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21강(출29:29-3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29. 09:00

출애굽기 강해 제121(29:29-3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926()

 

아론 집안에서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직분을 세습하다(29:29-37)

 

아론의 가계에서만 대제사장의 신분을 세습하고 제사장의 자리를 상속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은 비판의 여지가 있습니다(29:29). 분명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부정적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 날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담임목사의 자리를 자식이나 사위에게 세습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여론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대사회가 아무리 가부장사회이며 신분의 세습이 보편화되어 있는 족장사회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자리마저 세습을 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넘어서서 역사하시고 계십니다(4:24). 옛날 신분사회에 갇히어 계시는 분이 아니라 계시를 통하여 역사발전의 방향을 미리 제시하시고 계십니다(48:5-7, 11:36, 1:8). 그와 같은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면, 대제사장이라는 기득권의 세습 그리고 제사장 가문이라는 영예의 상속은 아무리 고대사회라고 하더라도 설득력이 약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구태여 아론의 대제사장 신분을 그의 아들 중 하나에게 그리고 아들들의 제사장 자리를 대를 이어서 자손들에게 세습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모세오경에서 몇 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대제사장과 제사장은 위임식 고기나 떡을 먹습니다(29:31-33). 그들은 집과 텃밭 그리고 약간의 목초지를 분깃으로 가질 수는 있지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큰 밭이나 목장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21:2-3, 18:23).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열두 지파가 분배를 할 때에 하나님의 명령으로 그렇게 결정이 된 것입니다. 그 대신에 나머지 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아서 하나님의 성막과 성전을 관리하고 생계를 유지하게 됩니다(18:20-22, 24-32).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그 옛날 광야시대의 연속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16:4-5, 19-20). 위임식 고기와 떡을 일용할 양식으로 먹습니다. 다음 날까지 남겨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29:34). 그리고 백성들을 위한 제사를 드릴 때에 그들의 몫이 따로 주어지고 있습니다(18:8-19). 따라서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생활이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입장과 형편이므로 그들의 지위와 신분이 세습이 되고 상속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엄청난 부와 권력의 상속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주일간 매일같이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29:36-37).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거룩하게 구별되는데 필요한 시간입니다. 세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아론이나 그의 아들들이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존재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그렇게 거룩하게 되었을 때에 비로서 백성들의 위임을 받아서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할 수가 있게 됩니다(29:1). 그런데 묘하게도 그 위임식 제사가 7일 동안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29:35). 왜 하필이면 7일간일까요? 창세기 제1장과 제2장을 참조하면 그 7일간은 한번의 창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1:31, 2:1-3). 그러므로 7일간의 속죄의 제사라고 하는 것은 거룩한 제사장으로 거듭나는 절차를 말하고 있습니다(3:5). 그렇다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참여하게 되는 자는 어떻게 선택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선택에 따르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집안 또는 노아의 집안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기준에 의하여 의인의 가계를 선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6:18, 12:2). 결코 피조물인 인간이 비판적으로 관여하거나 토를 달거나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12:8, 16:8-11). 결론적으로, 아론의 가계를 택하여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신분을 세습하게 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출애굽 당시 유월절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장자는 모두 하나님의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13:12). 그런데 레위 인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장자를 대신하여 특별히 하나님을 섬기도록 선택이 된 사람들입니다(3:12). 그 레위 인들을 맡아서 성막과 성전의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지시하고 감독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대제사장 아론과 제사장인 아론의 아들들입니다(3:9). 그와 같은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아론의 후손들은 대제사장과 제사장 가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끝으로, 아론의 집안이 제사장 집안이 된다고 하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일까요? 거기에는 엄청난 책임과 말씀에의 순종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론의 장남 나답과 차남 아비후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그들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을 했다는 죄목으로 그만 불에 타 죽고 맙니다(10:1-2). 하나님께서는 가장 가까이 성막에서 봉사하고 있는 제사장들에게 더욱 엄격한 말씀에의 순종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아버지 아론은 완전한 헌신을 위하여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10:3). 그렇게 온전하게 헌신을 하겠다고 하는 결심이 없으면 함부로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의 직분을 맡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물론 무조건 권력과 권한에만 눈이 멀어서 세습과 상속을 도모해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그것은 훗날 엘리 대제사장의 두 아들처럼 죽음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패가망신의 길입니다(삼상2:22-25, 30-34).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무엘과 같은 새로운 대제사장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삼상2:35). 그리고 레위 인 제사장들은 새로운 대제사장의 지휘를 받게 됩니다(삼상2:36).

결론적으로, 새로운 대제사장 사무엘을 선택하시고 세우시는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장차 이 세상에 오시는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 옛날 레위 인들처럼 새로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모시고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섬기는데 있어서 전적으로 헌신을 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참고로, 레위 지파 내에서 이루어지는 구약적인 제사장 계급의 세습이 신약시대 교회 내의 담임목사의 세습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하는 김영한 교수의 주장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 지파는 야훼의 언약궤를 메며 야훼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야훼 이름으로 축복하도록 구별받았다. 레위 지파는 그 형제 중에서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야훼가 그의 기업이었다( 10:8~9). 구약의 제사장은 레위 지파 중에서 나오고, 대대로 세습되어 야훼를 섬기는 직분이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땅이나 재산을 갖지 않고 성전에서 나오는 것으로 살아갔다. 그러나 예언자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서 어느 지파에서나 나올 수 있고, 소명 받기 전의 직업도 다양하다. 그리고 예언자가 세습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가문의 세습으로 이루어졌다. 그 집안에 태어난 자식이 불알이 터졌거나 한쪽 눈알이 빠졌거나 팔이 병신이거나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하지 않는 한 남자는 누구나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다른 직업은 가질 수 없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구약의 제사장이다. 교회 세습의 합리화 근거를 구약시대 제사장의 세습에서 찾는 것은 구약과 신약의 불연속성 측면을 간과하는 것이다. 신약 시대의 목사는 세습이 아니고 소명직(召命職)이다. 주님이 불러서 사명을 주시고 양무리를 치도록 맡기시는 것이다. 아버지가 목회자라고 그 아들이 반드시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는 세습직이 아니다. 예수님도 그 제자들을 부르실 때 제사(祭司) 계급에서 부르신 것이 아니고, 어부, 세리 등을 불러 제자로 삼았다. 사도직도 그 자식들에게 세습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도의 제자들도 그 직을 세습하지 않았다. 초대교회에는 세습이 없었다. 구약성경의 레위 지파와 제사장들도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살 수 있게 했으나 분깃이나 기업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교회 세습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는 ‘축복권’만 아니라, 돈과 명예와 권력(교권)까지 한꺼번에 주어지고 있다. 이것은 타락의 징조가 되는 것이다. 교회 세습을 구약의 제사장직에서 찾으려는 발상은 전혀 개신교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