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37강(히7:26-2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15. 20:49

히브리서 강해 제37(7:26-2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6 1()

 

히브리서 제7장 마지막 말씀의 두가지 의미에 대하여(7:26-28);

 

히브리서의 저자는 드디어 본문에서 두가지의 참으로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공생애를 살아가셨지만 죄악이 없으신 이유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7:26). ②또 하나는 죄가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은 유대교의 대제사장들과는 완연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7:27-28). 그 이치를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성육신하여 인자로서 육신을 가지고 복음사역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으신 사실을 히브리서의 저자가 5가지 용어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    첫째, 거룩한 공생애를 살아가신 것입니다; 세상 일이 우선이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일이 우선입니다. 항상 아버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음사역을 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거룩한 이유입니다.

2)    둘째, 악을 선택하지 아니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철저하게 실천하고자 하십니다. 창조주의 입장에서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십니다. 모두를 살리기 위하여 제물이 필요하다면 그것조차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남을 해치는 악을 선택한 인생이 아닙니다.

3)    셋째, 더러움이 없습니다; 외식적인 율법생활을 영위하는 자는 겉으로는 율법을 모두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더러움이 가득합니다(23:27). 그것은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4:12-1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속과 겉이 모두 깨끗합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모두 정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사결정을 하나님 앞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영혼까지 깨끗함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17:1).

4)    넷째, 죄인에게서 떠나 계십니다; 사람들이 죄인의 모습으로 살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삶에 전적으로 매어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들에게는 한가지 선택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①하나는 창조주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영적인 삶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고백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4:1-11). ②또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인간들의 육신적인 현실문제를 해결해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만 하나님으로 섬길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며 가장 심각한 죄입니다(17:7).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의 목적입니다. 결코 수단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선택에 있어서 죄인의 길에 들어서시지를 않고 있는 것입니다.

5)    다섯째, 하늘보다 높이 승천을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발견하고 있는 복음의 의로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교지도자들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나사렛 예수님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 그 판정이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결정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유대교의 최고재판소인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하나님 모독죄로 정죄가 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가야바를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은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는데 성공을 합니다. 그것으로 유대교의 주장이 옳으며 예수님의 주장이 틀린 것으로 선민 유대인들이 믿게 됩니다. 랍비 사울도 그렇게 믿고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는 배교자들을 찾아서 죽이기 위하여 열심입니다(9:1-2). 그러나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 가운데 만나고 나서는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9:3-22). 하나님 보시기에 유대교지도자들이 틀렸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옳다는 것입니다(1:16-17). 그러하기에 예수님에게 무덤 속 부활이 찾아 왔으며 승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쪽 보좌에 앉으시는 영광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서 랍비 사울이 이방인 사도 바울로서의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2)  둘째, 죄가 없으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두가지 큰 유익이 있습니다;

1)    첫째, 자신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7:27).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제사장들은 대제사장과 함께 일주일간 자신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먼저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29:1, 35). 그것이 제사장의 위임식입니다. 제사장들이 7일 동안 위임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게 되면 그 직분의 수행은 거룩한 것이 되지를 못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사가 되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죽고 나면 새로운 제사장이 다시 위임제사를 드리고 취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죽음에 따라 계속적으로 제사장들이 세워질 때마다 자신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영속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끊임없는 단절과 재 취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의 직분은 그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죄가 없으시므로 자신을 위한 속죄의 제사나 위임식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대제사장으로 일하시고 부활 승천하시자 곧바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서 큰 대제사장으로서 천국의 성소에 들어가십니다. 그러므로 결코 단절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큰 대제사장으로서 일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영원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    둘째, 성도들의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도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7:28). 유대교의 제사장들은 자신의 죽음으로 그 직분이 끝이 나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을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천상의 큰 대제사장이신 주님의 도우심으로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합니다(4:14, 6:20). 그리고 향년을 맞이하게 되면 부활 승천하여 다시 하나님 자녀로서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전례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7:28).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이 영원하신 것처럼 성도들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사역도 영원한 것입니다(벧전2: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7:26);

(1)  이러한 대제사장은 부활 승천하셔서 천상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사역을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7:26a).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 큰 대제사장으로서 지상의 성도들을 위하여 항상 살아 계셔서 아버지 하나님께 충만한 능력을 달라고 간구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성도들의 복음사역과 제사장 직분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7:24-25).

(2)  그러한 대제사장이 성도들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고 히브리서 저자가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7:26b). 그 이유는 벌써 서론에서 살펴본 그대로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육신을 입고 복음사역을 하셨으나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고 창조주의 공의를 실천한 유일한 선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7:26c). 그러므로 성도들이 예수님의 공생애의 모습만 따라가게 되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육신을 이기고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죄인의 죽음은 부활 후에 심판을 받아 영벌에 처해지지만 의인의 죽음은 부활하여 영생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계속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할 수가 있다는 그 영속성을 그리스도께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7:27-28).

둘째로,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7:27);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7:27a); 대제사장은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에 일주일간 위임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먼저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거룩한 자로 여김을 받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으며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지니고 있는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출애굽기 제29장에서는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울 때에 일주일 동안 위임식을 겸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29:1, 4, 35). 그것이 율법으로 유대교의 제사장과 대제사장을 세우는 방법입니다. 그후에 가서야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여호와를 가까이서 섬기며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7:27b); 유일한 예외가 있습니다. 인간인 아론과 그 후손들의 뒤를 잇고 있지 아니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의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의 제사장들과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1)    첫째, 예수님의 경우에 있어서는 결코 율법에 의하여 아론의 후손 가운데 혈통적으로 대제사장의 직분을 세습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후에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을 하시자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시고 큰 대제사장으로 삼으십니다. 그것은 구태여 표현을 하자면 천상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2)    둘째, 육신을 지니고 복음사역을 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십니다. 따라서 자신을 위한 속죄의 제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오로지 만민의 죄를 사해주기 위한 속죄의 제사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실을 믿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는 누구나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임재로 영적인 거듭난 삶을 통하여 지상의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셋째로,율법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7:28);

(1)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에 그 혜택을 성도들이 고스란히 받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대속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역시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상의 제사장으로 계속 사역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육신이 죽게 되면 모든 제사장 사역을 마치게 되는 율법상의 제사장들과는 전혀 다른 미래상입니다.

(2)  그와 같은 맥락에서 율법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7:28)고 하는 히브리서 저자의 언급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영광으로 끝나게 된다고 하면 성도들에게 그렇게 큰 영향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곧바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는 성도들의 미래상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큰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을 유대교의 제사장들처럼 율법상의 혈통적이고도 세습적인 육신적 제사장으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영생하시는 천상의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찍이 성육신하셔서 육신을 입고서 모범을 보여주신 그 공생애와 대속의 삶의 모습을 재현하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육신을 이기는 성도들의 영적인 삶이며 나아가서 죽음을 이기고 영생하는 하나님 자녀의 제사장의 길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렇게 세상을 이기는 영적인 제사장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