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99강(출23:14-1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22. 01:28

출애굽기 강해 제99(23:14-19)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92()

 

무교병의 절기, 맥추절, 수장절 등 세 가지 기념 행사를 강조하고 있는 율법의 정신(23:14-17) 그리고 특별히 명심해야만 하는 다섯 가지 사항(23:17-19)

 

인간은 과거의 경험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며 또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과거의 경험을 너무 중시하다가 보면 현재의 작은 이익이나 기득권을 끝까지 지키려고 합니다. 그 모습을 소위 현실주의자에게서 많이 엿볼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자신이 미래에 바라고 있는 그 모습에 집착하여 현실을 의도적으로 개조하려고 무진장 애를 쓰다가 보면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많은 마찰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한 자들에 대해서는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는 이상주의자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세 가지 절기의 율법을 마련하시면서 그 두 가지의 경우를 모두 시정하라고 강조를 하고 계십니다. 과연 그러한지 한번 본문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한국말로는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23:14)고 딱딱하게 번역이 되어 있지만 영어성경을 보게 되면 조금 뉴앙스가 다릅니다; “Three times in the year you shall hold a festival for me”(Exodus 23:14, NRSV), “Three times a year you are to celebrate a festival to me”(NIV). 그 말의 뜻은 한해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세 차례 기념일을 정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펼치는 축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축제를 벌이기에 알맞은 때가 과연 언제일까요? 적어도 일년에 세 차례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월절의 기간, 첫 수확의 때, 그리고 가을걷이가 전부 끝나고 농한기가 시작이 되는 때입니다(23:15-17). 그런데 영어성경의 표현을 참고해보면, 일년에 반드시 세 차례 절기를 지켜야만 된다는 율법적인 부담감이 상당히 가벼워집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축제를 즐기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 잔치마당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기쁨의 잔치자리를 세 차례나 마련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유월절의 절기의 이름을 달리 부르고 계십니다;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23:15a). ‘무교병을 먹어야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출애굽 당시에 일주일 동안 무교병을 먹었던 그 때를 생각하면서 다시 무교병을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23:15b). 출애굽 직전에 무교절을 정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12:15). 애굽의 누룩을 제거하라는 것이 무교병을 먹는 이유입니다. 출애굽한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애굽에서 익히고 배운 습성과 행실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무교병을 먹으면서 그 사실을 깨닫고 계속 범신론적인 생각, 무신론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세상적인 방법론 등을 하나하나씩 제거를 해나가야만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셋째로,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23:15c)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축제의 마당에 빈손으로 나오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주셨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입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일년에 세 차례 잔치마당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고 보면, 장차 먹을 것과 쓸 것이 부족해진다고 하는 걱정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색하게 됩니다. 아니면 적게 내고 많이 즐기자고 하는 속이 좁은 장사치와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하나님의 생각보다 더 정확하다고 믿고 있는 현실주의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그렇게 자신의 옹졸한 경험과 인간적인 판단에 의존을 하였다면 출애굽의 역사도, 홍해의 구원도, 광야에서의 탈출도, 약속의 땅 차지도 어느 것 하나 성취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은 다시 한번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23:19a).

넷째로, 모든 결실의 처음과 끝을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알아야만 합니다(23:16). 땅을 갈고 물을 조금 주고서 씨를 뿌리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고전3:6). 하지만 그 씨가 발아를 하고 탄소동화작용을 계속하면서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고전3:7). 물론 사람이 약간의 도움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비를 내려주시고 면역의 능력을 식물에게 주지 아니하시면 결단코 충실한 열매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11:13-14). 그러므로 그 은혜를 알고서 처음 익은 열매를 그것도 충실한 열매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가서 감사를 드려야만 합니다(23:16ab). 마찬가지로 모든 가을걷이가 끝나게 되면 다시 한번 얻은 소득 가운데 하나님의 것이라고 판단이 되는 것을 가지고 나아가서 드리게 됩니다(23:16cd). 그것은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성막을 관리하는 자들, 그리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등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데 보람 있게 사용이 될 것입니다(23:17, 16:14).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에 나올 때 특별히 명심해야만 하는 다섯 가지 사항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모든 남자는 반드시 세 절기 때 하나님의 전에 나와야만 합니다(23:17). 그 이유는 세상에 물드는 것, 노동의 결과를 너무 중시하는 것, 미래를 대비하는 것 등이 대부분 남자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대의 가부장사회에 있어서 가장인 남자의 동의가 없으면 여자가 함부로 의사결정을 할 수가 없다는 특수한 상황도 그 율법조항에 반영이 되고 있습니다. 둘째, 희생제물에 세상의 누룩을 섞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23:18a).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세상적인 방법론을 쉽게 동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론적인 교회의 모습을 실현하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세상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이룩하고자 합니다. 과연 그러한 것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실까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의 생각과 소원을 내려놓고서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원대로 해달라고 결론을 맺으시고 계시는 예수님의 기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14:36). 셋째, 제물의 기름을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두어서는 안됩니다(23:18b). 동물의 기름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람에게 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태워서 하나님께 바치고 제사장과 백성들이 살코기를 먹도록 하나님께서는 고맙게도 제사의 규례까지 정하시고 있습니다(3:9-17, 7:11-19). 그런데 그 기름을 달리 사용하고자 아끼게 된다면 그것은 독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것과 사람의 것을 엄격하게 구분을 하고 함부로 전용하지 아니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22:21). 넷째, 그 해에 생산한 가장 좋은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이미 그 의미를 위에서 설명하였습니다(23:19a). 개념을 확장해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생각하고 그 사랑의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끝으로, 생명을 돌보시는 긍휼의 하나님과 자비의 하나님을 생각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염소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아니 됩니다”(23:19b).

결론적으로, 그 깊고 폭 넓은 의미를 생각해보면 모세의 율법의 정신은 예수님의 복음의 정신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일하신 하나님의 가르치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