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제65강(히11:30-3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년 6월 30일(금)
히브리서의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기타 믿음의 선진들에 대하여(히11:30-32);
히브리서의 저자는 소위 ‘믿음의 장’(章, chapter)으로 불리고 있는 제11장에서 ‘믿음’이 무엇인지 그 정의를 먼저 내리고 있습니다. 그 정의는 다음과 같이 성도들에게 상당히 익숙한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
믿음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기 위하여 히브리서의 저자가 두가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그 바라는 미래가 현재가 될 때까지 믿음은 지속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피조물의 육신적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영이신 창조주 여호와의 존재이며 하나님의 역사의 섭리라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인 안목으로 창조주 여호와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대로 피조세계가 운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일종의 조작적인 정의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히11:3).
그런데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과 그 역사하심을 말씀 가운데 어떻게 믿을 수가 있을까요?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증거는 제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그 역사섭리의 방식을 설명하고 있는 히브리정경의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일생이라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실제로 믿음의 삶을 살아간 히브리정경의 인물들에 대하여 제11장에서 먼저 설명을 하고 그 다음 제12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 믿음의 인물들의 일생을 음미하면서 구체적으로 ①첫째, 그들 믿음의 선진들이 인생 가운데 무엇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얻기를 원하고 있는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②둘째, 그것이 어떻게 응답이 되고 있는가를 보고서 믿음의 증거를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제11장에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믿음의 선진들에 대한 거론의 순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창세기의 인물들입니다. 그것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먼저는 아브라함 이전의 인물들로서 아벨과 가인, 에녹과 노아 등이고(히11:4-7) 그 다음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 등입니다(히11:8-22). ②둘째, 출애굽기에서부터 등장하고 있는 모세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히11:23-29). ③셋째, 역사서인 여호수아에 등장하고 있는 여리고 성벽의 붕괴사건과 기생 라합의 이야기입니다(히11:30-31). ④넷째, 사사기에 등장하고 있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그리고 사무엘상에 등장하고 있는 다윗과 사무엘 등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습니다(히11:32)”.
모세오경에 나타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하여서는 이미 강해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바 역사서의 인물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먼저 간단하게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히브리서 저자가 여러 믿음의 인물들을 거명하면서 약간씩 그 순서를 뒤바꾸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라합과 정탐꾼들의 이야기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여리고 성벽이 믿음으로 무너지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기록의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히11:30-31). 그 밖에도 인물들의 활동의 순서로 보아, 기드온과 바락이 바뀌어 있고 삼손과 입다가 바뀌어 있으며 다윗과 사무엘이 또한 바뀌어 있습니다(히11:32). 히브리정경에 정통한 것으로 보이는 히브리서의 저자가 어째서 그렇게 잘못된 시간의 순서를 선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는 서술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영적인 의미의 전달로 보입니다. 그 뜻은 그때의 사건과 믿음의 행적이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발생할 수가 있다고 하는 강한 표현의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2) 둘째, 칠일 동안 여리고 성벽을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돌고 있습니다. 6일 동안은 매일 한번씩 돌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인 7일에는 7바퀴를 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면 여리고 성벽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붕괴가 될 것이라고 하는 예언의 말씀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수6:1-5). 실제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끝까지 믿고서 전진을 한 결과 자신들의 눈앞에서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는 현장을 직면하게 됩니다(수6:20).
(3) 셋째, 여리고 성의 기생인 라합은 그 성의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배신자입니다. 그녀는 그 성을 정탐하고자 스며든 이스라엘의 장정들을 숨겨주면서 자신과 집안의 구원을 부탁한 여자이기 때문입니다(수2:8-21). 그렇지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피조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창조주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그 역사섭리를 바라보는 영적인 안목이라고 정의를 하게 되면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성이나 민족을 생각하기 이전에 창조주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그 역사섭리에 순종하고 있습니다”(수2:9-11). 그것은 마치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신바벨론 느부갓네살 황제의 손에 붙였으므로 전쟁을 벌이지 말고 화친을 하여 살길을 도모하라고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같습니다(렘38:17-28, 39:11-14). 훗날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생 라합과 그녀의 집안이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과정에서도 구원을 얻고 있습니다(수6:17-25). 그리고 그녀는 정탐꾼이었던 유다 지파의 살몬과 결혼하여 영광스럽게도 다윗의 조상이 되고 있습니다(마1:6).
(4) 넷째, 히브리서 저자는 사사기 시대의 주요한 믿음의 용사로서 기드온과 바락, 그리고 삼손과 입다를 손꼽고 있습니다(히11:32a). 어째서 많은 대사사와 사사들 가운데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 네 사람의 이름만을 열거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본문의 구절을 설명할 때에 알아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실제로 사사기에 등장하고 있는 대사사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갈렙의 동생으로서 드빌을 점령하고 아람 왕의 침략을 물리친 옷니엘(삿1:13, 2:16-23, 3:9-10).
2) 암몬 및 아말렉과 동맹한 모압 왕의 침략을 물리친 베냐민 지파의 영웅 왼손잡이 에훗(삿3:15-30).
3)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삼갈(삿3:31).
4) 하솔의 가나안 왕의 침략을 여사사 드보라와 함께 물리친 전쟁 영웅 바락(삿4:2-24).
5) 막강한 미디안 족속의 침략을 물리친 므낫세 지파 출신의(삿6:15) 대사사 기드온(삿6-8장).
6) 잇사갈 지파 출신의 사사 돌라(삿10:1-2).
7) 길르앗 출신 사사 야일(삿10:3-4).
8) 암몬 족속의 침입을 물리친 길르앗 출신의 대사사 입다(삿10:17-11:33). 그러나 입다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에브라임 사람 4만 2천명을 살해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삿12:4-6).
9) 유다 지파 입산, 스불론 지파 엘론, 에브라임 지파 압돈 등이 사사가 되고 있습니다(삿12:8-15).
10) 블레셋 족속과 피의 보복전을 벌인 단 지파의 영웅 삼손(삿13-16장).
11) 블레셋에게 밀린 단 지파가 새 거주지를 찾아 북상하는 길에 에브라임 사람 미가의 신상을 빼앗고 레위인 요나단을 제사장으로 삼은 이야기 그리고 북쪽 해변 라이스를 점령하고 그곳에 정착하여 그 지역의 이름을 ‘단’이라고 부른 이야기 등이 기록되고 있습니다(삿18:26-31).
12) 끝으로, 레위 사람의 첩을 능욕한 베냐민 지파가 기타 이스라엘 지파와 전쟁을 하여 600명의 용사만이 남고 몰살을 당한 일 등이 기록되고 있습니다(삿19-21장).
(5) 다섯째, 히브리서의 저자는 다윗과 사무엘의 행적을 묵상해보면 다음과 같이 믿음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히11:2, 32b);
1) 선지자이며 대 제사장인 사무엘은 사사의 시대를 마감하고 있는 대 사사입니다. 그는 왕을 얻을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께 청원해 달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대하여 부정적입니다(삼상8:4-6). 왜냐하면,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은 주권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백성들이 신앙생활을 똑바로 한다면 항상 여호와께서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그가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잘못된 신앙생활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지를 않습니다. 그 대신에 세속적인 왕정국가를 수립하여 외적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물리치고자 합니다. 세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군비의 증강과 12지파로 갈라져 있는 군사력의 집중과 동원만 생각한다면 왕정의 성립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먼저 믿음생활을 똑바로 하기를 원하시는 여호와의 바램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좋아하시지 않습니다(삼상8:7-18).
3)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선민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아시고 왕정수립을 허가하십니다(삼상8:19-22). 그에 따라 대 사사인 사무엘이 베냐민 지파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삼게 됩니다(삼상10:1). 그것이 사사시대의 종결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외적을 쳐부수는 과정에서 사울 왕은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을 공고히 합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합니다. 그후 사울 왕의 교만한 왕국의 운영이 여호와의 뜻을 벗어나게 있습니다(삼상15:9-11, 26).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사무엘에게 지시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새로운 왕을 옹립하게 합니다(삼상16:1-4, 행13:22). 그 대상이 바로 유다 지파인 다윗입니다(삼상16:13).
4) 다윗은 여호와의 뜻을 따라 전쟁을 수행하여 작은 이스라엘 왕국을 거대한 제국으로 확장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뜻에 맞는 다윗 왕을 통하여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영토 곧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데스 강과 애굽의 나일 강 사이에 있는 모든 땅을 선민 이스라엘 자손의 영토로 주신 것입니다(창15:18, 삼하8:1-14).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주신 3가지의 축복 가운데 첫째인 자손의 번성 그리고 둘째인 아브라함의 창대함은 다윗의 제국을 통하여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창12:1-2).
5) 하지만 세번째의 진짜 축복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창12:3, 22:18, 50:20). 그것은 훗날 메시아를 통하여서만 성취가 될 것입니다(행13:23).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지자와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이방 땅에 만민구원의 복음이 선포가 되고 하나님의 영생구원의 복이 흘러 넘치게 된다는 새로운 언약입니다(마28:18-20, 행1:8).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믿음이며 그 일을 하다가 생을 마치게 되면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믿는 것이 성도의 소망이며 한결같은 믿음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믿음으로 7일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히11:30); 세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믿음으로”(히11:30a); 여기서의 ‘믿음’은 집단적인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믿음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개인적인 믿음입니다. 그것은 마치 성도들의 마음 속에 성령님께서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심으로 개인적으로 믿음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in faith’의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②또 하나는 집단적인 믿음입니다. 그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신령과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나타나는 놀라운 현상과 관련이 됩니다(마18:19-20, 요4:23-24). 각 개인에게 내주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이제는 무리들 사이에서 크게 역사하시기를 시작하십니다. 그렇게 ‘among’ 의 성령님의 역사와 같은 것이 ‘among faith’입니다. 그러한 집단적인 믿음의 역사가 여리고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7일동안 여리고를 도니”(히11:30b); ‘7’이라고 하는 수는 완전수입니다. 왜냐하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의미하는 ‘3’이란 수에 춘하추동과 동서남북 등 시공간에 갇혀서 인생을 살아가는 ‘4’에 익숙한 사람의 수가 합한 수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제2장에서는 하나님 역사의 완전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2:1-3).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모든 하나님의 역사가 완성이 되어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7일이 걸립니다. 마찬가지로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는 대 역사를 성취하는 데에도 7일의 집단적인 정성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2) 둘째, 6일 동안은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있습니다(수6:3). 그러나 제7일에는 하루에 7바퀴를 돌게 됩니다(수6:4). 한 바퀴를 도는데 1시간이 필요하다면 제7일에는 하루 종일 믿음으로 진행해야만 합니다. 여호와와 함께 하루 종일 진행한 것입니다. 그것이 복된 하나님의 역사를 초래합니다(창2:3a). 요컨대, 믿음으로 여호와와 함께 진행하는 것이 안식의 깊은 의미라고 하겠습니다(창2:3b).
3) 셋째, 끝까지 7일 동안 여호와께서 지시하신 대로 순종하였을 때에 마침내 놀라운 기적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발휘가 되고 있습니다. 그 견고한 여리고 성벽이 그대로 붕괴한 것입니다. 국부적인 지진의 발생과 같은 천재지변은 분명 창조주의 능력입니다(민16:31-32).
(3) “성이 무너졌으며”(히11:30c);
1) 여리고 성에는 두가지 방어 시스템이 있습니다; ①하나는 물질적인 요소인데 그것은 마치 철옹성과 같은 견고한 성벽입니다. ②또 하나는 정신(精神) 전력적인 요소입니다. 주민들의 사기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사기가 벌써 밑바닥입니다.
2) 주민들이 하나같이 패배의식에 젖어서 여호와의 위력 앞에 소문만 듣고서도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수2:9-11). 그러므로 오로지 견고한 성벽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성벽이 무너지고 있으므로 그저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수6:20-21).
둘째로,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히11:31);
(1) 여리고 성의 주민인 여자 라합은 그 신분이 천합니다. 기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성의 주민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여인도 아닙니다. 한 마디로, 애국정신이나 애족(愛族)의 마음이라고는 별로 없는 여자입니다. 그녀는 그저 적의 침입을 앞두고서 자신과 가족들의 살길만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믿음의 여인이라고 히브리서 저자가 손꼽고 있는 것일까요?
(2) 그것은 여호수아 제2장에 기록이 되고 있는 다음과 같은 특이한 구절 때문입니다;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또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2:9-11).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기생이라는 직업이 천하다고는 하지만 큰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출입하는 손님들을 통하여 세상의 물정과 정세를 많이 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생 라합의 귀는 마치 큰 부자처럼 매우 밝습니다. 구체적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으키고 있는 놀라운 사건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추격하던 애굽의 정예병들이 홍해에 수장이 된 사건 그리고 요단강 동편의 지배자인 시혼과 옥 왕의 군대가 이스라엘 군대에 의하여 전멸을 당한 일까지 알고 있음을 그녀가 말하고 있습니다.
2) 둘째, 그녀는 머리가 영리합니다. 따라서 오랜 세월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해방이 된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떻게 홍해사건과 요단강 동쪽의 전투에서 승리를 했는지 그 비결을 꿰뚫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이스라엘 족속들의 승리가 아닙니다.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 있는 창조의 신 여호와의 승리입니다. 여호와의 신적인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애굽의 신이나 아모리 족속들의 수호신들이 맥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셋째, 그녀는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들이 믿고 있는 여호와가 창조주라고 한다면 그녀도 피조물로서 당연히 창조주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섬기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비록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자신의 동족을 배신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피조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창조주의 뜻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생 라합의 믿음의 실체이며 그 믿음으로 그녀와 그녀의 집안이 멸망 가운데 구원을 얻고 있습니다(수6:17-25).
셋째로,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히11:32); 벌써 서론부분에서 상세히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1) 첫째, 사사시대에 크게 부각이 된 영웅은 단연 기드온과 삼손입니다;
1) 므낫세 지파인 기드온은 남동쪽에서 세력을 규합하여 가나안 지방으로 쳐들어오는 미디안 족속을 무찌르고 있습니다. 요단강 동쪽과 서쪽의 중간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므낫세 지파가 앞장을 서서 기드온의 지휘 아래 남쪽과 동쪽에서 침입하는 세력을 격퇴하고 있기에 이스라엘 12지파가 안전을 확보한 것입니다.
2) 가나안의 초생달 지역 남쪽을 차지하고 있는 거인족(巨人族) 블레셋 족속은 틈틈이 자신들의 북쪽 해안지역에 살고 있는 단 지파를 정벌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오랜 세월 단 지파는 블레셋의 침략을 온전히 물리치지를 못하고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은총으로 용력이 출중한 삼손이 단 지파에서 태어납니다(삿13:3-5). 삼손의 활약으로 북쪽으로의 진출이 어려워진 블레셋 족속은 흉계를 사용하여 삼손을 유폐시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삼손은 자신을 희생하여 동족을 구원합니다(삿16:28-30).
(2) 시기적으로는 바락이 기드온에 앞서며. 입다가 삼손에 앞섭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 믿음의 질에 있어서 기드온과 삼손이 더 뛰어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막강한 미디안과 싸우는 기드온의 믿음, 그리고 강력한 블레셋과 개인적으로 맞서는 삼손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셋째, 다윗과 사무엘의 이야기를 끝으로 다른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수 많은 전쟁을 치고 있는 다윗과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긴 세월 변함없이 모범이 되고 있는 사무엘의 이야기가 후진들에게 믿음의 큰 본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특히 수 많은 전쟁과 적들의 위협 가운데 여호와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늘 간구했던 장군 다윗의 솔직한 신앙고백은 시편에 73편의 깨달음의 시로 남아 있습니다.
2)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유일한 신정국가는 그 주권자가 여호와이시며 그 나라의 왕이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선지자 사무엘의 외침은 무엇이 믿음인가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6일간 매일 한 바퀴씩 돌았지만 아무런 변화가 발생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7일 마지막 날에 7바퀴를 돌라고 하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그 견고한 여리고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하는 예언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에 6바퀴를 돌았지만 그 성곽은 끄떡이 없습니다”(수6:11-16).
눈에 당장 보이는 것은 굳건한 그 성의 위세입니다. 여호와의 예언은 그냥 약속의 말씀에 불과하고 그대로 이루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자신들은 세상사람들이 볼 때에 가장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여리고 성 위에서 적들이 화살을 쏘거나 아래로 기름을 끼얹게 되면 자신들은 생죽음을 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위험한 일을 계속 여호와의 기적만 믿고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7째의 바퀴까지 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렇게 한결 같은 믿음이 놀라운 여호와의 기적을 이 세상에 발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수6:16-20).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육신적으로는 이 땅에서 100년 안팎을 살고서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여호와를 믿고서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간 종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의 부활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 사실을 굳게 믿고서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믿음으로 전진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브리서 강해 제67강(히11:36-38)(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3.03.01 |
---|---|
히브리서 강해 제66강(히11:33-35)(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3.02.28 |
히브리서 강해 제64강(히11:27-29)(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3.02.27 |
히브리서 강해 제63강(히11:23-26)(작성자; 손진길 목사) (2) | 2023.02.27 |
히브리서 강해 제62강(히11:20-22)(작성자; 손진길 목사) (1) | 2023.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