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26강(히6:4-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8. 03:22

히브리서 강해 제26(6:4-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 21(주일)

 

그리스도를 통한 말씀의 빛, 성령의 은사, 그리고 하나님의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서도 타락하게 되면 이제는 구원의 기회가 없다고 하는 히브리서 저자의 주장에 대하여(6:4-6);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사람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것과 성령님께서 영이신 상태 그대로 성도들의 속사람 속에 그리고 그 심령 속에 임재하신다고 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 주요한 차이에 대하여 일찍이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1-3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겨 놓고서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시고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살아가시면서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복음사역을 시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온전한 사람으로 육신을 입고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으므로 예수님은 인자인 자신을 모독하거나 반대했다고 하여 사람들을 처벌하지를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백성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회개시켜서 구원하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육신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영적인 영광을 그대로 지니고 계시는 성령님의 임재는 그것이 아닙니다. 비천한 피조물로부터 모독을 받거나 반대를 받게 되면 그대로 창조주의 한 위격으로서 하나님의 징계를 내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가 홀연히 나타날 때에도 사람들은 경악을 하게 됩니다(1:12, 30).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영이 보혜사 성령님으로 성도들에게 강림하시고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내주하여 역사하시기를 시작하십니다. 이제는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과 영적으로 동행하고 있다는 그 놀라운 은혜를 잊어버리고 다시 옛날 버릇과 습관대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내주하여 계시는 영이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패역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잘못까지 그리스도가 나서서 일일이 변호해주고 용서를 빌어 줄까요? 더 이상 그것이 아니라고 하시는 명확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위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똑같은 취지의 말씀이 히브리서의 저자에 의하여 본문에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6:4-6).   

과연 동일한 취지의 말씀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6:4); 히브리서의 저자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성도들에게 임하고 있는지를 매우 함축적으로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해봅니다;

(1)  한번 빛을 받고”(6:4a); 사도 요한이 훗날 참으로 이 대목에 대하여 잘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1:4-5),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육신을 입고서 살아가십니다. 공생애를 통하여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으로 풀이하여 선포하시고 쉽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 말씀의 뜻을 깨닫고 자신들의 이기적이고도 현세 기복적인 삶의 태도를 회개하는 자들은 밝은 진리의 빛을 쪼일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바른 구원의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진리의 빛 가운데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2)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6:4b);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뒤를 이어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그것은 마치 공생애 과정 가운데 예수님께서 간절히 기도하시자 아버지 하나님께서 병든 자와 장애자들을 고쳐 주시고 하나님나라가 임한 것과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면서 얼마나 다양한 아버지 하나님의 은사를 맛보고 있는지 모릅니다. 임재하신 성령님을 통하여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그것을 흔히 성령님의 은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고전12:1-11)

(3)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6:4c);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강림하십니다. 그리고 내주 역사하십니다. 빌 바를 알지 못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8:26). 그리고 악한 영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도록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14:11-14, 6:18). 나아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성도들에게 진리의 영으로 역사하십니다(14:16-17, 26). 그와 같은 다양한 성령님의 역사를 성도들이 함께 경험하고 있다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선한 말씀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6:5-6a);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의 선한 말씀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6:5);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임재하여 역사하심에 따라서 결국 성도들은 다음 두가지의 능력을 맛보게 됩니다; ①하나는 자신이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죽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②또 하나는 육신을 벗은 후 영생의 몸을 입고서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나 누릴 수 있는 그 영원한 승리의 기쁨을 이 세상에서도 성도들이 상당히 맛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과 말씀으로 거룩해지고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2)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6:6a);

1)    연약한 인간의 육신입니다. 창세기 제3장에서 기록이 된 바와 같이 인류의 조상인 아담부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이후 죄의 성질이 유전이 되고 있는 인간의 육신입니다(7:19-24).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과 더불어 좋아 보이는 것을 모두 차지하고자 하는 탐욕이 육신을 지배하고 있습니다(3:5-7, 6:2-3). 그와 같은 육신을 지니고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주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와 말씀의 묵상에서 멀어지게 되면 엄청난 비극을 경험하게 됩니다;

2)    그 가운데 가장 큰 비극은 성령님을 모독하고 아버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패역(悖逆, 패륜과 반역)한 행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용서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탄의 편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하는 선택을 마치 가룟 유다처럼 이미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3:26-30). 그러한 자의 이름을 성경에서는 적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있으며(요일2:22, 요이1:7) 하나님을 대적한 짐승처럼 영벌(永罰, 영원한 징벌)의 대상이 되고 만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12:31-32, 19:20).

3)    그리고 진리의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의 뜻을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왜곡하고 변질시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잘못을 행하는 자들이 소위 거짓 선지자들입니다(24:11, 24, 벧후2:1). 그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용서함이 없습니다. 온 세상을 미혹하고 있는 마귀의 자식들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종말적인 심판을 받고서 마귀와 함께 영벌에 처해지고 마는 것입니다(19:20, 20:10).  

 셋째로,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6:6b);

(1)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고자 하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들은 한 마디로, 그 옛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하고자 열심이었던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대제사장을 위시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고자 획책했던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사람들 앞에 욕되게 하는 이유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당시 예수님을 처형하고자 하는 유대교지도자들의 입장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선지자로 보이는 나사렛 예수가 감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버지와 동등한 창조주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10:30).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하나님 모독죄입니다(10:33). 그리고 피조물이 감히 스스로를 창조주라고 주장했기에 그것은 창조주의 권위를 참담하게 짓밟은 참람죄이며 반역의 행위입니다. 따라서 십자가 극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2)    둘째, 하나님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인자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피조물인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고 죄에 물든 육신을 입고서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의 성육신 자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것이 적 그리스도의 영에 사로잡힌 유대교지도자들의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요일4:2-3).

3)    셋째, 그런데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능력에 속하는 기적을 선보이고 있습니다(3:2).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린 행위로 백성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11:15). 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귀신을 쫓아내고 각종 질병과 장애를 무료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쳐주고 있는 나사렛 예수의 복음사역의 현장에 선민 유대인들이 자꾸만 모여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습니다(11:47).

4)    넷째, 선민 유대인들의 오랜 소원은 다윗의 후계자로 메시아가 오셔서 외세를 몰아내고 그 옛날 선민의 제국 이스라엘을 다시 재건해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로마와 헤롯 왕가를 몰아낼 수가 없기에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을 선보이고 있는 선지자 예수가 선민들의 메시아 사상에 반하는 말을 거침없이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만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도 구원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세적으로 선민들만 영광을 누리는 제국을 건설해주지 아니하시고 모든 나라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함께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같은 이방인들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며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3)  요컨대, 선민우월사상과 선민만의 구원과 영광을 주장하고 있는 유대교리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의 주장입니다. 그냥 두면 유대교가 두 동강이 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결론은 예수를 처형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 옛날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나사렛 예수를 처형한 이유는 한 마디로 그들의 종교적인 교리 및 현세적인 이익에 맞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으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영생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창조하실 것이라는 내용을 복음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선민들의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축복사상에 맞지 아니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공생애 그리고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민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세상사람들이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은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고 하는 물질적인 사고방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소원을 무조건 들어주고 만사형통의 복을 가져다 주어야만 한다는 이기주의와 현세주의의 산물입니다(17:7).  

그러한 사조가 교회내에 그리고 성도들 가운데 창궐하고 있음을 히브리서의 저자가 발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을 박는 잘못을 되풀이하지를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다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본문의 말씀을 음미하시면서 이기적인 사고방식과 현세적인 복만을 추구하는 행동양식을 고쳐 나가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