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60강(히11:14-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25. 03:25

히브리서 강해 제60(11:14-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6 25(주일)

 

믿음의 인생이 도달해야만 하는 삶의 종착역은 죽음이 아니고 어디인가?(11:14-16)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과 약속과의 관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제12장을 보면 아브람의 믿음이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서 아버지 데라의 집을 떠나 남행을 하는 것입니다(12:1-4). 그런데 그 언약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자손의 번성이라고 하는 것이 아브람이 이방 땅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10년 세월을 떠돌아도 여전히 실현이 되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직도 자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제15장에서 아브람은 실망한 나머지 체념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대안을 모색합니다; “자신을 잘 섬기고 있는 젊은 무사장(武士長) 다메섹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15:2-3).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반대를 하십니다(15:4).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게 하면서 우주의 광활함과 수많은 별무리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15:5).

그것들을 창조하시고 그 질서를 주장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만들어 주실 수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해보라는 의미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아브람은 여전히 여호와의 약속이 실현이 되고 있지는 않지만 다시 한번 창조주를 믿는 믿음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모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그때 아브람의 나이가 85세입니다.

아브람은 아내 사래의 권고로 애굽인 첩 하갈과 동침을 하고 그 이듬해에 서자 이스마엘을 얻게 됩니다(16:2-3, 15-16). 그리고 이스마엘이 13세가 되자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고자 합니다(17:1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또다시 반대를 하십니다(17:19). 그 이유는 아브람의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을 지니는 아브라함으로 개명을 하고 그에게 다음해에 믿음의 후계자를 의미하는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겠다는 것입니다(17:4-8, 19). 아브람의 아내인 사래의 이름을 열국의 어머니라는 뜻을 지니는 사라로 개명을 하고서 그녀에게 아들 이삭을 생산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17:15-16).

그 구체적인 약속의 말씀을 아브람이 도저히 믿지를 못합니다(17:17-18). 평생 불임여성으로 살아온 89세의 늙은 아내 사래가 아들을 잉태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진실로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을 몰래 듣게 된 사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18:10-12). 자신의 몸의 상태로 보아 여호와의 그 약속의 실현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조하십니다; “창조주의 능력으로 그 일을 성취할 것이니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는 내년을 기대해보라는 것입니다”(18:13-14 의역).

실제로 그 일이 아브라함이 100, 아내 사라가 90세가 되는 해에 기적처럼 현실이 됩니다(21:1-7). 그들 사이에서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브라함 부부는 깨닫게 됩니다; “인내하고 기다리면 소망 가운데 여호와의 약속은 반드시 창조주의 능력으로 현실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고서 사라는 아들 이삭이 37세가 되는 해에 향년을 맞이하게 됩니다(23:1-2, 18-20). 상처(喪妻)를 한 아브라함은 3년 후에 이삭의 아내로 며느리 리브가를 맞이합니다(24:67, 25:20).

그 후 아브라함은 후처 그두라와 살면서 6아들을 더 얻어서 약관의 나이들이 되자 모두 재산을 떼어주고 동쪽으로 떠나 보냅니다(25:1-6). 후계자 이삭의 자손들이 번성하게 될 경우 후손들 사이의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조치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175세가 되자 향년을 맞이합니다(25:7-11). 그때 그의 슬하에는 8명의 아들들이 있고 그들의 자손들이 태어나 있지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수는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서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이 현실이 되고 있는 그 곳으로,  곧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가 되고 있는 영생의 땅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의 믿음이 현실이 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땅은 이 세상이 아니라 영생의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이 철저하게 깨닫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1:33, 22:10-12, 11:17-19).

그와 같은 믿음의 종착역에 대한 깨달음을 히브리서의 저자가 본문에서 전제(前提, 미리 제시하는 것)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이 아브라함을 위시하여 히브리정경에 등장하고 있는 수많은 믿음의 선진(先進, 시대가 앞선 인물)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13-16). 이제 히브리서 저자의 이야기가 본문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11:14);

(1)  여기서 그들이라고 하는 인칭대명사는 믿음의 선진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11:14). 그들은 하나같이 본향’(本鄕)을 찾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면서 이 땅에서는 마치 외국인처럼 나그네의 인생을 살아간 믿음의 사람들입니다(11:13). 즉 그들은 믿음생활을 이 땅에서 영위하고 죽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찾고 있는 본향이란 그들의 육신이 태어난 안태’(安胎) 고향이거나 그들이 잠들어 있는 그곳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그들이 찾고 있는 본향은 그들의 생명의 고향입니다.

(2)  구체적으로 그것은 육신의 고향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든 인간의 육신에 불어 넣어 주신 그 생기(生氣)의 고향을 말하고 있습니다(2:7). 쉽게 말하자면, ‘영혼의 고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지혜의 대왕 솔로몬의 설교집인 전도서 제3장에서 다음과 같이 알 수가 있습니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곳으로 가거니와,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3:20-21).

(3)  한 마디로 풀이를 해보자면, 본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인간에게 부어진 생명의 기운인 영혼은 그 육신의 목숨이 끊어지게 되면 자신의 주인을 찾아 여호와께 돌아가게 된다고 설명을 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영혼은 이 땅에서 육신이 향년을 맞이하게 되면 모두 하나님께 회수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그 영혼이 훗날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있게 되면 무덤에서 부활한 육신들에게 마치 선지자 에스겔의 글에서처럼 다시 들어가게 됩니다(37:9-10).

(4)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병사(兵士)로 일한 성도들은 영생으로, 그러하지 아니한 자들은 영벌로 들어가게 되는 심판에 처해집니다. 그와 같은 이치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7-29),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25:31-36).

둘째로,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11:15);

(1)  히브리서의 저자는 더 명확하게 믿음의 선진들이 무엇을 평생 찾고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있는 고향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주겠다고 언약하신 그 약속의 땅이 어디인가를 계속 찾고 있는 것입니다”(11:15 의역).

(2)  그들도 처음에는 그 약속의 땅인 본향이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그 이방 땅 어딘가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들의 선교의 일정에 늘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함께하시고 계시기에 이제 약속의 땅에 도착을 했다고 말씀해주시면 그곳이 바로 그들이 돌아갈 고향이며 그들의 자손들이 번성하고 복락을 누리게 되는 옥토(沃土)인 줄 알았습니다.

(3)  그러나 평생을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간 결과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100년 안팎을 살고 나면 이 땅에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육신의 고향이 아닙니다. 새로운 영생의 몸을 입고서 부활하게 되면 찾아가게 되는 영혼의 고향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4)  그 본향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곳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에 자신들의 거처를 마련하시고 자신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훗날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14:1-3). 육신이 묻혀 있는 그곳에서 그들은 부활하여 구원자 그리스도를 기쁘게 맞이할 것입니다(47:29-31, 19:23-27, 5:27-29). 그날만을 소망하면서 한 평생 하나님의 선지자로 일하다가 눈을 감고 있는 믿음의 선진들입니다(49:29-33, 8:56, 11:26). 

셋째로,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 castle)을 예비하셨느니라”(11:16);

(1)  본문말씀의 결론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가기를 원했던 약속의 땅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11:16a). 그 하늘은 보이는 창공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천국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창조주 하나님의 보좌가 있기 때문에 영생이 살아서 숨쉬고 있는 장소입니다(22:1-2). 그곳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선진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십니다.

(2)  그것이 선지자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 제65장에서 예언하고 있는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65:18-19). 그것은 이 땅에서 얻게 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나은 것이기에 성도들이 반드시 가야만 하는 본향입니다(11:16a).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의 계시록 마지막 두 장을 할애하여 그 성의 영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21:21-22:5).

(3)  새 예루살렘 성에는 아무나 입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21:27). 한 마디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한평생 살아간 성도들이 입성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원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보증하십니다.

(4)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신 것처럼 그렇게 부끄럽지 아니하게 기쁘게 성도들을 영생의 천국에 맞아 들이실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 castle)을 예비하셨느니라”(11:16b).

결론적으로, 믿음의 선진들처럼 우리 성도들도 평생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그 영생의 천성을 바라보고 믿음생활을 하다가 이 땅에서 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무덤 속에서 성도들을 불러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영생의 몸을 주시고 부활시켜서 함께 새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8:11).

그것이 확실한 약속이라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그러므로 아무쪼록 주님의 약속을 믿고서 천성을 향하여 전진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