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30강(출31: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3. 10:07

출애굽기 강해 제130(31:18)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04()

 

증거판(the tablet of the testimony)과 증거궤(the ark of the testimony) 그리고 속죄소(the atonement cover)의 의미(25:16-22, 31:7, 18, 33:19, 34:28)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 산 정상으로 불러서 성소(the holy place)와 지성소(the most holy place)가 들어있는 성막(the holy tabernacle)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24:17-18, 25:9). 그리고 출애굽 당시 애굽 사람들에게서 받아온 은금 패물과 여러 가지 자재를 예물로 받아서 그것으로 이동식 성막을 짓도록 명령하십니다(25:2-8). 그리고 제일 먼저 아카시아 조각목으로 증거궤(the ark of testimony)를 만들고 금으로 치장을 하라고 지시하십니다(25:10-22). 왜 그 궤짝을 가장 먼저 만들도록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지성소 안에 배치를 할 수 있는 것이 그 증거궤입니다(26:34). 그 속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25:21, 34:28).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율법의 대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십계명으로 요약이 되어서 돌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이 증거판(the tablet of testimony)입니다. 모세가 새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신성문자로 새겨서 주신 돌판 두 개입니다(31:18, 34:28). 그것을 증거궤 속에 넣어서 보관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40:20).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증거궤의 뚜껑을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대단히 상세하게 설명하십니다. 어쩌면 증거궤보다도 그 뚜껑에 신경을 더 많이 쓰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예를 들어, 소재만 보더라도 다릅니다. 증거궤는 아카시아 조각목으로 궤짝을 만들고 그 바깥을 금박으로 입힌 것입니다(25:10-11). 그런데 그 뚜껑은 궤짝보다 훨씬 비싼 것입니다. 아예 순금으로 그 뚜껑을 만들고 속죄소라고 이름합니다(25:17). 그리고 뚜껑의 양쪽에 역시 금으로 천사를 조각하도록 합니다. 두 천사가 날개를 높이 펴서 속죄소를 덮도록 배치하고 있습니다(25:20).

그렇게 비싼 성물을 만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천사)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25:20-22).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는 곳에서 모세와 만나십니다. 그리고 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 그곳에서 백성들에게 선포할 내용을 모세에게 말씀해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가지고 선지자를 만나십니다. 그리고 천사가 지키고 있는 그 보좌에서 백성들에게 무엇인가 중요한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중요한 말씀 그것들이 과연 무엇일까요?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으며 보좌에서 선포하시는 그 말씀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실마리가 출애굽기 제33장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mercy)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compassion)을 베푸느니라”(33:18-19).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피조세계에 두 가지를 베풀고 계십니다. 첫째가 은혜이며 둘째가 긍휼입니다. 은혜와 긍휼의 개념이 무엇일까요?

솔로몬 대왕이 부친 다윗 대왕의 유지를 받들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서 바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예물로 받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왕상9: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그 성전을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성전의 원형이 바로 성막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가장 거룩한 곳 지성소에 계십니다. 지성소 안에는 증거판을 넣어둔 증거궤 그리고 그 뚜껑인 속죄소만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은혜와 긍휼의 의미가 증거판과 증거궤 그리고 속죄소에 들어 있다고 추론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증거궤는 증거판(the tablet of the testimony) 두 개가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또 증거판은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인 십계명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값진 것입니다(34:28).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지 않다고 하면 그냥 흔한 돌판 두 개에 불과할 것입니다. 모세가 전하여준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law)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제사장나라의 법률에 해당이 되기 때문입니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적용에 있어서 예외가 없습니다. 누구나 백성이라면 동일하게 법의 적용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에게 동일하게 베풀어 주시고 있는 은혜(mercy)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6일 동안에 창조한 그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하나님은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증거판을 담고 있는 궤짝이 증거궤입니다. 그것을 the ark of testimony’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the ark’라는 단어 때문에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됩니다(6:15).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는 그 상자를 바라보면서 회개를 하는 자에게 속죄의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특정한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기에 전반적으로 무차별적으로 그냥 주어지고 있는 은혜와는 다른 것입니다(5:45). 그것을 구별하여 긍휼’(compassion)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증거궤를 덮는 뚜껑을 다른 뚜껑과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속죄소’(the atonement cover)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속죄의 희생제사를 드릴 때에 대제사장이 그 피를 향단의 뿔에도 바르지만(30:10) 반드시 속죄소에 뿌리도록 되어 있습니다(16:15). 그러면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됩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대속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름하여 긍휼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개념을 한번 정리해봅니다; 은혜라고 하는 것은 법적으로 모든 백성들에게 창조주께서 살만한 환경과 여건을 선물로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선민과 이방인 구별이 없이 그 평등한 은혜를 공의(the righteousness)에 입각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긍휼은 다릅니다. 평등한 은혜를 주시지만 그 가운데 반드시 뒤처지거나 소외된 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이 긍휼입니다. 예를 들면, 베데스다 못가에서 낫기를 기다리고 있는 38년된 병자 겸 장애자와 같습니다(5:5-9). 자력적인 나음이 전혀 불가능한 자입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그 자가 바로 긍휼의 대상입니다(34:19).

그렇다면 가난하고 불쌍한 처지에 있다고 하여 모두가 긍휼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속죄소를 향하여 부르짖는 죄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대속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십자가를 향하여 부르짖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허물을 발견한 성도들도 부르짖어야만 합니다. 속죄소와 십자가는 그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물입니다. 그리하면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다시 의인으로 삼아주십니다. 그리고 병든 장애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고쳐주시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실 것입니다(10:46-52, 5:14-15). 긍휼을 베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반드시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요컨대, 그 사실을 확고하게 믿고서 끊임없이 간구하는 자가 성도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