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히브리서 저자가 증거하고 있는 주님의 재림(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31. 10:17

제목; “히브리서 저자가 증거하고 있는 주님의 재림”(1:10-12, 9:28)

설교일; 주후 202325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31일 화요일 작성)

 

오늘날 성도들이 읽고 있는 성경은 낱권으로 보면 구약 39, 신약 27권 도합 6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구약 39권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는 유대교경전 가운데 바리새인 랍비들에 의하여 주후 90년경 정경으로 채택이 된 것입니다.

그 당시 가나안 욥바 남쪽 얌니아에서 개최된 종교회의에서 랍비들에 의하여 유대교의 정경으로 인정된 것을 개신교에서는 그대로 교회의 구약성경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와 달리 구교인 카톨릭에서는 헬라어 번역본 70인역에 실려 있는 히브리정경 46권을 주후 382년 로마주교회의에서 전부 구약성경으로 인정했습니다.

그에 따라  개신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구교의 성경에는 7권의 외경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정경 39권을 구약성경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독교 성도들이 읽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점을 다음과 같이 크게 보아 두가지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만나 재삼 히브리경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24:44-45). 구체적으로, 자신에 관한 모든 예언을 벌써 아버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히브리경전에 기록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에 비추어 히브리경전의 말씀을 음미해보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뚜렷이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의 깊은 의미를 구약말씀을 참조하여 역사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바라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 그리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있는 서신서 등이 풍성하지 못했던 주후 1세기의 초대교회 시대에 있어서 히브리정경을 복음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한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 작업의 일환이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히브리서입니다. 그 저자가 누구인지 아직도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익명의 저자는 히브리경전에 대한 지식과 유대교에 대한 지식이 뛰어난 인물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의미에 대해서도 탁월한 인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강해설교의 본문으로 저는 히브리서 제1장 제10-12절 말씀과 제9장 제28절 말씀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대목에서 익명의 히브리서 저자는 주님의 재림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독생자 그리스도의 초림은 유대 땅에서 이루어졌으며 주후 28년경 30세가 되었을 때에 복음사역을 시작하십니다(3:23). 그렇지만 공생애 36개월을 지내시는 동안에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천국복음으로 전파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노선이 전통적인 유대교리와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히브리경전을 동족들에게 율법으로 가르치고 있는 바리새인 랍비들의 입장은 선민만의 구원과 현세적인 구원입니다.

로마총독부의 군정과 이방인 이두매 출신 헤롯왕가의 통치에 시달리고 있던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외세를 물리칠 수가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경전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있는 다윗의 후손 메시아가 유대 땅에 와서 여호와의 신위적인 능력으로 외세를 전부 물리치고 그 옛날 찬란했던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주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 선지자로 칭송을 받으며 일부 유대인으로부터 메시아로 여김을 받고 있던 나사렛 예수가 철저하게 그들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 사랑하고 구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5:44-48, 8:10-13). 그리고 하나님나라는 볼 수 있게 이 세상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심령속에 영적으로 임재하는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12:28, 17:20-21).

율법선생인 바리새인 출신 랍비들이 이해하기로는 나사렛 예수의 사상은 선민만의 구원과 선민제국의 재건을 소망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유대교지도자들은 나사렛 예수를 종교 재판하여 죄인으로 정죄하고 유대인들과 영원히 분리하기 위하여 그를 로마총독의 사형집행권을 빌려서 십자가에 처형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창조주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무덤속에서 3일만에 나사렛 예수가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제자들을 다시 모아 천국복음으로 재교육시키고 그것을 부활의 소식과 함께 온 세상 천하만민에게 전파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을 위시하여 로마제국의 여러 지방에서 초대교회가 성립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초림과 복음사역을 위한 공생애, 대속의 십자가 희생, 놀라운 부활과 승천에 이어 이제는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제자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게 됨으로써 초대교회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음은 순조로이 전세계에 전파가 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의 역사전개는 그것이 아닙니다. 실패한 유대교인들의 논리가 다시 초대교회시대에 만연되고 있습니다. 이기적이며 현세적인 그들의 선민사상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새로운 선민인 성도들만 구원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초대교회를 탄압하고 있는 로마제국을 이기는 방법이 일찍이 예수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그 방법이 아닙니다(26:51-54). 성도들은 스스로 무장하여 로마군과 전쟁을 벌이거나 아니면 로마제국을 심판하여 달라고 주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강력하게 기도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상한 현상을 익명의 히브리서저자가 깊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말세에 이루어지는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진술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1:12, 2:9-11, 9:28). 또한 히브리서 저자와 같은 시각을 신약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주님의 뜻대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이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살전4:16-18, 20:4-6, 22:28-30);

그와 같은 취지의 말씀이 본문에서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그 대강을 먼저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히브리서 저자는  낡아지는 율법과 세상을 숭배하지 말고 부디 영생하시는 여호와 그리고 주님께서 창조하시는 의로운 새 세상을 바라보라고 본문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1:10-12). 그와 같은 설명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히브리서 저자는 제1장 제9절에서 히브리정경에 실려 있는 시편 제45편 제7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군데의 용어를 달리 해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인용이 아니라 사실은 원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달라진 두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시편 저자가 을 지칭하고 있는 것을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아들 주님을 일컫고 있는 것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둘째, 시편저자가 왕은 정의(justice)를 사랑하고”(45:7)라고 말하고 있는 부분을 히브리서저자는 주께서 (righteousness)를 사랑하시고”(1:9)라고 바꾸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2)  그와 같은 변화가 어째서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히브리서 저자는 그와 같은 변화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까요? 그 해답의 실마리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으며 또 어째서 다시 오셔야만 하시는지 그 이유와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시고 공생애를 사시면서 복음사역을 하신 이유는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선민 유대인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 주기 위한 것입니다. 선민들은 자신들만 구원을 받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숭상하고 낡아지는 이 세상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대인 자신들의 왕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능력을 주셔서 이방인들을 물리치고 선민들의 정의를 온 세상에 떨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3)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방인들을 쳐부수고 선민들의 영광만을 드높이는 왕이 바로 선민 유대인들이 고대하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의로운 메시아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선민 유대인들의 이기적인 정의를 만족시키고자 오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이방인까지 구원하여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만민구원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함께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만족시키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내용이며 대속의 십자가의 희생의 목적입니다. 그 속죄의 제사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1:9)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그렇게 복음사역을 하시고 대속의 십자가까지 지시고 부활 승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으로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고 하십니다. 어째서 다시 오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 옛날 선민 유대인들처럼 세상사람들이 여전히 이기적인 구원론집단 이기적인 정의만을 부르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자신들의 에게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교회와 성도들도 민족적인 이데올르기와 현세적인 축복만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유대교인들이 갈구하고 있던 정치적 메시아를 지금도 원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기적인 정의가 이 세상을 지배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명을 받아 다시 이 세상에 심판주로서 오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9:28);

넷째로, 다시 오셔서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그 대답을 히브리서 저자는 본문에 싣고 있습니다(1:10-12). 헌 부대에 더 이상 새 포도주를 담을 수가 없기에 새로운 부대로 새 세상을 창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뜻을 드러내기 위하여 히브리서 저자는 새로운 세상을 갈구하고 있는 시편 저자들의 글을 한 대목 인용하여 본문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면서 그 내용을 자세하게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10. 태초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1:10);

(1)  먼저 히브리서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시편 제102편의 글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5.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26.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27.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28. 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102:25-28); 전체 문장을 그대로 적어본 이유는 마지막 구절 때문입니다. 세상은 낡아지고 천지가 없어지며 새로운 세상이 창조가 될지라도 주 앞에 서는 자는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하는 구절이 마지막 대목입니다. 그 뜻이 히브리서 저자가 그의 글 본문에서 담고 있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2)  히브리정경 제일 처음에 실려 있는 창세기 제1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달리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1:10 의역);

그렇다면 어느 것이 맞는 주장일까요? 그 해답은 삼위일체(三位一體, 세개의 위격 그러나 신비스러운 하나의 본체이며 그  의사결정이 하나임)인 하나님의 신비에 속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본체를 이루고 계시는 삼위(三位)께서 하나가 되어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3)  그러한 흔적이 창세기 제1장에서도 다음과 같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1:26). 고대어(古代語, 고대시대의 말과 글)일수록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 단수와 복수의 구별이 더 확실하며 아예 한 단어 속에 그 개념을 분명하게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복수의 위격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묘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과 같이 낡아지리니”(1:11);

(1)  시편 말씀을 인용하면서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여기서 멸망의 대상과 낡아지는 대상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멸망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회개하지 아니하고 있는 자들이며 그들이 살고 있는 터전입니다.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이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들이므로(3:9-10) 진노의 자식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2:2-3) 전부 멸망의 대상입니다.

(2)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한 성도라고 하더라도 육신적인 죽음을 향년이 되면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태에서 태어난 인간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여기서는 낡아진 옷과 같다 비유하고 있습니다(1:11). 그렇다면 새로운 영생의 몸으로 갈아 입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러한 부활과 영생의 구원이 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역사 가운데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보여주십니다.

(3)  오늘날에도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서 온 세상에 영생구원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말심판으로 천지가 없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창조가 되지만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 성도들은 유일하게 예외적인 존재가 됩니다. 마치 주님처럼 영존하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예언을 히브리서 저자가 이제부터 알기 쉽게 말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셋째로,12.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1:12);

(1)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께서 속죄의 어린양이 되신 사실을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더 이상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주하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신실한 복음의 전파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18:18-20, 24:44-49, 1:8).

(2)  그 결과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향년을 맞이하게 되면 역시 무덤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스승이시며 주인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밟으신 그 순서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부활의 영에 의하여 부활과 승천 그리고 천국에서의 영생의 삶이 진행이 될 것입니다(8:11, 고전15:21-24). 사도 바울의 설명과 같이 성도들이 영생의 부활의 몸을 입고서 무덤속에서 나와서 승천을 하게 됩니다(1:23, 3:10-12).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서 기쁨을 함께 하게 됩니다(살전4:16-17);

(3)  이 세상은 멸망의 심판 가운데 들어가며 새로운 천지와 하나님나라가 건설이 됩니다(65:17-18, 21:1-2). 그 영생의 나라에서 성도들은 주님과 함께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자녀로 영원히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22:28-30, 8:15-17). 그렇게 성도들에게는 하나님 아들이 되는 영광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다음 절에서는 그러한 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천사들에 대하여 적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참고로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첫째 부활 및 휴거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의 설명이 실로 압권입니다. 그 점을 데살로니가전서 제4장 말미에서 뚜렷하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6-18).

넷째로,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9:28);

(1)  그리스도의 첫번째 나타나심 곧 초림(初臨, first coming)을 말하고 있는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과 복음사역을 위한 공생애 그리고 십자가 대속의 희생과 무덤 속 부활과 승천의 역사는 한마디로 자신이 죄인임을 철저하게 회개하는 자들에게 칭의의 은혜를 베풀기 위한 것입니다(9:28a). 그러나 주님의 재림의 목적은 그와 다릅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처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다가 핍박을 받고 죽은 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9:28b). 주님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시면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성도들은 휴거하여 재림하시는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영광스러운 미래가 성도들에게 준비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살전4:16-18).

결론적으로, 히브리서 저자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사도 바울이 그의 로마서 제8장에서 말하고 있는 다음 내용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29-30).

이 세상은 멸망을 당하고 성도들의 육신은 낡아질지라도 영원히 낡아지지 아니하는 영생의 부활의 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영화의 단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히브리서 저자는 12.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1:12)라고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말함으로써 성도들의 부활과 주님 안에서의 영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영생의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잠시 임하는 광경을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 제자들이 환상 가운데 변화산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9:1-4);

그러므로 아무쪼록 변화산상의 환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본문과 더불어 깊이 음미하시면서 많은 깨달음과 소망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