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05강(마16:20-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2. 03:37

마태복음 강해 제105(16:20-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217()

 

예수님의 그리스도론, 유대인이 기대하고 있는 메시아와 다른 그리스도의 성격(16:16, 20)

 

한 마디로, 유대인들이 고대하고 있는 메시아의 성격은 원수를 용서하지 아니하고 쳐부수는 전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성격은 그 반대입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그 영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을 쳐부숨으로써 원수가 된 사람까지 구해내고자 하는 구원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5:43-48, 3:16-17). 그러므로 그 두 개념의 차이를 구별하기 위하여 같은 뜻의 용어이지만 히브리어 메시아와 헬라어 그리스도를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개념의 차이를 명료히 하기 위하여 용어사용을 구별하고자 하는 하나의 조작적인 방법이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상상하고 있는 메시아를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히브리어의 용어 그대로 메시아로 발음하고 그 대신에 예수님이 의미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개념을 헬라어 그리스도에 그대로 담아서 사용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전에 개념상의 혼동을 다소나마 예방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하 그와 같은 개념으로 용어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이점 양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지난 3년 동안 공생애를 함께 살아오시면서 그 개념의 차이에 대하여 많이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역시 유대인들의 메시아 사상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생소한 사상인 그리스도 이론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시몬 베드로가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깨달음이기 이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드로의 입술을 통하여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6:16). 세상의 구원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 깨달음을 함부로 유대인들 앞에서 발설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16:20). 왜 그러할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가셔야 되는 길이 유대인들이 상상하고 있는 메시아로서 가야 되는 길과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그 사실을 백성들이 알게 된다면 대혼란이 야기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원망할 것입니다. 적을 물리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까지 구원하기 위하여 용서하라고 외치는 자를 메시아로 보내준 사실에 격분할 것입니다. 기대가 큰 만큼 얼마나 실망과 원망이 클 것입니까?

요컨대, 그리스도 이론에 따르면 이방인들과 원수들을 위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이 그들을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며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라고 합니다. 그것은 그들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유대교의 교리 가운데에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율법은 그 반대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로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생명에는 생명”(21:23-25)이라는 보응의 법칙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정체를 공개하게 되면 유대인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그들의 율법정신에 위배가 되고 있는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나설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로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고 마침내 부활의 새 날을 열 것임을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주시다(16:21, 8:31, 9:22)

 

사실 사도 마태는 예수님이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게 될 공산이 크다고 하는 사실을 진작 그의 복음서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12:14-16). 안식일 날 갈릴리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율법규정을 위반했습니다(12:1). 배가 고픈지 그만 밀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서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그 잘못을 지적했습니다(12:2). 그런데 예수님이 수용을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반박을 하셨습니다.

더구나 이번에는 예수님 스스로 안식일 규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12:13). 안식일 날 가버나움 회당으로 짐작이 되는 큰 회당에서 한쪽 손 마른 병자를 고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날에는 성전과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 외에는 다른 세상적인 일을 해서는 아니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의 율법생활의 수칙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율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율법수칙에 문제가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시비거리를 찾고 있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이에 개의치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그들에게 알려주면서 그대로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은 안식일 날은 생명을 살리고 돌보라는 하나님의 뜻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날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알려주기 위하여 일부러 병자를 고쳐주신 것입니다(12:10-13). 그렇지만 메시아로 자처하고 있는 예수님이 스스로 안식일 규정을 무시하고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인양 엄청난 말씀을 늘어놓자(12:3-12) 율법선생인 바리새인들이 지극히 화가 났습니다. 자신들의 훈계도 무시하고 있는 예수는 유대교의 공공의 적입니다. 유대교의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죽여버리려고 그때부터 계획하게 됩니다(12:14).

그러한 움직임을 예수님이 인지하고 있습니다(12:15). 그래서 회당을 떠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병자들이 뒤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몰래 회당 바깥에서 바리새인들의 눈을 피하여 그들을 고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바리새인들이나 다른 유대인들에게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12:16). 계속 바리새인들과 유대교지도자들을 자극했다가는 죽임을 빨리 당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 할 일이 많은데 빨리 죽게 되면 그것도 큰 일이기 때문에 조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이 대규모 군중집회를 갈릴리 지방에서 수 차례 가졌습니다. 그 가운데 두 차례의 치유집회에는 2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굉장한 치유의 기적이 있었고 하늘의 곳간이 열리는 기적도 발생을 했습니다. 예루살렘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조사단이 왔습니다. 그들을 한 동안 상대하다가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지방을 벗어나서 북쪽 빌립보 가이사랴로 피난을 가신 것입니다(16:13). 그곳에서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복음의 말씀으로 교육시키시면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일정에 대하여 처음으로 발설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16:21). 그 이유는 지금까지의 경과로 보아 아무래도 그리스도의 사역을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계속하게 되면 생각보다 빨리 대속의 죽임을 당할 공산이 크다고 하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마태가 처음으로 적고 있는 예수님의 그리스도로서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예언이 다른 공관복음에도 그대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8:31),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9:22). 마가복음이 최초의 복음서라고 볼 때에 누가복음은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반면에 마태복음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차이가 있습니다;

(1) ‘예수님또는 인자라는 표현이 아니라 사도 마태는 정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그 자리에 적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심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직함을 사도 마태가 그 대목에서 사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관에서 관리로서 일을 했기에 공식적인 직함의 사용에 친숙한 사도 마태의 기록이라고 하겠습니다.

(2) 죽임을 당하는 장소가 예루살렘임을 예수 그리스도가 예언하셨다고 사도 마태가 밝히고 있습니다. 대속의 장소까지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의 능력을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3) 사도 마태는 그리스도의 직함이 사용이 되기 시작한 장소가 빌립보 가이사랴이며 그곳에서부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그리스도로서의 앞길이 인도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역시 공무원다운 세리 마태의 공식적인 시각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