠나서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그것이 신앙생활의 결과로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렇게 남은 인생을 덧없이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천국에 가기 전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제자들이 하산하여 예수님의 말씀만을 듣고서 그대로 행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17:6-8).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지상명령이 아직 평생의 과업으로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28:18-20, 1:24).

넷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본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17:9). 비밀엄수의 기간은 예수님의 부활이 발생하기 전까지입니다. 왜 그렇게 당분간 비밀에 부쳐야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의 역사로 증거를 받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화산상의 모습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회복하고 있는 장면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 명의 제자들에게 영적으로 잠시 보여주고 있는 그 장면은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을 하시게 되면 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때에는 많은 제자들과 추종자들이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고전15:4-8). 그때까지 곧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살릴 때까지는(2:32, 8:11) 세 제자가 영적으로 본 것을 일단 함구를 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임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이후에는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고전15:4-11).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정신이상자 취급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깨달음을 세상에 전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게 됩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바울이 세상이치에 맞지 않는 복음을 증거할 때에 로마총독 베스도와 같은 사람은 크게 오해를 했습니다; “학문이 많은 바울이 그만 미쳐버렸다는 것입니다”(26:24).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옳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능력으로 입증을 하고 있기에 자신이 복음을 더 이상 부끄럽게 생각하지 아니하며 그 도를 전하는 이방인 사도가 된 것”(1:16-17)이라고 로마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론 삼아 한 말씀을 드려보자면, 성도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의 부활의 영이 그 속사람 속에 내주하여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