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84강(출20:18-2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15. 14:47

출애굽기 강해 제84(20:18-23)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817(주일저녁)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는 그 두려운 임재의 현상에 기겁을 하고 있는 백성들, 그들의 비겁한 선택이 초래하고 있는 불행(20:18-23, 32:1-10)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겁내고 있는 백성들, 그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하게 되면 죽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20:19). 하나님이 저 멀리 높은 시내 산 위에 강림을 하시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산 아래까지 그 두려움이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팔소리가 자꾸만 커지고 있습니다. 무서운 번갯불이 계속 땅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서있는 산기슭까지 밀려들고 있는 짙은 연기와 캄캄한 구름 때문에 등골이 오싹합니다;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가마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19:18-19),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20:18-19).

백성들은 하나님이 음성으로 전달하고자 하시는 그 내용에 귀를 기울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모세의 등을 산 위로 떠밀고 있을 따름입니다. 죽게 되더라도 지도자 모세만이 죽음을 당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모세의 등 뒤에 숨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마치 엄마의 등 뒤에 업혀서 마냥 칭얼대고 있는 아기와 같습니다. 그만큼 유치한 응석받이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서 기가 막혀서 모세가 그들을 달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두렵게)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20:20).

물론 창조주 하나님은 두려우신 존재입니다. 모든 피조물의 생과 사를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30:19). 그 앞에서 떨지 아니할 영혼이 없습니다(10:28). 하지만 동시에 흙으로 빗은 사람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주시는 고마운 하나님이십니다(2:7). 창조주의 뜻을 받들어서 세상을 잘 경영하라고 그 방법을 자상하게 일러주시는 아버지와 같습니다. 이제 그 작업을 시작하고자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음성으로 계속 율법을 전달하지를 못하고 모세만을 캄캄한 구름이 뒤덮고 있는 산 위로 불러 올리고 있습니다(20:21). 이제는 모세만이 40일간 산 정상에 머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24:18). 그 다음에 하산하여 백성들에게 모든 율법을 가르쳐주게 될 것입니다(32:15).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율법을 배우는 경우와 모세가 전해준 율법을 지키는 경우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스승으로부터 학문을 배운다고 하는 것은 두 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학문 자체를 배우는 것입니다.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지식의 전수가 이루어집니다. 둘째, 스승의 인품과 삶의 방식을 동시에 배우게 됩니다. 스승의 체취를 맡으며 그 열정을 물려받게 되는 것입니다. 스승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학문을 배우는 사이에 그 스승의 모습을 닮게 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공생애가 그러한 것입니다. 36개월간 열두 제자와 함께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본 뜻인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12사도는 스승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복음만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생활화하면서 삶으로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일생을 배운 것입니다. 그 실천적인 삶을 보았기에 훗날 그들도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율법을 전수받지 못하게 되었기에 그만 하나님의 체취와 열정을 물려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인간 모세로부터 간접적으로 율법을 전수받게 됩니다. 모세는 새로운 신정국가 이스라엘을 건설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신정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공동체의 규범으로서의 율법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주면서 율법의 강제력과 그 엄격한 적용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율성과 자발성에 기초하고 있는 신앙규범인 율법,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표현방식으로서의 율법을 마치 하나의 강제적인 법률체계로서 인식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직접 배우지 못하게 될 때에는 어떠한 불행이 찾아올까요?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진면목을 빽빽한 구름 사이에 감추고 있습니다(19:16-19).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되면 사람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33:20).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죽이고 싶지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모습은 신비하기 그지 없습니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의 진면목은 피조물의 경지를 초월한 것입니다. 세상 그 어떤 것으로써도 흉내를 낼 수가 없습니다. 그저 보이지 아니하는 모습 가운데 음성으로 계시만이 전달되어 올 따름입니다. 그 뜻은 세상 어떠한 피조물의 형상으로라도 하나님을 묘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20:4-5). 하늘로부터 음성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으므로 하늘의 하나님을 땅의 형상으로 비견하여 만들지 말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20:22-23)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을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4). 영이신 하나님은 물질적인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디에나 계시면서 동시에 모든 생명을 돌보시며 살리고 계십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서 창조주를 예배하며 이웃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메시지를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 들었더라면 출애굽기 제20장에 기록이 되고 있는 십계명과 참된 제사의 방법을 모두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지도자 모세로 하여금 산 위에서 혼자 배워서 내려오도록 조치를 했을 뿐입니다(20:19). 그 결과 모세의 하산이 늦어지자 불안에 빠진 백성들이 그만 애굽에서 배운 바대로 금송아지를 만들고 출애굽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됩니다(32:1-4). 애굽의 제사방법으로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이게 됩니다(32:6). 십계명의 첫머리부터 어기게 된 그들에게 엄청난 처벌이 내리게 됩니다(32: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