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제33과(16:32-17:7) <OBS3-33>(손진길 작성)
[Q1] 만나 한 되를(‘오멜’에 해당, 출16:33, 한 말은 ‘에바’에 해당됨. 출16:36) 항아리에 담아 여호와 앞에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증거판(출24:12, 31:18)과 함께 보관하는(16:34) 이유는 무엇인가?
·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먹여 살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자손대대로 알도록 해주기 위한 목적임. 구체적으로, 출애굽하여 기름진 초승달지역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수5:12) 40년 동안(출16:35) 광야생활 중에 땅에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240만명의 히브리 인과 그 수를 알 수 없는 동행 이민족들이(출12:37-38)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내리신 하늘의 양식 만나를 먹고 생존(목숨연명) 하였음을 자손대대로 후손에게 알리고 가르치는데 시청각교재로 사용하기 위한 것임(16:32).
· 일단 만나가 아침이슬과 함께 땅에 내리면(16:14) 그날 햇빛에 모두 쓰러지기 전에(16:21) 당일 하루치의 양식으로 거두어들여야만 됨. 다만, 제7일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하루 전날 이틀 분의 양식을 거두어서 저장할 수 있음.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보아야만 하는 사실은 두 가지임; 첫째는, 어떻게 하루살이 양식에 불과한 만나를 영구히 보존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임. 그 둘째는, 왜 매일 식량을 얻도록 훈련을 시키고 있는가 하는 것임. 먼저, 일일 용 식량에 불과한 만나(출16:20, 23-24) 한 되를 영구히 자손대대로 간수 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타임캡슐’인 언약궤(출25:21, 30:6, 신31:9)를 완벽하게 보호관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라고 하겠음.
· 하나님은 언약의 상대방인 이스라엘의 자손들, 그리고 축복받은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을(창1:26-31)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보호하시는 분이심. 그래서 매일 광야에서 먹거리를 제공하시고 있음. 그렇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한없이 쌓아놓고 편히 한 평생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아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와 같은 욕심을 다스리도록 일일 용 양식의 공급을 통하여 광야에서 훈련시키고 계심. 한 마디로, 생존본능에 너무나 충실한 육체적 절규를(출15:24, 16:2, 17:2) 인간이 어떻게 다스리는가를 하나님은 지켜보시며(창4:7)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마4:4) 훈련시키고 계시는 것을(16:4, 8, 12) 여기 광야생활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것임. 주기도문도 그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음(마6: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Q2] 생존본능에 충실한 육체적 절규와 생활본능에 근거한 욕구와의 차이는 무엇인가?
· 비록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있으나 그 육체적 절규가 양식과 마실 물이 떨어지는 등 생존본능에 근거한 것이면(출15:22, 16:3, 17:1) 하나님은 그 원망 속에 담겨있는 절대 필요성을 아시고(15:24, 16:7-8, 12, 17:3, 5) 마실 것과 먹을 것을 하늘 곳간을 열어서라도 공급하고 계심(막6:35-44, 8:1-10, 생존권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일반적으로 인간은 굶주리고 지치면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을 내고 먼 사람에게는 야수가 되고 하나님에게는 배은망덕한 원망자가 됨. 이른바 인간 역시 육체적 생존본능이 앞서며 생존의 욕구 앞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존재임.
· 그와 같은 존재를 목숨유지차원을 넘어서서 영적인 생명의 차원을 앙망하도록 매일 훈련시키는 방법이 만나와 메추라기의 매일 공급이며(출16:8, 21) 매주 훈련시키는 방법이 안식일 규례임(16:25). 그리고 훈련결과에 대한 시험과 평가가 율법준수 여부와(15:26, 16:4, 17:7) 40일 간의 금식 결과라고 볼 수 있음(마4:1-3). 어쨌든, 생존본능에 대해서는 인정, 보호, 훈련, 영생 앙망의 수순을 밟게 됨.
· 그러나 생존의 욕구를 넘어서고 있는 인간의 생활본능에 대해서는 그 처방이 다름. 왜냐하면 공존공영을 통하여 더 나은 삶을 구현하도록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골고루 복을 나누어 주셨는데 그것을(창1:26-31, 2:20-25, 나와 너와 우리 모두가 함께 잘살며, 창2;1-3, 8-15, 하나님과 안식의 복을 누림) 훼손시키는 것이 생활본능이기 때문임. 환언하자면, 혼자서만 더 잘 먹고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생활본능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제로섬 게임에 충실한 원죄에 해당된다고 하겠음(창3:1-5). 한 마디로, 생활본능을 빙자하여 인간의 탐심(창3:6)과 욕심(창6:2-7, 약1:14-16)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기에 그와 같은 지나친 탐욕은 오직 다스림의 대상이 되고 있음(창4:7).
[Q3] 안식일 제정과 훈련을 위하여 ‘신’ 광야에 머문 시간은 얼마로 추정되는가?
· 출애굽한지 한 달 만에 신 광야에 도착했음(출12:6, 16:1, 민33:3). 유월절(목요일 저녁, 1월 14일) 지나고 금요일 아침(1월 15일)에 출애굽 하였으므로 30일이 지난 시점은 일요일이었음(2월 15일). 이날 신 광야에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리기 시작하여 제7일되는 날,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최초의 안식일(토요일)을 지낼 때까지 최소한 1주일간 신 광야에 머문 것으로 추정됨.
· 그 이유는 완벽하게 6일 동안 매일 양식 거두기, 제7일은 전날 거둔 양식으로 먹고 쉴 수 있는 인식일 특혜(출16:23)까지 경험한 후에 출발하여 르비딤에 다시 장막을 쳤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임(17:1). 참고로 다시 르비딤에서 아말렉과의 전투 등으로 1주일 정도 소요된 후 드디어 시내 산에 도착한 시점이 제3월초(19:1), 즉 출애굽한지 45일 정도 지난 시점이었음.
[Q4] 창세기의 안식일, 출애굽기의 안식일, 복음서의 안식일은 각각 어떻게 다른가?
· 여섯째 날까지 천지창조, 만물창조, 인간창조 모두를 마치신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인간과 함께 안식하신 창세기의 안식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모든 날을 함께 하였다는 의미임. 에덴에서 퇴출된 이후 안식일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다시 허용된 출애굽 후의 안식일 규례는 단지 제7일이 되는 날을 매주 반복하여 쉬면서 잉태와 노동의 고통(창3:16-21), 실낙원의 원인 등을 깨닫도록(창2:22, 6:2-3) 하는 날로 볼 수 있음.
· 위와 달리 복음서의 안식일은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죄 사함 곧 하나님과의 화해가 시작된 인간이 새로운 에덴, 천국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 희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임.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목숨을 연장하는 삶의 가치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신약의 안식일은 영적인 생명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으로 영생을 추구하는 모든 날이라고 할 수 있음.
[Q5]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떨어지자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한 백성들의 잘못은 무엇인가?
· 마라의 교훈(출15:25), 만나의 기적(16:8)을 경험하면서 생존권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그것을 집행하는 모세의 역할을 알게 된 백성들임. 그래서 이제 다시 물이 떨어지자 당연한 권리로 마실 물을 달라고 위풍당당하게 모세에게 대들고 있음(17:2). 그것은 잘못이 아님.
· 그렇지만 그들의 소원대로 물을 빨리 안주면 원망하고(17:3) 모세를 치려고까지 함(17:4). 그와 같이 하나님을 믿고 기다릴 줄 모르는 자는 자신의 이익, 권리만을 내세우고 하나님을 부리며 시험하는 자임(출17:7, 마4:7). 하나님을 마치 종처럼 부리려고 하는 자는 율법의 기본 정신인 법도를 어기는 자, 소위 패역한 자이기에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됨(창26:5, 출15:25, 18:16, 20, 레19:37, 신21:18, 32:20).
'출애굽기 OBS교재(손진길 작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애굽기 제35과(손진길 작성) (0) | 2020.11.20 |
---|---|
출애굽기 제34과(손진길 작성) (0) | 2020.11.19 |
출애굽기 제32과(손진길 작성) (0) | 2020.11.18 |
출애굽기 제31과(손진길 작성) (0) | 2020.11.16 |
출애굽기 제30과(손진길 작성) (0) | 2020.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