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제37과(19:12-18) <OBS3-37>(손진길 작성)
[Q1]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위하여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서남북 사면의 경계를 정하시며 그 선(線)을 침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시면서(출19:12) 지극한 두려움으로 임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 처음 호렙 산에서 모세에게 임하신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기 위하여 사랑의 하나님으로 임하신 것으로 볼 수 있음(출3:7-8). 따라서 자신이 없다고 하는 모세에게 지팡이도 들려주시고 그래도 고사하는 모세를 설득하시고 달래시는 마음씨 좋은 이웃 할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임(출3:11-22, 4:1-17).
· 그래서 그와 같은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만 기억하는 자들은 하는 일이 ① 어린아이와 같고 달라고만 떼를 쓰고, ② 마침내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큰 소리마저 치며 상좌를 차지하고, ③ 무거운 납세에 허덕이는 고달픈 백성의 삶을 돌보기보다는 자신들의 자리다툼에 필요한 인적, 물적 동원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주신 사명완수라는 명분을 함부로 사용하게 되는 것임.
· 그러나 많은 백성들 앞에, 그것도 출애굽하여 제사장의 나라 백성으로 거룩하게 함께 부르심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출19:6) 강림하시는 하나님은 전혀 다른 모습, 곧 두려우신 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의 모습임.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시는 두려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임(출19:12-13, 16, 21, 24, 20:5, 7, 19). 그 앞에 서면 혼백이 떨려 우리는 죄인일 수밖에 없음(눅5:8).
[Q2] 삶과 죽음을 결정하시는 심판의 주 하나님 앞에 서면 인간은 온통 두려움으로 사로잡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으로 생각되는가?
· 인간은 이 세상에 살기 위하여 태어난 존재임. 그러므로 목숨유지를 위하여 살기다툼을 하고 자신의 울타리를 만들며 안전한 지위와 명예까지 탐하게 됨. 그 과정에서 십계명과 세상법규에 저촉되는 허다한 범법행위를 알게 모르게 행하게 되면서도 생존의 지상과제 때문에 그것을 포장하고 묘하게 자기변명의 명분을 만들어서 자위하면서 살아오고 있다고 할 수 있음.
· 그런데 심판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그와 같은 포장과 명분 그리고 핑계가 통하지 않게 되고 적나라하게 숨겨진 진면목, 곧 부끄럽기 그지없는 초라한 목숨유지의 진실만이 드러나게 되는 것임. 세상체면과 지위, 명예가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삶과 죽음의 경계선 앞으로 절대자에 의하여 끌려온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살아오는 동안 느껴오던 모든 두려움이(즉, 가까운 부모형제의 죽음 그리고 선배로부터 자신에 이르는 죽음의 공포의 총합으로) 한꺼번에 다가온 것으로 볼 수 있음.
· 그때 그 자리에서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것으로서 목숨유지 이외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이 중요한데 그 질문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하고 있음(요21:15-19). 그 질문을 베드로에게 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은 내용의 질문을 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음.
[Q3] 여호와를 만나기 위해서 3일 동안 옷을 빨고 준비하는데(출19:10, 14-15) 여기에서 짐작되는 사실은 무엇인가?
· 두 가지 사실임. 첫 번째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백성이 이제 의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3일 동안 성결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임(출19:4-6, 10-12). 둘째는, 인류의 구원주로 사랑의 희생을 끝내신 예수그리스도가 심판의 주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3일간 죽음을 통과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할 것임(요19:31, 38, 42, 20:1, 17, 22-23).
[Q4] 그렇다면 구원받은 우리가 심판의 주를 만날 때까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 성결한 생활(출19:10, 14)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창39:9) 예수님을 사랑한(요1:42, 6:68-69, 13:9, 37, 18:10, 15, 20:6, 21:7, 15-17) 또 하나의 진실이 입증될 수 있는 생애이어야 함. 그것이 있어야 목숨유지 위하여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삶이 아니라 영생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예수의 제자로서 신실하게 살아온(요17:3) 천국시민의 삶으로 증명이 되는 것임(히11:16).
· 그와 같은 의미에서, 거듭난 성도들의 이 세상에서 남은 생애는 의의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하는 기간에 해당됨. 그 기간 동안에 지상명령을 열심히 수행하며 성결한 삶에 힘써야 함. 한 마디로,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성화의 과정을 잘 밟아나가야 하는 것임. 여기서 성화(聖化)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삶임(롬6:22, 12:1-2).
[Q5]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나팔소리(출19:13, 16)를 우리가 다시 들을 수 있는 때는 언제인가?
· 그리스도의 재림 때와(마24:31)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는 영광을 얻었을 때임(계1:10, 4:1). 두려운 나팔소리가(출19:16) 성령의 감동으로(계1:10) 신나는 사명부여의 음성으로 들릴 때 하늘보좌를 바라보는 삶(계4:2), 곧 목숨보다는 영생을 추구하는 삶이 시작될 수 있을 것임(요17:3, 계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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