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85(손진길 소설)
서기 700년 봄에 왜(倭)의 귀왕국(貴王國)의 수도인 북구주성(北九州城)으로 일단의 상인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들은 번왕국의 수도인 야마토(大和)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오덕관(吳德館)이라고 하는 상단의 지점에서 출발하여 왜의 땅 여러 성을 차례로 방문하여 널리 상거래를 하고 있는 오덕상단(吳德商團)이다.
20여명의 상인이 20대의 마차를 몰고서 성문을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40여명의 호위무사들이 상인들과 마차의 짐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 성문지기의 수장인 백부장 도영민(都英民)은 일년에 계절적으로 4차례나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상단이므로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그대로 통과시키고 있다.
도영민은 귀왕국에서 상좌평을 지낸 도미수(都味秀) 대감의 조카이다. 그의 집안은 그 옛날 678년에 평안성의 성주였던 막내 숙부 도미수가 귀왕에게 투항할 때에 번왕국의 수도인 야마토에서 미리 피신하였다. 그리고 도미수 성주가 귀왕국의 수도로 들어올 때에 함께 북구주성으로 이주하였다.
당시 귀왕의 배려로 도미수의 뒤를 이어 그의 큰형인 은솔 출신의 도미다(都味多)가 역시 평안성주를 지냈다. 그리고 귀왕국의 조정에서 도미수는 귀왕의 도승지로 일하다가 나중에는 최고의 관직인 상좌평을 지냈다. 그야말로 도씨 집안은 귀왕국에서 신흥귀족의 대표주자인 셈이다.
오덕상단을 통과시키면서 백부장 도영민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 옛날 백제의 사비성에 본부를 두고 있는 오덕상단은 그 위세가 대단해. 지금은 번왕국 뿐만 아니라 우리 귀왕국과 무왕국에도 그 상권을 뻗치고 있거든. 그들이 장만성에 들어가서는 사비성에서 가지고 온 온갖 고급상품을 천황가에 팔고 있다고들 말하고 있지. 거참 대단한 상단이야, 허허허… “;
그런데 오덕상단은 그냥 모른 척하고 성문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문을 지키고 있는 군사들의 노고에 대하여 일종의 성의를 표시하고 있다. 상단의 행수가 얼른 돈꾸러미가 들어 있는 주머니 하나를 성문지기의 수장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액수가 적지 아니하다. 성문지기들이 하루 잔치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덕상단은 성문지기들에게 인기가 있다. 나름대로 인간미가 있다고들 말하고 있다.
그러한 관례가 있기 때문에 그날 백부장 도영민이 두사람의 노인을 눈여겨보지 못했다. 70대인 노부부가 그들 상단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일단 성문을 통과하자 별도로 행동한다. 대담하게도 그들 노부부가 북구주성의 북쪽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왕궁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부 가운데 남자가 귀왕국의 왕궁 정문에서 병사에게 자신의 품속에서 하나의 금패를 꺼내어 보여준다. 그것을 보고서 병사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는 얼른 백부장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백부장이 예의 바르게 절을 하면서 노부부를 안내하여 대전 가까이 가서 그곳의 책임자에게 인도한다.
대전관리인 여진수(餘珍秀)가 두사람을 대전이 아니라 귀왕의 집무실로 정중하게 모신다. 그곳에서는 미리 연락을 받은 귀왕 책귀가 두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두사람을 보자 귀왕 책귀가 얼른 말한다; “좌룡(左龍) 유기룡(劉起龍)이 나를 찾아왔구나. 내가 너를 참으로 보고 싶어했다. 내 친구 기룡아, 정말 잘 왔다. 그리고 제수씨도 잘 오셨습니다… “;
그 말을 하면서 귀왕 책귀가 눈물을 흘리며 노장 유기룡을 포옹한다. 그 모습을 보더니 귀왕의 옆에 서있던 왕비 사오리(思吾理)가 천천히 유기룡의 아내인 오해미(吳海美)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말한다; “먼 길 오시느라 참으로 노고가 크셨습니다. 남편으로부터 늘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에야 이렇게 만나보게 됩니다. 제가 사오리입니다”.
그 말을 듣자 오해미가 절을 하면서 말한다; “제 남편의 절친 귀왕의 부인을 오늘에야 제가 직접 뵙게 되니 송구합니다. 오덕상단의 행수 오해미가 사오리 왕비마마를 알현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에 왕비 사오리가 웃으면서 말한다; “다 늙어서 무슨 예를 그렇게 차리고 계십니까? 그저 남편 절친의 아내인 사오리입니다. 편하게 대해주세요. 우리도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동무가 되면 늘그막에 좋지 않습니까? 호호호… “.
그 말을 하면서 사오리가 오해미를 포옹한다. 마치 자매와 같이 정다워 보인다. 오해미는 생각보다 왕비 사오리가 소탈한 것을 보고서 속으로 생각한다; “사오리 왕비가 귀왕 책귀의 부하장수 출신이라고 하더니 역시 여걸이구만!... “.
그날 귀왕 책귀를 찾아온 인물은 좌룡 유기룡 부부만이 아니다. 한시진도 되지 아니하여 상장군을 지낸 좌호(左虎) 좌백(佐伯) 부부가 귀왕의 집무실로 들어선다. 그들은 유기룡 부부를 보자 그야말로 환호성을 지르면서 서로 포옹한다.
그 이유는 660년에 백제가 멸망을 당하기 전까지 그들은 백제의 주류성과 당나라의 등주에 있는 번왕부에서 서로 오덕상단을 통하여 연락을 주고 받던 친밀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정작 더 놀라운 일은 하루가 지나자 다음날 오후에 발생한다.
3천리나 동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그 먼 무왕국(無王國)의 도성에서 무왕 무영(無影)의 부부가 노구를 이끌고 친히 귀왕국의 수도로 찾아온 것이다. 그것은 공식방문이므로 의전행사에 소홀함이 없다. 그런데 우룡(右龍)인 귀왕 책귀는 무왕 무영의 부부를 대전이 아니라 자신의 집무실에서 만난다;
공식방문이지만 그는 비공식적으로 우호(右虎)인 무왕 무영의 부부를 만나고 싶어한다. 그 자리에서 가장 놀란 사람은 무왕 무영 부부이다. 왜냐하면, 신라에 살고 있는 좌룡 유기룡과 그의 아내 오해미를 그곳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무왕 무영은 문을 열고 친구이자 동서인 유기룡이 들어서자 깜짝 놀라서 외친다; “아니 이게 누구야? 서라벌에 살고 있다고 하는 좌룡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 것이야! 기룡아, 정말 오래간만이다. 잘 지냈니?... “.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무영이 유기룡을 껴안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유기룡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뿐만이 아니다. 귀왕 무영의 왕비인 오나미(吳羅美)는 친언니 오해미를 보자 그만 와앙하고 울면서 그녀를 껴안는다. 그리고 말한다; “언니, 어떻게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내가 보고 싶지 않았어? 그래 어떻게 지냈어?... “;
그 모습을 귀왕이 보고 있는데 문간을 들어서던 좌호 좌백이 큰소리로 외친다; “하하하, 서로 동서간인 좌룡과 우호가 만났구만! 이거 무왕의 눈에는 이제 이 좌호 좌백이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지, 하하하… “.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무왕 무영이 껄껄 웃으면서 대답한다; “이거 맹장인 좌호가 나타난 것이군. 내가 우호이니 당연히 좌호인 좌백이 보고 싶지. 그래 잘 지냈어?... “. 두사람이 서로 만나고 있는데 이번에는 왕비 오나미가 좌백의 아내인 사택홍련(舍宅紅蓮)과 인사를 하면서 곧장 수다를 떨고 있다. 무왕국에서 같이 지낸 시간이 있기에 엄청 친한 것이다.
모처럼 76세의 노인이 된 2호2룡이 귀왕국의 왕궁에서 만나고 있다;
그들이 열흘 동안이나 회포를 풀고 있는 동안에 귀왕 책귀가 참으로 중요한 미래사에 대하여 그들에게 알려준다. 예지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귀왕 책귀의 말이므로 3친구가 경청을 하고 훗날 자손들에게 알려준다;
그 내용이 한마디로 다음과 같다; “그 옛날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불린 백제와 이곳 왜의 땅에서 재건이 된 일본은 다르다. 그 이유가 크게 보아 3가지이다. 그 점을 명심하고서 훗날의 역사를 잘 만들어가기 바란다!... “. 그 3가지의 차이가 다음과 같다;
(1) 첫째로, 백제는 반도에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지금의 일본은 열도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한반도는 대륙에 붙어 있으며 말을 달려서 중원대륙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결코 폐쇄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 그와 달리 일본은 고립된 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폐쇄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에 따라 그들의 섬에 들어온 도래인(渡來人)에 대하여 개방적이지 못하고 배척적이다;
다만 그 옛날에 우월한 문화를 흡수하고자 한 경우와 도래인들이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자신들을 정복한 경우만이 예외가 되고 있다. 그와 같은 섬나라사람의 배타성 때문에 거꾸로 반도인이나 대륙인에게 집단적으로 매우 공격적이다. 그러므로 훗날 섬나라 일본의 힘이 강해지면 반도는 물론 대륙까지 침략하고 그들을 지배하고자 나설 것이다;
그와 같은 미래가 나타나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전쟁에서 지는 날에는 그 신세가 처량하게 변하고 말기 때문이다.
(2) 둘째로, 백제인들은 오랜 세월 정복민과 피정복민이 하나로 혼혈을 이루어 살아왔기에 그 차이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백제가 멸망하자 그 유민들이 정복한 왜의 땅은 그러하지가 아니하다. 함께 산 세월이 일천하여 정복민과 피정복민의 구별이 뚜렷하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한민족과 왜의 원주민들이 서로 혼혈이 된다고 하더라도 원주민의 혈통이 그대로 유전이 된다. 그만큼 그 옛날 백제인과 섬나라 일본인들은 유전적인 차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반도의 한민족과 섬나라 일본인들이 서로 잦은 왕래를 하게 되면 그 차이가 상당히 해소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서로 오랜 세월 떨어져서 살아가게 되면 전혀 다른 민족이 되고 말 것이다. 그 옛날 백제의 흔적이 사라지고 마는 아픔을 후세인들이 겪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백제출신들이 왜의 땅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왜의 원주민들이 우리 백제출신들을 완전히 삼켜버린 것과 같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겠는가?... ;
(3) 셋째로, 백제는 무신이 아니라 문신이 통치한 나라였다. 그러나 왜의 일본은 그것이 아니다. 무신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이다. 아무리 천황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의 통합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우월한 무력을 가진 왕국의 국왕이 다른 왕국들을 통제하는 체제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천황이 다스리고 있다고 하는 일본제국에서 무신이 무력으로 모든 백성을 통제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으로 굳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무신의 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수만명의 무사들이 전국적으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
일본의 백성들은 무사들의 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기 위하여 굴종의 삶을 계속 영위하게 될 것이다. 무사들이 원하면 그 앞에서 모든 것을 바치고 비굴한 웃음을 띠고서 살아가게 된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부녀자일지라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역사와 문화를 귀왕인 짐이 후세에 남기게 된 것이 비록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훗날의 역사를 생각하면 진실로 가슴이 아프다.
열흘동안 서로 만나 회포를 풀고서 7세기의 2호2룡이 헤어진다. 76세의 동갑인 그들은 젊은 시절 열심히 무예를 익히고 또한 내공수련에 공을 들였기에 보통사람보다는 강건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수명에는 역시 한계가 있다.
서기 700년 가을에 좌룡 유기룡은 서라벌로 찾아온 바다 건너 귀왕의 전령으로부터 하나의 부고를 받는다. 귀왕 책귀가 76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왕 책귀(策貴)의 뒤를 장남인 태자 책경민(策敬民)이 잇고 있다고 한다.
그 부고를 같은 북구주성에 살고 있는 좌호 좌백은 벌써 들었다. 그리고 같은 왜의 땅에 무왕으로 살고 있는 우호 무영도 들었다. 바다 건너 멀리 통일신라의 수도 서라벌에 살고 있는 좌룡 유기룡이 가장 늦게 듣게 된 것이다.
그 부고를 듣자 유기룡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서 펑펑 울다가 일어나서 동쪽을 향하여 재배를 한다. 죽마고우인 책귀이지만 그가 일국의 왕이 되고 왜의 천하를 통합한 인물이기에 그의 마지막을 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우룡의 죽음을 좌룡이 애도하고 있는 가운데 한민족의 7세기가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역사는 마치 동쪽에서 해가 떠올라 천천히 서쪽으로 이동하여 마침내 지고 말듯이 그렇게 짙은 여운을 남기면서 사라지고 마는 모양이다;
다만 책귀가 친구들에게 남긴 그의 유언과 같은 예지의 말들이 오늘날까지 역사의 의미를 찾고 있는 이들에게 전해지고 있을 따름이다. (대미).
'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7세기의 2호2룡84(손진길 소설) (0) | 2023.04.20 |
---|---|
7세기의 2호2룡83(손진길 소설) (0) | 2023.04.19 |
7세기의 2호2룡82(손진길 소설) (1) | 2023.04.17 |
7세기의 2호2룡81(손진길 소설) (0) | 2023.04.16 |
7세기의 2호2룡80(손진길 소설) (1) | 2023.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