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베드로후서 강해 제4강(벧후1:8-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20. 03:57

베드로후서 강해 제4(벧후1:8-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9 6()

 

신앙생활에 있어서 ‘8’(성도의 8가지의 거룩한 행실, 벧후1:5-7)이 있는 자와 없는 자와의 차이에 대하여(벧후1:8-9);

 

본문은 두 구절로 되어 있는 짧은 글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짧은 글 속에는 사도 베드로가 8가지 신성한 하나님의 성품을 얻게 되는 성도와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4가지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4가지의 내용을 먼저 알아봅니다;

(1)  첫째, 8가지의 성화(聖化, sanctification)를 흡족하게 이루게 되면(벧후1:8a) 성도는 비로서 영적인 눈을 뜨고서(벧후1:9a 반대해석)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알게 된다고 사도 베드로가 말하고 있습니다(벧후1:8b).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기 위하여 하나님자녀의 거룩한 성품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게으르지를 말고 더욱 정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벧전1:8c).  반대로 그러하지 못한 자는 영적인 소경으로 계속 지내게 됩니다(벧후1:9a).

(2)  둘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쫓아 만민을 구원하여 천국에서 함께 영생을 누리시기를 원하십니다(22:28-30, 28:18-20, 1:8). 그래서 그 일에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십니다. 그 모습을 그와 같은 8가지의 거룩한 성품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벧후1:8a&b). 그러므로 그러한 성품을 닮아가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며 그 일에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할 수가 있습니다(벧후1:8c). 반면에 그러한 성화의 노력이 없는 자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아니라 근시안(近視眼, a short eye)적으로 이기적인 선민구원과 현세적인 축복의 구원만을 추구할 따름이라고 사도 베드로가 지적하고 있습니다(벧후1:9b). 그러한 자는 예수님이 어떠한 구주이신지를 여전히 모르고 있는 마치 영적으로 소경과 같은 자입니다(벧후1:9a).

(3)  셋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하며 동시에 복음을 믿고서 살아가는 하나님자녀의 삶의  모습을 올바르게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큰 은혜가 계속 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성도들에게는 성령님께서 내주 역사하시며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중만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영적인 은혜가 임하고 있기에 성도는 자신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재삼 확인하고 주님께 감사하게 된다고 사도 베드로가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벧후1:9c 반대해석). 반면에 그러한 은혜가 없는 자들에게는 여전히 옛 죄가 다시 고개를 쳐들고서 영적인 타락을 부채질하게 되는 것입니다(벧후1:9c).

(4)  넷째, 복음전파와 성화에 동시에 헌신하는 성도가 믿음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자녀의 거룩한 모습을 구현하지 못한 채 단지 말로써만 복음을 전파한다고 하면 그 열매를 제대로 얻지를 못한다고 사도 베드로가 또한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벧후1:8d).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1:8);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벧후1:8a); 성도들이 거룩한 8단계의 영적 성숙의 사다리를 올라가게 되면 어떠한 기쁨과 열매를 얻게 될까요? 사도 베드로는 먼저 성도들이 하나님 자녀의 거룩한 삶의 모습을 이 세상에 흡족하게 보여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베드로가 그 점을 먼저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당면한 로마당국의 교회탄압과 성도들에 대한 박해를 이겨내기 위해서 그와 같은 성도들의 성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자신의 옛날 경험을 되새겨본다면 교회의 위기 가운데 성도들의 일부가 칼로써 로마제국에 맞서려고 시도할지도 모릅니다(26:52). 그렇게 되면 그 옛날 칼을 빼어 든 베드로 자신을 꾸중하시던 주님의 질책이 다시 초대교회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26:53-54).

2)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길에서 벗어나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은 비극을 사전에 예방하자면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하시고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거룩한 길을 제자인 성도들이 하나같이 성화의 모습으로 뒤따라가야만 합니다. 그 점을 상기시켜주고 있는 사도 베드로의 언급이 여기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벧후1:8a)이라고 하겠습니다.

(2)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벧후1:8b);

1)    예수님께서는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고 하는 천국복음으로 풀이하여 백성들에게 선포하시고 제자들에게 상세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게 말로써만 선포하고 가르쳐 주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살리고 치유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 말씀선포와 더불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에 합치하고 있는 것이므로 창조주의 능력이 그 말씀을 통하여 이 세상에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놀라운 치유의 능력이 말씀의 선포와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4:40, 5:17).

2)    더구나 예수님께서는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하는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 어떠하여야 하는지를 몸소 본보기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의 모습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그 삶의 모습을 성도들이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신이 제시하고 있는 영적인 성화의 8단계를 실천해야만 한다고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벧후1:8b). 그것이 예수님의 생애를 알고 배우며 그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제자들 곧 성도들의 기본적인 도리라고 하겠습니다(16:24).

(3)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1:8c); 열매가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하는 씨앗이 옥토(沃土, 비옥한 땅)에 떨어져야만 합니다(8:15);

1)    그런데 그러한 옥토가 귀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그대로 씨앗의 발아와 식물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세가지의 경우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8:12-14); ①첫째, 성도의 마음을 마귀가 완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②둘째, 믿음이 약하여 시련을 당하면 배교하고 맙니다. ③셋째, 세상적인 염려와 재물의 욕심 그리고 향락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2)    여기서 사도 베드로는 그 옥토가 바로 8가지 거룩한 성도의 행실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벧후1:8c). 구체적으로 ①첫째, 만민구원에 나서는 믿음의 행동을 보여주고, 올바른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증거하는 것입니다(벧후1:5). ②둘째, 자기 절제의 삶과 믿음의 인내 그리고 경건의 모습 등이 드러나야 합니다(벧후1:6). ③셋째, 우애가 있는 친형제의 모습과 성도들 사이의 형제사랑의 모습 등이 나타나야 합니다(벧후1:7). 그러한 부단한 성화의 노력이 없게 되면 성도라고 하더라도 천국복음이 자신의 삶을 통하여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이런 것이 없는 자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벧후1:9);

(1)  자기성화가 없이 말로써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도 없으며 열매도 없는 신앙집단만을 양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 안에서는 하나님자녀의 거룩한 성품이 사라지고 없습니다(벧후1:4-7).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의 도리도 발견할 수가 없게 됩니다(16:24). 따라서 말로써만 서로가 옳다고 다투게 되고 분쟁과 편가르기만이 성행하게 됩니다.

(2)  역사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히브리정경에 적혀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이기적으로 그리고 현세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만의 구원과 현세적인 제국의 축복을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후계자로 오시는 정치적인 메시아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고 있는 메시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모조리 물리치고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시온의 영광을 다시 온세상에 떨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민 유대인들의 잘못된 하나님신앙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진작에 선지자 이사야에게 그들은 마치 소경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6:9-10).

(3)  그 표현을 사도 베드로가 여기서 다시 사용하고 있습니다(벧후1:9a). 그런데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성도들 가운데 일부가 다시 할례와 율법 그리고 성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율법적인 준수도 있어야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초대교회 내의 혼란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가 여기서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벧후1:9b&c).

결론적으로, 오늘날의 교회에 있어서도 서로 옳다고 주장하면서 분쟁을 일삼고 있는 무리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축복사상으로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과 진배가 없습니다. 그러한 딱한 모습을 사도 베드로가 진작에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벧후1:9b&c)고 지적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정확하게 전하고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성도의 모습을 자신의 성화로써 보여주시는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