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 제34강(벧전5: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년 8월 27일(주일)
사도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장로들에게 주고 있는 권면 8가지에 대하여(벧전5:1-4);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장로들에게 8가지의 권면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자신을 함께 장로가 된 자로 여겨야 합니다(벧전5:1a). 스스로 자신이 사도이다 또는 장로 중의 장로이다고 하는 우월의식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교회 내 지도자들의 화합과 단합을 위해서는 함께 치리(治理, 교회 내에서 말씀대로 다스리는 일)하며 복음사역을 한다고 하는 공동의식과 동역자 정신을 지니고 있어야만 합니다.
(2) 둘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벧전5:1b). 자신의 삶으로 장로는 대속의 고난이 무엇인가를 성도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본보기가 없으면 성도들의 존경을 받지를 못할 것입니다.
(3) 셋째, 장로들은 누구보다도 고난의 결과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어떠한 영광을 얻게 되는지를 확실하게 믿고 있어야 합니다(벧전5:1c). 주님께서 재림하실 그때를 기다리며 그때까지 자신의 고난에 대하여 이 세상에서 현세적으로 어떠한 보상과 영광을 얻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4) 넷째, 장로들은 교회의 양무리를 치는 목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벧전5:2a). 오늘날에는 목사와 장로가 그 직분이 다르지만 초대교회에 있어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생전에 사도로 세움을 받은 자들이 있고 초대교회에서 세움을 받은 후속사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는 소수입니다. 그 대신에 예수님의 동생을 비롯하여 초대교회에서 장로로 세움을 받게 되는 자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식구들도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들만으로 천국복음을 가르치는 일이 벅차게 된 지가 오래입니다. 그 결과 사도들과 장로들은 한 마음으로 모두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르치는 일과 치리하는 일에 매어 달리게 된 것입니다.
(5) 다섯째, 장로들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먼저 주님의 뜻을 파악해야 합니다(벧전5:2b). 그리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벧전5:2c). 결코 억지로 하는 외식적인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6) 여섯째, 장로들은 교회 내에서 비즈니스를 해서는 안됩니다(벧전5:2d). 자신의 이익과 유익 보다는 주님의 이익과 성도들의 유익을 먼저 도모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전제로 하여 기꺼이 섬기는 것입니다.
(7) 일곱째, 장로의 권위를 내세우며 성도들에게 강요하는 자세를 보여서는 안됩니다(벧전5:3). 마치 공생애 당시의 예수님처럼 철저하게 몸소 복음사역과 전도여행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생의 자세이며 목자의 태도입니다.
(8) 여덟째, 장로가 교회에서 성도라고 하는 양떼를 치는 목자라면 목자의 직분을 위임하신 주님은 목자장이십니다. 그러므로 매사 목자의 사역에 대하여 평가를 하시고 감독을 하십니다. 그 결과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에는 신실하게 일한 장로들이 영생의 영광의 관을 그 머리에 쓰게 될 것입니다(벧전5:4). 그것은 누가복음 제22장 제28-30절에 벌써 기록이 되어 있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이상과 같은 내용들을 음미하면서 이제부터 빠진 내용이 없는지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기타의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벧전5:1);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벧전5:1a);
1) 초대교회에서 사도와 장로의 수에 있어서 그 차이가 자꾸만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수는 후속사도까지 포함하여 전체가 14명에 불과합니다. 더 이상 늘어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장로들의 수는 자꾸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냥 버려 두게 되면 사도와 장로 사이에 만약 알력이 발생하게 되면 교회가 둘로 갈라질 분열의 위기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사전에 분열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자신이 공생애 기간 동안에 예수님을 직접 수행한 대단한 사도라는 권위를 내려놓고 장로들과 함께 교회의 직분을 나누어 담당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장로에 해당한다고 말하여 하나의 일체감과 동역자 의식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도 베드로의 입장을 사도 요한이 따르고 있습니다(요이1:1, 요삼1:1). 그 결과 초대교회는 분열을 예방하고 하나의 교회로 급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혈통파인 ‘시아파’와 제자파인 ‘수니파’로 오늘날까지 갈라져 있는 ‘회교’(回敎)와는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2)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때에 남아 있는 사도는 11명에 불과합니다. 가룟 유다가 이미 자살을 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마27:5).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공생애를 지내며 복음사역을 같이 한 제자 가운데 개근(皆勤, 전부 출석함)은 아니더라도 정근(精勤, 한 두 번만 빠지고 전부 출석함)은 한 자 두 사람을 추천하여 그 가운데 한 사람을 사도들이 기도하면서 제비 뽑았습니다(행1:21-26a). 그렇게 하여 12사도의 한 사람으로 보충이 된 자가 ‘맛디아’입니다(행1:26b). 그 다음에는 의사 누가가 초대교회의 역사서인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이방인 교회인 시리아의 안디옥교회에서 서방선교를 위하여 파견한 바나바와 사울을 역시 사도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행14:3). 그 두사람이 기존의 12사도에 첨가가 된 두 사람의 후속사도입니다. 이상과 같이 사도는 초대교회에서 14명에 불과합니다.
3) 의사 누가는 예루살렘교회에서 개최가 된 최초의 총회의 모습을 사도행전 제15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교회의 유력인사는 사도 베드로 외에도 몇 사람의 장로들입니다. 베드로에 이어서 예루살렘교회의 총회장이 되고 있는 야고보, 그 다음 총회장으로 짐작이 되고 있는 시므온 등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행15:7, 13-14). 예수님의 바로 아래 동생인 야고보(약1:1) 그리고 막내동생인 유다(유1:1, 마13:55), 사촌동생인 시므온(눅24:13-18) 등이 예루살렘교회의 기둥역할을 하고 있는 장로들로 보입니다. 그리고 서방선교의 모교회가 되고 있는 시리아의 안디옥교회에서도 장로들의 이름이 사도행전 제13장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므온과 루기오, 헤롯의 젖동생인 마나엔 등을 장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행13:1). 더구나 이방 땅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예수님의 제자를 양육하고 있는 인물들이 역시 장로의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롬16:21, 23, 몬1:1-2). 그렇게 세월이 지나갈수록 사도들을 대신하여 교회를 치리하고 있는 장로의 수는 자꾸만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벧전5:1b);
1)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복음사역을 하면서 공생애를 같이한 사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핍박을 받으며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사실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난의 증거자에서 참여자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즉, 로마당국의 박해를 맞이하여 사도 베드로는 스스로 순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제는 그리스도의 그 고난에 참여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초대교회의 장로들은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을 하신 후에 영적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의 장로들이 육신적으로 본 적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어떻게 성도들에게 증거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로마당국의 핍박과 박해 가운데 당하는 고난을 예수님처럼 대속의 자세로 이겨내는 것입니다.
(3)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벧전5:1c);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박해하고 있는 로마당국에 대하여 장로들이 앞장을 서서 대속의 자세로 아버지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린다고 하면 새로운 역사가 발생할 것입니다. 마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장로들이 부디 로마의 권력자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회개시켜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역사해 달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간구하면서 자신들의 십자가를 진다고 하면 장차 나타날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벧전5:2); 역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벧전5:2a);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바로 양떼와 같은 성도들에게 생명의 꼴을 먹이며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요10:10-11). 그리고 부활하신 다음에는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목자로 발령하십니다. 그때 사도 베드로에게 세번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21:15-17).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리스도에게 빚진 그 사랑의 빚을 성도들의 영적인 양육에 힘써 갚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억지로 성도들의 믿음의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에게 진 그 사랑의 빚을 갚는 즐거운 마음으로 생명의 꼴을 성도들에게 먹여 주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벧전5:2b); 성도들에게 생명의 꼴을 먹이는 작업은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목자로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일생에서 배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를 성경말씀을 보면서 끊임없이 묵상해야만 합니다. 모르는 대목에 대해서는 깨달음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 결과 얻은 풍성한 꼴을 기쁜 마음으로 성도들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는 믿음의 성숙을 가져오며 동시에 성도들에게는 영적인 성장을 가지고 오는 것이므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행하는 것입니다.
(3)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벧전5:2c);
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에 두 차례 예루살렘성전의 청결을 위하여 채찍을 휘두르십니다(요2:13-17, 마21:12-13). 헤롯의 왕가가 예루살렘성전을 증축한다고 하면서 그 재원의 일부를 마련하기 위하여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대 공회에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뜰에서 제물의 장사와 환전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장사치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 권리금과 이익의 일부를 환수하여 공사대금에 충당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요2:20).
2)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대 공회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서 그 가운데 일부를 자신들의 조직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속사정을 짐작하신 예수님께서 대노하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특히 이방인들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예루살렘성전과 성막 사이에 설치를 하도록 조치하였는데 그곳에서 장사치들이 입주를 하고 있으므로 이제는 이방인들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없기 때문입니다(막11:17).
3) 선민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부득이한 조치로 보입니다. 그러나 만민구원을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선민 유대인들이 선민만의 구원사상에 입각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는 집에서는 일체 더러운 이익을 취하는 장사행위를 하지말라고 못을 박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요2:16, 벧전5:2c).
셋째로,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5:3-4);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3);
1) 초대교회가 성장할수록 직분이 분화가 되고 있습니다. 시리아 안디옥교회와 같은 경우에는 서방선교를 위하여 선교사를 내보내어 해외에 많은 지교회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선교의 전진기지이며 모교회로서의 역할을 단단히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 따른 선교조직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2) 초대교회 역시 하나의 큰 조직체이므로 업무의 분화에 따라서 수직적인 조직과 수평적인 조직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직분에 따라서는 전문성이 요구되기도 하고 감독하는 지휘기관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로 거대해지고 있는 교회라는 조직체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 장로들은 감독기능을 강화하고 있으며 수하의 직분자들을 마치 자신의 일꾼처럼 지휘하는 일이 자꾸만 많아지고 있습니다.
3) 그것은 일찍이 예수님과 함께 3년 6개월간 복음사역을 하면서 공생애를 같이 지낸 바 있는 사도 베드로의 생리에는 맞지가 않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그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찍 교회조직을 만드시고 직접 감독과 지휘를 하지 아니하신 것일까요? 지난 30년 동안 성령님의 역사로 발생하고 성장한 초대교회의 거대한 조직적인 모습이 베드로에게 있어서는 낯설기만 합니다. 그 옛날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그 따뜻한 마음의 교류와 인간관계가 자꾸만 사라지고 있습니다.
4)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장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날로 거대해지고 있는 교회라는 조직체를 잘 다스리고 치리하는 것이 장로의 사역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 옛날 예수님과 사도들이 사제지간이 되어 함께 살아가면서 복음을 배우고 실습을 한 그러한 모형이 교회 안에서도 장로들과 직분자들 사이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장로들은 교회라는 하나의 조직을 이끌어 감에 있어서 명령하고 지시하기에 앞서서 스스로 직분자의 삶과 성도의 삶이란 먼저 희생하고 헌신하며 다른 성도들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는 모범을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희생적인 솔선수범과 헌신적인 모범이 장로들에게서 발견이 되지 아니하게 되면 교회의 조직도 성도들도 주님의 손과 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벧전5:3 의역).
(2)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5:4);
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사시면서 수많은 제자들을 직접 지휘하지 아니하십니다. 중간계급으로 12사도를 선발하여 그들에게 12분류가 된 제자들을 지휘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예수님께서 함께 먹고 자고 전도여행을 하면서 같이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 제자들은 12사도입니다. 그 12명이라고 하는 사도의 수가 한 사람의 지휘관이 감독하고 스승의 본을 보일 수 있는 최대치의 부하의 수라고 하겠습니다.
2) 그러므로 교회의 장로들도 모든 성도들의 일에 간섭하고 감독을 하며 치리를 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수하만을 두고 제자로 양성했으므로 장로들도 그 숫자 안에서 모범을 통하여 후계자를 키워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초대교회의 장로들이 교회 내에서 각자 12명의 직분자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잘 양육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 날 훌륭한 목자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벧전5:4).
3) 마지막으로 사도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주고 있는 권면이 다음과 같습니다; “목자장이신 주님께서 자신의 양떼를 치도록 임명한 장로들을 언제나 지켜 보시며 불시에 회계를 하시기 위하여 오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치 5달란트를 나누어 주신 주인께서 청지기들에게 중간계산을 하듯이 그렇게 주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계산을 하실 것입니다. 그때 항상 주님께서 언제라도 찾아오실 것임을 염두에 두고서 신실하게 사명을 감당한 종은 큰 칭찬을 얻으며 영생의 큰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마25:21). 그것이 결코 시들지 아니하는 천국의 기업을 얻는 길입니다(벧전5:4)”.
결론적으로, 사도 베드로가 주님을 자신의 목자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 자신을 목자로 발령하시면서 주님의 양떼를 치고 생명의 꼴을 먹이라고 위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재림하셔서 베드로가 목자로서의 소임을 잘 했는지 평가를 하실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롯하여 12명의 사도들을 어떻게 제자로 양육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초대교회의 장로들에게 다음 세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이 함께 먹고 마시며 복음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인 베드로도 장로들에게 자신의 사도직의 존엄성을 지위의 높음으로 보이게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다같은 장로로서 함께 교회에서 후진양성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벧전5:1).
(2) 둘째,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믿음생활의 본을 제자들에게 보이십니다. 그와 같이 사도 베드로도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복음생활의 본을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장로들에게도 그렇게 거룩한 성도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교회조직을 이끌어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벧전5:2-3).
(3) 셋째, 목자장이신 주님께서 불시에 재림하셔서 목자들에게 회계의 자리에 나아오라고 하실 것임을 사도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말씀사역과 치리를 책임지고 있는 장로들은 늘 그때를 대비하면서 부지런하고도 신실하게 영적인 리더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결코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 공생애가 될 것입니다(벧전5:4).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러한 영생의 면류관을 얻으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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