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베드로후서 강해 제6강(벧후1:12-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20. 14:35

베드로후서 강해 제6(벧후1:12-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9 9()

 

베드로후서는 사도 베드로의 신명기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벧후1:12-14)

 

히브리정경의 첫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세오경의 마지막 책이 신명기(申命記, Deuteronomy)입니다. 그 책의 이름 Deuteronomy의 뜻은 지금까지 모세가 말한 내용을 정리하여 다시 한번 말해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지도자였던 모세는 광야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최초의 신정국가(神政國家)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없이 준수할 수 있도록 일종의 법률의 형태로 공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율법’(Law)입니다.  

그렇지만 출애굽의 지도자인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20:12). 말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모세는(32:50-52) 지금까지 백성들에게 전해준 율법의 말씀을 요약하고 그 동안의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추려서 다시 한번 전해주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은 백성들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하지만 부디 자신의 유언과도 같은 이 기록만은 가지고 들어가서 매일같이 읽고 그 뜻대로 실천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명기의 내용입니다.

그와 같은 모세의 모습을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의 글을 통하여 다시 보게 됩니다;

(1)  첫째, 시몬 베드로는 이제 자신의 순교가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있습니다(벧후1:13).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전해준 예수님에 관한 소중한 이야기와 귀한 깨달음을 부디 잊지 말고 다시 기억해주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벧후1:12).

(2)  둘째, 베드로는 사도로서의 자신의 사명을 끝내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순교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벧후1:14). 그 말의 뜻은 여러 성도님들도 자신이 전해준 당부의 말씀을 잊지말고 끝까지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감으로써 주님께서 예언하신 천국에의 입성을 이루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벧후1:12);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벧후1:12a);

1)    베드로후서의 내용을 구술하면서 사도 베드로가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두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이라는 것입니다(벧후1:1).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서 신실한 종으로 복음사역을 해야만 합니다(벧후1:1-3). ②또 하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벧후1:4). 따라서 세상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자신들의 성화된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벧후1:4-9).  

2)    그리스도의 종인 성도들이 신실하게 주님의 뜻을 따라 복음사역을 행하고 하나님자녀로서 성화된 모습을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되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영생구원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미래가 전개되는 것입니다(벧후1:10-11). 사도 베드로는 그와 같은 내용들을 자신이 본문에 앞서 설명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내용을 벌써 성도들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벧후1:12aa)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3)    그 다음에 베드로는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벧후1:12ab)라고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베드로 자신이 전해준 그대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종의 모습과 하나님자녀의 경건한 모습을 세상사람들에게 진실되게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 칭찬의 말씀입니다. 그와 같이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를 실천하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주마가편’(走馬加鞭) 곧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심정으로 사도 베드로가 한가지 말씀을 덧붙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2)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벧후1:12b);

1)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지만 계속 잘하기 위해서는 한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그것은 종의 신분과 하나님자녀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도록 매일 그러한 인식과 자각을 새롭게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여전히 세상과 타협하여 살아가기를 소원하고 있는 육신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의 각성이 부족하게 되면 순식간에 타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2)    그러한 성도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시몬 베드로입니다. 그는 스승이신 예수님이 스스로 대제사장이 보낸 하수인들에게 붙잡혀 가시자 그 밤에 3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살리겠다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22:54-62). 따라서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벧후1:12b)고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벧후1:13); 성도가 몸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가지 중요성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전도여행을 할 수가 있으며 복음사역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16:27-31). 똑 같은 육신을 입고 있기에 세상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실감나게 전해줄 수가 있습니다. 동등한 인간의 위치에서 성육신하시고 공생애를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증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약한 육신을 지니고 살아가면서 수 많은 갈등 가운데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성품과 경건한 영적인 삶을 구현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성화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세상사람들이 성도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되고 또한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3)  그러한 구체적인 모범의 행위는 오로지 성도가 육신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일단 향년을 마치고 연약한 육신을 벗어버리게 되면 다시는 그와 같은 갈등의 모습이나 전도의 여행은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벧후1:1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1:23-24).

셋째로,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벧후1:14);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벧후1:14a); 시몬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두가지 지시를 하십니다; ①하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성도들을 목양하는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21:15-17). ②또 하나는 순교를 당할 때까지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21:18-19).

1)    돌이켜보면, 베드로는 3 6개월간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생애를 지냈습니다.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 고생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것)하면서 전도여행과 복음사역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무엇을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몰랐습니다. 다른 사도나 제자들처럼 단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外勢)를 물리치고 선민 이스라엘의 제국을 재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은 선민 유대인들이 소원하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의 모습과 동일한 것입니다.

2)    그러나 예수님의 공생애의 끝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반대입니다. 자신을 배척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 그리고 원수와 같은 이방인들을 모두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에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하나님의 의도와 예수님의 희생의 의미를 공생애를 함께한 사도와 제자들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모두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커서 예수님의 곁을 떠나버렸습니다(14:50).

3)    그런데 사도들과 제자들의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두번째의 충격이 그들에게 찾아왔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무기력한 예수님,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실패자 그리스도가 3일만에 무덤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28:1-10). 갈릴리로 사도들을 찾아오신 주님께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복음의 이치를 다시 한번 설명해 주셨습니다(24:44-49, 21:1-19). 그리고 베드로와 여러 사도들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성도들을 양육하라고 목자로 발령하신 것입니다(28:16-20).

4)    주님의 용서와 가르치심 그리고 새로운 사명의 부여 앞에 사도와 제자들은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다시는 주님을 배척하거나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답게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와 같이 주님의 지시사항을 명심하고 일구월심(日久月深, 날이 갈수록 더 간절함) 한 평생을 바친 사도 베드로입니다. 이제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자신과 같은 그러한 각오와 심정이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주님의 그 지시사항이 곧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지상명령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가 여기서 그 점을 더욱 강조하는 이유가 그 다음 문단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2)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벧후1:14b);

1)    때와 기한은 본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승천하시기 전에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7-8).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때나 인생의 시기나 모두 하나님께서 그 기간을 정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도와 제자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소관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말고 오로지 성령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신실한 종으로서 남은 생애를 살아가면 됩니다.

2)    그런데 여기서 사도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의 예언 그대로(21:18-19) 자신에게 순교의 날이 임박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벧후1:14b);. 하나님의 비밀에 속하는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어떻게 예지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1:7) 그 이유는 아무래도 로마시에(벧전5:13) 함께 갇혀 있는 초대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네로 황제에 의하여 먼저 순교를 당한 자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사도 베드로도 자신의 차례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벧후1:14b).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성도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매일같이 각오를 새로이 하면서 복음전파와 예수님의 제자 양성에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순교의 자리에 이를 때까지 사도 베드로처럼 목자로 그리고 선교사로 사명을 감당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신명기를 작성하는 그 심정으로 사도 베드로가 자신의 순교가 임박했음을 감지하면서 유언삼아 이 글을 구술(口述, 입으로 말해 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사도 베드로의 유언을 듣는 심정으로 이글을 다시 음미하시면서 신실한 예수님의 종으로 끝까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여러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