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유월절과 무교절 그리고 칭의와 성화(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2. 08:29

제목; “유월절과 무교절 그리고 칭의와 성화”(13:1-10, 8:12-17)

설교일; 주후 202357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52일 화요일 작성)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자연과학은 한가지 큰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과학에 있어서는 실험실에서 변수를 쉽게 통제하면서 실험할 수가 있지만 사회과학에 있어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연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물이나 식물은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있기에 자연과학자가 샘플을 구하여 그것을 실험실에서 통제하면서 분석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달리 사회과학자들이 다루고 있는 실험대상은 복잡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란 다른 동식물과는 달리 본능보다는 보다 이성적이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며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권마저 행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변수에 대한 통제와 자료의 분석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의 정신세계를 분석하고자 프로이드20세기초부터 그토록 과학적인 관찰을 열심히 하면서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여 나름대로 뛰어난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지만 21세기인 지금도 사람의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는 자연과학의 발달과 비교하면 그 수준이 너무나 뒤떨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에 따라 사회과학자들은 사람의 개인적인 정신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이루고 있는 인간집단에 대한 의식과 행동의 변화를 주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요컨대 사회과학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행동을 연구하여 나름대로 과학적인 의미를 가지는 집단행동이론’(the theory of group behaviour or collective action)을 내놓고 있는 것입니다;

달리 설명하자면, 개인적인 사람은 그 정신세계가 복잡하지만 일단 집단을 이루게 되면 그때는 집단의 의식과 문화라고 하는 독특한 인간의 행동특징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분석하여 이론의 틀을 세우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과학을 오래 공부하다가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운데 비록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나 패러다임의 변화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것이 내면화되고 의식화가 되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그 과정을 거친 다음에 비로소 하나의 종교적 정치적인 문화로 정착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정치학에 있어서 제도의 변화는 마치 하나의 이벤트(event)와 같이 쉽게 이루어질 수가 있지만 그 제도가 정착이 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진국처럼 법제도를 구비하였다고 하여 개발도상국이 금방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컨대, 선진국과 같은 법제도를 갖추는 것이 하나의 문제라고 한다면 국민들의 의식이 선진화가 되고 그 법제도에 알맞는 선진문화가 구축이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와 같은 이해를 먼저 하고서 출애굽기 제12장과 제13장을 묵상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1)  첫째로, 유월절 사건은 하나의 이벤트입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따라서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유월절사건이 발생하는 달을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종교적으로 그해의 첫번째 달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12:1-2);

1)    그에 따라 히브리종교 달력으로 정월 10일에 유월절양을 선택하고 해질 무렵 14일이 시작되면 유월절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우슬초 묶음으로 만든 붓으로 바르게 됩니다(12:3-7, 22);

그 다음에는 그 문을 나서지 아니하고 유월절 밤 그 집안에서 유월절양의 고기를 구워서 가족들이 다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신위적(神威的, 신의 능력에 따른)인 출애굽해방을 기다리게 됩니다(12:8-11);

2)   그 반면에 유월절양의 피를 대문에 바르지 아니하고 있는 집에는 그날 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죽음의 천사를 보내어 그 집의 장남과 가축의 초태생을 전부 몰살시켜버립니다(12:12). 그 대상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고 있는 바로와 그의 신하 그리고 애굽의 백성들입니다;

 애굽인이라고 하더라도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있는 자들은 제7재앙인 우박재앙이 발생했던 때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서 유월절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행동했을 수가 있습니다(9:20).

3)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평소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친절한 애굽인을 불러서 함께 유월절을 지내자고 제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와 같이 유월절양의 피가 칠해져 있는 대문안에서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유월절양의 고기를 먹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장남의 죽음을 면하고 있습니다(12:13). 그들이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로 죽임에서 구원을 얻은 대사건입니다(12:38).

4)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실제로 죽음의 천사가 찾아와서 유월절양의 피가 없는 집안의 장남을 전부 죽이고 가축의 초대생까지 멸절해버린 사건은 주전 1446년 태양력으로 414일 밤에 단 한번 발생하고 있습니다(12:21-23, 29-30). 그리고 그 밤에 유월절 양의 피를 대문에 바르고 그 밤에 유월절양의 고기를 구워서 그 집안에서 먹고 있던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이거나 애굽인이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죽임에서 구원을 얻고 출애굽의 해방을 얻은 것입니다(12:31-40).

(2)  둘째로, 그와 같은 획기적인 대사건을 발생하게 하신 여호와의 뜻을 어떻게 하면 대대로 이스라엘 자손들과 온 세상사람들이 명심하면서 살아가게 될까요? 그 방법론이 사실은 출애굽기 제12장에 상징적으로 들어 있으며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오늘의 본문인 제1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창조주 여호와께서 주전 1446414일 그날 유월절 밤에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는 유월절양의 피를 대문에 바르게 하고 유월절양의 고기를 구워서 집안에서 먹게 함으로써 이제는 세상제국 애굽의 노예가 아니라 출애굽을 통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역사적인 계기를 마련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만약 그 일이 그 다음해 414일 밤에도 발생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는 자들이 모두 장남의 죽음과 가축의 초태생의 죽임을 당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대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대대로 지킬지니라”(12:14);

2)   여호와께서는 피의 심판이 재발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유월절 밤의 사건이 신위적인 능력으로 역사 가운데 재현이 되지 아니하도록 유월절 행사를 통하여 그 뜻을 깊이 새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지 아니하고 유월절 구원의 뜻을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살아가게 되면 다시 역사 가운데 죽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거듭 강조하고 계십니다; “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12:24-25), “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12:42).

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밤의 대사건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의식화시키고 하나의 종교적인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하여 유월절 행사와 더불어 무교절 행사를 마련하고 계십니다(12:15-20, 13:6-7). 그것은 유월절 양고기를 구워서 먹으면서 동시에 부드러운 빵이 아니라 거친 빵인 무교병을 구워서 함께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룩이 들어간 부드러운 유교병 빵을 먹기를 누구나 원하고 있습니다.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유교병이 먹기에도 좋고 맛이 좋기 때문입니다. 유교병을 먹음으로써 식사의 즐거움을 얻고 있습니다.

4)   그런데 누룩이 들어가지 아니한 무교병은 마치 건빵처럼 딱딱합니다. 특히 오늘날에도 경건한 유대인들이 유월절 행사를 위하여 구워서 먹고 있는 마쪼라고 하는 무교병을 씹어 보면 딱딱한 과자와 같은 것이 별로 맛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맛없고 거친 딱딱한 빵을 유월절 양고기와 함께 먹는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교훈을 되새기기 위한 것입니다; “주전 1446년 유월절 밤에 창조주 여호와께서 애굽인의 장남과 가축의 초태생을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출애굽의 해방을 선물하셨으며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모든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마치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19:4-6)”.

(3)  셋째로, 유월절 밤 애굽인 장자의 죽음과 가축 초대생의 멸절이라는 비극 가운데 유월절 양의 피를 대문에 바르고 또한 그 구운 고기와 무교병을 먹음으로 비로소 구원을 얻은 이스라엘 자손들과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소수의 이방인들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12:37-38) 그 방법이 무엇인지를 출애굽기 제13장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창조주 여호와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마치 자식처럼 돌보고 그 생명을 하나같이 살리고자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5:44-48, 3:4).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애굽인들의 장남과 가축의 초태생이라고 하더라도 그 생명의 희생을 참으로 슬퍼하십니다. 그들의 목숨의 값어치가 이스라엘 자손의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13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13:2);

2)   죽임에서 구원을 얻었다면 그 다음에는 자신 대신에 희생을 당한 그 목숨 값을 생각하면서 여호와의 종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실천하면서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19:4-6). 그것은 훗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아버지 하나님 앞에 속죄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남은 인생을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성도의 삶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일종의 예표와 같습니다.

3)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 앞에서 죄를 회개한 성도들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고 비로소 칭의(justification)의 은혜를 얻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의인이 된 성도의 심령속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여 내주 역사하십니다(14:16-20, 1:8). 그 능력을 힘입어 성도들은 영적인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성도의 삶이며(28:18-20) 그 과정에서 거룩한 인생으로 살아가는 성화(sanctification)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6:22, 8:12-17).

4)   그러므로 출애굽한 이후 거친 음식 무교병을 먹으며 광야생활을 거쳐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유월절 행사와 더불어 무교절 행사를 한주간 지낸다고 하는 것은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칭의를 받은 성도가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거룩하게 살아가는 성화의 과정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본문에 대한 구절풀이에 들어가지 전에 전체적인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미리 드려 두고자 합니다;

인생 가운데 죽고 사는 문제가 먼저일까요? 아니면 잘 되거나 못 되는 길흉의 문제가 먼저일까요? 당연히 생사의 문제가 더 중요하며 우선적인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출애굽 사건을 전후하여 하나님께서 유월절과 무교절의 비중을 달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먼저 유월절에 관하여 세 번이나 강조하시면서 그것을 자손대대로 규례로 삼으라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12:1-14, 21-28, 43-51). 다음으로 무교절에 대해서는 단지 두 번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12:15-20, 13:1-10). 같은 규례라고 하더라도 3번 강조하는 경우와 2번 강조하는 경우는 분명히 그 강도가 다른 법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이 무교절보다는 그 의미가 더 큰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뿌리지 아니하면 장자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그것이 더 중요한 규례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사건이 애굽 땅에서 발생함으로 말미암아 바로와 신하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굴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출애굽의 역사가 유월절의 사건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무교절의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그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구이와 더불어 먹게 되는 빵의 제조방법에 대한 규례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 고기를 구워서 먹게 될 때에 빵과 나물을 함께 먹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빵을 제조할 때에 일체 누룩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금지를 시킨 것입니다(12:15). 그리고 나물도 보통 나물이 아니라 매우 쓴 나물입니다(12:8). 왜 그와 같은 고통스러운 식사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의도는 세상적인 누룩의 영향을 받지 아니하고서 오로지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의 의미와 그 은혜만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누룩이 들어간 빵은 입맛을 부드럽게 합니다. 그 감칠 빵의 맛 때문에 어린양의 구이를 멀리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부드러움과 그 감칠 맛에 취해서 그만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보혈을 흘려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1:29);

죽어 마땅한 죄인을 살려주기 위하여 십자가 상에서 희생제물이 되었는데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세상적인 번영과 쾌락에만 맛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비극 중의 비극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출애굽을 하게 된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무교절의 의미를 계속 묵상해야만 합니다(13:5-10). 등한히 하게 되면 세상의 누룩을 즐기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이 되고 말 것입니다(4:25-29).

그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게 되면 유월절 규례의 의미는 비록 그날 밤 생사를 가름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은 일회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대속의 십자가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무교절 규례의 의미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의미가 더 강하며 지속적인 성격의 것입니다.

무교절의 교훈은 한마디로,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세상적인 방법을 버리고 예수님처럼 살아가야만 된다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월절이 3, 무교절이 2번 강조가 되어 있다고 하여 유월절에 비해서 무교절의 중요성이 훨씬 약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성도들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항상 의식하고 조심하면서 자기절제를 해야만 한다는 가르침이 그 속에 담겨있기에 더 중요한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따르면, 첫 유월절 밤을 지내고 애굽을 떠나게 됩니다(12:27-39).

한 밤중에 애굽을 떠나와서 하룻동안 행군을 한 다음에 숙곳에서 야영을 하게 됩니다(12:37). 그때 모세가 유월절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아니하도록 규례를 정하게 됩니다(12:43-51). 자손대대로 목숨을 살려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교절 규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13:1-10). 이제부터는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애굽에서 배운 세상적인 종교생활과 우상문화를 모두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을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 4.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5.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 곧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 6.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 7. 이레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며 네 땅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라. 8. 너는 그날에 네 아들에게 보여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로 말미암음이라 하고, 9. 이것을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10. 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13:1-10).

본문의 내용은 특히 다음 3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죽음에서 살려내었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13:2). 그러므로 하나님은 종에게 강력하게 명령을 하고 요구를 할 수가 있습니다.

(2)  둘째, 이제부터는 익숙한 세상의 달콤한 누룩을 버리고 손해만 볼 것 같은 경건한 신앙생활을 영위하라는 요구입니다(13:7).

(3)  셋째,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심신이 모두 평안해질 때에는 더욱 신앙생활에 힘을 쓰라는 가르침입니다(13:5-6, 9). 세상 재미에 빠져서 실족하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유월절의 의미와 무교절의 의미를 함께 생각하면서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그 모습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삶, 그리고 거룩하고 경건한 삶의 의미를 알고서 실천하는 인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이 제자의 도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2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바로 무교절 규례의 정신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을 감격해 하면서 다소나마 보답해 나가는 성도의 인생살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간략하게 한 구절 씩 풀이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을 함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을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13:1-3);

(1)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동일하게 아끼고 돌보며 그 생명을 모두 살리기를 원하시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이 창조주의 아가페 사랑공의의 정신으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가복음 제3장 제4절 및 제12장 제30-31절 그리고 마태복음 제5장 제44-48절에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2)  그와 같은 측면에서 애굽인의 장남과 가축의 초태생의 죽음을 슬퍼하십니다. 그와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장남과 가축의 초태생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고 있습니다(2). 이제부터 그들은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며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희생에 대한 보답을 하는 길입니다.

(3)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실천으로 하나님께서 나와 동일하게 창조한 피조물인 모든 이웃의 생명을 돌보며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12:30-31). 왜냐하면, 이기적인 인간 그것도 현세적인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육신적이고도 현세적인 이익을 내려놓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여기서는 간단하게 부드러운 유교병이 아니라 거칠고 딱딱한 무교병을 먹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3).

둘째로, “4.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5.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 곧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 6.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 7. 이레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며 네 땅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라”(13:4-7);

(1)  광야생활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를 매일 새벽에 얻어서 생활하고 있기에 영적인 훈련이 나름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16:4). 그렇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그것이 아닙니다. 일년농사를 잘 지으면 한해를 먹고도 남는 양식을 거둘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유하고 풍족하게 되면 거친 음식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12:16-21).

(2)  그러므로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영적으로 나태하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누룩이 들어가지 아니한 거친 무교병을 반드시 구워서 먹으면서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라. 유월절 밤의 죽임을 면하게 된 것은 여호와의 은혜임을 알고서 딱딱한 무교병을 먹으면서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가고자 한 그 옛날의 맹세를 잊지 말고 실천하도록 하라”(13:4-7의역).

셋째로, “8. 너는 그날에 네 아들에게 보여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로 말미암음이라 하고, 9. 이것을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10. 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13:8-10);

(1)  그 옛날 애굽제국에서 7년 흉년 가운데 애굽인들과 주변의 이웃나라 백성들을 구원한 자가 당시의 애굽 총리 요셉입니다(41:56-42:2, 45:5-11, 50:20). 그러나 세월이 지나자 총리 요셉의 은혜를 잊어버린 애굽제국의 바로들이 역사 가운데 나타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박해하고 있습니다(1:8-12). 마찬가지입니다;

 창조주 여호와께서 신위적인 능력으로 유월절양의 피를 대문에 바르지 아니하고 유월절양의 고기를 구워서 무교병과 함께 먹지 아니하고 있는 애굽인들의 장남과 가축의 초태생을 전부 죽이시고 그 역사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방시키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있습니다.

(2)  그러나 세월이 오래 지나가게 되면 그들의 후손들은 그 옛날의 은혜를 배은망덕하게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살아가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책이 무엇일까요? 그 방법이 본문에서 3가지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    첫째, 유월절 규례와 무교절 규례를 대대로 철저하게 지키는 것입니다(10).

2)    둘째, 후손들에게 유월절 밤의 죽음과 구원에 대하여 정확하게 매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8).

3)    셋째, 평소에도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과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의 율법을 머리속에 대대로 기억시키고 그것을 외우도록 만드는 것입니다(9).

넷째로,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2-17);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의 빚을 우리 성도들이 지고 있습니다(1:29, 8:12a).  그 대속의 빚을 갚는 방법은 남은 인생을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는 것입니다(8:12b-13).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에게는 대속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와 칭의의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인이 된 성도에게 성령님께서 강림하여 내주 역사하십니다. 그때부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자녀로서의 거룩한 성화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8:14);

(2)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제14장에 기록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시면 아버지께 부탁하여 제자들에게 또다른 보혜사로 진리의 성령님을 보내어 주실 것이며 그때부터 주님은 아버지와 함께 제자들의 심령속에 마련된 성령님의 전에 영적으로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14:16-20). 그와 같은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적으로 동행하고 있는 성도들은 벌써 영적으로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주님이 얻으신 영생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천국에서의 영광된 삶을 상속으로 얻게 됩니다. 따라서 그 영광을 얻기 위하여 남은 세월동안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실천하는 복음적인 대속의 삶을 고난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8:15-17의역).

결론적으로, 유월절과 무교절을 규례로 만들어 매년 지키게 하는 것은 그저 하나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유월절과 무교절의 취지가 제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해가 되어 그들이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고 여호와신앙인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는 성화된 삶이 내면적인 의식화의 과정으로서 훨씬 중요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제도보다는 그 제도에 깃들어 있는 뜻을 깨닫고 실천하는 의식의 변화와 구체적인 삶의 변화가 있어야 진정한 여호와신앙인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불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유월절 출애굽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광야생활 40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매일 주시는 만나를 먹으면서 거친 광야에서 신앙훈련을 한 그 기간입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풍요에 젖어서 나태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을 지내면서 일주일간 거칠고 딱딱한 무교병을 씹는 그 행사가 더욱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유월절 밤의 죽음에서 구원을 얻은 자가 바로 신약시대에는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왜냐하면, 유월절 양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성도인 자신이 죄의 용서를 얻고 하나님으로부터 칭의의 은혜를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매일 무교병을 씹듯이 육신의 욕심을 이기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이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고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칭의 이후에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얻게 되는 성도들의 성화의 삶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자녀로서 부활 승천하여 영광의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의 기업을 상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이 고난을 극복하는 은혜와 영생의 영광이 천국에서 기업으로 주어지는 저와 여러분들의 거듭난 삶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