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27강(히6:7-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9. 19:03

히브리서 강해 제27(6:7-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 22()

 

히브리서의 저자가 성도들에게 전하고 있는 가장 따뜻한 위로와 격려에 대하여(6:7-9);

 

본문에 앞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성도들 가운데에서도 적 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6:4-6). 그러한 경고의 말씀을 듣게 된 성도들은 불안에 빠지게 됩니다. 그와 같은 경우를 예수님 당시에도 보게 됩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사도들과 함께 포도주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도들 가운데 마귀와 내통하고 있는 배신자가 한 사람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12명의 사도들이 불안하여 서로 그 배신자가 누구인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13:21-30).

그런데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6:7-9).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면서 땅이 비를 잘 흡수하여 채소를 생산하면 복을 받게 하고 가시와 엉겅퀴를 생산하면 처벌을 받도록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내어버려 두고 계시지만 성도들의 경우에는 그렇게 하시지를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에 대해서는 더 좋은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그렇게 조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부모가 자식들을 광야에 그냥 내버려 두지를 아니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 당시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들을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며(13:21-22)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고(15:25, 16:13-14, 17:6) 외적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17:11-16). 그리고 믿음생활에서 실족하지 아니하도록 안식일을 정하여 말씀교육을 시키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계속하신 것입니다(16:30. 35:2-3).

그와 같은 맥락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하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거하라고 위로하며 격려를 아끼지 아니하고 있습니다(6: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6:7-8);

(1)  먼저,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과 선지서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창세기 제1장에서는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셋째날에 중력의 법칙을 정하십니다. 그러자 물이 땅의 중심으로 내려가면서 뭍이 드러나게 됩니다(1:9). 하나님께서는 붉은 흙으로 덮여 있는 육지를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 개발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그날에 땅에게 명령하여 동물과 사람들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식물을 자연발생적으로 생산하도록 명령하십니다(1:11). 그 결과 동물들의 먹이가 될 수 있는 풀이 자라고 사람들의 먹거리가 되는 곡식과 유실수들이 자라나게 됩니다(1:29-30). 그 모습을 보시고서 하나님께서 만족하십니다(1:12). 

2)    땅이 식물을 생산하여 동물들과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면 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개만 자욱한 땅에 비를 내리게 하십니다(2:5). 그리고 에덴동산에서부터 물이 생성되어 사방의 땅으로 흘러가면서 큰 강을 이루게 하십니다(2:10-14). 사람들이 빗물과 강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게 됩니다(2:15, 3:19, 23, 4:3, 9:20).

3)    그러나 그 땅이 수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①가장 먼저 하나님과 함께 에덴동산에 살고 있는 아담의 가정에서부터 범죄가 발생합니다(3:1-6). 그들이 동산 바깥으로 내어 쫓기면서 경작지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기를 시작합니다(3:18). ②힘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며 세상의 아름다운 여자와 좋은 것을 독점하기 위하여 무죄한 자들의 피를 땅에 많이 흘리게 됩니다(6:2-11). 그 결과 피를 많이 마시게 된 땅이 사람들과 함께 저주를 받게 됩니다(6:12-13). 홍수와 지진에 의한 전면심판이 발생한 것입니다(7:11-12, 17-20, 24).

4)    흙에서 취한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포악해지고 부패하게 되면 그 모집단이 되고 있는 땅이 함께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오경과 선지서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되면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되고 그들의 터전에 찔레와 가시가 나며 황폐화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9:18-28, 5:6, 6:11). 이상과 같은 사실에서 알 수가 있는 것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하나님에 대한 범죄가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까지 초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신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인간들과 그들의 모집단인 땅이 공동운명체라는 의미입니다.

(2)  그러한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    복음을 받아 들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밭으로 비유하십니다. 말씀의 씨가 땅에 떨어지지만 잘 자라날 수 있는 옥토가 있고 자라나지를 못하는 돌짝 밭이나 가시떨기 밭이 있다는 것입니다(13:20-23). 비록 하나님께서 비를 골고루 주시지만(5:45) 그렇게 씨가 제대로 식물로 자라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점을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음과 같이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6:7-8);

2)    좋은 땅은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비를 잘 흡수하여 곡식을 잘 자라나게 하고 있습니다(13:24). 그런데 그 중에는 반드시 원수가 뿌린 씨 때문에 가라지가 함께 자라나고 있습니다(13:25-26). 원수가 뿌린 가라지 때문에 그 좋은 땅이 심판을 받게 될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곡식과 함께 자라나게 한 다음에 수확을 할 때에 먼저 가라지를 따로 모아서 불태워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13:29-30a). 그 다음에 곡식단을 묶어서 곳간에 저장을 하는 것입니다(13:30b).

3)    그러므로 좋은 땅은 복을 받게 됩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6:7). 모세오경과 선지서에서는 사람들의 포악함 때문에 그 모집단인 땅을 함께 처벌하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씨부리는 비유와 가라지 비유를 가지고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여 토지가 비를 잘 흡수하여 곡식을 자라나게 하면 그것으로 복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원수가 뿌린 가라지가 함께 자라나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별도로 모아서 태워 버리시는 조치를 취해주시기 때문입니다.

4)    그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사실 창세기 제9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무지개 언약에서 이미 엿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악함 때문에 그 땅을 함께 처벌하지 아니하시겠다고 여호와깨서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9:11). 사람들에게 악함의 뿌리가 들어 있는 줄 아신 것입니다(8:21). 그러므로 그 악한 뿌리를 도려내실 준비를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어 주십니다(3:15). 대속의 제물로 죽게 하시고 무덤에서 부활하게 하심으로써 악한 원수가 장악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어 버리시는 것입니다(8:1-2).

둘째로,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6:9);

(1)  위에서 검토해본 바에 따르면 한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그것은 곡식과 함께 가라지가 수확을 할 때까지 더불어 자라게 내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곡식 사이에서 가라지가 자라고 있는데 그것이 번식력과 성장력이 더 왕성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가라지가 왕성하게 자라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쓴 뿌리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육신의 종말이 임할 때까지 성도들이 그 사이에서 버틸 수가 있을까요?

(2)  그와 같은 육신적인 고통과 세상적인 환난 가운데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므로 잘못하면 주님의 복음사역을 제대로 못하고 실족할 것만 같습니다. 적 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므로 답답하고 암담합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알고 있는 듯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큰 위로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6:9).

(3)  성도들이 끝까지 낙심하지 아니하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방편이 마련이 되어 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 기쁜 소식은 사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먼저 주신 말씀 가운데 다음과 같이 들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16-20).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아버지께 부탁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임재시켜 주십니다(24:49, 1:8). 그것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입니다(2:1-4).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복음의 뜻을 진리의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온 세상에 전하게 하십니다(14:26, 1:8). 그리고 성도의 속사람 속에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의 전을 마련하십니다(고전6:19).

그 성령님의 성전에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영적으로 임재를 하시겠다고 이미 약속하시고 계십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19-20). 그러므로 성도의 삶이란 깨닫고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영적인 삶을 벌써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은혜를 히브리서의 저자가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6:9)고 언급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와 같은 안전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고 성도의 삶을 힘있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