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방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9. 16:14

제목;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방법”(12:21-36, 참고구절; 21:8-9, 3:14-15)

설교일; 주후 2023514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59일 화요일 작성)

 

사도 바울은 그의 로마서 제4장에서 아브라함을 후세에 믿음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성도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모세의)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4:16);

그런데 여기서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먼저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앞에 있는 성경구절을 함께 살펴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구절들이 다음과 같습니다;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칭의, 의화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이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겼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그의 나이 99세 때인, 17:24) 할례시냐? (그의 나이 85세 때인, 15:2-7, 16:1-2, 16)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아브라함)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약속의 땅 가나안)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모세의)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4:11-16).

그 말의 뜻을 간략하게 나름대로 풀이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3절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의 기사에서 발견하고 있는 믿음의 특징은 한마디로 창세기 제15장 제6-7절에 기록되어 있는 모세의 말 그대로입니다;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가나안)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니라”(15:6-7). 아브람의 믿음의 특징은 피조물을 믿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를 믿는 것입니다. 피조세계의 현실이나 자신의 형편 그리고 세상의 관례나 이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으로 보자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10년이나 생활하고 있는 아브람이지만 애초에 주신 첫번째 약속 곧 자손의 번성이 이루어질 계기가 도무지 보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아브람과 사래 부부는 여전히 무자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를 천막 밖으로 불러내신 여호와께서는 하늘의 별무리를 보게 하면서 그와 같이 많은 자손을 줄 것이니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을 믿으라고 강조하십니다. 따라서 아브람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모두 내려놓고 여호와의 약속이 창조주의 능력으로 이 피조세계에 이루어질 것으로 다시 믿은 것입니다(6a).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을 의로운 자라고 간주하고 계십니다(6b). 그리고 그의 자손에게 가나안 땅이 약속의 증거로 주어질 것임(12:7)을 다시 확인해 주십니다(15:7-21). 여기서 창조주 여호와를 믿는 자에게 칭의의 은혜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상속이 있다는 사실을 벌써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점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 제4장 제16절에서 다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창조주 여호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칭의 곧 의롭다 여김을 받은 사실을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16:4-8). 그 이유는 그 대목이 창조주 여호와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믿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죄의 용서칭의의 은혜를 벌써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그와 같은 칭의의 은혜가 아브라함의 유일한 자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선민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고 있는 모든 이방인에게도 주어진다는 사실을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16:9-12). 사도 바울이 그 점을 알기 쉽게 선민들이 강조하고 있는 할례의 징표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민들이 자신의 조상이라고 믿고 있는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할례를 받은 시점은 그의 나이 99세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을 진리라고 믿고서 그 뜻에 순종한 그때는 할례제도가 발생하기 이전인 그의 나이 85세 무렵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무할례자였을 때에 벌써 믿음으로 칭의의 은혜를 받은 사실에 대하여 그의 자손인 선민들이 이제 와서 육신의 할례를 위시한 율법의 의를 더 강조하면서 무효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4:9-14).

(3)  셋째로, 선민들은 이방인인 헬라인이나 로마인에 대하여 그들은 할례를 받지 아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해준 율법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준행하지도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을 당할 따름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것이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4:15-16). 자신의 생각과 세상적인 경험을 절대시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창조주 여호와를 믿고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소망하며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결심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칭의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인간의 육체에 행하는 할례나 피조물인 사람이 인정하고 있는 율법적인 행위의 실천에 근거하여 결코 주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피조된 육체의 할례나 피조물인 인간의 판단을 절대시하고 있는 잘못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사도 바울은 창조주 여호와를 믿고 있는 아브람이 모든 사람에게 무엇이 믿음인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4:16).  

지금까지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사도 바울의 로마서 기록을 통하여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에 기초하여 출애굽기 제12장 제21-36절 말씀을 살펴보면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출애굽기 제12장에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유월절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고 그 집안에서 유월절양의 고기를 구워서 먹고 있는 동안에 장자의 죽임을 면하고 여호와의 구원을 얻어 출애굽의 해방을 얻게 되는 놀라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적인 이치나 경험에 비추어 보게 되면 그러한 일이 과연 인류의 역사가운데 발생할 수가 있는지 의문이 들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만들어내고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오로지 창조주 여호와의 능력에 의하여 이 세상에서 발생하고 있는 신위적(神威的, 신의 능력에 따른)인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전적으로 창조주의 말씀의 뜻을 믿고 그 절대적인 능력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있을 때에 오늘날에도 세상의 노예에서 해방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성육신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유월절 어린양이 되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의 눈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를 모세가 민수기 제21장에서 기록하고 있으며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 제3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을 참고삼아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21:8-9),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지만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실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믿고서 그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은 전부 뱀에 물려서 죽게 되는 비극을 면하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육신적인 구원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대속의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믿고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성도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의 용서와 칭의의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향년을 마치게 되면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입성하게 되는 영원한 구원의 길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은 출애굽기 제12장 제21-36절 말씀입니다. 구절풀이에 들어가기 전에 참고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출애굽기 전체의 서론과 같은 말씀을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벤트(event)의식화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이 기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출애굽의 현장과 같은 자리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놀라서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크게 찬양합니다(15:1-21).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이 완전하게 출애굽을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때부터 당장 과거의 습관과 버릇을 깨끗하게 청산을 하고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고 자신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지속이 될 수가 없는 이벤트에 불과합니다.

다시 애굽에서의 노예생활과 같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여지없이 그 충만했던 자신감이 사라지고 맙니다. 오히려 그 옛날 세상나라 애굽에서의 삶이 그리워지고 그때의 우상문화와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이 되살아나서 마치 누룩처럼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게 됩니다(16:2-3).

그러므로 몸이 출애굽을 하는 것과 의식이 완전히 출애굽을 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전자는 이벤트로 가능한 것이지만 후자는 오랜 성화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제12장에는 유월절과 장자의 죽음 그리고 출애굽의 예언과(12:1-14) 더불어 무교절 규례의 제정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이 실려 있습니다(12:15-20).

그리고 출애굽을 한 다음에는 유월절 규례의 실시와 더불어 무교절 규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12:43-13:10). 특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무교절 규례를 더욱 중시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13:5-10).

이미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이벤트보다는 의식화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애굽의 누룩을 제거하기 위하여 무교절 규례를 제정하시고 계십니다(12:15-20). 그렇지만 제도의 마련만으로 의식화가 당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치고 거듭되는 학습을 통하여 비로서 마음 속과 뼛속 깊이 새겨지는 의식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15:25-27). 구체적으로, 240만명으로 추산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한꺼번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출애굽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삶을 당장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애굽에서 익힌 오랜 관습과 버릇이 일시에 사라지지 아니하고 그들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애굽의 누룩은 그들의 마음 속에 마치 병원균처럼 잠복하고 있다가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 다시 되살아나서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강력하게 지배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어떻게 하면 430년 동안 애굽의 고센 땅에서 습득이 되어 있는 우상문화유물주의 관념 그리고 노예근성을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효과적으로 씻어낼 수 있을까요? 그것이 무교절 규례의 제정만으로 가능하지가 아니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모세는 동족들과 함께 광야에서 엄청난 시련과 고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출애굽기 등의 율법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서와 선지서 등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오늘의 본문말씀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서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구원을 받고 그리하지 아니한 집은 장자의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건이(12:21-36) 훗날의 역사 가운데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가?(21:8-9, 3:14-15)하는 점을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이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출애굽이 이루어지고 있는 그날 밤 유월절 규례를 지키고 있는 집의 사람들과 그러하지 아니한 집의 사람들 사이에 축복과 저주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의 규례라고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실로 간단한 것입니다;

(1)  나흘 전에 어린 양을 준비합니다(12:3-5). 아빕월 14일 저녁이 되면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받아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뿌리고 바릅니다(12:6-7, 21-22). 친절하게도 그 흔하고 값이 싼 우슬초 묶음으로 붓을 대신하라고 합니다(12:22).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죽음의 천사가 그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조치를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12:13, 23). 그 정도의 간단한 방법으로 과연 죽음을 면할 수가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후대에 대대로 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24-28, 30). 반면에 그 처방을 우습게 여기고 마음에 두지 아니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겼던 애굽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12:29-30). 만약 그들이 별로 어렵지도 아니한 그 처방대로 행했다고 한다면 그 날 밤에 그들의 장자와 가축의 첫 새끼가 죽는 비극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집에서 행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아니했다고 한다면 그날 밤 이스라엘인의 집에 찾아가서 함께 행동을 하고 지냈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생명을 구하는 길이 되었을 것입니다.

(2)  단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심히 간단한 처방을 행하지 아니했기에 애굽 온 나라에서 곡성이 터져 나왔습니다(12:30). 창조주 하나님은 바로의 장자와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죄수의 장남에 이르기까지 계급과 신분에 따른 구별을 전혀 하지 아니했습니다(12:29). 다만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믿고서 그대로 행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구별에 따라 생과 사를 구분하셨을 따름입니다. 바로와 애굽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들은 우환과 재앙을 불러오는 요인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나라 밖으로 빨리 내보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12:31-33).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하는 가축은 물론 은금 패물과 의복까지 공짜로 제공을 하고 있습니다(12:32-36).

그렇지만 이제부터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각오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모세와 아론의 축복의 기도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재앙과 진노만이 물러가기를 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철저한 기복신앙이며 무당문화입니다(12:32). 그것이 애굽 사람들의 비극이며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그들의 군대가 홍해에 수장이 되고 마는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14:23-30).

애굽 사람들과 같은 미련한 백성이 훗날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서도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을 한 다음에 모세가 백성들과 함께 40년째 광야생활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의 형 아론이 죽고 난(20:29) 그 다음에 백성들이 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2:4-9) 모세가 에서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에돔 땅을 우회하여 먼 길을 돌아서 행군을 했기 때문입니다(21:4). 도중에 먹을 것도 마땅하지 아니하고 물도 떨어졌습니다(21:5b).

그래서 백성들은 직선코스를 두고서 빙 둘러서 간다고 얼마나 모세를 원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21:5a).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서 백성들에게 치명상을 입혔습니다(21:6).

백성들을 위하여 모세가 중보기도를 했습니다(21:7).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고 그것을 쳐다보게 하라. 그리하면 뱀에게 물린 자가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21:8). 너무나 간단한 처방입니다. 그리고 비상식적인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믿고서 순종한 사람은 병이 낫고 살아났습니다(21:9). 반면에 코웃음을 치고서 바라보지 아니한 자는 죽고 말았습니다. 삶과 죽음이 심히 간단하게 결정되고 만 것입니다.

그 사건을 1,400년 후에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지도자인 니고데모 앞에서 거론하고 계십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

병이 낫게 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의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놋뱀의 경우처럼 심히 간단합니다;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서 그때부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서 함께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리하면 부활과 승천 그리고 천국에서의 영생이 확보가 된다는 것입니다”(2:36-42).

결론적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방법은 너무나 쉬운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실천하기가 더 망설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똑똑하다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하는 자들이 오히려 그 함정에 빠지기가 쉽다고 하겠습니다.

이제는 그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오늘의 본문말씀 출애굽기 제12장 제21-36절 말씀을 한 구절 씩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본문말씀에 대한 묵상 가운데 얻은 교훈을 함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사람도 자기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12:21-23); 다음과 같이 핵심사항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역사 가운데 유월절 어린양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도자인 장로들에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첫째, 가족 수를 참작하여 어린양을 선택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21). 가족이 적은 경우에는 옆집과 합하여 어린양을 선택하면 됩니다(4). 둘째, 어린양의 쓰임새는 그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발라서 죽임을 면하는 것입니다(22);

셋째, 만약 유월절 밤에 문 바깥에 나가게 되면 죽임에서 구원을 얻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23).

(2)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완벽하게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 방법이 첫째, 유월절 밤에 여호와께서 직접 현장에 출동을 하십니다(23a). 둘째,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대문에 발라져 있는 집안에 죽음의 천사가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여호와께서 직접 통제를 하시겠다는 것입니다(23b). 셋째, 양의 피를 칠하는 도구는 고센 땅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우슬초의 묶음입니다(22). 공연히 도구를 구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많이 사용하지 아니하도록 배려를 아끼지 아니하고 계시는 참으로 좋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 이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28.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12:24-28);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있는 애굽인들이 유월절 밤에 장남의 죽음과 가축의 초태생의 멸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어린양의 피를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자손과 일부 다른 족속들은 그날 밤 죽임에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38);

그렇다면 훗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뜻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살아가게 되면 애굽인에게 임한 그 재앙이 그때에는 그들의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훗날의 잘못을 미연에 예방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1)  유월절 규례를 만들어 매년 그때의 일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24).

(2)  특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살아가게 되면 더 확실하게 유월절 규례를 지켜야 합니다(25). 배부르고 풍족하게 되면 그만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이방인처럼 살아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3)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시켜야 합니다(26). 특히 유월절사건에 대하여 정확하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죽임에서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대를 이어 여호와를 경배하는 신앙생활을 영위하라는 것입니다(27).

(4)  그와 같은 신앙교육이 모세와 아론이 살아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한 광야시절에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모세가 여기서 기록하고 있습니다(28). 그러나 훗날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선민의 왕국의 역사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21. (요시야) 왕이 뭇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 요시야 왕 18년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왕하23:21-23);

셋째로,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32. 너희가 말한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33.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34.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12:29-36);

(1)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전달한 여호와의 말씀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애굽 땅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밤에 창조주 여호와를 무시하고 그 명령을 외면한 애굽의 바로와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 및 죄수들까지 모조리 장남의 죽음을 경험하고 가축의 초태생의 멸절을 경험하고 만 것입니다(29-30).

(2)  이제는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합니다(33). 그 사실을 깨닫자 바로는 즉시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대들은 오늘밤에 모두 가축을 몰고서 애굽을 떠나도록 하라. 짐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대들을 해방시켜주고 있으니 그대들은 이제 애굽에 임한 이 재앙이 떠나가도록 기도를 드려 달라!”(31-32절 의역). 그것은 무조건 항복입니다.

(3)  그와 같은 미래가 도래할 것임을 여호와께서는 진작에 모세에게 알려주셨습니다(3:20). 그리고 그때가 도래하면 애굽인에게 금은 패물과 의복 등 필요한 물품을 청구하여 그것을 가지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출애굽을 하라고 지시하신 바가 있습니다(3:21-22). 그 사실을 기억한 모세가 그날 밤 떡 반죽 그릇을 어깨에 메고서 급히 출애굽을 하고 있는 동족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모조리 애굽인에게 청구하여 받아서 나가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34-35);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출애굽의 역사가 진행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36).

결론적으로, 창조주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출애굽의 역사가 유월절 밤에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모세가 유월절 규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요약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한 바로와 애굽인들은 장자의 죽음과 가축의 초태생의 멸절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경험하고 맙니다. 그와 반대로 유월절양이 피를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자손들은 죽임에서 구원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인과 같이 여호와의 명령과 예언의 말씀을 무시하는 인생을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매년 유월절 규례를 지키면서 그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하여 죽음에서 구원을 얻도록 하세요. 그것이 유일하게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먼 훗날 유월절 어린양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십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속죄양으로 희생하십니다;

 그 대속의 피를 의지하여 죽음에서 구원을 호소하는 자는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모세의 놋뱀 사건과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주신 말씀을 함께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생각과 세상적인 이치를 내려놓고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로 믿는다고 하는 신앙고백이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한평생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명감당의 일생이 끝난 다음에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자신의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하나님의 자녀로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궁극적인 구원을 얻어 누리시는 저와 여러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