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39강(히8:4-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17. 02:55

히브리서 강해 제39(8:4-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6 3()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상에서 큰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지상에서는 어떠한 변화들이 발생하고 있는가?(8:4-6)

 

성경말씀은 하나의 전제 위에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 전제는 더 좋은 것이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의 것들은 천상의 것들의 그림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의 초석입니다.

언뜻 보면, 그것은 헬라의 철학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영지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히브리정경에서는 창조주의 존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헬라의 철학자들은 창조주가 없이 자연과 우주는 큰 이치와 법칙에 의하여 자연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치만 깨달을 수가 있다면 세상의 주인이 될 수가 있다고 사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성육신하시고 복음을 전파하는 공생애를 사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상의 대제사장이 되어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심으로 말미암아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이 땅의 모형과 그림자가 사라지고 하늘에 있는 참된 원형과 본체가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히브리서 저자의 견해는 독단적인 것이 아니고 다음과 같이 사실은 히브리정경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는 사상이며 새 언약을 말하고 있는 신약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1)  첫째, 선지자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에서 지금의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새로운 천지가 창조가 되며 새 예루살렘이 이 세상에 나타날 것임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65:17-19).

(2)  둘째, 사도 바울이 그의 옥중서신인 에베소서 제4장에서 중요한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과 하늘이 서로 통일이 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입니다. 그 사실을 그가 깨닫고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물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4:4-7).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약간의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며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으로 하나의 소망을 향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4:4).

2)    둘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의 통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4:6).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인 인자가 되시고 이 땅에서 만민구원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후에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십니다. 그것이 통일과 구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셋째, 과연 땅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이 땅에 임하게 되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오셔서 성도들과 함께 살아가십니다. 그리고 능력을 공급하십니다. 그 능력의 수준은 일찍이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의 분량에 맞게 주신 그 기준에 따르고 있습니다(4:7).

(3)  셋째, 성경의 마지막 기록인 계시록을 보면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21: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8:4);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8:4a); 히브리서의 저자가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의 제사장과 같은 제사장의 일을 하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1)    그러나 부활 승천하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신 다음에는 천상에서 대제사장의 직분을 맡아서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유대교의 제사장들이 수행하고 있는 가축의 피를 사용하는 속죄의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2)    그것은 불완전한 속죄의 제사입니다. 매년 대속죄일에 반복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대속죄일에 가축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로워지지만 백성들이 금방 다시 죄를 범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면 또 다음해의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가축의 피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3)    그러므로  아론의 후손들의 제사는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며 근본적인 죄 사함과 구원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해답이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 하늘에 승천하여 대제사장이 되시는 그 이유 가운데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8:4b);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제사장이 되시지 아니하신 이유를 단순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미 아론의 후손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    그러나 그것은 완벽한 설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앞 대목에서 살펴본 그대로 아론의 자손들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것 곧 가축의 피를 사용한 제사가 어떠한 효력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과 결부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매년 반복이 되고 있는 불완전한 제사 및 죄 사함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이 반복적으로 죄를 범하고 또 대속죄일에 일년 동안 지은 죄에 대하여 탕감을 받고 있습니다.

2)    그것은 영생하시며 영원하신 속성을 지니고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속죄의 제물로서 그 아들을 인자로 이 세상에 보내십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구원하여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라고 주님을 하늘의 대제사장으로 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4:14-16, 7:17). 그러므로 천상의 주님께서는 먼저 믿은 성도들을 이 땅의 제사장으로 사용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사역을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이 되고 있습니다.

둘째로,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8:5);

(1)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땅에 있는 성막은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하고 그 원형과 본체는 하늘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8:5a, 9:11, 24). 그와 같은 이치는 출애굽기 제25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바와 같다고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8:5b). 그의 주장은 사실입니다. 시내 산 정상에서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시면서 그 모형을 환상 가운데 다음과 같이 입체적으로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25:8-9).

(2)  이 땅의 것들은 피조물들입니다. 그러므로 수명이 있고 유한합니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땅에 짓고 있는 성소도 불완전한 것이며 임시적인 성격의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창조에 참여하신 바가 있는 하나님의 독생자께서는(1:3, 14) 그렇게 불완전한 성소를 섬기는 제사장으로 일하시지를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몸을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위하여 완전한 대속물로 희생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대속의 죽음 후에 영생의 몸을 입고서 부활하여 승천하십니다. 이제는 하늘의 완전한 성소에 들어가셔서 대제사장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8:6);

(1)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시고 육신을 입으신 채 복음사역을 하시다가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셨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7장 말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것이 불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완전한 속죄의 제사로 바꾸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7:27-28).

(2)  이 땅에서 스스로를 희생하여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상급을 받고 계실까요? 그 점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8:6).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제물이 되셨지만 천국에서는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이 땅에서는 율법과 혈통에 따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을 약점이 많은 인간들입니다(7:28). 그리고 그들의 제사는 매년 가축의 피로 반복이 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이름으로 맹세하시고 영원한 제사장을 세우십니다(7:21). 그 처음이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입니다(14:18, 7:3).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 전례에 따라 대제사장이 되십니다(7:17).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땅의 사람들에게 적용시키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신 것입니다.

2)    둘째, 더 좋은 약속을 세우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 천국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하는 더 좋은 약속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3)    셋째, 더 좋은 약속을 성취시키시는 중보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를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일까요? 두가지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①하나는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십니다(24:49, 14:16-17, 1:8, 2:1-4). ②또 하나는 친히 하늘에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이 땅에서 제자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돌보시는 것입니다(9:15, 24).  

결론적으로,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 이 땅에서 사역하고 있던 아론의 후손들인 제사장들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제사장으로 교체가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 때문입니다;

(1)  첫째, 유대교의 제사장들이 가축의 피를 사용하여 속죄의 제사를 매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의지하여 죄 사함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2)  둘째, 유대교의 제사장들은 율법과 혈통에 따라 제사장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듭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1:12-13). 천상의 대제사장이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며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제사장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28:18-20).

  그러므로 지상의 성도들은 자신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벧전2:9) 오늘도 하늘의 성소에서 돕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주님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믿음생활에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