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82강(출20:12)(손진길 작성)(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15. 03:05

출애굽기 강해 제82(20:12)(손진길 작성)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815()

 

하나님 사랑을 이웃사랑으로 전환시키는 첫 머리에 제5계명으로서 부모공경을 두고 있는 이유와 하나님께서 특히 효자에게 장수의 복을 주시는 이유(20:12)

 

모세는 출애굽기 제20장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십계명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면, 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 대하여 먼저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5계명부터 제10계명에 이르기까지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6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는 마치 고조선 시대의 ‘8조 금법과 같이 사회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형법 내지 도덕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별로 종교법이라고 내세울 만한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5계명을 깊이 들여다보면 새로운 해석이 드러나며 그때부터 제6계명에서 제10계명까지가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오게 됩니다. 과연 그러한지 여기서는 제5계명부터 따져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단 두 가지의 계명으로 요약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22:36-40, 12:30-31). 물론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의 생명이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피조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먼저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자신의 생명의 주인으로 알고서 사랑하고 섬기게 되면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창조주의 형상과 모양을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는 것입니다”(1:26-27). 따라서 창조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면 이웃도 나와 똑 같은 피조물로 인정하고서 차별 없이 사랑하게 되고 그 생명을 돌보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부모가 자식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똑같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부모의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모세의 율법을 재조명하게 될 때 구약말씀 가운데 숨어 있는 하나님의 진짜 말씀의 취지를 알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24:44-45). 여기서 이것이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복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가지고 모세의 율법을 다시 들여다 볼 때 성경말씀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본뜻을 진정으로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창조주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자입니다. 창조주는 나만을 만드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똑같이 나와 이웃에게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마치 부모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돌보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창조주의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 시작점이 어디일까요? 5계명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생명이 창조가 되었기에 영적인 부모로 알고서 여호와를 사랑합니다. 나의 생명과 존재가 또한 육체적으로는 부모를 통하여 이 땅에 왔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부모님을 사랑합니다”(20:12a).

넷째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장수함을 줄 것이라고 모세가 말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30:2). 여기서 장수함이라고 하는 것은 꼭 이 땅에서의 오랜 삶의 기간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 그 삶의 의미를 각별하게 기억하고 계신다고 하는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 좋은 예가 에녹의 경우입니다. 그는 비록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에녹의 인생을 귀하게 보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류 역사상 최초의 휴거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5:23-24).

하나님께서 의미가 있다고 인정하는 인생이 바로 장수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창세기 제1장과 제2장의 차이에서도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에게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나누어주십니다(1:26-27). 하지만 그들 남과 여는 하나님의 뜻대로 의미가 있는 인생들을 살아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과 역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2장에 가서 비로서 하나님께서 아담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에덴 동산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시고 계십니다(2:7-9, 19). 나중에 아담에게 아내 하와를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하와의 손을 이끌어서 아담에게 아내로 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미를 가지는 가정이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2:20-25). 그때부터 비로서 장수함의 카운팅이 작동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효자집안에 효자가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조상들에게 효도를 다하는 모습을 보고서 자라게 되면 자식들이 역시 배운 그대로 실천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이가 든 부모가 자식의 돌봄을 잘 받게 됩니다. 부모가 늙어서 자식과 함께 살면서 그 슬하에서 손주들을 거두어서 함께 살아가게 되면 기쁨과 즐거움이 절로 생겨납니다. 오늘 날은 삼대가 함께 살고 있는 풍경을 자주 볼 수가 없는 핵가족시대이지만 그래도 그 옛날 한 우물물을 마시면서 삼대가 정답게 살고 있었던 공동체 생활이 그리워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집안의 존장(尊長)들은 마음이 편하고 늘그막에 자손들을 돌볼 수가 있어서 참 좋습니다. 결론적으로, 그것이 보약보다도 더 좋은 장수의 비결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