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32강(히7:5-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12. 05:18

히브리서 강해 제32(7:5-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 27()

 

율법을 따라 제사장인 된 아론의 후손들과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과의 차이에 대하여(7:5-8);

 

선민 이스라엘의 사회에서는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들 뿐만 아니라 아론이 속하고 있는 레위의 자손들이 모두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율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다른 지파에서부터 십일조를 받아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7:5).

그런데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은 레위 지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고 있습니다(14:20, 7:6a).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14:19, 7:6b).       

히브리서의 저자는 위의 두가지 사실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낮은 자가 높은 자의 축복을 받는 법입니다(7:7). 그러므로 아브라함보다는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신분이 더 높은 것입니다. 그에 따라 레위 계통의 그 어떤 제사장이나 성전의 일꾼보다도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이 더 높은 것입니다(7:4).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하늘의 대제사장이 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은 더 높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며 독생자의 영광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 직분이 그리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고 있는 제자들 곧 성도들도 멜기세덱의 제사장 신분이 높은 것처럼 그러합니다(벧전2:9). 그 이유는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8:15).

(2)  둘째, 레위 지파인 아론의 제사장들이나 성전의 일꾼들은 십일조를 받아서 생활을 하다가 향년을 맞이하면 모두가 죽을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바쳐진 십일조는 이 땅에서 그들과 운명을 함께하고 있습니다(7:8a). 하지만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나 천국의 큰 대제사장이 되시는 주님에게 바쳐진 십일조는 영원합니다(7:8b). 영생하시는 하나님께 직접 바쳐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7:5);

(1)  레위 지파 가운데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대를 이어가면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 다른 12지파의 사람들로부터 십일조를 받고 있습니다(7:5). 그 유래를 먼저 살펴봅니다;

1)    출애굽을 하고 나자 여호와께서는 유월절 밤에 어린양의 피로 살아남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장자들은 모두 여호와의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13:2, 12). 그렇지만 훗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업과 목축업을 경영하게 되면 12지파의 백성들은 일손이 부족합니다. 장자들을 전부 성막으로 보내어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전념하게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정을 아시고서 여호와께서는 레위 지파만을 구별하여 제사장으로서 여호와를 섬기며 전업으로 성막에서 일을 하는 자들로 삼습니다(3:5-9). 그 대신에 12지파의 장자들은 자신들을 대신하여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레위인들에게 속전을 주도록 하십니다(3:12-13, 44-51).

2)    여호수아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자 기업의 분배에 있어서 레위 지파는 별도로 처리합니다. 여호와를 섬기며 성막에서 전업으로 일을 해야 하기에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경영할 수 없는 형편을 고려한 것입니다. 따라서 12지파에 평균적으로 4성읍씩을 내놓아 레위인들이 살도록 조치합니다(21:2-3, 41). 그 성읍에서 레위인들은 집과 가축을 칠 수 있는 조그만 땅을 얻게 됩니다. 농사를 지을 땅이나 기업적으로 목축을 할 수 있는 땅은 배분을 받지를 않습니다. 그 대신에 그러한 땅을 12지파의 형제들에게 나누어 준 셈이 됩니다. 따라서 12지파에서는 자신들의 소득 가운데 십분의 일을 레위인들에게 내놓게 됩니다(27:30, 32, 18:21).

3)    정확하게 계산을 하자면 레위인들의 경작지나 목축지를 12지파에서 모두 나누어 가졌기에 12분의 1의 소득만 레위인들에게 소작료로 삼아서 주면 됩니다. 그런데 좀 더 많이 10분의 1을 주도록 율법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차액인 60분의 1이 바로 매년 내는 속전과 더불어 성막의 보수와 유지에 사용이 되는 경비라고 하겠습니다(17:24).

(2)  그런데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레위인들이 율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 12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레위인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과 성막의 일꾼의 직분을 행하고 있지만 그들이 지위가 높아서 12지파의 형제들로부터 십일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는 율법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제사장의 신분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내고 있는 아브라함보다는 그 신분과 지위가 높은 자입니다. 어째서 신분이 높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까요? 그 점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음 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둘째로,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7:6-7);

(1)  고대사회에서는 신에게 복을 빌어주는 제사장의 신분이 높습니다;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7:7).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제사장이 왕의 지위를 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주전 9-10세기에 있어서도 가나안의 북쪽 페니키아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시돈 왕국에서는 바알의 대제사장이 왕을 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돈 왕의 칭호가 옛바알입니다(왕상16:31). 가깝게는 주후 1세기초 극동의 신라왕국에서는 왕의 칭호가 차차웅입니다. 그 칭호는 대제사장이 임금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아브라함을 위하여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14:19). 그러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일조를 바치고 있습니다(14:20). 그 사실을 히브리서의 저자는 약간 달리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7:6). 어쨌든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제사장이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가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속죄의 제사만을 드려주고 있는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과는 다른 점입니다.

(3)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지자인 아브라함과 그의 뒤를 잇고 있는 선지자들은 이방 땅에서 어떠한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브라함이 그랄 왕을 위하여 속죄를 겸하여 축복의 기도를 드려주고 있습니다(20:7, 17). 그러자 그랄 왕궁의 여인들의 닫혔던 태가 다시 열리게 됩니다(20:17-18). 그리고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이 이스라엘 집안의 애굽 이주를 허락해준 바로 왕에게 감사의 뜻으로 축복을 해주고 있습니다(47:7, 10). 그와 같은 사례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결코 이방 왕들이 무시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7:8);

(1)  레위인들이 12지파의 형제들로부터 십일조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레위인들에게 준 그 십일조는 어떻게 사용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을 주로 레위인들이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십일조를 사용한 레위인들은 피조물이므로 향년을 맞이하게 되면 결국 죽고 맙니다(7:8a). 따라서 그 십일조는 레위인들과 운명을 같이하고 마는 것입니다.

(2)  그러나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바친 십일조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바친 전리품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이 생활비로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천국의 제사장이기 때문에 그 십일조를 자신의 생활비용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천국의 곳간에 두고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7:8b).

(3)  참고로, 그와 같은 차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6:19-20).

결론적으로, 히브리서의 저자가 유대교의 제사장과 기독교의 성도들이 담당하고 있는 제사장 직분과는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우선 본문에서 레위 지파인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차이점을 계속 규명하고 있습니다.

레위인 제사장들은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자신들의 생활을 위하여 십일조를 받아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천국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경우에는 아브라함에게 진리를 깨우쳐주고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면서 전리품의 십일조를 얻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멜기세덱에게 바친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어디에 어떻게 사용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마치 천국에 바친 십일조와 같습니다. 하늘 곳간에 있는 그것은 만민의 생명을 살리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데 사용이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를 생각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음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복음의 전파와 예수님의 제자를 길러내는 일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십일조가 보람 있게 사용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