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17강(출28:15-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28. 04:44

출애굽기 강해 제117(28:15-3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922()

 

판결흉패의 모양과 옷에 연결하는 방법 그리고 우림과 둠밈의 보관방법(28:15-30)

 

첫째로, 판결흉패의 재질은 에봇의 옷감과 같습니다; “금실에 삼색의 실 곧 청, , 홍색의 실과 세마포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듭니다”(28:15). 그 모양은 한 뼘의 길이를 가지는 두 겹의 정사각형입니다(28:16). 그런데 그 특징은 12개의 보석을 3개씩 4줄로 배열하여 박는다는 것입니다(28:17-20). 어떻게 하면 12개의 보석을 옷감인 흉패에 부착을 시킬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각 보석을 금테에 물립니다(28:20). 둘째, 노끈처럼 땋은 순금사슬을 흉패 위에 붙입니다(28:22). 셋째, 순금사슬에 보석을 물린 금테를 접합시킵니다.

그러면 보석들이 흉패에 부착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아무리 보석이 아름답고 귀중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금으로 테를 두르고 그것을 순금으로 된 사슬에 접합을 시키지 아니하면 제 자리를 잡아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순금의 테와 사슬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보석들이 서로 연결이 되어 하나의 아름다운 흉패라는 장식물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이 성소와 지성소를 출입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흉패의 보석들을 한꺼번에 보실 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순금은 보석들을 서로 연결하고 하나님 앞에 빛을 발하게 해줄 수 있는 재료입니다. 그것은 마치 성도들을 서로 연합시키고 동역하게 만들고 있는 성령님의 역할과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을 하나씩 보석마다 새기고 있습니다(28:21). 그 보석들의 종류는 첫째 줄에 홍보석(ruby), 황옥(topaz), 녹주옥(beryl), 둘째 줄에 석류석(turquoise), 남보석(sapphire), 홍마노(emerald), 셋째 줄에 호박(jacinth), 백마노(agate), 자수정(amethyst), 넷째 줄에 녹보석(chrysolite), 호마노(onyx), 벽옥(jasper) 등입니다(28:17-20). 당시 애굽과 중동 지역에서 가장 귀한 보석들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12지파의 이름을 얼마나 존귀하게 보시고 계시는지를 넉넉하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이 성도의 존재는 보석보다도 더 빛난 존재입니다.

셋째로, 이제는 판결흉패를 가슴에 부착을 할 차례입니다. 그 방법은 첫째, 흉패 위 두 끝에 금고리 두 개를 만들어서 답니다(28:23). 둘째, 에봇 앞부분 두 어깨받이 금테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금 사슬을 그 두 금 고리에 꿰고 있습니다(28:24-25). 금 사슬의 길이는 흉패의 아래쪽이 에봇의 앞쪽 두 견대의 아래 부분과 매는 띠 위쪽에 오도록 조정을 합니다(28:27b). 셋째, 흉패 아래 양쪽 끝에도 똑같이 두 금 고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흉패 아래 금 고리와 에봇이 만나고 있는 곳에도 금 고리를 만들어서 답니다(28:27a). 흉패와 에봇을 결합하기 위하여 청색 끈을 사용합니다. 그 끈을 흉패 아래의 금 고리와 에봇의 금 고리에 넣어서 단단하게 묶으면 되는 것입니다(28:28).

넷째로, 판결흉패라고 불리고 있는 이유는 두 겹으로 된 흉패 속에 우림둠밈을 넣고 있기 때문입니다(28:30). 이미 설명을 드린 바와 같이 우림을 의미하고 둠밈완전함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이 세상에 하나님 말씀으로 생명의 빛을 비추고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렇게 살기를 맹세하고 있으니 부디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새로운 살 길을 허락하여 달라는 간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결심과 속죄의 제사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림둠밈을 흉패 속에 보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용서함을 얻을 수 있는 소위 판결흉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끝으로, 그 판결흉패를 항상 가슴에 품고 있어야만 합니다(28:29).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겠다고 하는 각오가 신앙생활의 초석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에서 지내고 있는 제사, 성소와 지성소 안에 설치되어 있는 모든 성물들의 기능이 모두 판결흉패의 정신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모시고 다니면서 그 주위에서 거주하며 또한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장차 성막을 앞세워서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고 있다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 모습은 판결흉패를 가슴에 붙이고 살아가는 대제사장의 삶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과 같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은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벧전2:9). 이 땅에서 대제사장의 예복을 입고서 살아가고 있는 자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마치 아론과 같이 그 가슴에 우림둠밈을 품고서 다음과 같이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28:29); 첫째, 주님의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만 합니다. 둘째, 진리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실천함으로써 죽어가는 심령을 살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셋째, 나아가서 자신의 인생도 이웃의 인생도 모두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인생이 되도록 만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것이 구원을 받은 자의 남은 삶이며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완전한 인생이라고 하겠습니다(17:1, 28:18-20, 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