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강해 제1강(벧후1:1-전체)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년 9월 2일(토)
사도 베드로가 두번째 서신을 구술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벧후1:1-전체)
베드로가 그의 두번째 서신을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벧후3:1). 그것이 베드로후서입니다. 전서(前書, the first letter)와 비교할 때 후서(後書, the second letter)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다음과 같이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는 갑바도기아를 비롯한 소아시아의 동부와 북부의 초대교회의 성도들입니다(벧전1:1). 그에 비해서 베드로후서의 수신자는 처음부터 모든 초대교회의 성도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벧후1:1). 물론 베드로전서라고 하더라도 사도 베드로의 귀한 서신이므로 그 내용을 필사하여 모든 교회의 성도들이 돌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성경에 편집하여 누구나 읽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서신서라고 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그 서신을 작성할 때에는 그 수신자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사도 베드로가 처음 편지에 이어서 두번째 편지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본문 가운데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벧후3:1). 그리고 다시 편지를 보내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벧후1:14). 그에 따라 죽기 전에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공생애를 통하여 직접 배우고 또한 초대교회를 건설하면서 복음사역을 통하여 깨닫게 된 영적인 진리를 성도들에게 전해주어 교회에 유익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벧후1:13-15).
(3) 셋째, 베드로전서의 말미에서는 사도 베드로가 히브리말로 구술을 하고 그것을 헬라어로 실루아노가 적어서 서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벧전5:12). 그런데 후서에서는 그러한 표현이 없습니다. 이미 그 사실을 성도들이 모두 익히 알고 있으므로 재삼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후서에서는 전서와 달리 마지막 인사말과 문안인사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서를 기록할 때와 비교하여 사도 베드로의 주변에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시사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4) 넷째, 베드로후서의 내용상의 특징은 제1장 첫머리에서부터 다음과 같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벧후1:1);
1) 첫째, 시몬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평생 명심하고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인께서 무엇을 자신에게 원하시고 계시는가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그것을 실천하는 종으로서의 인생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둘째,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적인 주인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복음사역을 하시면서 종이 어떻게 주인을 섬기는지의 본보기를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철저하게 아버지 하나님의 종이셨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을 고집하지 아니하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이 땅에 대속자로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그 뜻만을 생각하면서 실천의 삶을 살아간 것입니다(요6:38-39).
3) 셋째, 시몬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면서 동시에 사도(使徒, apostl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님의 역사로 약 120명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큰 일 행하심을 증거하고 사도들이 앞장을 서서 초대교회를 예루살렘에서부터 건설했습니다. 그때부터 공생애를 통하여 예수님을 직접 스승으로 모시고 끝까지 복음사역을 함께한 사도들이 모든 초대교회와 성도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최종적인 유권해석의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몬 베드로는 자신처럼 모든 교회의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라고 사도의 권위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제1장 제1절의 구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벧후1:1a);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벧후1:1aa); 시몬 베드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되면 시몬 베드로는 종의 신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종이 자신이 옳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주인의 뜻과 어긋나고 있는 자신의 뜻을 밀어 부쳐서는 안됩니다. 철저하게 주인의 뜻을 묻고 그 뜻에 따라 실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의 믿음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성도들이 종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2) 둘째, 사도라고 하는 말도 본래 종으로서 심부름꾼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세상사람들에게 전하는 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도 올바르게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종이라고 하는 자신의 신분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3) 셋째, 그러나 사도는 초대교회의 건설에 가장 앞장을 선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따라서 사도는 교회의 운영과 복음의 해석에 있어서 가장 큰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도의 권위에 의지하여 지금 시몬 베드로는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면서 깨닫고 또한 실천하고 있는 것을 역시 예수님의 종인 여러 성도님들도 그대로 실천해주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2)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벧후1:1ab);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시몬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어 하는 내용은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벧후1:1ab)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의로움이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그 의로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들의 의로움을 내세우거나 그것을 실천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롬10:1-3).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의나 구주의 의로움과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의라고 하는 것은 ‘정의’(正義, justice)의 개념에 입각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하는 그것은 창조주의 ‘공의’(公義, righteousness)를 만족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의’라고 표현이 되고 있는 것은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내용에 따르게 되면,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바로 사람들의 정의와는 다른 공의라는 개념에 입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복음으로 설명하시고 그 실천을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바치신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종으로서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지 아니하면 결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3) 조금 풀이를 하여 설명을 해보자면, 사람들의 정의는 마치 선민구원사상과 같은 것입니다. 자기 집단만 구원을 받으면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한 집단 이기적인 생각으로 자신들만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집단과 집단 사이에 서로 자신들만의 정의를 주장하고 있으므로 서로의 이익이 달라서 전쟁을 불사하게 됩니다. 서로가 자신들의 정의를 내세우고 상대방을 죽이더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익숙한 ‘국가이익 지상주의’입니다.
4)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은 다릅니다. 모든 집단과 개인을 전부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정의와는 다른 공의의 정신입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를 돌보고 살릴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론이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으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로 희생하는 십자가의 산 제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마5:43-48, 요3:13-17, 롬12:1-2).
5) 그러므로 이제는 초대교회와 성도들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발현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실천이 되고 있는 그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온세상에 전하고 스스로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움을 주십니다. 그 도움이란 사도 바울의 발견에 따르게 되면, 예수님께서 얻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부활의 영을 성령님을 통하여 성도들에게도 보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둘째로,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후1:1b);
(1) 여기서 ‘동일하게’라는 단어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께서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 모두를 돌보고 하나같이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십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보고 자신이 주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을 임재시켜서 내주 역사하게 하십니다. 그 은혜로 성도들이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대속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후1:1b)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 자신의 깨달음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1장의 다음 말씀,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벧후1:13-14)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는 베드로가 평생 자신이 깨닫고 실천한 내용을 자세하게 성도들에게 유언삼아 가르쳐주고자 합니다. 한 마디로,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 시몬의 유언 그것이 바로 베드로후서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시몬 베드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그 종으로서 만민구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모든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그 주인의 뜻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제자들이 초대교회를 세우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적극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어 놓고서 자신들의 안전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땅끝까지 전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성령님과 주님의 도우심이 그들에게 역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도 그러한 사실을 깨닫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지 아니하고 모든 일을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의 뜻을 따라서 실천하기만 하면 성령님의 보호하심과 역사하심이 강력할 것입니다. 당연히 로마당국의 핍박과 환난도 거뜬하게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도 베드로의 음성이 지금도 본문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베드로의 깨달음과 같이 사람들의 좁은 정의가 아니라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예수님처럼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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