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23강(히5:8-1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7. 00:32

히브리서 강해 제23(5:8-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18()

 

성육신, 고난, 순종을 통하여 온전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의 특징에 대하여(5:8-10);

 

흔히 하나님의 숫자는 3이고 사람의 숫자는 4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본체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이해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숫자인 ‘3’에 하나를 더하게 되면 사람의 숫자인 ‘4’가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이 창조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1:26-27).

그렇지만 사람은 흙에서 취한 육신을 몸으로 입고 있는 피조물입니다(2:7). 그러므로 피조물이 지니고 있는 시공간적인 제한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공간에 갇혀서 한시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3:19, 4:26). 오랜 세월 대대로 시간과 공간에 갇혀서 살아오다 보니 사람들은 시공간을 구분하고 식별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류의 방식이 기본적으로 ‘4’라고 하는 독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을 기본적으로 춘하추동(春夏秋冬,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하는 4계절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간을 동서남북(東西南北)이라는 4방의 개념으로 기본적으로 분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4’에 익숙한 삶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자신들의 운명적인 숫자가 ‘4’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에서도 믿음의 열조들에 대하여 그들의 인생을 ‘4’에 완전수 ‘10’을 곱하여 ‘40’으로 분류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의 인생이 애굽 바로의 황궁에서 40, 미디안 광야에서 40,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에서 40년으로 구분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정국가인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 사울, 2대왕 다윗, 3대왕 솔로몬 등의 통치기간이 모두 40년씩입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가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4가지의 요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으로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첫째가 사람의 아들이 되신 것입니다(5:8a).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독생자의 영광의 내려놓고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육신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2:6-7). 그와 같이 일반 백성들과 하나됨이 없이는 소통과 모범이 되지를 못한다는 사실을 몸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2)    둘째가 육신을 입으셨기에 받으신 고난입니다(5:8b). 인간의 육신은 그 조상인 아담부부의 원죄로 말미암아 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과 악 가운데 악을 따르고자 하는 성질이 강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죄에 물들기 쉬운 육신을 가지고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따르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공생애 자체가 갈등이 계속되는 고난의 과정입니다.

3)    셋째가 순종입니다(5:8c).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3:9-10, 7:23).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불가능한 일을 역사 가운데 처음으로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스스로 자신의 몸을 만민의 죄를 속죄하는 희생의 제물로 바치고 있기 때문입니다(22:39-44, 23:45-48).

4)    넷째가 온전입니다(5:9a).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십니다. 그 시신이 무덤에 들어갑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온전한 영생의 몸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시고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시키십니다. 그 대목을 예수님의 행적 가운데 발견하고서 사도 바울은 자신도 그 영생의 몸을 입고서 부활하여 예수님처럼 천국에 들어가고자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3:10-14). 그는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부디 자신처럼 그러한 소원을 가지고 온 세상으로 나아가서 복음사역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3:15-17).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벗으시고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3가지를 얻게 되십니다;

1)    첫째가 하나님 아들의 영광의 회복입니다.  그러한 의미를 온전하게 되셨은즉”(5:9a)이라고 하는 문구에서 짐작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 예수님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실 수 있는 근원이 되십니다(5:9b).

3)    셋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천국의 대제사장이 되십니다(5:10). 예수님께서는 아론의 혈통에 따라 대제사장의 직분을 세습한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큰 대제사장으로서 복음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베드로는 왕 같은 제사장인 성도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며(벧전2:9) 사도 요한은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1:12-13).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가 아들이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배워서”(5:8);

(1)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주관하고 있으며(11:27) 이 세상의 창조에 참여하신 창조주의 한 위격이십니다. 사도 요한이 훗날 그의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그 점을 첫머리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1:1-3).

(2)  그런데 창조주의 영광을 가지신 독생자께서 천상의 보좌에 그냥 계시게 되면 하나님의 종으로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육신을 가진 인생들의 고통과 눈물에 대하여 도저히 깊이 있게 알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여 영생의 새 세상인 하나님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자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가 있을까요?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독생자께서는 몸소 인간으로 태어나셔서 사람들에게 창조주의 뜻을 전해주고자 하십니다.

(3)  의도는 좋았지만 그 결과는 비참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을 가진 인간은 영생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장 재화가 부족한 이 세상에서 배불리 먹고 잘 살기만을 소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소원을 이루어 주는 신이라고 한다면 우상이라고 하더라도 창조주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자로 태어난 독생자 그리스도는 이중적인 고난에 시달리게 됩니다; ①하나는 죄에 익숙한 육신이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들의 방식대로 살아가자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②또 하나는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주고 있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렇다면 세상사람들의 생각이 틀렸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옳다는 사실을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보여줄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인생의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생하게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결국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의 피와 살을 만민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희생의 제물로 바치게 되십니다. 그와 같은 고난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들의 죄를 청산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것입니다(22:42). 그것이 온전한 만민구원의 길이라는 사실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증거하십니다(1:16-17). 곧 예수님을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시키시고 영생의 천국으로 40일 후에 승천시키시기 때문입니다.

(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강조하십니다. 고난을 당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제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천국에서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둘째로,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5:9);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온전하게 되셨은즉”(5:9a); 두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①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가운데 복음사역을 하셨지만 온전히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기에 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회복하셨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영생의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2)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5:9b);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 있습니다. 비록 죄성에 익숙한 불편한 육신을 입고서 고난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만 아버지의 소원을 성취한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당당한 승리의 모습입니다(16:33b). 그리고 이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모범을 교과서로 삼아서 고난을 이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2-33).

2)    풀이를 해보자면, 고난과 역경 가운데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에 따라서 살아가고자 결단하고 실천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동행하시면서 능력을 부어주시듯이 그러한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환난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당당하게 맞서라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5:9b).

3)    본문을 좀더 깊이 묵상해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더 담고 있습니다; ①첫째,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그 은혜는 모든 자 곧 만민에게 개방이 된 것입니다. ③셋째, 예수님의 제자로서 끝까지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권세가 주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28:18).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창시자”(2:10) 또는 영원한 구원의 근원”(5:9b)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셋째로,하나님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함을 받으셨느니라”(5:10);

(1)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론의 대제사장의 후계자로서 그 직분을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하셨더라면 먼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만민의 속죄를 위하여 가축을 잡아서 번제로 드렸을 것입니다. 그 대신에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1:29) 곧 유월절 어린양이 되십니다. 자신의 몸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2)  어째서 가축의 피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스스로 피를 흘리신 것일까요? 그 이유를 히브리서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9:11-14).

(3)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안식일 전날에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서 만민의 속죄를 위하여 스스로 자신의 피와 살로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에 따라 제도적으로 몇 가지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1)    첫째, 아론의 후계자가 가축을 제물로 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제례의식이 사라지게 됩니다.

2)    둘째, 그 일을 행하던 예루살렘 성전이 사라지게 됩니다(2:19-22, 16:18).

3)    셋째,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과 그 아들들에게 허용이 된 제사장의 직분이 사라지게 됩니다.

(4)  그 대신에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까요?

1)    첫째, 그리스도께서 만민구원을 위하여 희생하신 그 보혈과 몸을 기념하여 포도주와 떡을 나누는 성찬의식이 성도들의 공동체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2)    둘째,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선포하는 일이 성전과 회당이 아니라 교회에서 예배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3)    셋째, 아론의 후손처럼 혈통에 의한 세습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뜻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온 세상에 나아가서 복음사역을 하고 있습니다(1:12-13, 벧전2:9).

(5)  요컨대 그러한 모든 변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함을 받으셨느니라”(5:10)고 하는 명제 속에 포함이 되어 있는 사항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교회는 결코 세상적인 사람의 혈통과 세습 그리고 사회적인 관습과 종교적인 관행에 매몰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의 직분을 지금도 행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벌써 자신을 새 시대를 열어 가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위하여 대속의 제물로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시대정신을 리더하면서 모름지기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정진해야만 합니다.

결론적으로, 고난이 있기에 영광의 상급이 있습니다(8:17-18). 그 이유는 고난을 통하여 믿음의 성숙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고생 가운데 세상을 이해하고 백성들의 눈물과 고통의 의미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과 눈물을 보시고 그들을 모두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2:23-25, 65:19, 21:3-7).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신 창조주께서 친히 인간으로 태어나십니다. 그리고 육신을 가지시고 고난의 공생애를 지내십니다.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복음사역을 하십니다. 그러나 재화가 부족한 세상에서 살기다툼에 바쁜 인간들이 이기적이며 얼마나 현세적인 복만을 추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주겠다고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복음의 말씀을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마지막 예수님의 선택은 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몸소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육신과 목숨보다 더 소중한 영생의 구원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눈물로써 회개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오는 백성들을 모두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드라마틱한 구원의 스토리를 히브리서의 저자가 본문에서 매우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하시면서 히브리서 본문의 깊은 내용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고난 가운데 순종함을 배우시는 믿음의 성숙이 성도님들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