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베드로가 강조하고 있는 성도의 거룩한 삶의 요소 8가지(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24. 14:03

제목; “베드로가 강조하고 있는 성도의 거룩한 삶의 요소 8가지”(벧후1:5-7)

설교일; 주후 2023129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24일 화요일 작성)

 

전체 5장으로 되어 있는 베드로전서와 단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베드로후서는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1)  첫째로, 그 수신자의 폭이 다릅니다. 베드로전서는 그 수신자가 당시 사도 베드로가 선교하여 개척한 것으로 보이는 소아시아 북부와 동부의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초대교회와 그곳의 성도들입니다(벧전1:1). 그와 달리 베드로후서에서는 그러한 제한이 없습니다(벧후1:1). 따라서 후서는 예루살렘교회를 비롯하여 로마제국에 흩어져 있는 모든 초대교회를 수신자로 하고 있습니다.

(2)  둘째로, 작성시기로 보아 전서보다는 후서가 나중의 것입니다. 따라서 보다 임박한 처형을 앞두고 긴박하게 쓰여지고 있는 서신서가 바로 베드로후서입니다. 그 말은 순교를 목전에 둔 사도 베드로가 자신의 유언과 같은 말씀을 후서에 더 절실하게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모세오경의 신명기처럼 사도 베드로의 유언과 같은 가르침이 곧 베드로후서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3)  셋째로, 베드로전서에는 말미에 사도 베드로가 자신의 선교활동과 서신서의 대필을 도와주고 있는 동역자들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벧전5:12-14). 그러나 베드로후서에서는 그와 같은 인사말을 생략한 채 다른 권면의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벧후3:14-18). 그는 성도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처형장으로 떠나기 위하여  마음이 심히 바쁜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체험하고 깨달은 복음에 관한 진리를 전해주면서 그 이상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사도 바울에게 물어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4)  넷째로, 후서의 말미에서 사도 베드로는 사도 바울이 대답하지 못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억지로 풀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는 경고의 말씀을 남기고 있습니다(벧후3:16-17). 그와 같은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순교의 현장에 끌려가기 전까지 얼마나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도움을 주고자 지극 정성이었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의 동역자인 사도 바울이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그가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있는지도 알게 됩니다. 그와 같이 포용력이 큰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바로 사도 베드로라고 하는 사실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는 것이 그의 마지막 편지인 베드로후서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도 베드로의 유언과 같은 말씀의 백미가 오늘의 본문입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거룩한 삶의 요소 8가지가 묘한 방법으로 서술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성도의 삶은 거룩하고 경건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그 모범을 보여주기 위하여 성도의 삶의 모습은 분명히 그러하여야 합니다.

그 점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본문에서 거룩한 삶의 요소를 8가지로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깨닫고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써 얻게 되는 칭의(稱義, justification)의 은혜 그 다음에 남은 인생 동안에 얻어야만 하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단계적인 요소들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도 베드로가 언급하고 있는 성도들의 성화의 8단계에 대하여 대체적인 설명을 먼저 다음과 같이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생을 얻고 하나님자녀의 거룩한 행실을 온 세상에 보여주자면 어떠한 신앙생활을 영위해야만 할까요?(벧후1:3) 사도 베드로는 그 점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썩어질 육신의 탐욕과 정욕을 따르지 말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하나님자녀의 신성한 성품을 가지도록 노력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벧후1:4).

이제 사도 베드로는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실행해야만 하는 8가지의 행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절묘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마치 사다리를 타고서 한 걸음 씩 위로 올라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1)  첫째, 믿음에 덕을 더하십시오;

(2)  둘째, 덕에 지식을 더하십시오;

(3)  셋째, 지식에 절제를 더하십시오;

(4)  넷째, 절제에 인내를 더하십시오;

(5)  다섯째, 인내에 경건을 더하십시오;

(6)  여섯째,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하십시오;

(7)  일곱째,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덕을, 덕에 지식을”(벧후1:5);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벧후1:5a); 여기서 그러므로라고 하는 접속사는 위의 문장 곧 베드로후서 제1장 제1-4절 말씀의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알게 되면 그 다음에 언급하고 있는 8가지의 거룩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 나가고자 노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문장 제1-4절의 말씀을 먼저 요약하여 정리해보는 것이 그 다음의 구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관건이 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제1절부터 제4절까지의 말씀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다시 한번 요약해봅니다;

1)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자신의 영광을 내려놓고 이 세상에 유한한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십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한 위격이 스스로 피조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종의 신분을 가지고서 모든 복음사역을 하십니다;

2)    둘째,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내용은 당연히 주인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대로 실천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고집과 뜻을 행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것만 실천하고자 하십니다. 그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 사역이며 대속의 십자가 희생입니다.

3)    셋째, 그 결과 창조주 하나님의 종인 인자(人子, son of man)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부활하여 영생의 몸으로 승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새로운 역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든 사도와 제자들이 눈으로 보고서 세상사람들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24:44-49, 1:8, 고전15:4-8).

4)    넷째, 이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교회의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도인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여러 성도님들도 모두 주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자신의 고집과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 하나님 곧 주인의 뜻대로 실천하신 그 모범을 본받아서 우리가 살아가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복음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박해하는 원수까지 사랑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며 대속의 제물로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5:43-48).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하나님 자녀의 거룩한 성품을 이 세상에 보여준다면 영생의 부활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벧후1:1-4 의역).

(2)  너희 믿음덕을”(벧후1:5b);

1)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주인의 생각과 뜻이 옳다고 믿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주인의 뜻대로 실천하게 되면 주인이 주신 그 약속이 반드시 실현이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그것입니다(4:16, 15:6).

2)    아브라함 자신의 경험에 따르게 되면 자손의 번성을 주신다고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은 실현이 불가능합니다(12:2, 15:2). 그래서 가나안 땅에서 10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서 살아가던 아브라함이 삶의 태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충직한 젊은 가신 다메섹 엘리에셀을 후계자인 양자로 삼고서 여생을 자신의 평판이 매우 높은 헤브론 땅에서 편안하게 보내고자 합니다(14:13-17, 15:3).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의 자손의 번성 곧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고 하는 그 언약을 믿으라고 하십니다(15:5).

3)    아브라함은 사람의 상식이나 세상의 논리로는 도저히 승복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창조주이시며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마지막으로 한번 여호와를 믿고자 작심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로움을 얻을 수 있는 종의 자세입니다(15:6).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입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종인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주인이 옳다고 믿고서 주인의 생각과 뜻을 쫓아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한 모든 것들은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4)    그런데 그러한 믿음은 개인의 내적인 측면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으로도 그 믿음의 모습이 드러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여호와신앙을 가지고 이방 땅에서 한평생 하나님의 선지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살아갔듯이(14:16-20, 20:7, 23:6) 성도들도 온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복음을 전하며 동시에 자신의 삶으로써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대승적(大乘的, 사회적인 큰 영향력까지 아우르는)인 입장에서 사도 베드로는 모든 성도들에게 너희 믿음덕을”(벧후1:5b) 더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덕에 지식을”(벧후1:5c);

1)   하나님신앙을 선민 유대인들에게 율법으로 교육시키고 있는 자들이 랍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 랍비들과 바리새인들이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선보이고 있다고 크게 질책하십니다(23). 그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인 눈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눈만 의식하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그러한 외식적(外飾的, 겉만 그럴 듯하게 장식하는)인 믿음생활을 백성들에게 가르치지 아니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올바른 지식을 가지라”(10:2)고 답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또한 어떠한 뜻과 생각을 가지신 분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무엇보다도,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4:24). 사람들의 중심까지 꿰뚫어 보시는 창조주이십니다(4:12-13).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매사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완전한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17:1);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대속의 인생을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를 묵상하라고 사도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벧후1:5c).

둘째로,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벧후1:6); 역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6. 지식에 절제를”(벧후1:6a); 하나님에 관한 영적인 지식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많은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1)    신비하고 사람들의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수준으로 표현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무조건 자신이 알고 있고 깨닫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부 백성들에게 한없이 쏟아 부을 일이 아닙니다.

2)    무엇보다도, 백성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설명하고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 요청됩니다. 필요하다면 세상적인 학문을 도구로 하여서라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너무 조급해 하지를 말고 진리의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차근차근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2)  절제에 인내를”(벧후1:6b); 그렇게 절제를 통하여 신중하고도 끈질기게 가르치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백성들에게 끈기 있게 가르치게 되면 성령님의 역사로 그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3)  인내에 경건을”(벧후1:6c);

1)    가르치는 자가 가장 범하기 쉬운 잘못이 소위  바담 풍과 바람 풍의 비유와 같은 것입니다. 선생이 자신은 바람 풍이라고 정확하게 발음을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비록 자신이 바담 풍이라고 잘못 발음하더라도 그것을 어김 없이 바람 풍으로 바르게 알아 들으라고 주문하는 것입니다.

2)    그것이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선생이 올바른 발음과 가르침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그것을 따라서 배우고 실천하는 법입니다;

 따라서 성경선생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믿음생활의 기본이 되고 있는 경건한 삶의 모범을 제자들에게 앞장 서서 보여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1:7);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7. 경건에 형제 우애를”(벧후1:7a);

1)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다른 것으로 보이기가 쉽습니다. 예를 들면, 십계명 가운데 제1-4계명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법이기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고 제5-10계명이 이웃과 관련된 명령이므로 이웃사랑이라고 그렇게 두 대목으로 나누어서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20:3-17).

2)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말씀을 예수님처럼 실천하게 되면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성도들이 몸으로 체득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12:30-31). 따라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은 별개가 아니고 마치 유기체와 같이 그것은 하나인 것입니다.

3)    그러한 맥락에서 하나님 앞에 경건이라고 하는 신앙생활은 형제사랑으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기고 있는 백성이라고 하면 당연히 그 경건의 결과가 하나님이 나처럼 똑같이 창조하신 형제를 나와 같이 사랑하는 형제사랑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2)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1:7b); 이웃사랑을 사도 베드로가 일부러 형제 우애와 형제사랑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을 통하여 특별히 형제사랑을 크게 강조하신 경우가 바로 마지막 유월절 만찬 도중에 세족식(洗足式, 발을 씻기는 의식)을 실시하신 직후입니다(13:12-15, 34-35). 어째서 잡혀 가시기 전에 그렇게 성찬과 세족식을 통하여 형제사랑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형제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를 미리 바라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하고 계시는데 그 사역의 현장에 모친과 형제들이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8:19).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서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치유사역을 함께 행하시고 계시기에 친형제들이 예수님께 접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모친과 친동생들이 찾아 왔다고 전갈을 주고 있습니다(8:20).

3)    그때 뜻밖의 말씀이 예수님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결심하는 이 자들이 곧 나의 진정한 형제들이다”(8:21 의역).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요한이 훗날 다음과 같이 그의 복음서 제1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4)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순교의 각오로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고 대속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동역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관계는 세상적인 형제관계 그 이상입니다. 영생의 천국에 함께 들어가서 영원히 형제로서 살아가게 되므로 그 관계는 당연히 혈통적인 형제나 친구 이상이 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형제 우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형제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교회를 튼튼하게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영성생활(Spiritual life)에 있어서 야곱의 사다리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창세기 제28장을 보면 집을 떠난 야곱이 북부 시리아 하란으로 가는 길에 벧엘에서 비박(bivouac, 텐트 없이 야영을 하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28:10-11). 그 밤의 꿈에 하늘이 열리고 긴 사다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사다리 끝 하늘에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계십니다(28:12-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언약을 그 손자인 야곱에게 승계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28:13-15). 이제부터 야곱은 언약의 상대방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천성으로 올라가는 그 믿음의 길을 마치 사다리를 올라가듯이 한 걸음 씩 영적으로 위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영성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천성으로 올라가는 야곱의 사다리를 타고서 계속 성화의 과정을 밟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가 진하게 풍기고 있는 사도 베드로의 권면의 말씀이 바로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신앙생활에서 믿음지식절제인내경건형제 우애사랑이라는 8단계를 착실하게 밟아 나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베드로의 8()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에서 큰 진보를 얻으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