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 제13강(벧전2:6-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년 8월 5일(토)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하여 시온에 두신 보배로운 모퉁잇돌이 무엇이며 오늘날까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벧전2:6-8)
사도 베드로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어떻게 보면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 제28장에 기록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에 대한 해석과 같습니다;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며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사28:14-18).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다음의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1) 첫째, 예루살렘에서 선민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이 두가지 큰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사람들 보기에 율법생활을 잘하면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예루살렘성전에서의 대 속죄일의 제사로 모든 백성들의 죄악이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을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잘못된 주장인지를 이제부터 따져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율법생활을 온전히 하여 영생의 구원을 얻자면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준수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지 않는지를 보시고 판단하시며 그 결과에 따라 율법에 따른 영생의 구원을 베푸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고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판정이 아니라 이웃사람들 특히 유대교지도자들의 판정으로 그것을 대신하고 있으니 한 마디로, 거짓이며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여호와의 눈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이웃의 눈만 의식하는 외식적인 율법생활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생이 아니라 사망과 음부의 세계로 인도할 뿐입니다.
2) 둘째, 예루살렘성전의 번제단에서 가축을 제물로 삼아서 드리고 있는 그 속죄의 제사는 효력이 한정적입니다. 매년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백성들이 일년간 지은 모든 죄에 대하여 여호와의 용서를 받아서 나오고 있지만 그것의 효력이 지나간 해에 불과합니다(레16:11-34). 죄 사함의 선포가 있은 그 다음부터 짓게 되는 죄악에 대해서는 다시 일년 후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가축의 피로 지성소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아야만 합니다(히7:27-28, 9:25). 그런데 그러한 성전의 제사의 방법이 어떻게 영생에 이르는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백성들에게 줄 수가 있겠습니까?
3) 셋째, 현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민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는 왕과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대대로 거짓말로 백성들을 속인 것입니다. 사람들 보기에 율법을 준수하고 예루살렘성전의 대 속죄일의 제사를 매년 드리게 되면 선민 모두가 의인이 되고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율법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율법과 성전에서의 속죄의 제사가 없는 이방인들은 모두 죄인이며 사망한 후에 영원한 음부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게 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2) 둘째, 드디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의 구원을 모든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오시게 됩니다;
1) 먼저 요단 강가에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백성들에게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하여 회개의 물세례부터 받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마3:1-6). 그의 외침은 선민 유대인들에게 두가지 잘못을 먼저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①하나는 하나님의 눈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만 의식하는 외식적인 율법생활을 청산하겠다고 하는 회개를 말하고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대 속죄일 성전에서의 제사만으로써는 도저히 영생에 이르는 완전한 죄 사함을 얻을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영생의 구원을 달라고 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2)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란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물세례를 주고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주는 선지자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잘못과 죄를 인정하는 백성들은 회개하는 심정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세상의 구원주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세례와 불세례를 받아야만 합니다(마3:11).
(3) 셋째, 성령님께서 임재하시면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만민구원과 영생의 구원 그리고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의 실천이라고 풀이하여 가르쳐 주신 그 천국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요14:16-17, 26, 16:13-15). 그리고 그 천국복음이 유대교의 가르침과 반대가 되기 때문에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선민만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영광만을 교리화하고 있는 그들의 종교를 지키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하였지만 역설적으로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 회개하는 만민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보배로운 대속의 피를 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바로 영원한 속죄의 제물이라는 사실을 믿고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이 영원한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사도들이 온 세상 만민들에게 전파하고 있는 천국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와 예수님께서 3일만에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하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눅24:44-53, 행1:8). 그러므로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영생의 부활과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맛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복음을 과연 믿을 수가 있을까요? 사람의 상식과 세상적인 이치로는 불가능합니다.
3) 그렇지만 진리의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마음속에 확신을 얻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복음을 전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기 위하여 자신의 육신적인 탐욕과 죄성을 처리하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자신의 탐욕과 죄성을 태워버려 달라고 하는 불심판에 대한 간구라고 하겠습니다.
4) 성도의 삶 가운데 육신적인 탐욕과 죄성을 처리하지 못하여 훗날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불 가운데 들어가는 것보다는 육신을 입고 있는 인생 가운데 그러한 것들을 영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은혜가 있기에 성도들의 거듭난 영적인 삶과 성화가 모두 인생 가운데 성령님의 역사로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롬8:1-1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벧전2:6); 모두(冒頭, 앞선 머리글)에서 설명한 그대로 사도 베드로가 이사야 제28장에서 몇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거룩한 제사장나라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출19:4-6). 그러나 그 다음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만의 속죄와 구원을 도모하고 이방인들을 정복하여 선민 이스라엘의 영광을 떨치고자 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들은 다윗대왕이 건설한 이스라엘 제국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를 다시 재현하여 줄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2) 그들 선민 유대인들의 사회에 마침내 메시아가 등장하십니다. 나사렛 예수가 나타나서 선지자의 경지를 훌쩍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보인 것입니다. 죽은 자를 세 사람이나 살려내고 있습니다(눅7:11-17, 8:49-56, 요11:38-44). 일찍이 엘리야나 엘리사 선지자가 죽은 자를 한 사람씩 살려낸 적이 있지만(왕상17:19-24, 왕하4:32-37) 세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능력은 큰 선지자의 세 곱인 셈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병이어’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막6:38-44, 8:5-9). 그러므로 예수님만 메시아로 그리고 유대인의 임금으로 모시면 선민 유대인들은 경제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가 모두 해결이 되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요6:15, 12:12-19).
(3)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주장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이 그들 선민들의 유대교사상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을 미워하지 말고 동족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마5:43-48). 이방인들을 모두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고 천국복음을 전해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마28:18-20). 그것은 그 옛날 시내 산 언약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상기시켜주고 있는 메시지이지만 선민 유대인들이 그 점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사6:9-13, 벧전2:8). 따라서 선민 유대인들의 선택은 유대교의 전통과 선민만의 구원사상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배척하고 처형하는 것입니다.
(4)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자 새로운 하나님의 선택이 발생하게 됩니다. 선민 유대인들을 버리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만민을 구원하는 그리스도로 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여 만민을 구원하게 하십니다(마28:18-20, 행1:8). 그 일을 위하여 무덤속에서 예수님을 3일 만에 부활시키시고 제자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40일 후에 감람산에서 승천을 시키십니다(눅24:44-52). 그리고 성령님을 오순절에 보내어서 성도들에게 임재시켜 주십니다(행2:1-4).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내용을 사도 베드로가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벧전2:6)라고 요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리스도의 천국복음과 부활이 만민을 구원하고 영생의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초석이 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둘째로,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벧전2:7);
(1)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과 부활의 역사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처럼 자신들의 인생과 목숨을 바쳐서라도 얻고 싶은 것입니다(빌3:10-14). 반면에 그렇게 소중한 그리스도 예수님을 배척하고 처형해버린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그들의 유대교와 선민사상이 그들에게 영생의 천국을 줄 수가 있을까요?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2)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모두 돌보시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인간들의 집단 이기적인 의로움 곧 정의의 개념을 넘어서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구원을 받고 현세적인 영광을 누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모든 이방인들을 원수같이 여기며 미워하고 있습니다.
(3) 선민들은 가능하면 주변의 이방인들을 모두 정복하여 자신들의 종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는 자신들의 메시아를 보내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방인까지 구원하고자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버려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버린 돌에 해당하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만민구원과 영생의 하나님나라를 이루시는 초석이 되고 있다고 하는 훗날의 역사를 보게 되면 선민 유대인들은 너무나 초라하고 부끄러운 존재가 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4) 참고로 여기서 사도 베드로가 인용하고 있는 히브리정경의 말씀은 시편 제118편 제22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그 시편 말씀은 이사야 제28장의 해당 말씀을 원용한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2:8);
(1) 사도 베드로가 여기서 원용하고 있는 구절은 히브리정경 이사야 제8장의 말씀입니다. 원문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사8:13-15).
1) 그 의미가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올바르게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임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그런데 선민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역사적으로 그러하지를 않습니다;
2) 먼저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이 그러하지를 않습니다. 초대 왕 여로보암1세 때부터 북쪽의 단과 남쪽의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라고 명령을 한 것입니다(왕상12:26-30). 그 옛날 광야시대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긴 잘못이(출32:1-10) 두 곱절로 자행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왕하17:5-6, 21-23). 그들의 금송아지 우상이 그들을 걸려서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 되고 만 것입니다.
3)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눈만 의식을 하고서 외식적인 율법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막7:6-9). 그리고 예루살렘성전의 제례의식만 있으면 선민들은 죄 사함을 받고 영원히 의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두가지가 그들에게 함정이 되고 또한 올무가 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눈을 속이는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그리고 매년 반복적으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한다는 올무에 단단히 걸리고 만 것입니다. 영원한 속죄는 아예 꿈도 꿀 수가 없는 지극히 현세적인 종교적 관행과 제례의식만이 유대교인들에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
4) 선민 이스라엘의 비극은 그들에 대한 것만이 아닙니다. 이방인들이라고 하더라도 똑 같은 죄악을 여호와 앞에서 범하게 되면 동일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들이 행한 죄악에 그들이 빠지고 그 나라가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구절이 다음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사8:15).
(2)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2:8). 선민 유대인들에게 임한 그 역사적인 처벌과 영적인 불행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도 그와 같은 선민우월사상에 빠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외면하거나 속이는 종교생활을 하게 되면 동일한 불행을 당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원칙이라는 사실을 사도 베드로가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이 배척하고 버린 돌이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는 보배로운 산 돌이며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모퉁잇돌이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외치고 스스로 회개하는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시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선민만의 구원사상과 이방인들을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재건하는 메시아사상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던 유대교인들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불행하게도 주후 70년 로마군대의 진격으로 선민의 사회가 궤멸이 되고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되며 유대인들이 고향에서 쫓겨나 온세상에 난민으로 떠돌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주후 60년대에 로마에서 사도 베드로가 안타깝게 예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 땅을 떠나서 소아시아 북부와 동부지역에서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동족들에게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흔들리지를 말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유대교인들이 버린 돌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만민을 구원하고 영생의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초석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민족의 우월성과 선함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종교적으로 선민사상을 주장하는 잘못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만민을 구원하여 모두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고자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유일한 구세주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견고히 믿고 땅끝까지 전파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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