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22강(출29:25-4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29. 09:02

출애굽기 강해 제122(29:25-4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927()

 

제사장 및 성도들의 5대 의무(29:25-46)

 

첫째로, 제사장들은 매일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의무가 있습니다(29:38-46). 그 제사는 하루에 두 차례 아침과 저녁에 드려집니다(29:39). 번제와 소제 그리고 전제가 함께 드려집니다(29:38-42). 그 제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번제로 드리는 것은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입니다(29:38). 아침에 한 마리, 저녁에 또 한 마리를 번제로 드립니다(29:39, 42). 둘째, 고운 밀가루 10분의 1에바를 소제로 드립니다(29:40). 그것은 식물성이므로 동물성인 양과 함께 태워서 드리는 것입니다(29:41). 셋째, 액체인 전제를 드리는데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찧은 기름 4분의 1힌과 또 포도주 4분의 1힌입니다(29:40). 그것도 번제와 소제를 드릴 때 조석으로 함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29:41).

그와 같이 조석으로 매일 동물성과 식물성 그리고 식용유와 포도주를 마치 상석과 같이 제단에 번제와 소제 그리고 전제로 올려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불기운 속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맡으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십니다(29:41-42).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재를 하신다는 것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최종적으로 제단과 성막 그리고 제사장들 모두가 거룩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29:43-44). 제사장들을 필두로 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과 구별이 되며 하나님의 것으로 다시금 새로워지는 것입니다(29:45). 그것이 진정한 출애굽의 목적이라고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29:45-46).

참고로, 곡물의 부피의 단위인 에바는 22.7리터이며 한국에서는 에 해당이 됩니다. 그리고 10분의 1에바는 오멜인데 그것은 2.3리터이므로 한국의 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광야시대 만나 1오멜이 바로 하루치의 식량입니다(16:16). 그러므로 고운 밀가루 1오멜을 소제로 드린다고 하는 것은 아침 저녁으로 하루치의 식량을 하나님께 두 번 태워서 올려드린다고 하는 의미가 됩니다. 한편 액체의 단위인 ’(Hin)이라고 하는 것은 3.5내지 3.9리터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보통 한 되 반에 해당하는 액체의 양입니다. 그러므로 4분의 1힌은 1리터 미만입니다. 그것은 우유나 쥬스 한 병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식용유 한 병과 포도주 한 병을 조석으로 전제로 올려드린다고 하는 것은 많지도 적지도 아니한 적절한 분량의 책정이라고 하겠습니다(29:40-41). 그것은 묘하게도 정성스럽게 집안의 어른을 모시는 다소 넉넉한 식사의 양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제사장은 반드시 자신을 정화시켜야만 합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일주일 동안 매일같이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실 때에 가능해집니다(24:9-11, 29:35-36). 하나님께서는 마치 천지를 창조하시듯이 제사장으로 위임을 받게 되는 자를 그렇게 거룩한 존재로 만드십니다. 그것은 거듭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3:4-5). 처음에는 단지 아론의 집안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 위임식 제사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비로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위임 받아서 행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의 경우에 있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그리고 매일 말씀과 기도로 성결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 결과 복음을 제대로 전파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를 길러내는 지상명령의 실천이 가능해질 것입니다(28:18-20).

셋째로,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먹고 산다는 의식을 가져야만 합니다. 실제로 위임식 제사의 과정을 통해서 그것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두 번째의 양을 제물로 바칠 때에 그 가슴부위와 한쪽 넓적다리를 제사장들이 삶아서 먹도록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29:26, 28, 31-32). 그리고 무교병과 기름이 들어간 과자의 경우에도 일부분만 하나님께 소제와 전제로 바치고 대부분을 제사장들이 식량으로 삼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29:32-33). 그것이 제사장들의 하루치의 식량입니다. 마치 만나와 마찬가지로 다음 날을 염려하여 절대로 남기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16:20, 29:34). 한 마디로,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먹고 살도록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넓은 땅과 기업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18:23). 그것을 경영하느라고 시간을 많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예방조치를 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초대교회시대에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의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서 교회의 행정을 집사들에게 위임한 것과 같습니다(6:2-4). 제사장들을 비롯하여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인들은 아예 가나안 땅의 기업분배에 있어서 제외가 되고 있습니다(18:23). 그 대신에 기타 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아서 생활하며 성막을 관리하도록 제도화하고 있습니다(27:30, 18:24). 그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때, 목회자가 세상 사업을 경영하는데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것은 성경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하겠습니다.

다섯째로, 아론의 아들 가운데서 대제사장 후임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경우에는 아들이 아니라 그의 시종으로서 에브라임 지파출신인 여호수아가 그 후임이 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의 아들이 되었든지 시종이 되었든지 간에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하게 교육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론의 경우에는 자신의 아들과 손자에게 믿음을 물려주고자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세의 경우에는 여호수아와 갈렙 등 젊은 세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 오늘 날의 성도들이라고 한다면(벧전2:9)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의무사항을 이행해야만 한다고 하겠습니다; 첫째,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둘째, 거듭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셋째, 하나님으로부터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만 합니다. 넷째, 세상의 기업의 경영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다섯째, 자신의 집안을 믿음의 가문으로 바로 세워야만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일꾼을 길러내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성도의 삶을 하나님께서 귀히 보시고 그 기도를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시며 인생 가운데 자주 만나주시고 함께 동행을 하시는 것입니다(29:4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