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38강(히8: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15. 20:51

히브리서 강해 제38(8: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6 2()

 

천상의 큰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제사와 예물을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시고 계시는가?(4:14, 8:1-3)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서 유대교의 대제사장이 여호와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제사 및 예물과 천상의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예물 및 제사가 무엇인지 그 차이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4:14, 8:1-4). 그 차이를 그는 한 마디로 새 언약에 따른 것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8:6, 13). 그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1)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정국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19:4-6, 24:3-8).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말씀을 신정국가의 율법으로 삼고 그것을 지켜 행하겠다고 서약을 합니다. 그러므로 독특한 신정국가의 3요소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첫째, 그들의 신정국가의 주권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②둘째, 그 나라의 백성은 이스라엘 자손 및 선민과 함께 출애굽하여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 살기를 원하고 있는 여러 족속들입니다(12:38, 48-49). ③셋째, 그들의 신정국가의 영토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2)  그런데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를 출발시키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당장 출애굽기 제19장의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이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 지니라”(19:6).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꼭 전해야만 하는 말이 두 마디입니다; ①하나는 제사장나라입니다. 선민들이 제사장나라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수많은 나라와 민족 가운데 선택하여 선민으로 삼은 이유입니다(19:4-6). 환언하면, 선민들이 하나님 앞에 지고 있는 의무이며 그들의 사명입니다;

1)    제사장은 자신을 위해서는 평생에 일주일만 위임식을 겸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머지 인생은 오로지 다른 사람들의 속죄와 화목을 위해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은 모두가 여호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의 속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로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2)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율법생활은 하나님의 눈 앞에서 투명하게 거짓이 없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렇게 매사를 하나님의 눈 앞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신실하게 행동을 하게 되면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많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려줄 수가 있습니다(18:23-32, 20:7, 17-18). 왜냐하면, 만민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백성들의 중보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  그런데 문제는 시내 산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가 출범을 했지만 선민들이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진정으로 제사장나라 그리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간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오로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만 정의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선민 이스라엘만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며 이방인들을 혼내시는 하나님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을 괴롭히는 이방인들을 모두 징계하시고 멸망시켜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필요도 없으며 그들은 구원을 받을 가치도 없는 원수들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선민들의 율법생활은 하나님의 눈을 속이며 유대교지도자들과 이웃들이 보기에 그럴듯하게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위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외식적이며 가식적인 신앙생활입니다(23).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선민들을 보호하실 실익(實益)이 없다고 판단하시고 선민의 나라를 멸망시켜 버리십니다.

(4)  그와 같은 맥락에서 유대교의 제사장들이 여호와께 어떠한 제사를 드리고 무엇을 예물로 바치고 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1)    유대교의 제사장들은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만의 속죄와 화목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 가운데 유대교의 제사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방법은 오로지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할례를 받고서 그들처럼 율법생활을 하며 완전히 동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지 아니하는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유대교인들이 개처럼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 이방인들은 모두 선민들의 종이라고 하는 편협한 선민우월사상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유대교의 제사장들이 여호와께 바치고 있는 예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윗제국의 영광입니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원수 같은 이웃나라들을 정복하고 이방인들의 땅에서 창조주 여호와의 영광과 위신을 드높였다고 하는 자랑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승리를 통하여 얻은 막대한 전리품과 포로들입니다. 과연 그러한 패권주의적인 선민의 예물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좋아하실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선민들이 원수같이 여기고 정복하고 있는 그들 이방인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는 대상 곧 하나님의 자식같은 피조물들이기 때문입니다.

(5)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 곧 유대교인들이 원하고 있는 메시아의 모습과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메시아의 모습이 전혀 다릅니다;

1)    선민 유대인들은 외세인 로마제국과 헤롯왕가를 쳐부수고 그 옛날 다윗제국을 다시 건설해줄 수 있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민의 제국을 재건하여 시온의 영광을 온 세상에 떨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는 당연히 메시아를 보내셔서 그 옛날 모세의 시대처럼 이방인들을 징계하시고 선민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그 역할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선민들의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정치적인 메시아입니다.

2)     그에 비해서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메시아의 사명은 전혀 다릅니다. 그 옛날 시내 산에서 선포하신 선민들의 사명을 모두 감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①첫째, 그리스도는 이방인들의 속죄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하나님께 대속의 제사를 드려주는 진정한 대제사장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한 만민구원의 대제사장이 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②둘째,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와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범을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진실로 원하시는 만민구원을 위하여 끊임없이 중보의 기도를 하며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그들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고 치유의 사역을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을 구원하여 함께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로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가 여호와께 바치는 예물이며 그들이 바로 새로운 제사장이며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선지자들입니다(66:20-21).

3)    지금도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상의 큰 대제사장으로서 구원주의 역할을 수행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손과 발로써 일하고 있는 수 많은 성도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인 성도들이 바로 천상의 큰 대제사장을 모시고 지상에서 일하고 있는 거룩한 제사장들이라고 하겠습니다(66:21, 벧전2:9). 그리고 그들이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속죄의 제사와 예물도 그리스도의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6)  히브리서의 저자는 유대교의 제사장들이 하던 일을 옛날의 언약에 따른 것이라고 쉽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와 그 제자인 성도들이 수행하고 있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사역을 새 언약으로 정의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내 산에서부터 여호와께서 선포하신 뜻은 동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민으로 삼으신 이유가 온 세상을 구원하고 속죄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하시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19:6). 그런데 그 사명을 버리고 오로지 선민들만의 복을 추구하는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유대교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잘못은 헌 언약이 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 대신에 본래의 언약의 내용이 새 언약으로 히브리서 제8장에서 부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역사가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오심으로 이 땅에서 발생할 것임을 선지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벌써 예언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31:31-36, 11:19-21, 36:24-28).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8:1);

(1)  히브리서의 특징은 하늘에 계시는 대제사장의 존재에 대하여 대서특필(大書特筆, 크게 보도함)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성경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오른 쪽에 자리를 함께하고 계신다고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110:1, 7:55-56).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냥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니고 친히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셔서 큰 대제사장으로서 사역을 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9:11-12). 그러므로 지상에서 성도들이 이방인들의 속죄를 위하여 제사장으로 사역하고 있는 일이 주님 안에서 큰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주님께서 그 일을 돕기 위하여 지금도 하늘의 대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  성도들이 제사장으로 살아가면서 이방인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고 그들을 아버지 하나님께 예물로 올려드리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제사장으로 삼아 온 세상에 파송을 하십니다(66:20-21, 28:18-20, 1:8, 벧전2:9). 그렇게 하여 땅끝까지 죄사함과 구원의 복음이 퍼져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을 진두지휘하시기 위하여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상의 대제사장으로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8:1).

둘째로,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8:2); 하늘의 성막과 지상의 성막과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  출애굽기 제25장에서 모세는 성막을 건설하라고 하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게 됩니다(25:1-9). 성막의 건설이 필요한 이유는 그 지성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위한 것입니다(25:8). 성막을 짓기 전에는 여호와께서 시내 산 정상에 강림을 하시고 임재를 하십니다. 그리고 모세를 산 정상으로 불러 올려서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영 불편하신 것입니다.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첫째, 하나님의 말씀의 속뜻을 모세만 배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시내 산 정상에 올라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배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만약 실수를 하게 되면 즉시 죽임을 당하는 그것이 겁이 나는 것입니다(20:18-19, 5:25). 따라서 모세의 등을 떠다 밀어서 혼자 시내 산에 올라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하산하여 율법으로 전해달라는 것입니다(20:19, 5:27). 그리하면 백성들이 모두 율법을 그대로 준행하겠다는 약속입니다(24:3). 그것은 전형적인 간접신앙의 모습입니다.

2)    둘째, 여호와께서는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말씀의 속뜻을 가르쳐주고 그 뜻을 마음판에 새겨주고 싶어하십니다. 그 뜻을 모세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1:29).  따라서 산 정상이 아니라 백성들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으로 내려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성막을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막은 이동식입니다(25:14-15, 40:36). 왜냐하면, 백성들과 함께 동행하시기를 원하시는 여호와이시기에 성막을 이동식으로 짓는 것입니다.

(2)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하늘의 성막의 모습을 환상 가운데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 모양을 본떠서 백성들의 진중에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십니다(25:9).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늘에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성소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8:2). 그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사역하시게 되는 분이 바로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맡으신 일은 복음을 들고 땅끝까지 나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돌보시는 것입니다.

셋째로,대제사장마다 예물제사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8:3);

(1)  유대교의 대제사장은 일년에 하루 대속죄일에 모든 백성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때에는 특별히 지성소의 출입이 허용이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시는 언약궤와 속죄소로 나아가서 제물의 피를 뿌리고 향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속죄의 제사의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절기 때마다 처음 익은 곡식을 여호와의 전에 예물로 바칩니다.  

(2)  그렇다면, 천상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어떠한 제사를 드리고 또한 예물을 드리게 되는 것일까요? 지상에서 제사장으로 사역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의 제사장의 일을 진두지휘하고 그 모든 속죄의 간구를 모아서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대제사장이신 주님의 역할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속죄의 결과 죄인이 의인으로 여김을 받게 되고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영적으로 임재를 하게 됩니다(11:20, 17:21). 그 나라가 땅끝까지 확장이 되면 종말이 옵니다(24:14).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예물로 올려드리게 됩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4).

결론적으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상의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성도들이 이 땅에서 능력 있는 제사장으로 일할 수가 있으며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 풍성한 예물을 바칠 수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 속에는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천상의 대제사장이신 주님과 지상의 제사장인 성도들을 영적으로 연결시켜주고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14:16-20, 6:4, 8:34-39).

그러므로 설명의 핵심에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령님의 오심이라고 하는 새로운 언약의 성취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역사가 있을 것임을 주전 8세기 말에 선지자 이사야가 벌써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메시아)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48:15-16).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심으로써 성도들이 땅끝까지 복음사역을 하면서 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새 언약의 핵심입니다(1:8). 그러므로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구원하고 영생을 누리게 하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성취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아버지 하나님의 뜻의 성취에 끝까지 헌신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