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49강(출12:20-3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29. 22:14

출애굽기 강해 제49(12:20-3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77()

 

첫 유월절, 장자의 죽음, 출애굽 등의 거대한 사건이 한꺼번에 발생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갑자기 성민(聖民, 거룩한 백성)이 되고 있는데 구태여 무교절 규례가 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12:20-36)

 

이벤트와 의식화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이 기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출애굽의 현장과 같은 자리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놀라서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크게 찬양합니다(15:1-21).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이 완전하게 출애굽을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때부터 당장 과거의 습관과 버릇을 깨끗하게 청산을 하고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고 자신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지속이 될 수가 없는 이벤트에 불과합니다. 다시 애굽에서의 노예생활과 같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여지없이 그 충만했던 자신감이 사라지고 맙니다. 오히려 그 옛날 세상나라 애굽에서의 삶이 그리워지고 그때의 우상문화와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이 되살아나서 마치 누룩처럼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가게 됩니다(16:2-3).

그러므로 몸이 출애굽을 하는 것과 의식이 완전히 출애굽을 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전자는 이벤트로 가능한 것이지만 후자는 오랜 성화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제12장에는 유월절과 장자의 죽음 그리고 출애굽의 예언과(12:1-14) 더불어 무교절 규례의 제정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이 실려 있습니다(12:15-20). 그리고 출애굽을 한 다음에는 유월절 규례의 실시와 더불어 무교절 규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12:43-13:10). 특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무교절 규례를 더욱 중시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13:5-10).

  이미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이벤트보다는 의식화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애굽의 누룩을 제거하기 위하여 무교절 규례를 제정하시고 계십니다(12:15-20). 그렇지만 제도의 마련만으로 의식화가 당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치고 거듭되는 학습을 통하여 비로서 마음 속과 뼛속 깊이 새겨지는 의식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15:25-27). 구체적으로, 240만명으로 추산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한꺼번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출애굽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당장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애굽에서 익힌 오랜 관습과 버릇이 일시에 사라지지 아니하고 그들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애굽의 누룩은 그들의 마음 속에 마치 병원균처럼 잠복을 해있다가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 다시 되살아나서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강력하게 지배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어떻게 하면 430년 동안 애굽의 고센 땅에서 습득이 되어 있는 우상문화와 유물주의 관념 그리고 노예근성을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효과적으로 씻어낼 수 있을까요? 그것이 무교절 규례의 제정만으로 가능하지가 아니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모세는 동족들과 함께 광야에서 엄청난 시련과 고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출애굽기 등의 율법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서와 선지서 등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서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구원을 받고 그리하지 아니한 집은 장자의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건이(12:21-36) 훗날의 역사 가운데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가?(21:8-9, 3:14-15)

 

출애굽이 이루어지고 있는 그날 밤 유월절 규례를 지키고 있는 집의 사람들과 그러하지 아니한 집의 사람들 사이에 축복과 저주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의 규례라고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실로 간단한 것입니다; 첫째, 나흘 전에 어린 양을 준비합니다(12:3-5). 아빕월 14일 저녁이 되면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받아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뿌리고 바릅니다(12:6-7, 21-22). 친절하게도 그 흔하고 값이 싼 우슬초 묶음으로 붓을 대신하라고 합니다(12:22).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죽음의 천사가 그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조치를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12:13, 23). 그 정도의 간단한 방법으로 과연 죽음을 면할 수가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후대에 대대로 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24-28, 30).

반면에 그 처방을 우습게 여기고 마음에 두지 아니한 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겼던 애굽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12:29-30). 만약 그들이 별로 어렵지도 아니한 그 처방대로 행했다고 한다면 그 날 밤에 그들의 장자와 가축의 첫 새끼가 죽는 비극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집에서 행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아니했다고 한다면 그날 밤 이스라엘의 집에 찾아가서 함께 행동을 하고 지냈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생명을 구하는 길이 되었을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심히 간단한 처방을 행하지 아니했기에 애굽 온 나라에서 곡성이 터져 나왔습니다(12:30). 창조주 하나님은 바로의 장자와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죄수의 장남에 이르기까지 계급과 신분에 따른 구별을 전혀 하지 아니했습니다(12:29). 다만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믿고서 그대로 행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구별에 따라 생과 사를 구분하셨을 따름입니다. 바로와 애굽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들은 우환과 재앙을 불러오는 요인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나라 밖으로 빨리 내보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12:31-33).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하는 가축은 물론 은금 패물과 의복까지 공짜로 제공을 하고 있습니다(12:32-36).

그렇지만 이제부터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각오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모세와 아론의 축복의 기도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재앙과 진노만이 물러가기를 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철저한 기복신앙이며 무당문화입니다(12:32). 그것이 애굽 사람들의 비극이며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그들의 군대가 홍해에 수장이 되고 마는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14:23-30).

애굽 사람들과 같은 미련한 백성이 훗날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서도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을 한 다음에 모세가 백성들과 함께 40년째 광야생활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의 형 아론이 죽고 난(20:29) 그 다음에 백성들이 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2:4-9) 모세가 에서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에돔 땅을 우회하여 먼 길을 돌아서 행군을 했기 때문입니다(21:4). 도중에 먹을 것도 마땅하지 아니하고 물도 떨어졌습니다(21:5b). 그래서 백성들은 직선코스를 두고서 빙 둘러서 간다고 얼마나 모세를 원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21:5a).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서 백성들에게 치명상을 입혔습니다(21:6).

백성들을 위하여 모세가 중보기도를 했습니다(21:7).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고 그것을 쳐다보게 하라 그리하면 뱀에게 물린 자가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21:8). 너무나 간단한 처방입니다. 그리고 비상식적인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믿고서 순종한 사람은 병이 낫고 살아났습니다(21:9). 반면에 코웃음을 치고서 바라보지 아니한 자는 죽고 말았습니다. 삶과 죽음이 심히 간단하게 결정되고 만 것입니다.

그 사건을 1,400년 후에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지도자인 니고데모 앞에서 거론하고 계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 병이 낫게 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의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놋뱀의 경우처럼 심히 간단합니다;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서 그때부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서 함께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리하면 부활과 승천 그리고 천국에서의 영생이 확보가 된다는 것입니다”(2:36-42).

결론적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방법은 너무나 쉬운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실천하기가 더 망설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똑똑하다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하는 자들이 오히려 그 함정에 빠지기가 쉽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