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베드로전서 강해 제33강(벧전4:17-1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14. 04:07

베드로전서 강해 제33(벧전4:17-1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8 26()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먼저 시작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벧전4:17-19)

 

사도 베드로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그 옛날 베드로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칼을 빼어 로마병정과 대제사장의 하인들에게 휘두르면서 스승이신 예수님의 체포를 막고자 나선 그때의 상황과 깊이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상호대조(相互對照, mutual contrast)를 하면서 비교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만약 그 옛날 사도 베드로가 칼을 휘두른 것처럼(26:51)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무장을 하고서 자신들을 탄압하고 있는 로마당국에 맞선다고 하면 어떠한 결과가 역사 가운데 초래가 될까요?(벧전4:17)

1)    사도 베드로는 그러한 경우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며(5:44)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라고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19:6) 어기는 것이 되므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먼저 임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벧전4:17a).

2)    그렇게 하나님의 심판이 교회에서부터 시작되게 되면 하나님의 복음을 배척하고 있는 이방인들은 더 끔찍한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벧전4:17b). 그것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견해와 같은 것입니다(25:29).

(2)  둘째, 만약 그 옛날 사도 베드로가 스승이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서 자신의 목숨을 살리겠다고 도망을 친 것처럼(26:69-75)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로마당국에 대하여 자신들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고서 모두 교회를 떠나버린다면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는 것일까요?(벧전4:18)

1)    사도들이 모두 스승님을 유대교지도자들의 손에 버리고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14:50).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유대교의 적으로 정죄가 되고 로마총독에 의하여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서 로마제국의 반역자로 십자가에서 처형이 되고 맙니다(26:65-66, 27:24-50). 사도들은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찾아 오시자 그때서야 회개를 하고서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게 됩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겨우 의인이 되고 구원을 받은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벧전4:18a).

2)    이제 로마당국의 박해에 즈음하여 성도들이 자신들의 교회를 버리고 모두 제 목숨을 살리겠다고 도망을 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이 그 옛날 사도들처럼 훗날 다시 회개한다고 하더라도 참으로 겨우 구원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성도의 모습을 먼저 보게 된 이방인들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들은 참된 예수님의 제자다운 믿음의 자리 곧 대속의 삶의 모습으로 나아가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입니다(벧전4:18b).

(3)  셋째, 만약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 성도들과 함께 그 옛날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처럼 스스로 칼을 버리고 순순히 체포를 당하며 로마제국의 모든 핍박과 고난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감수하게 되면(26:52-56) 어떠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벧전4:19) 사도 베드로는 한 마디로 그 답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감수하는 성도들은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예수님처럼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고 바치는 것이므로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역사에 반드시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벧전4:19 의역).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벧전4:17);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세상의 종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이 되는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5:29). 이방인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 유대인들의 도성인 예루살렘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벧전4:17a).

(2)  세상에서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하는 백성이 선민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써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그들의 땅이 초토화가 되고 그곳에서 쫓겨나게 되는 비극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그동안 제멋대로 살아오고 있는 이방인들의 나라들은 도대체 어떠한 재앙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는 것일까요?(벧전4:17b) 초대교회를 박해하고 있는 로마제국의 예만 들어 봅니다. 실제로 주후 5세기에 그 찬란하고도 거대한 서쪽의 로마제국이 유목민족인 고트족과 반달족의 침입 및 그들 용병들의 반란으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3)  정신이 번쩍 나는 두려운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이 당하는 핍박과 환난을 바라보고서 이방인들이 정신을 차려야만 합니다. 그것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심판과 재앙의 순서가 선민에서 이방인으로 진행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로마당국도 초대교회와 성도들을 탄압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 박해에 몇 곱을 곱하여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심판이 자신들의 제국에 밀어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벧전4:18);

(1)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스승이신 예수님 앞에 서면 죄인이라는 사실을 여러 번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1)    첫째, 갈릴리 호수에서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그물을 던졌을 때 두 배에 가득 실을 만한 어획이 있게 되는 현실을 보고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따라서 한갓 피조물이며 죄인인 자신을 떠나 달라고 간청했습니다(5:8).

2)    둘째, 사도 베드로는 스승님을 버리고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습니다(22:33). 하지만 그 맹세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게 됩니다. 전직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으로 끌려가신 예수님을 멀찍이 뒤쫓아서 베드로는 그 집의 뜰에 들어갑니다(18:15-16). 그때 자신의 인상착의를 알고 있는 그 집 종들의 추궁에 대하여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차례나 거짓말을 하고서 겨우 그 자리를 벗어난 것입니다(22:54-60). 그는 자신이 여전히 죄인임을 알고서 후회의 눈물을 흘립니다(22:61-62).

3)    셋째,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3일만에 무덤속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십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어로작업을 다시 하고 있는 사도들을 찾아오십니다(21:2-11).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할 말이 없습니다(21:15-16). 죄인은 유구무언(有口無言, 입이 있지만 할말이 없음)입니다. 그 속사정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양을 치라고 최종적으로 목자로 발령을 내십니다(21:17).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주님과 성령님의 은혜로 순교의 자리에까지 이르도록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할 것임을 예언의 말씀으로 주십니다(21:18-19).

(2)  그러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도 베드로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지금 로마당국으로부터 핍박과 환난 가운데 흔들리고 있는 초대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도 베드로 자신처럼 그렇게 예수님을 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겠다고 도망을 치는 잘못을 범하여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신앙인들이 되지를 마십시오.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시면 주님께서 그리고 성령님께서 그 연약한 믿음을 붙들어 주십니다.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겨우 구원을 받는 부끄러운 성도들이 된다고 하면 죄인과 이방인들 곧 훗날 회개하고 주님을 믿게 되는 새로운 성도들에게 결코 좋은 선배의 모범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벧전4:18).

셋째로,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벧전4:19);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벧전4:19a);

1)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성도들도 예수님처럼 고난을 당하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섭리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벧전4:19a). 그 이유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다가 그 때문에 고난을 당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의 영광에 참여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2)    그와 같은 이치를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일러 주십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알기 쉽게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7-18).

(2)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벧전4:19b);

1)    성도들이 로마당국의 박해를 장차 놀라운 영생의 영광을 얻기 위한 절차적인 고난으로 알고 순교의 마음가짐으로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반드시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실 때 가지신 그 마음가짐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베드로는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벧전4:19b)라고 여기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2)    그 말의 뜻을 복음서에서 찾아보면,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핍박하고 있는 자들을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고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고 있는 엄청난 범죄를 행하고 있는 것이므로 부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하게 보시고 그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간구를 친히 드리신 것입니다(23:34). 

3)    그것이 원수의 생명까지 살리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선한 행위입니다(벧전4:19b).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원수의 생명까지 살리고자 하는 중보의 기도를 드릴 때에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훗날 그들의 역사 가운데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후 324년에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게 되는 기적이 그 땅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3)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벧전4:19c);

1)    예수님께서는 대속의 십자가 고난을 당하실 때에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부디 회개시키고 구원해 달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셨습니다. 그렇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선을 행하면서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십니다. 그 결과 그 영혼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입니다(벧전4:19c).

2)    그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성도들이 로마당국의 박해를 당하면서도 그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린다고 하면 새로운 역사가 발생할 것입니다. 미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시키신 것처럼 순교의 고난을 당한 성도들을 먼저 영생으로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박해를 하는 자들을 회개시키고 그 생명을 역시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예수님처럼 살아가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당함에 있어서도 예수님께서 어떠한 고난을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셨는지를 생각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영혼을 받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떠한 부활의 영광을 그리스도에게 주셨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함에 있어서도 예수님처럼 박해하는 자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영혼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부디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한 성도들의 중보의 기도가 놀라운 미래의 역사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만들고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세월을 생명을 살리는 선함으로 통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결과 아무쪼록 영생의 부활에 참여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