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베드로전서 강해 제11강(벧전2: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3. 00:06

베드로전서 강해 제11(벧전2: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83()

 

거듭난 성도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세상적인 기준이 무엇인가?(벧전2:1-3)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과 3 6개월 동안 공생애를 함께 지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스승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체험적으로 배운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예수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 2가지와 발견할 수 없는 것 5가지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로 성품적인 면과 신앙적인 자세에 대한 것인데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예수님에게서는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이 없습니다(벧전2:1). 간략하게 그 말의 의미를 하나씩 설명을 해봅니다;  

1)    첫째, 모든 악독이라고 하는 것은 남을 해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창출하거나 보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명분을 동원하더라도 상대방을 해치고자 하는 것은 악입니다. 독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을 해치는데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이 목적이라면 독은 그 수단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모든 기만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을 속임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기만의 시작을 창세기 제3장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 마귀의 화신인 뱀이 아담과 하와 부부를 기만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진리와 비진리를 논리적으로 혼합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3:1-5, 22). 그 목적은 사람들의 육신적 정신적인 탐욕을 충동하여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3:6).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담 부부를 타락시킴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저주 가운데 들어가게 하고 자신들이 그 저주스러운 세상을 지배하고자 획책을 하고 있습니다(3:16-19, 7:23-24, 8:2).

3)    셋째, 외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신앙의 기본이 선민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잘못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용어입니다. 그것은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조물인 사람들의 눈앞에서 율법을 다 잘 지키는 것으로 보이게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게 유대교사회에서 의로운 자라고 여김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18:11-12). 그것은 사람의 내면과 그 마음속을 꿰뚫어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눈에는 참으로 가소롭고 가증스러운 가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4)    그렇게 종교생활을 가식적으로 영위하게 되면 도저히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없게 됩니다. 만약 종교지도자들이 외식을 하게 되면 자신만 실족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백성들을 실족하게 만드는 요인을 제공하고 있기에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신앙의 태도에 대하여 그토록 심하게 야단을 치신 것입니다(23).

5)    넷째, 시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에게는 5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2달란트를, 또 어떤 종에게는 1달란트를 맡기십니다(25:15). 그에 따라 각 종들은 그 맡은 바 재능과 능력에서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산을 하실 때에 동일한 기준을 사용하십니다. 각자 능력과 재능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그 소득에 있어서는 두배를 동일하게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25:16-23).

6)    따라서 5달란트를 맡은 종은 소득을 합하여 10달란트을 내놓아야 합니다. 2달란트를 맡은 종은 4달란트를 내놓아야 합니다. 1달란트를 맡은 종은 2달란트만 내놓으면 똑 같은 칭찬과 영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1달란트를 맡은 종이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2달란트 또는 5달란트를 맡은 종을 시기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처사가 원망스러워서 1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내놓게 됩니다(25:24-25).

7)    하나님께서 그 악한 종의 시기심을 벌써 꿰뚫고 계십니다. 따라서 처벌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25:26-30). 그 시기심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부부의 장자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암살해버리는 비극까지 연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3-8). 하나님을 섬기는 인간의 최초의 살인의 범죄는 형제를 시기하는 그 마음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입니다.

8)    다섯째, 모든 비방이라고 하는 것은 정당한 근거가 없이 상대방을 헐뜯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비방을 받는 사람은 억울합니다. 특히 사람들은 상대방을 칭찬하거나 그 탁월성에 대하여 존경하고 인정해주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자신이 초라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방에 참여하기를 먼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호비방의 사회가 조성이 되면 뛰어난 인물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사회전체의 몰락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어떠한 모함과 비방을 받게 되셨는지를 생각해보면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선민의 사회가 몰락하게 되는 이유를 쉽게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2)  둘째, 예수님의 신앙자세는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벧전2:2);

1)    고대사회에서 갓난아기의 생존과 발육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젖을 빠는데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갓난아기는 전심전력으로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며 그것을 빠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날의 복음사역을 끝내시고 제자들을 따로 가르치시는 일이 끝나게 되면 홀로 한적한 곳을 찾아가서 아버지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십니다(6:12, 22:39-42, 6:15). 그 시간에 집중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신령한 젖을 빠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께서 깨달으신 그 아버지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습니다.

2)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 훗날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5-8).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인 신령한 젖으로 빨고 그 뜻을 실천하는 거듭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인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갔으므로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3)  셋째, 예수님의 성품은 인자하시다는 것입니다(벧전2:3). 어질고 자비로운 성품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 6개월 동안 12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살아가십니다. 그 가운데에는 사도 베드로처럼 비슷한 연배의 제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처럼 약관의 청년도 있습니다. 그들 모두를 품으시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천국복음으로 깨닫도록 제자들에게 일일이 가르쳐 주십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인자하심은 연약한 육신을 지니고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불쌍한 인간들의 처지를 돌아보시는 그 영적인 긍휼함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들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불쌍한 인생들에 대하여 인자를 베풀고 긍휼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지녀야만 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영혼을 살려서 함께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28:18-2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므로 모든 악독모든 기만외식시기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벧전2:1);

(1)  선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입니다(19:4-5). 주전 15세기에 시내산에 강림하신 창조주 여호와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19:4-5). 그리고 온 세상 모든 족속을 구원할 수 있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19:6).  그러므로 선민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제멋대로 이기적으로 그리고 현세적인 탐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의 모습과는 달라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선민 유대인 사회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이방인들의 모습과 세속적인 모습을 여과없이 생생하게 보게 되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저주스러운 모습들입니다;

1)    첫째, 모든 악독이 가득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상대방을 죽이거나 해치고자 합니다. 그 의도가 악합니다. 그리고 남을 해치는 독을 사용하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2)    둘째, 모든 기만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입니다. 때로는 그 숨소리마저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을 속이고 재물이나 권리를 가로채고자 획책하고 있습니다. 속고 속이는 사회에서 마침내 자신이 자신마저 믿지 못하게 되는 불신의 늪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진리가 완전히 사라진 저주스러운 사회의 모습입니다.  

3)    셋째, 외식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신앙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눈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의 눈만 의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타락이며 세속화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일종의 종교적인 행위만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적 권위체에서 구원과 영생을 확정하고 수여해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4)    넷째, 시기심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그 사용의 목적에 따라서 각각 다른 은사와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더 많은 재능과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것을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상대방을 죽이고자 하는 범행의 의도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가인의 비극이 바로 그것입니다(4:3-8). 또한 사울 왕이 청년장군 다윗을 해치고자 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삼상18:8-11).

5)    다섯째, 모든 비방하는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정당한 근거가 없이 상대방을 흠잡고 모해하는 것이 비방입니다. 그것은 근거가 없는 모함입니다. 사실 올바른 비판은 사람들에게 부족한 점을 깨닫게 하고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모든 비방하는 말들은 상대방을 끌어내림으로써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선민 유대인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끄나풀이라고 비방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11:15-20).

(2)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잘못된 생활습관과 신앙의 모습을 청산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몸소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구체적으로, ①생명을 살리는 선함, ②진리와 진실만을 말하는 것, ③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신앙생활, ④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능력을 인정하는 것, ⑤세상적인 비방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정확하게 평가하는 일 등입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으로부터 그러한 모습을 공생애 기간 동안에 착실하게 배우게 된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제 자신 있게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올바른 신앙생활의 모습에 대하여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모든 기만외식시기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주님의 제자답게 살아가십시오)”(벧전2:1).

둘째로,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1)  세상적인 온갖 잘못된 신앙생활과 사회풍조에 빠지지 아니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영위하자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답답한 가운데 사도 베드로는 그 방법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로지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성도들은 그렇게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인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벧전2:2 의역).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묵상하는 시간을 늘려야만 합니다. 세상의 번잡한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전폭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2)  예를 들자면, 마치 변화산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만난 사도들처럼(9:28-36) 그렇게 성도들은 영적인 세계에서 영광 가운데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8:55-56). 그리고 이 세상에서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성도의 삶을 마친 다음에 그 옆자리로 오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영적인 눈이 열려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말씀의 전파자로 살아가게 되면 세상적인 평판이나 모함에 지배를 당하지 아니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적인 성공과 실패에 크게 흔들이지 아니하게 될 것입니다.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고서 그 영생의 나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며 그리하라”(벧전2:3); 주님의 인자하심은 그 넓은 포용력과 불쌍한 인생들에 대한 긍휼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창조주 하나님의 포용력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민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까지 모두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나아가서 인류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까지 구원하고자 하십니다(3:16, 8:19-22).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 사랑의 마음입니다. 모두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공의의 정신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그 넓은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으로 설명하십니다.

(2)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통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을 불쌍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을 희생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죄 사함과 구원의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두 구원하고자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며 긍휼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영적인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우선 세상적인 추악한 5가지의 삶의 모습을 청산하는 것입니다;

(1)  자기가 살기 위하여 남을 해치지 말아야 합니다.

(2)  속고 속이는 기만행위를 버려야 합니다.

(3)  영이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그 앞에서 정직하게 신앙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4)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더 큰 재능과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신 재능과 능력에 비례하여 하나님께서 더 많은 기여를 하도록 사람들에게 의무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깨달아야 합니다.

(5)  근거 없는 비난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도 정당한 비판을 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주는 비판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를 평가절하하는 비방은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모든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사도 베드로는 두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영적인 말씀의 젖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영적인 교제가 깊어질 수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적인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신 주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대속의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져야만 하는 십자가의 삶이 무엇인지를 성도들이 깨닫고 세상을 이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사도 베드로의 권면의 내용을 깊이 음미하면서 믿음생활에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