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06강(마16:21-2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2. 03:39

마태복음 강해 제106(16:21-2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218()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예언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삶의 자세(16:21-28)

 

사람이 자신의 남은 인생이 채 일년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그러한 경우 많은 사람들은 그 동안 이 세상에서 해보지 못한 일, 누리지 못한 일들을 짧은 기간이지만 모두 해보고 나서 미련 없이 하직을 하고자 시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공생애를 살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는 전혀 다릅니다. 그 남은 기간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모두 완수하기 위하여 전력투구를 하고자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다잡고 있습니다. 그 절박하면서도 확고한 의지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첫째로, 남은 세월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일만을 생각하면서 달려나가고자 합니다(16:23).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처형이 미구에 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예언을 했습니다(16:21). 비록 죽음 다음에 삼일만에 부활의 영광이 찾아온다고 약속이 되어 있으나 그것은 엄청난 고난과 처형이라는 절차가 있고 난 다음의 일입니다. 자신의 예고된 사형집행일 앞에 두렵지 아니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더라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으로 태어나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인간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2:52). 아픔과 슬픔을 동일하게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11:35, 4:15). 그러므로 고난을 겁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더구나 처형을 당하는 순서가 남아 있습니다. 목숨이 끊기는 그 순간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미리 몸서리가 쳐지는 일입니다.

그렇게 두려움이 몰려오는 때에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로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26:36-39). 아버지께서 주시는 은혜가 있어야만 고난과 죽음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얻자면 이 세상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공의를 구하는 일에 매진을 해야만 합니다(6:33). 그 방법은 오로지 남은 인생 가운데 이제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과업의 수행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6:39). 그 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마음가짐이 베드로와의 대화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유대교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많은 고난 끝에 처형이 될 것임을 예언하자(16:21) 베드로가 말리고 나섰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16:22).

(2)  예수님이 즉석에서 강력하게 야단을 치고 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16:23).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는, 특히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그 귀한 사업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나 사탄에게 속한 자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제자라고 하더라도 구원의 역사를 방해할 경우에는 사탄의 하수인으로 정죄가 되어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간담이 서늘한 대목입니다.

(3)  그 다음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소위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는 예수님의 지극히 농도가 짙은 마음가짐과 놀라운 부활신앙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습니다. 다음 항목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이제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다음에 얻게 될 부활의 영광만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 사실을 제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1)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자신의 이익과 고집을 내려놓고 형제와 이웃을 구원하기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하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이며 영적인 삶입니다(12:1-2). 그러한 제자들만이 예수님께서 얻으실 부활의 영광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가 진하게 내포되어 있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2)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얻으리라”(16:25). 부활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예수님이 가장 정확하게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 세상에서 목숨을 잃은 자들, 곧 죽음을 맞이한 자들이 모두 장차 부활할 것입니다(5:25-29). 그런데 부활 후에 심판대에 서게 됩니다. 본문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게 되면, 소위 세상적인 방법으로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한 자는 모두 심판을 받고 영벌에 들어가게 됩니다. 반면에, “예수님처럼 사는 방법 외에는 구원의 방법이 없다고 믿고서 남은 세월 동안 목숨 바쳐 그 길을 달려간 자들에게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도움으로 심판대를 무사히 통과하여 영생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성도가 그렇게 믿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님으로 모시고서 이른 바 종의 자세(1:1) 그리고 남은 인생을 부활하신 주님의 지체(고전6:19-20) 살아갔으니 주님께서 얻으신 부활의 몸을 입으며 천국에 함께 들어가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쉽게 표현하자면, 사도 바울의 삶의 푯대(3:9-16)라고 하겠습니다.

(3)  예수님의 부연설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이 나가는 것이 목숨입니다. 목숨이 끊어지게 된다면 천하의 권세나 부귀가 다 소용이 없게 됩니다. 이 땅에서 한 평생만 살게 되는 것이 모든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분명히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고난의 공생애 끝에 처형을 당하시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는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게 되는 논공행상의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16:26-27풀이).

(4)  제자들에게 특별히 한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이 있느니라”(16:28). 하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만 가지고 제자들을 설득하고 있기에 사실은 그 말씀을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그 증거를 몇 사람의 제자 앞에 곧 제시할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언급하시고 있습니다. 요컨대, 그 증거가 바로 변화산상의 이적’(17:1-8)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