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25강(히6: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8. 03:20

히브리서 강해 제25(6: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 20()

 

초대교회 유대주의자들의 주장과 관련하여 본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6:1-3)

 

히브리서의 저자가 제6장 본문에 들어와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와 주장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한가지 역사적인 사실을 함께 검토해볼 때에 그 의미가 생생하게 발견이 됩니다;

(1)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유대주의자들이 득세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선민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율법을 준수하고 있는 선민 출신이라고 하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지키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그들은 여전히 사람들 보기에 대단하게 보이는 행위적인 율법준수의 의로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식단을 율법이 정한 대로 엄격하게 규제합니다. 7일 안식일 예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출신 성도들도 할례를 받아서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되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있다고 종용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 공생애 당시에 벌써 율법선생인 랍비들과 율법학자들인 서기관들 그리고 그들의 생도들인 여러 바리새인들과 오랜 논쟁을 통하여 종식이 된 그 문제가(5:26-28, 22:37-40, 23:2-33, 10:30-37, 12:1-12, 18:9-14) 다시 초대교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에 대하여 히브리정경에 비추어서 깊이 이해를 하고 있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성도들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5:12-14).

(3)  유대주의자들이 자신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자손대대로 오래 믿었으며 바리새인들처럼 히브리정경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전하여 준 할례와 율법준수를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기에 충분하지가 못하므로 선민 유대인들처럼 율법준수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유대주의자들의 강한 주장과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믿음이 마구 흔들리고 있습니다.

(4)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죄 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된다고 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방법에 대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시 사람들 보기에 행위적으로 율법을 잘 지켜서 구원을 얻겠다고 하는 유대교적인 성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유대교가 무엇인지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그 기본과 초보에서부터 헷갈리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저자가 통탄을 하면서 이 글을 적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또는 말씀)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하나님께 대한 신앙”(6:1); 두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는 문장입니다;

(1)  첫째, “그리스도의 도(또는 말씀)의 초보를버리라는 뜻으로 보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보는 경우에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보기에는 아직도 신앙의 성숙을 이루지 못하고 초보상태에서 헤매고 있다는 것입니다(5:12-14).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가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선지자들의 메시아 예언에 비추어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대속의 제사와 무덤 속 부활이 어떠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 마디로 지각이 부족한 믿음의 초보단계를 버리고 이제는 지성과 영성에 뛰어난 믿음의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라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2)  둘째, “그리스도의 도(또는 말씀)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기초를 버려버렸기에 다시 인간의 행위적인 율법의 준수와 같은 것 곧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행실로 되돌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을 하게 되면 당시 초대교회에서 득세를 하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의 영향력 때문에 무엇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초인지를 잊어버리고서 헤매고 있는 많은 성도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게 됩니다. 동시에 그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초를 성도들에게 확고하게 다시 마련해 주고자 하는 히브리서의 저자의 의도를 알 수가 있게 됩니다.

(3)  여기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6:1)라고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행실을 회개하고 부디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고 하겠습니다.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과정에 있어서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의 신앙교육에 있어서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질책을 하십니다(23).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이 외식적(外飾的)인 모습의 율법생활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겉만 그럴 듯하고 번지르르한 것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것으로 사람들의 눈에 비치고 있을 뿐입니다.

2)    그 속을 들여다보면 탐욕과 불신앙이 득시글거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식적(假飾的)인 신앙생활을 계속하게 되면 신앙 양심이 죽어 버리게 됩니다. 당연히 하나님말씀의 깊은 뜻을 깨닫지를 못하게 됩니다. 나아가서 하나님말씀의 본뜻인 이방인 구원과 영생구원(8:11-13, 12:39-42)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심판과 하나님나라의 도래에 대해서는 둔감해지고 마는 것입니다(3:2, 7, 4:17).

둘째로,세례들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6:2);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세례들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6:2a);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초가 무엇일까요? 그 반석 위에 교회가 견고하게 서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4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    세례들”(6:2aa); 단수가 아니고 복수입니다. 그러므로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모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거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사도들이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4:2, 28:19). 그에 따라 하나님의 죄 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 회개한 자들이 거룩한 백성인 성도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만민을 살리는 복음의 일꾼이 되고 있습니다.

2)    성령세례를 통하여 두가지 놀라운 변화가 임하게 됩니다; ①하나는 진리의 성령님께서 내주하셔서 성도들에게 하나님말씀의 뜻을 깨닫고 믿게 해주십니다(14:17, 26). ②또 하나는 깨달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 복음대로 살아가는 성화의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1:8, 15:13). 그와 같은 두가지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행위적인 율법의 외식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의 기초를 교회에서 확실히 세우고자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 글을 적고 있다고 하겠습니다(6:3).

3)    안수”(6:2ab); 공생애 당시 예수님의 복음사역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말씀사역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쉽게 풀이하여 백성들에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 그리고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치유사역입니다. 백성들의 각종 질병과 장애 그리고 모든 약한 것을 치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안수하시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과 나음을 선포하실 때에 백성들이 고침을 받게 되고 귀신들이 떠나간 것입니다.

4)    죽은 자의 부활과”(6:2ac); 죽은 자에게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증거하십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속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러나 3일만에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되살아 나오십니다. 죄에 연약한 육신을 벗과 영생의 부활의 몸을 입고서 40일 후에 승천하십니다(1:3, 9). 그리고 제자들에게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게 되면 역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부활과 승천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22:28-30, 14:1-1-3).

5)    영원한 심판에 관한”(6:2ad); 이 땅에서의 죽음은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합니다(3:19, 3:20). 하나님께서 주신 생기 곧 호흡과 목숨이 끊어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육신이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2:7, 37:8-10). 그러나 영원한 생명이냐 아니면 영원한 처벌이냐를 구분하는 영원한 심판의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영혼은 죽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다시 회수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3:21). 죽은 자들이 일단 모두가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5:29). 그곳에서 영생이 기다리고 있는 오른쪽으로, 아니면 영벌이 기다리고 있는 왼쪽으로 분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공생애 당시에 예수님께서 벌써 달란트의 비유로 상세하게 말씀하십니다(25:14-46).

(2)  교훈의 터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6:2b);

1)    위에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적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대속의 죽으심과 무덤 속 부활은 확실한 구원의 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라는 사실이 밝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떠한 것을 첨가하거나 뺄 필요가 없습니다. 그대로 믿고서 성도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 자녀의 구원은 자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주의자들의 준동에 대하여 흔들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2)    그러한 사실을 히브리서의 저자는 교훈의 터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6:2b)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에 휩싸여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보고서 회개한 다음에 다시 사람의 눈을 무지하게 의식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적인 외식적 믿음생활로 되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증거한 하나님의 구원의 터전을 무시하고서 제멋대로 다시 닦겠다고 하는 교만입니다.

3)    따라서 그러한 잘못된 인간적인 시도를 버리고 오직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믿음생활을 똑바로 하는 일에 정진하여 완전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온전한 구원을 누려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생활의 성숙의 비결입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아브람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셋째로,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6:3); 히브리서의 저자가 마지막으로 한가지 교훈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초대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들이 그토록 원하고 있는 선한 일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에 시행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나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라고 체계적으로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의 잘못된 영향을 벗어나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도 자신들의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입니다(6:12-20).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온전히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가르치고 있는 외식적인 율법생활의 잘못을 청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말씀의 뜻은 진작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과 같은 것입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그러므로 아무쪼록 하나님 앞에서 믿음생활을 정직하게 행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