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모압의 역사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 역사심판의 이유(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2. 13. 09:58

제목; “모압의 역사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 역사심판의 이유”(48:42-47)

설교일; 주후 20221218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213일 화요일 작성)

 

사해 동쪽에 자리를 잡고서 살고 있는 모압 사람들은 세상적인 자랑거리가 크게 보아 3가지입니다;

(1)  첫째, 모압의 국경너머 동편은 사막이고 남쪽에는 광야지대이지만 모압 땅만은 강물과 시냇물이 풍부하여 농사가 잘 되고 또한 목초가 풍성하여 목축업이 크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1차 산업 가운데 농업과 목축업의 발전이 대단하여 모압 사람들은 그야 말로 그 일대에서 보기 드물게 부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3차 산업도 크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아,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대상들이 애굽과 무역을 하자면 모압의 땅을 지나가게 됩니다. 그들은 사막과 광야의 길에서 오아시스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모압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그곳의 특산물인 포도주와 소금 등을 구입하여 먼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압 사람은 제3차 산업 곧 중개무역과 위락산업으로 큰 돈을 벌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모압의 우상문화와 오랜 왕가의 역사가 그들의 자랑거리입니다. 모압 사람들은 자신들이 풍족하고 부유하게 살게 되는 것이 농사의 신 바알을 브올 산에서 열심히 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더구나 전쟁의 신 그모스를 숭상하기 때문에 외세를 물리치고 자신들의 모압 왕가가 천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대 모압 사람처럼 세상적인 풍족함과 부유함을 자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모두 우상의 우두머리인 바알 신과 그모스 신의 도움이라고 믿고 있다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바로잡고자 하실까요? 그에 대한 여호와의 답변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는 본문에 들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그 옛날 모압 사람처럼 많은 부국과 부자들이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그 옛날 모압에 임한 하나님의 역사심판이 다시 임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시각에서 오늘은 전체적인 이해를 위한 말씀을 먼저 드리고 그 다음에 본문말씀에 대한 구절풀이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곧 모압의 장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1)  첫째로, 모압이 여호와를 거슬러 자만하였으므로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완전한 멸망을 당하고 그 부흥운동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48:42). 신바벨론제국과의 전쟁은 강대국과의 전쟁이므로 조국과 자신의 패망을 가져오는 두려운 것이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신과 동족이 여호와를 거슬리는 그 반역의 함정에 빠진 것과 자만이라고 하는 올무에 걸린 것입니다(48:43);

(2)  둘째로, 전란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화를 누리게 된다고 하더라도 영생의 문제와 관련하여 두가지의 유혹과 시험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48:44); 여호와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고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대속의 삶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이 더 커서 세상적인 함정에 빠져 여호와를 거슬러 행동하고 있습니다. 설혹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겸손하지 못하고 자만이라고 하는 올무에 걸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이 정도로 헌신과 희생을 했으므로 이제는 그 업적과 성과에 비추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 정도의 대접은 받아도 된다고 하는 자만심이 여호와의 종으로 자처하고 있는 성도들을 실족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함정과 올무에 빠지게 되면 전쟁보다 더 두려운 여호와의 심판의 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3)  셋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언제나 동일하십니다(15:16);

1)    그 옛날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그대로,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여호와께서 관용하시는 기준을 넘어서게 되자 여지없이 가나안 동편의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 시대에 요단강 동편 아모리 2왕국의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십니다(21:23-35, 32:25-29, 2:24, 3:2-3).

2)    마찬가지로 주전 587년에는 모압 족속이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사해 동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압 왕국은 주전 15세기에 아모리의 시혼 족장에게 아르논 강 이북의 땅을 빼앗깁니다.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그 땅은 모세와 이스라엘 군대가 점령하고 르우벤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합니다. 모압 왕국의 메사 왕은 주전 850년경에 르우벤 지파로부터 그 땅을 되찾게 됩니다;

3)    그렇지만 모압 족속이 바알브올그모스 우상을 과도하게 섬기고 세상적인 부유함을 자랑하면서 그 옛날  아모리 족속처럼 죄악 가운데 완전한 이방인으로 살아가게 되자 모압 왕국이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멸망을 당하고 그 백성들이 포로로 사로잡혀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48:45-46).

(4)  넷째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만 신바벨론제국의 멸망으로 해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공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모압의 포로들 역시 동일하게 해방을 맞이하도록 역사하십니다(48:47). 신바벨론제국을 멸망시킨 바사의 고레스 왕이 페르시아제국의 시대를 선언하면서 포로들을 석방하여 드넓은 페르시아제국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치하여 준 것입니다(1:1-4). 그것이 개방적이고도 진취적인 제국의 황제가 약소민족들에게 베푸는 위대한 아량이라고 하겠습니다;

(5)  다섯째로, 하지만 세상의 제국의 황제가 줄 수 없는 영생의 축복에 대하여 본문 제47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여호와께서는 세상의 종말 그 마지막 날에 이방인인 모압의 포로를 돌려보낼 것인데 그것은 모압의 심판을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세상 왕국 모압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는 모압 사람에게는 완전한 자유 곧 영생의 구원이 여호와의 심판에 의하여 주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48:47, 5:24-2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42. 모압이 여호와를 거슬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 4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 주민아, 두려움함정올무가 네게 닥치나니, 44.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떨어지겠고, 함정에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내가 모압이 벌 받을 해가 임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8:42-44);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42. 모압이 여호와를 거슬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 4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 주민아, 두려움함정올무가 네게 닥치나니”(48:42-43);

1)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모압 왕국입니다. 중근동의 패권국의 황제나 대왕을 주군으로 모시고 조공을 바친 예는 있지만 모압 왕국이 멸망을 당한 역사는 없습니다. 모압의 왕가는 만세일계(萬世一系)로 계속이 되고 있으므로 그것이 모압 백성들의 자랑입니다. 그리고 광야와 사막으로 둘러싸인 오아시스와 같은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모압 사람들의 또다른 자랑입니다;

2)    그렇게 세상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은 모압의 사람들이 주전 587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조국이 멸망을 당한 다음에는 아무리 열심히 부흥운동을 전개하여도 그 열매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호와께서는 그 이유가 바로 모압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두가지 잘못 때문이라고 지적하십니다;

3)    하나는, 여호와의 뜻을 멸시하고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자만심이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제일 잘 낫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도무지 여호와 앞에서나 세상 사람들 앞에서나 겸손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한 민족에게 여호와께서는 두 번 다시 모압 왕국을 건설하도록 허용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4)    본문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두려워하고 전란 가운데 자신의 목숨을 잃을까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를 건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자신의 목숨을 버리더라도 영생을 얻고자 하는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6:39-40, 10:17-18, 11:25-26).

(2)  44.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떨어지겠고, 함정에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내가 모압이 벌 받을 해가 임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8:44); 여호와의 벌을 반드시 받을 수밖에 없는 자의 유형을 알기 쉽게 세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목숨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영생을 좌지우지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도무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있는 자들이 여호와의 처벌을 받게 됩니다(10:28). 예를 들면, 한세상 목숨보전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면 그만이지 죽은 다음의 일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현세적인 구복(求福) 신앙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처벌이 반드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왕하20:16-19, 12:15-21, 16:19-26);

2)    둘째, 영생을 얻겠다고 여호와를 섬기며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신앙생활의 내용이 좀 이상합니다. 때로는 여호와의 말씀의 뜻보다는 성도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세상적으로 훨씬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효과적이므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종이 주인보다 더 똑똑하고 효과적인 처방을 알고 있으므로 그것을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11:33). 그것이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가 빠지게 되는 함정여호와의 뜻을 거슬리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48:42-44).

3)    셋째, 성도들이 영생을 추구하며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실천하게 되면 그 열매가 풍성합니다. 그러한 열매를 얻고 있는 성도는 목숨을 잃는 두려움을 벌써 떨쳐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뜻과 방법을 선용하여 실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함정에 쉽게 빠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잘못하면 올무에 걸려서 여호와의 처벌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자만심이라고 하는 올무입니다.

4)    자만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위대한 종이라고 평가하며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도 스스로 자신이 무익한 종이라고 여기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감으로써 이룩한 그 모든 성취에 대하여 자신이 아니었으면 그 정도의 업적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자화자찬을 하면서 주인이신 창조주 여호와의 엄청난 칭찬과 거대한 상급을 당당하게 기대하는 것입니다.

5)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반대이십니다. 그 모든 업적은 종인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내주하여 역사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하신 일이라고 정확하게 진술하십니다(14:10-11). 그리고 소위 무익한 종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고된 하루일과를 끝낸 종이 주인이 만찬을 마칠 때까지 그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은 창조주이신 주인께서 보시기에 무익한 종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17:7-10).

6)    자신의 인생과 그 업적에 대한 평가는 여호와의 종인 자신이 행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 인생과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평가하시고 그에 합당한 영생의 상급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처럼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자신의 존재는 하나의 티끌이나 와 같다고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을 정확히 아는 것이 잘못된 여호와의 종의 자만이라는 올무에 걸리지 아니하는 비결이라고 하겠습니다(18:27);

둘째로,45. 도망하는 자들이 기진하여 헤스본 그늘 아래에 서니, 이는 불이 헤스본에서 나며, 불길이 시혼 가운데 나서 모압의 살쩍과 떠드는 자들의 정수리를 사름이로다. 46. 모압이여 네게 화가 있도다. 그모스의 백성이 망하였도다. 네 아들들은 사로잡혀 갔고, 네 딸들은 포로가 되었도다”(48:45-46);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45. 도망하는 자들이 기진하여 헤스본 그늘 아래에 서니, 이는 불이 헤스본에서 나며, 불길이 시혼 가운데 나서 모압의 살쩍과 떠드는 자들의 정수리를 사름이로다”(48:45);

1)    아르논 강 이북의 중심지가 헤스본이며 그 땅은 본래 모압 왕국의 것입니다. 그런데 아모리 족속인 시혼이 점령하여 그곳에 아모리 남왕국을 세웠습니다(21:26). 하지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창조주의 관용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으므로(15:16) 여호와께서는 주전 15세기 말에 모세를 시켜서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시혼 왕국을 멸망시키고(21:24-25, 2:24) 그 땅을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하도록 했습니다(32:29, 37). 그러한 역사적인 맥락에서, “45. 도망하는 자들이 기진하여 헤스본 그늘 아래에 서니, 이는 불이 헤스본에서 나며, 불길이 시혼 가운데 나서”(48:45a)라는 구절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

2)    그런데, “(불길이 시혼 가운데 나서) 모압의 살쩍과 떠드는 자들의 정수리를 사름이로다”(48:45b)는 구절은 역사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다음과 같이 그 속에 담고 있습니다; 첫째, 아모리 족속의 시혼 왕국이 이스라엘 자손들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것은 그들이 우상을 섬기며 수많은 죄악을 범하여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입니다(15:16). 그것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여호와의 불 같은 처벌입니다. 둘째, 이제는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모압 족속이 똑 같은 잘못을 여호와 앞에 범하고 있습니다.

3)    우상인 바알브올그모스를 심하게 섬기고 있습니다. 비옥한 토지의 소출을 가지고 가난한 이웃나라를 구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도시문명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의 잘못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살 쩍은 완전한 이방인의 전형이 되어버린 모압 족속의 나라를 여호와께서는 이제 심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범한 모압 왕국의 성읍들을 여호와께서는 갈대아 군대를 보내어 모조리 불살라 버리시는 것입니다(48:45b).

(2)  46. 모압이여 네게 화가 있도다. 그모스의 백성이 망하였도다. 네 아들들은 사로잡혀 갔고, 네 딸들은 포로가 되었도다”(48:46);

1)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모압의 멸망이 있게 되는 이유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상인 그모스에게 왕국의 보전을 기원하기 위하여 세자를 번제로 바친 그 인신제사의 참혹함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을 초래한 것입니다”(48:46a, 왕하3:27). 그것은 모든 생명을 돌보고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사랑과 공의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입니다(5:44-48, 3:4, 3:16, 6:39).

2)    여호와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 그모스의 신상을 만들어 인신제사를 계속 드리고 있으니 영원히 망할 수밖에 없는 모압 왕국입니다. 그 옛날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섬기며 인신제사를 드리다가 그 땅에서 쫓겨난 아모리 족속의 사례가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네 아들들은 사로잡혀 갔고, 네 딸들은 포로가 되었도다”(48:46b). 

셋째로,47. 그러나 내가 마지막 날에 모압의 포로를 돌려보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의 심판이 여기까지니라”(48:47); 두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는데 ①하나는 25:12’(70년후 신바벨론제국의 멸망) 말씀과 관련하여 살펴보는 것이고 ②또 하나는, 세상의 종말과 관련하여 살펴보는 것입니다;

(1)  첫째,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자들은 신바벨론제국이 페르시아제국 고레스 황제에게 멸망을 당하게 되면 포로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올 수가 있게 된다고 하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예레미야 제25장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9.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소리와 등불 빛이 끊어지게 하리니, 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70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0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13.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25:9-13). 유다 왕국과 그 주변의 모든 왕국들이 신바벨론제국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그 백성들이 하나같이 바벨론 포로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바벨론제국이 멸망을 당하게 되면 자유를 얻게 된다고 하는 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의 말씀은 역사적으로 70년 후에 발생하는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2)  둘째, 심판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 모압의 포로가 해방을 맞이하고 자유를 얻게 된다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입니다(48:47). 그 예언의 말씀은 모압 왕국만의 심판이 아니라 모든 세상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을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자연히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과 인류의 구원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본문의 말씀을 다시 살펴보면 그 의미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자는 다음과 같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함정과 올무에 걸려 있는 자입니다; 첫째, 목숨의 보전에 포로가 되어 있으면 전란 가운데 목숨을 잃을까 전전긍긍하여 그 죽음의 두려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둘째, 자신의 이익의 보전과 최대 이익의 창출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있으면, 대속의 희생을 요구하시는 여호와의 뜻을 거슬러 반역하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셋째, 여호와의 뜻을 따라 산다고 하는 하나님의 종이 그 당연한 책무에 대하여 그것을 세상적인 자신의 자랑으로 삼게 되면 즉시 자만이라고 하는 올무에 걸리게 되고 맙니다. 그러한 자를 여호와께서는 마지막 날에 심판하시는 것입니다”(48:42-47);

결론적으로, 이 세상에서도 구원을 얻고 영생의 상급까지 얻을 수 있는 믿음생활의 비결에 대하여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란 가운데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뜻을 앞세워 주인이신 여호와의 뜻을 거역하고자 하는 함정에 빠지지 말며,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간 자신의 업적과 성취를 자화자찬(自畵自讚, 스스로 칭찬하고 자랑함)하여 자만(自慢)의 올무에 걸리는 어리석은 신앙생활을 영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함정과 올무에 빠졌기에 모압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그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모압의 역사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심판의 이유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어 끝까지 여호와의 종이며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