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40강(출34:10-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6. 00:58

출애굽기 강해 제140(34:10-1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014()

 

다시 세우는 언약,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가?(34:10-17)

 

시내 산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출애굽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섬긴 사건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재검토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 산 정상에 강림하여 그들의 최고지도자인 모세와 함께 제사장나라 신정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율법의 제정에 관하여 추가적인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데 바로 그 코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행태를 보인 것입니다(32:1-6). 그 광경을 산 위에서 먼저 내려다보신 하나님께서는 아예 언약을 폐기하고 백성들을 모두 진멸한 후에 말씀에 충실한 모세의 집안과 그의 후손으로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을 만들 계획을 밝히신 바가 있습니다(32:7-10). 그러나 필사적인 모세의 중보기도 그리고 강력한 자체징계의 결과를 보시고서는 마음을 돌이키시고 계십니다(32:11-35, 33:12-14). 하지만 그와 같은 백성들의 정신상태와 의식구조로서는 출애굽의 목적을 모두 달성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시내 산 언약의 중요사항에 대하여 모세를 통하여 다시 설명을 하시면서 구체적인 강조점이 다소 달라지고 있습니다(34:10-17). 과연 어떠한 대목을 더 강조하고 있으며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애굽 땅과 그 백성을 심판하신 두려우신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길에서 더 큰 이적을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34:10). 죽음의 천사를 보내어 애굽 인의 장자와 그들 가축의 초태생을 모두 죽여버리셨는데(12:29-30) 이제 그보다 더 큰 이적을 보여주시겠다고 하니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군대를 출동시켜서 가나안 원주민들을 쫓아내는 것입니다(34:11). 요컨대, 전쟁의 신 만군의 여호와의 두려운 신위를 온 세상에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장차 그 모습을 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감히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겠다고 하는 불경스러운 생각을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예언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네가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행하심을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이니라”(34:10). 당장은 우상문화에 젖어있는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을 심판하고 그 땅에서 쫓아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군대가 출동하게 되는 이적이 나타나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도 동일한 잘못을 범한다면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여기서 시사 받을 수 있습니다(34:11-12).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도 가나안 원주민들의 올무에 걸리지 아니하도록 조심을 하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둘째로, 그들의 올무에 걸리지 아니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에만 집중하라는 것입니다(34:10). 하나님의 명령만을 지키고 행하는데 사력을 다해야 합니다(34:11). 둘째, 가나안 원주민이나 이방인과는 어떠한 언약을 세워서도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34:12a). 그들과 언약을 세우고 타협을 하게 되면 그것이 함정에 빠지게 되는 단초(端初, 처음 단계 또는 첫 단추)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경고입니다(34:12b).

셋째로, 원주민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행해야만 하는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제시하고 있습니다(34:13-17); 첫째, 이방 신을 섬기고 있는 원주민들의 제단을 헐어버려야만 합니다(34:13a). 둘째, 우상이 새겨져 있는 돌기둥을 깨뜨려버려야만 합니다(34:13b). 셋째, 아름다운 아세라의 목상을 도끼로 찍어버려야만 합니다(34:13c). 넷째, 이방 신이나 우상에게 절을 하고 섬겨서는 절대로 아니 됩니다(34:14a). 하나님 만을 섬기라는 제1계명의 위반이므로 여호와의 진노를 사게 될 것입니다(34:14b). 다섯째, 신상(神像)을 절대로 만들어서는 아니 됩니다(34:17). 여호와는 피조물의 형상으로 만들 수 있는 신이 아닙니다(20:3-5). 그러므로 그 어떠한 명분이라고 하더라도 신상을 만드는 것은 금지해야만 합니다.

넷째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경건한 마음이지만 우상을 섬기는 것은 음란한 마음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34:15-16). 경건한 생활과 음란한 생활의 차이를 창세기와 호세아 선지서에서 다음과 같이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십니다. 그리고 하와를 아담의 아내로 직접 데려다 주십니다. 아담은 사랑의 고백을 한 다음에 하와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룹니다. 그것이 발가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는 경건한 생활의 시작입니다(2:20-25). 반면에 선지자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음란한 마음을 가진 여자입니다. 세 번이나 남편을 떠나서 외간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자녀 셋을 낳아서 집으로 들어옵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국 백성들의 음란한 마음의 상징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1:2-9)”. 한 마디로,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음란한 마음의 선택입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의 종교생활 가운데 음란한 성생활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가나안 사람들은 주신 바알과 여신 아세라를 섬기고 있습니다. 농사의 신 바알은 풍요의 신입니다. 여신 아세라와 합방을 할 때에 가나안 땅에 풍년이 찾아온다고 원주민들이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풍요와 번영을 구가하기 위하여 최고의 희생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린 자녀를 번제로 드리는 인신제사입니다. 그리고 여사제들과 합방을 함으로써 다산(多産)의 축복을 얻고자 합니다. 음란한 성생활을 합리화시키고 있는 이방종교의 교묘한 명분입니다.

음란한 가나안 원주민들의 종교생활은 마치 애굽의 누룩과 같아서 전파력이 강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강력하게 세 가지의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원주민들과는 일체 타협을 하지 말라. 그 어떠한 언약도 맺지 말라는 것입니다(34:12, 15a). 둘째, 절대로 통혼(通婚, 서로 혼인관계를 맺는 것)을 하지 말라(34:16). 지혜의 대왕 솔로몬도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방여인을 취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게 됩니다(왕상11:2-8). 셋째, 원주민들의 초대에 일체 응하지 말라(34:15b). 특히 그들의 제물을 먹게 되면 음란한 종교행사에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34:15).

참고로, 본문의 내용은 정치학적인 입장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쉽게 이해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출애굽과 가나안 입성은 정치학적으로 그 성격이 다릅니다. 출애굽은 노예해방의 성격이 강합니다. 반면에 가나안 입성을 정복전쟁이며 일종의 영토의 획득입니다. 그것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앞장을 서셔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분배를 해주는 형식입니다. 그것은 봉건적인 은급(恩給)과 충성의 질서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가나안 땅을 열두 지파에게 은급으로 나누어줍니다. 그러면 열두 지파의 족장과 장로들은 땅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황제가 천하를 통일하게 되면 그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는 주변지역의 왕들은 사대주의(事大主義, 큰 나라를 어버이처럼 섬기는 사상) 정책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무조건 중앙의 황제를 섬겨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웃나라와의 외교관계도 황제의 허락을 얻는 경우에 국한하여 교린(交隣)정책이 이루어질 따름입니다. 같은 이치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군의 여호와를 황제처럼 섬겨야만 합니다. 다른 나라와의 외교관계나 종교적인 협력에 있어서도 반드시 사전에 윤허가 있을 경우에 한하여 검토가 가능할 뿐입니다.

셋째로, 제국주의와 식민(植民)주의 이론이 가나안 땅 정벌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땅 차지에 역시 적용이 됩니다. 마치 식민지를 찾듯이 하나님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땅을 정복합니다. 그리고 그 땅을 갓 출애굽을 하여 자신들의 땅이 없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배분합니다. 그것은 자국의 백성을 정복한 땅에 심는다는 이른 바 식민이론과 일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위와 같은 정치학적인 고찰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것이 가나안 정복과 땅 배분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가나안 땅의 지배족속인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하나님께서 인내하실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축출이 되고 맙니다(15:16). 하나님은 창조주의 말씀의 뜻을 따라서 그 땅을 경영해보라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습니다(1:28, 2:15, 19: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그 땅을 경영하게 되면 그 옛날 원주민들처럼 역시 축출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세상경영의 섭리가 숨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세상적인 권력관계의 분석에 기초하고 있는 정치학적인 이해가 전부라고는 절대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한 하나의 실제적인 분석의 도구로서는 그 나름대로 제법 쓰임새가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