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22강(히5:5-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6. 15:40

히브리서 강해 제22(5:5-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 17()

 

육신을 가진 피조물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5:5-7);

 

본문에 앞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육신을 가진 인간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해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신을 가진 사람 가운데서 대제사장을 세우시고 또한 그를 존귀하게 하신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5:1-4).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여호와의 종인 대제사장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되며 오로지 자신을 거룩한 일에 불러 주시고 귀하게 사용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만 한다는 취지로 본문에서 다음 세가지 사항을 말하고 있습니다(5:5-7);

(1)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주의 신분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셨기에 피조물이 되신 것이며 하나님의 종의 신분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시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복음사역의 인생을 살아 가셔야만 합니다(5:5).

(2)  둘째, 그 정체를 알 수가 없는 천국의 대제사장인 멜기세덱도 인간의 육신을 입고서 아브라함 앞에 현신을 했을 때에는 피조물의 신분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종으로 할 도리를 다하여야 합니다(5:6).

(3)  셋째, 육신을 가진 모든 존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영생을 주실 수 있는 창조주의 허락이 절대적입니다. 그 허락을 얻는 방법이 바로 구원의 비결입니다. 그것은 평생을 하나님의 뜻인 세상구원을 위하여 통곡과 눈물의 간구와 소원으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며 경건한 대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5: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5:5);

(1)  기본적으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의 직분에 대하여 두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이 땅에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공생애를 통하여 감당하신 대제사장의 직분입니다(3:1-6, 5:5, 7-10, 8:6). ②또 하나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속에 들어가신 후에 아버지 하나님에 의하여 부활 승천하시고 스스로 천국의 성소에 들어가셔서 담당하고 계시는 대제사장의 직분입니다(4:14, 8:1-2,  9:11-12, 24).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오른 쪽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다시 설 수 있게 되신 것, 그리고 하늘의 영원한 성소에 들어가셔서 모든 믿는 자들의 완전한 구원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자가 되시고 영원한 대제사장의 직분을 담당할 수 있게 되신 것은 온전히 이 땅에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시고 육신을 입으신 채 그 어려운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독생자의 영광을 내려놓고 이 세상에 오신 것, 그것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시고 연약한 육신을 입고서 인생을 살아가셨다고 하는 것은 피조물이 되시고 여호와의 종이 되셨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와 같은 불이익을 스스로 감수하신 것일까요? 이 세상을 심판하여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믿는 자를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3:16-17, 6:39-40).

(3)  그 구원사역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대속의 제물로 바치십니다. 그리고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어 속죄의 제사를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십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로 거듭난 자들은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2:5-9).

(4)  그와 같은 의미에서 본문,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5:5)는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됩니다;

1)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5:5b);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 그냥 계시는 것이 스스로 영광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셔서 천국의 대제사장으로서 일하시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신분과 지위를 내려놓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육신을 입으시고 대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시며 스스로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1:29). 그것은 영광을 내려놓고 세상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비천하게 되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3:16, 2:6-7).

2)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5:5b);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 유명한 시편 제2편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2:7).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이시며 창조주이십니다(1:1-2, 4:24). 그러므로 피조물처럼 육신을 가지신 분이 아니십니다. 잠시 이 세상에 현신(現身, epiphany)을 하실 때에는 육신을 입으시고 나타나시기도 하시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입니다(18:1-5).

3)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독생자의 영광을 내려놓으시고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십니다. 그것은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2:7, 5:5)라고 하는 말, 곧 피조물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여호와의 종입니다(53:1-9, 3:1-6). 그것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피조물이 되신 것을 말합니다. 그 엄청난 희생이 만민을 구원하는 첫걸음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5:6);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윗의 시편 제110편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110:4).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가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아니하고 그 정체를 알 수가 없는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이치를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후손인 목수 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나십니다(1:27-42). 그러므로 예수님은 생물학적으로 따지자면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없습니다(1:18-25). 그 대신에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것은 당시 선민 유대인 사회에서 처음 발생한 사건이므로 백성들이 받아 들일 수가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목수 요셉은 이미 임신하여 자신에게 시집을 온 마리아가 아들을 낳자 자신의 호적에 올리게 됩니다(2:4-7, 22). 법적으로는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시고 세상적으로는 의붓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혈통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의 법으로 보자면 다윗의 후손으로 의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2:49-50).

(2)  그런데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 받고 있습니다(1:31, 34-35). 한 마디로 순수한 여자의 후손입니다(3:15, 12:5). 그리고 마리아는 친족인 엘리사벳처럼 그 옛날 처음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의 자손입니다(1:5, 36). 그에 따라 예수님은 혈통으로 따지자면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이 됩니다. 하지만 아론의 대제사장의 예복은 그의 딸이 아니라 아들들이 물려받게 되어 있습니다; “아론의 성의는 후에 아론의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그들이 그것을 입고 기름 부음으로 위임을 받을 것이며”(29:29). 그러므로 예수님은 외가의 조상인 아론의 후계자가 될 수 없는 신분입니다.

(3)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도 아니며 아론의 자손인 그의 아들들에 속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다윗 대왕의 후계자가 될 수도 없으며 아론의 뒤를 잇는 세상적인 대제사장도 될 수가 없는 신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바로 창세기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의 신비입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14:18). 그리고 다윗 왕은 영적인 비밀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110:4). 그 대목을 히브리서의 저자가 원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히브리서 제5장과 제7장에서 계속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로,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눈물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5:7);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눈물간구와 소원을 올렸고”(5:7a);

1)    사람의 자녀로 태어난 자들은 육신을 입고서 한 평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육신은 너무나 연약합니다. 죄의 요구를 능히 물리치지도 못하고(7:23) 숙명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도록 되어 있는 일종의 미래완료형입니다(7:24). 그렇게 한시적이고 죄에 물든 육신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평생동안 기도하고 있는 제목은 한가지입니다: “부디 이 불완전한 육신을 벗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부활의 몸을 입고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는 간절한 통곡과 눈물의 기도입니다”(5:7a).

2)    그와 같은 소원을 누가 들어줄 수가 있을까요? 세상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고 있는 수호신이나 우상이 아닙니다.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모든 인류가 영생을 희구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예수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구원만을 위한 간구가 아니라 이 세상을 모두 구원해 달라고 하는 간절한 기도인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기도입니다”(22:42-44, 23:34, 17:24). 

(2)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5:7b);

1)    그 옛날 아담부부의 아들인 셋이 아들을 낳아 에노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4:26a). 그 이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연약한 육신을 가진 인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때부터 셋의 집안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몸을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4:26b). 그와 같은 인류의 눈물 어린 간구가 역사 가운데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소원을 이룬 자는 몇 사람 되지가 않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에녹과 노아가 그러한 인물입니다(5:24, 6:9). 그들의 신앙의 특징은 평생동안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동행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기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경우를 예로 들어서 그의 경건하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5:7b).

2)    예수님의 경건하심은 두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한다는 것입니다(22:42, 6:38). ②또 하나는 자신만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여 이웃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며 이 세상을 모두 구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12:30-31, 6:39-40). 그와 같은 간구와 소원 그리고 실천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천국으로 구원하여 인도하시는 은혜가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3:16-17, 5:7b).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고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십니다. 그리고 연약한 육신을 가지시고 한 평생을 만민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대제사장으로 살아가십니다.

그와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는 경건함이 영생의 구원을 얻는 비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본문의 뜻을 이미 말씀드린 사도 바울의 다음 글과 함께 음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2:5-9).

아무쪼록 많은 깨달음과 실천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