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 4. 09:34

7세기의 222(손진길 소설)

 

백제의 왕도인 사비성(泗沘城)안에는 청소년들에게 무예를 가르치는 도장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 귀족의 자제들이 가장 많이 등록하고 있는 유명한 도장의 이름이 곡나(谷那)’이다. 그 도장의 관장 이름이 곡나진수(谷那晉首)이다;

곡나진수는 백제의 귀족가문 그것도 부유한 집안의 자제이다. 그러한 신분의 곡나진수가 몸소 도장을 개설하고 제자를 기르고 있는 것은 그 나름대로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이유는 그가 학문보다는 무예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수련한 무예를 뛰어난 젊은이를 선발하여 전수하고자 하는 것이다.

두번째의 이유는 백제조정이 신라나 고구려에 비하여 젊은 세대에게 무예를 전수하는데 있어서 소극적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신라에서는 조정이 앞장서서 화랑도를 장려하고 있다;

 고구려에서도 제도적으로 조의를 길러내고 있다;

 그런데 백제에서는 그와 같은 조직적인 활동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백제의 귀족 집안의 자제로서 무예가 뛰어난 곡나진수가 손수 도장을 개설하고 후진양성에 나선 것이다. 그의 아우인 곡나진영(谷那晉榮) 또한 무예가로서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따라서 곡나진수 관장은 아우 곡나진영에게 사범의 일을 맡기고 있다.

일단 진영 사범이 3년간 가르쳐서 우수한 자질을 보이고 있는 제자가 있으면 관장인 형 진수에게 인계한다. 그때부터 곡나진수가 그들을 자신의 제자로 삼아 7년간 무예를 전수한다. 그러므로 곡나도장에서 수련하는 기간이 10년이다.  

그런데 이호(二虎)좌백무영 그리고 이룡(二龍)기룡책귀는 모두 무예에 자질을 보여서 처음 3년간은 진영 사범에게서 배웠으나 4년전부터는 진수 관장에게서 직접 무예를 배우고 있다;

 요컨대 그들 4총사는 모두 사비성에서 뛰어난 무예가인 곡나진수의 제자들인 것이다.   

하지만 좌백책귀의 경우에는 동무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하고 있는 사부가 따로 있다. 특히 동무들이 좌호(左虎)라고 부르고 있는 좌백은 그 신분이 계백장군 곧 부여승의 친동생이다.

그런데 좌백보다 23살이나 연상인 큰 형 계백이 젊은 시절 깊은 산속에서 홀로 무예수련을 하다가 이름을 밝히지 아니하는 무승(武僧)을 만난 적이 있다. 덩치가 큰 계백만큼 그 무승도 몸집이 대단했다. 그리고 용력도 계백 못지 아니하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자 두 사람은 호승심이 일어나서 차제에 무예실력을 한번 겨루어 보기로 한다. 계백과 익명의 무승은 하루 종일 손속을 겨루었으나 승부가 나지 아니한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이다. 그때 계백은 그 무승의 무예실력이 자신과 엇비슷한 것으로 처음에는 판단했다;

그러나 이튿날에도 계속 비기기만 하자 이상한 생각이 든다; ‘이상하다. 무승은 꼭 나만큼 진기를 사용하고 비슷한 수법만 구사하고 있다. 분명히 이 자는 내가 모르고 있는 수법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 그것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일까?... ‘.

상당히 지친 계백이 잠시 쉬자고 말한 다음에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상대방 무승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다. 그때서야 그 무승의 나이가 계백 자신보다 한참 연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깜짝 놀라서 계백이 말한다; “스님, 이제 보니 저보다 훨씬 연상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지쳤지만 스님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틀 간의 승부는 벌써 제가 진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스님께서는 일부러 지금까지 경기를 계속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

그 말을 듣자 그 나이를 알 수가 없는 무승이 웃음기를 띠면서 계백에게 말한다; “허허허, 무예를 겨루는데 있어서 나이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겨루어 보니 그대의 무예는 젊은 나이에 비하여 엄청난 성취를 보이고 있군요! 내가 탄복을 했어요. 내가 그대와 같은 나이였을 때에는 그 정도의 성취를 얻지 못했지요. 그런데 이것도 인연이니 차제에 내가 몇가지 수법을 알려드리지요!... “.

끝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아니한 그 무승이 돌연 자리에서 털고 일어난다. 그리고 계백이 지난 십년동안 전혀 배워보지 못한 무예를 선보이고 있다;

 그것은 계백이 배운 호흡법과 상당히 다른 방법으로 기력을 운용하고 있는 무술이다. 일단 권법을 선보인 다음에는 칼을 들고서 다시 한번 시연을 한다.

계백은 너무나 귀한 인연이라 그 무승의 손과 발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아니하려고 엄청 애를 쓴다. 그러나 모두 기억할 수가 없다. 따라서 계백이 진지하게 청을 한다; “스님, 후배는 머리가 둔합니다. 부디 한번만 더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그 기력의 운용법도 가르쳐 주십시오. 제자가 감히 간청을 드립니다!... “.

그 말을 듣자 그 무승이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 내가 이틀간 그대와 겨루면서도 이름을 묻지 아니했군요. 내가 한번 더 보여줄 터이니 그 대신 내게 젊은이 이름을 알려주세요, 허허허그리고 자신을 제자라고 말하니 내가 호흡법도 알려주지 아니할 도리가 없군요, 허허허… “.

그제서야 계백이 선 자리에서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허리를 깊숙하게 굽힌 채 말한다; “저는 사비성에 살고 있는 계백이라고 합니다. 저를 제자로 여기시고 호흡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씀하시니 실로 감격스럽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법명이 무엇인지요?... “.

그 말에 그 무승이 또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 나는 젊은 시절 출가할 때에 속세의 이름을 버렸어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 불도와 무도를 모두 깨쳤을 때에는 나의 법명까지 잊어버렸어요. 지금은 그저 삼천리 금수강산이 좋아서 한없이 떠도는 한갓 부평초인 노승이지요 “.

무승의 마지막 말이 다음과 같다; “정히 계백 그대가 나를 스승의 한사람으로 알고서 기억하고 싶다고 한다면 나를 무승(武僧) 무명(無名)이라고 불러주면 되겠군요, 허허허… “. 그 말끝에 무승 무명이 다시 한번 마치 춤을 추듯이 두 팔과 두발을 휘두른다.

그러면서 한순간 몸을 날려 마치 제비처럼 쏜살같이 비상한 후 내려오면서 가볍게 한발로 제법 큰 바위를 밟는다;

 그러자 그 바위에 스님의 발모양이 뚜렷이 새겨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계백이 너무 놀라서 순간 벌어진 입을 다물지를 못한다.

그 다음에는 칼을 휘두르면서 똑같은 수법을 한번 더 시연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휘두르는 칼로 그 바위를 슬쩍 베고 있다. 그 순간 그 큰 바위가 쩍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도끼로 큰 장작을 팬 것과 같다. 그것을 보고서 계백은 그 자리에서 깊이 머리를 숙여 노승에게 경의를 표한다.

노승은 모든 시연이 끝나자 자신의 칼을 지팡이 속에 간수한다. 겉으로 보아서는 그것이 하나의 석장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속에 무승의 예리한 칼이 숨어 있다. 그 다음에 무승 무명이 가부좌를 틀고서 구결을 외운다;

 그 맞은편에 계백이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그 구결을 따라서 외운다.

보기보다 무승 무명이 친절하다. 그 구결을 두번이나 더 읊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무명이 자신을 마주보고 앉아서 열심히 구결을 외우며 그대로 운기하고 있는 계백의 기색을 살핀다. 구결대로 체내에서 기운이 돌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순간 무명의 입가에 기쁜 미소가 어린다.

그러나 무명은 말이 없다. 그저 머리에 삿갓을 다시 쓰고서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휘적휘적 길을 떠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마치 혼잣말처럼 읊조리고 있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게 되겠지. 그대, 백제의 마지막 충혼이여!... “. 무승이 보이지 아니할 때까지 계백은 깊이 허리를 굽히고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때부터 계백의 무예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그는 하산한 후 곧바로 출사하고 백제의 군부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기 시작한다. 20년 세월이 지나 지금 40세의 계백은 신라에 침투하는 간자를 전부 관리하는 장군의 중책을 맡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군대에서 수많은 무예시합을 했지만 계백은 한번도 패한 적이 없다. 한마디로, 백제가 자랑하고 있는 무적의 장군이 바로 계백이다;

 그러한 계백이 퇴청하여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23살이나 어린 아우 좌백에게 손수 무예를 가르치고 있다.

계백은 먼저 좌백이 곡나 도장진수 관장에게서 배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한다. 그 다음에는 그 수법을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그와 다른 수법을 한수 가르쳐 준다. 그것은 무승 무명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러므로 좌백은 자신도 모르게 무승 무명의 무예를 전수받고 있는 셈이다.

한편, 동무들로부터 우룡(右龍)이라고 불리고 있는 책귀(策貴)는 은퇴박사 가람에게서 학문만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7년간 가람 박사에게서 학문과 더불어 호흡법 하나를 더 배우고 있다. 매일 눈을 뜬 다음에 한번 그리고 자기 전에 한번 그렇게 반드시 두 번 수련하도록 되어 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는 것인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일년동안 하루도 빼지 아니하고 그 호흡법을 사용한 결과 이상하게도 단전에 기가 모이고 피로가 무지하게 빨리 풀리고 있다. 그 덕분에 책귀는 서적만 빨리 읽고 암기하는 천재일 뿐만 아니라 무예습득에 있어서도 소질을 발휘하고 있다;

남들보다 피로를 덜 느끼고 빠른 시간내에 머리가 다시 맑아지고 있으니 그 호흡법이 책귀를 점점 문무를 겸한 인물 곧 재사이며 무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과 같이 하루 종일 천등산에서 동무들과 함께 무예를 수련하고 왔지만 책귀는 사랑방에서 너끈하게 스승 가람 박사와 함께 한시진이나 공부를 더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호(右虎)무영(無影)좌룡(左龍)기룡(奇龍)의 경우는 어떠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