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5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3. 16. 10:48

7세기의 2258(손진길 소설)

 

한편 중앙군 2만명을 이끌고 백강하류의 언덕으로 달려간 상좌평 의직은 큰 걱정에 휩싸인다. 그 이유는 백강의 하구 기벌포(伎伐浦)로 들어오는 적의 함선을 그 좌우의 고지대에서 공격하여 침몰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인데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4년 전에 옥중 상소문을 올린 성충이나 금년 초 유배지에서 상소문을 올린 흥수의 진언이 그것이다. 기벌포로 들어오고 있는 적선을 깨부수는 방법은 양쪽 언덕에 많은 투석기를 설치하여 집중적으로 큰 돌을 퍼붓는 것이다. 그리하면 함선에서 병사를 육지로 상륙시키지 못하고 다시 바다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늦었다. 당나라 함선에서 내린 병사들이 육지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의직2만명의 군사를 높은 언덕에 배치한다.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 일제히 아래로 내달리면서 들판에 집결하고 있는 당나라 군사를 들이친다;

그 작전이 처음에는 성공적이다. 그렇지만 당의 함선에서 내리고 있는 군사의 수가 10만명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백제군사 2만명으로는 도저히 그들을 모두 쳐부술 수가 없다. 사흘동안 전투가 계속되자 결국 의직2만 대군이 몰살을 당하고 사령관 의직마저 현장에서 전사하고 만다

그러나 당나라 군대의 손실도 만만하지 아니하다. 3만명 이상이 죽고 이제는 남은 병사가 채 10만명도 되지 아니한다. 그들이 백제의 왕도인 사비성을 점령하고자 동쪽으로 진격하고 있다. 도착하고 보니 벌써 사비성의 동문을 김유신의 군대가 공격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나라 원정군의 사령관 소정방(蘇定方, 592-667) 대장군은 사비성의 서문을 공격한다. 3일간 사비성에서 나당연합군을 상대하던 백제의 국왕 부여의자713일에 분조(分朝, 전시에 조정을 둘로 나눔)를 실시한다. 그것은 태자인 부여융3부여효를 데리고 그가 몰래 북문으로 빠져나가 동쪽에 있는 제2의 수도인 웅진성으로 들어가면서 사비성을 2부여태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렇게 조치하면서도 국왕 부여의자는 의심병이 도지고 있다. 따라서 사비성주로 임명한 2부여태가 딴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똑똑한 4부여연을 그의 옆에 붙여 놓는다. 그와 같이 이상한 조치를 하고서 몰래 사비성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부왕 부여의자에게 2부여태가 매어 달리면서 통사정을 하고 있다.

부여태의 간절한 요구사항이 다음과 같다; “폐하, 분조를 하시면서 저를 사비성주로 세우신다면 차제에 저를 분조의 왕인 태자로 임명해 주십시오. 피신하시는 웅진성에서는 형님이 태자로서 폐하를 모시고 이곳 사비성에서는 제가 태자로서 분조를 이끄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렇게 조치를 해주시면 앞으로 많은 애국지사들이 이곳 수도인 사비성에 모여들어 우리 백제를 굳건하게 지킬 것입니다!... “;

그러나 국왕 부여의자부여태의 요구를 외면한다. 오로지 왕자 부여태는 사비성주로서 끝까지 나당연합군을 상대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부왕에 대한 효성이며 백제에 대한 충성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몰염치한 부왕의 처사가 부여태의 마음에 큰 상처로 남게 된다.

백제의 국왕 부여의자가 통치한지 20년이 되는 서기 660년 음력으로 713일에 국왕과 태자 등이 4천명의 중앙군을 이끌고 몰래 사비성을 빠져나간다. 그러자 사비성에는 수비군 1만명만이 남게 된다. 그와 달리 웅진성에는 본래의 수비군 5천명에 추가병력 4천명을 합하여 도합 9천명이 성을 지키게 된다.

그때 사비성주가 된 부여태는 즉시 자신이 백제의 신왕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성명서를 발표하여 천하의 애국지사들은 전부 왕도 사비성에 모여서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내자고 호소한다. 1만명의 수비군만으로는 15만명에 이르고 있는 나당연합군을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시 66세의 늙은 군주 부여의자보다는 40대 중반의 젊은 군주 부여태의 호소가 애국지사들에게 더 먹히고 있다. 따라서 사비성으로 몰려드는 무인들이 많다. 그 가운데 왕자 부여연과 친한 승려 도침이 있다. 그리고 오덕상단의 호위대장을 지낸 귀실복신과 그의 아들 귀실집사가 있다. 또한 은퇴한 대장군 흑치무의 조카인 흑치상지가 있다;

신왕을 참칭한 부여태의 행동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자가 바로 그의 동생인 부여연이다. 부여연이 심복인 도침에게 말한다; “형님의 행동이 상당히 이상합니다. 부왕이 엄연히 웅진성에서 살아 계시는데 이곳에서 그가 스스로 신왕이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는 형 부여태가 효성과 충성심이 모두 없는 인물로 보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승려 도침이 말한다; “그렇지요. 주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부여태가 신왕을 참칭하였으므로 이곳 사비성의 방어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우국지사들이 부여태를 보고서 모인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미 명분을 잃어버렸으므로 이제 곧 실리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

승려 도침의 판단이 맞다. 사비성이 5일을 버티지 못하고 717일에 나당연합군의 손에 넘어가고 말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이 함락되기 직전에 승려 도침, 귀실복신과 그의 아들, 그리고 흑치상지는 사비성을 탈출하고 만다.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이 함락되자 제2수도인 웅진성에 대한 나당연합군의 공격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그것을 보고서 한밤중에 성주 예식진(禰寔進, 615- 672)이 구() 귀족의 대표격인 좌평 사택천복(沙宅千福)을 은밀하게 만나고 있다. 예식진이 먼저 고충을 밝힌다; “형님은 저와 마찬가지로 백제의 오래된 귀족입니다. 그런데… “.

예식진사택천복의 안색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국왕 부여의자의 시대에 우리 귀족들은 한마디로, ‘찬밥 신세입니다. 이름이 좋아 웅진성주이고 좌평이지 실권은 전부 왕자들이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왕과 왕자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필요가 없지요!... “;

그 말을 듣자 사택천복이 크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오늘 속 시원하게 자네가 하고 있구만. 그렇다면 달리 살길이 있겠는가? 성의 함락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말이야… “.

그 말에 성주 예식진이 바짝 좌평 사택천복 옆으로 다가와서 속삭인다; “형님, 제가 심복들과 함께 오늘밤에 국왕 부여의자와 새로운 태자 부여효를 사로잡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진짜 태자인 부여융은 이미 저와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

그 말을 들은 사택천복이 조용히 예식진에게 질문한다; “태자 부여융이 자네와 결탁한 연유가 무엇인가?... “. 예식진이 즉시 대답한다; “자신이 살아있는데 동생 부여효를 새로운 태자로 부왕이 임명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그는 저를 통하여 은밀하게 당의 소정방에게 투항할 의사를 진작에 밝히고 있습니다!... “;

이튿날 음력 718일이 되자 웅진성주 예식진의 부하들이 국왕 부여의자와 새로운 태자 부여효를 사로잡고서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하고 만다. 그런데 국왕 부여의자를 호위하고 있던 대장 무송은 주군이 졸지에 포로가 되는 것을 보고서 훗날을 기약하면서 웅진성을 탈출한다. 그 뒤를 아들 무오가 따르고 있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

한편 당나라 군대의 원수인 소정방김유신으로부터 부여의자와 태자 및 왕자 그리고 대신들의 신병을 인수한다. 그 가운데 그에게 협조한 태자 부여융과 웅진성주 예식진 그리고 귀족 사택천복 등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소정방은 즐거운 마음으로 백제의 백성 12천명과 함께 그들을 전리품으로 삼아 전부 당나라로 보내고 만다;

그런데 사비성과 웅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함락이 되었다고 하여 결코 백제의 땅이 전부 그들의 차지가 된 것이 아니다. 군사적으로는 단지 중앙군 가운데 사비성을 지키고 있던 39천명의 군사와 웅진성의 수비군 5천명만이 희생된 것이다. 따라서 수도권만 보더라도 북쪽의 임존성과 남쪽의 주류성에 각각 5천명의 수비군이 남아 있고 기타 4성에 각각 3천명씩 도합 12천명의 병사가 남아 있다.

그러므로 사비성을 몰래 빠져나온 승려 도침귀실복신 부자 그리고 흑치상지 등이 일단 남하하여 주류성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임시성주인 하동진 장군을 만난다. 성주 계백 대장군이 황산벌에서 전사하였기에 지금은 하 장군이 성을 책임지고 있다. 그리고 제2장군 좌백과 계백성주의 부관인 싸울 천부장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들은 718일에 웅진성마저 함락이 되는 것을 보고서 이제는 뜻을 같이하여 백제부흥운동을 펼치기로 합의한다. 그들이 주류성에서 궐기하자 천하의 영웅들이 사병들을 이끌고 그 성으로 많이들 모여든다.

성안에 장정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서 흑치상지는 북으로 올라가 임존성에서 독자적으로 백제부흥운동을 시작한다. 무인의 가문으로 유명한 흑치 집안의 인물들이 흑치상지를 돕고자 임존성으로 많이 몰려들고 있다. 그리고 웅진성이 함락될 때에 탈출한 무송과 그의 아들 무오도 합류하고 있다. 따라서 임존성의 흑치상지는 그 성의 수비군 5천명과 합하여 상당한 군사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자 지방에서 자신들의 땅과 재산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던 지방의 호족과 귀족들이 백제부흥운동의 기지가 되고 있는 주류성임존성으로 많이 몰려들고 있다. 그들은 보기 싫은 국왕 부여의자가 당나라로 끌려가고 말았기에 이제는 새로운 왕을 내세우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백제를 재건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는 그러한 좋은 임금을 새로운 국왕으로 모실 수가 있을 것인가?... 주류성의 성주인 하동진 장군과 승려 도침 그리고 상단의 호위대장을 지낸 귀실복신과 그의 아들 귀실집사는 왜의 초대 번왕을 지낸 왕자 부여풍을 모시고 와서 백제부흥운동의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신왕이 된 부여풍의 행태가 좀 이상하다. 그는 은근히 부왕 부여의자와 닮은 구석이 많다. 신하들을 의심하고 그의 행동이 독선적이다. 한마디로, 그는 귀족들을 포용하고 함께 나라를 일구어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미흡하다. 그것을 보고서 승려 도침은 사비성이 함락될 때에 자진하여 당나라로 들어간 왕자 부여연을 그리워한다.

은밀하게 도침이 당의 원수 소정방을 만나 왕자 부여연을 보내어 달라고 요청한다. 성품이 온순하고 원만한 부여연을 신왕으로 내세우면 민심을 모으고 당나라와 협조할 수 있는 새로운 백제를 만들 수 있다고 도침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승려 도침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여긴 귀실복신이 심복을 보내어 그의 행적을 탐지하고 있다;

 그 결과 도침이 왕자 부여연을 새로운 왕으로 내세우려고 한다는 사실을 신왕 부여풍에게 알려준다. 그러자 부여풍이 간곡하게 복신에게 부탁한다; “도침을 죽여주세요. 그를 살려 두면 당의 괴뢰정권이 이곳에 생길 것입니다!... “.

부여풍의 부탁을 받은 복신이 심복을 보내어 승려 도침을 암살하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지방에서 온 호족과 귀족 가운데 상당수가 주류성을 떠나고 만다. 내부적으로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있으니 목숨을 바쳐 새로운 백제를 건설해보아야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다;

과연 백제부흥운동은 어떠한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귀실복신귀실집사, 부여풍, 흑치상지, 그리고 무송무오 등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전개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