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46강(렘48:16-2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년 1월 23일(수)
여호와께서는 모압 왕국의 멸망에 대하여 무려 13군데의 지명을 거론하면서 애석해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렘48:16-25)
본문에 기록이 되고 있는 모압 왕국의 멸망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다분히 애가(哀歌, 슬픔의 노래)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압 왕국에 대한 여호와의 애정이 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 2가지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어째서 여호와께서는 모압의 자손들에게 참으로 좋은 땅과 오랜 세월의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주신 것일까요? ②또 하나는, 그러한 배려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무엇을 그들에게 기대하신 것일까요? 그 답을 얻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모압의 땅이 비옥한 이유는 강물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쪽과 남쪽에는 메마른 광야와 사막이 있는데 모압의 땅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마치 보석과 같은 오아시스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일이 모세 시대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1) 주전 15세기 말에 모세는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여호와의 허락을 얻어 요단 강 동편에서 아모리 두 왕국의 땅을 취합니다(민21:23-35, 신2:24-25, 3:2). 그 가운데 사해 동쪽 아르논 강 이북지역은 참으로 좋은 땅입니다.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과 시냇물이 풍부하여 농사가 잘 되고 초지가 무성합니다. 포도농사와 목축에도 적합합니다.
2) 그러므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그 땅을 먼저 자신들에게 배분해 달라고 모세에게 호소합니다(민32:1-5). 나머지 10지파의 눈총을 따갑게 받으면서도 그 땅을 먼저 차지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만큼 탐이 나는 땅이 모압에서 길르앗에 이르는 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의 요구에 대하여 모세는 두 지파의 군대가 끝까지 요단 강 서편의 땅을 정벌하는데 참여하는 조건으로 승낙을 합니다(민32:16-38).
3) 따라서 이스라엘의 장자인 르우벤의 후손들이 모압의 이북지역을 얻게 됩니다. 물론 아르논 강 이남지역인 모압 왕국의 땅은 더 좋습니다. 남에는 세렛 시내가 있고 북에는 아르논 강이 있습니다. 그 사이의 골짜기와 평지가 얼마나 비옥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오아시스 중의 오아시스로 불리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와 같이 좋은 땅을 여호와께서는 모압의 자손들에게 주전 587년경 그들이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때까지 무려 천년 이상 주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2) 둘째로, 여호와께서는 롯의 장남인 모압의 후손들이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1) 롯은 백부인 아브라함과 함께 북부 시리아 하란 땅에 머물고 있는 족장 데라를 떠나서 남하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인물입니다(창11:31-32, 12:4-5). 그 이유는 데라 족장의 재산을 상속하여 하란 땅에서 편히 사는 것보다는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곳의 원주민들에게 여호와신앙이 무엇인지를 자신들의 선지자적인 삶을 통하여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창12:1-3, 20:7, 21:22-23).
2)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위대한 선택을 한 적이 있는 롯의 모범을 그 후손들이 따라 주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롯의 장남인 모압의 후손들에게 더욱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압의 자손들은 그러한 여호와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농사의 신 바알을 도입하여 자신들의 수호신인 바알브올로 섬기고 있습니다(민25:1-3). 그리고 전쟁의 신 그모스에게 인신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왕하3:27).
3) 그렇게 우상을 심하게 섬기면서 그 덕분에 그들이 비옥한 모압 땅에서 오래도록 풍요를 누리고 있으며 특히 주전 850년에는 아르논 이북의 땅까지 수복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이 세상의 역사를 섭리하시고 그들의 조상 롯의 여호와신앙을 기억하고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러한 세월이 너무 오래되자 여호와께서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는 그 즈음에 그들을 멸망시키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모압 왕이 얼른 앗수르제국에게 항복을 하고 황제를 주군으로 섬기기로 맹세를 하면서 매년 조공을 바치게 됨으로 말미암아 일단은 그 명맥이 다시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3) 셋째로, 모압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흉년이 들면 사해 서쪽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살길을 찾아 모압 땅으로 들어옵니다(룻1:1). 그들은 난민들이므로 천시의 대상입니다. 따라서 모압 사람들은 선민이라고 스스로 자랑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깔보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라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가나안 일대에서 진실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자신들의 모압 땅이며 그 땅에 살고 있는 모압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족속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4) 넷째로, 아르논 강 이북지역을 주전 15세기 말부터 이스라엘의 르우벤 지파가 차지하고 모압 왕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모압 자손들에게는 오래된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1) 본래 아르논 강 이북의 그 땅은 모압 자손들의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주전 15세기에 남하를 한 아모리의 일개 족장인 시혼에게 그 땅을 빼앗긴 것입니다. 영토를 크게 상실한 모압 왕 발락이 국토 수복을 위하여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갑자기 모세가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시혼 왕국을 쳐부수고 그 땅을 르우벤 지파에게 주어 버린 것입니다(민21:24-35, 32:33-38).
2) 70년의 세월이 지나가자 모압 왕 에글론은 이웃인 암몬과 아말렉 족속을 모아가지고 북진을 하여 르우벤 지파의 땅을 빼앗고 다시 요단 강을 넘어가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 자손들을 18년간 지배하게 됩니다(삿3:13-14).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살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욕심과 정욕을 쫓아 죄악을 범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사용하여 징벌을 행한 것입니다(삿3:12).
3) 그러나 그 징벌의 기간이 여호와께서 세우신 사사 왼손잡이 에훗의 활약으로 끝나게 됩니다(삿3:15-17). 그는 무기를 감추고 모압 왕에게 공물을 바치는 척 접근하여 그를 암살한 후 동족들을 규합하여 적들을 쳐부숩니다(삿3:21-28). 요단 강을 건너지 못하고 죽은 모압의 군사의 수가 만명이나 됩니다(삿3:29). 그때부터 80년 동안 모압은 이스라엘의 눈치를 보면서 지내게 됩니다(삿3:30).
(5) 다섯째로, 사사시대 말엽까지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땅을 침범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의 사사이며 길르앗 사람인 용사 입다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지 300년이거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삿11:25-26). 사사 입다의 등장은 여호수아 때로부터 계산을 하면 대략 315년 후입니다. 그런데 모압 왕이 암몬 및 아말렉 족속을 모아서 이스라엘을 치고 공물을 받은 햇수가 18년이므로 그 기간을 제외하면 약 300년의 세월동안 모압과 암몬은 아르논 강 이북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어찌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6) 여섯째로, 주전 1,050년경 이스라엘왕국이 성립이 되고 사울이 왕이 되자 그는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 그리고 남부 시리아에 위치하고 있는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까지를 치고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따라서 모압 왕국은 아르논 강 이북지역을 수복할 생각을 접고 있습니다. 더구나 다윗과 솔로몬의 제국시대가 그 뒤를 잇고 있으므로 모압은 국토 수복의 꿈을 꾸지도 못하고 조공을 바치기에 바쁩니다;
1) 모압 사람들은 아르논 강 이북지역에 살고 있는 르우벤 지파를 미워할 뿐입니다 주전 930년경에 이스라엘 제국이 둘로 쪼개어졌지만 작은 왕국 모압이 상대하기에는 여전히 다윗왕조와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힘이 강합니다. 특히 이스라엘 10지파가 참여하고 있는 북조 이스라엘왕국은 장군 출신인 바아사와 오므리 등이 차례로 왕가를 이루게 되면서 르우벤 지파의 남쪽에 살고 있는 모압 왕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압 왕은 이스라엘왕국에 여전히 조공을 바치고 있습니다(왕하3:4).
2) 그러나 아합 왕이 죽고 나자 모압의 왕 메사는 큰 결심을 합니다. 조공을 끊고 도리어 군대를 이끌고 북진하여 주전 850년경 르우벤 지파의 땅을 점령한 것입니다(왕하3:5). 그것을 보고서 아합의 아들인 여호람 왕이 유다 왕 여호사밧의 도움을 얻어 함께 모압 왕국을 치게 됩니다(왕하3:6-8). 모압 왕 메사의 군대를 남쪽으로 몰아 부치고 있으므로 모압 왕국이 멸망을 당할 위기입니다.
3) 패색이 짙은 메사 왕이 갑자기 세자를 그모스에게 번제로 바치고 있습니다(왕하3:27). 그 모습을 보고서 모압의 군사들이 격분을 하여 결사적으로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 갑작스러운 사기의 진작에 놀란 이스라엘과 유다의 연합군은 본국으로 철수를 하고 맙니다. 그때부터 약 120년간이 모압 왕국의 평화와 번영의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7) 일곱째로, 주전 730년경에 앗수르제국이 서진하여 아람왕국을 정복하자 모압 왕국에 큰 위기가 닥칩니다(왕하16:9). 그대로 남하를 하게 되면 자신들이 앗수르 군대의 말발굽에 짓밟힐 것입니다. 따라서 모압 왕은 얼른 사절을 보내어 화해를 청하고 앗수르의 황제를 섬기고 매년 조공을 보내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그 덕분에 모압 왕국은 앗수르제국의 신하의 나라로 살아남게 됩니다. 그러나 신바벨론 느부갓네살 황제가 주전 588년에 가나안 일대의 왕국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그 성격이 다릅니다;
1) 그것은 단순한 ‘팽창정책’이 아닙니다. 애굽의 바로의 제안을 수락하여 반(反) 바벨론 동맹에 참여한 가나안 일대의 6왕국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소위 ‘말살정책’입니다. 그러므로 모압 왕이 화해를 청해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전국의 주요 성읍이 모조리 불타고 파괴가 되어 초토화가 됩니다. 이른바 모압 왕국의 완전한 멸망이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비극이 도래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무려 천년 동안이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압의 자손들이 조상인 롯의 여호와신앙을 본받고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그것이 끝내 수포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재앙을 내리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모압의 재난이 가까웠고 그 고난이 속히 닥치리로다. 그의 사면에 있는 모든 자여, 그의 이름을 아는 모든 자여, 그를 위로하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부러졌는고 할지니라”(렘48:16-1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모압의 재난이 가까웠고 그 고난이 속히 닥치리로다. 그의 사면에 있는 모든 자여, 그의 이름을 아는 모든 자여, 그를 위로하며 말하기를”(렘48:16-17a);
1) 모압 왕국은 역사상 멸망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비록 외세에 눌려서 강대국의 대왕이나 황제를 주군으로 섬기고 스스로 신하국으로 칭하면서 매년 조공을 바치고 생존한 경우는 여러 번 있지만 모압 왕국 자체가 멸망을 당한 적을 한번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가오는 갈대아 군대의 침입은 그 목적이 모압 왕국의 소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모압의 재난이 가까웠고”(렘48:16a)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 모압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이 지휘하는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되면 모압의 백성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유다 왕국의 백성들에게 다가오는 운명과 같이 다음 5가지 경우의 하나가 되고 말 것입니다; ①첫째, 전란 가운데 적군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렘27:13a). ②둘째, 전란 중에 여호와의 재앙으로 발생하고 있는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렘27:13b). ③셋째, 포로로 사로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렘7:15, 25:11). ④넷째, 사전에 외국으로 망명을 가거나 피신을 하게 됩니다(렘40:8, 48:6, 9). ⑤다섯째, 무산자(無産者)나 노약자인 경우에는 초토화가 된 고향에 남겨져서 그 땅을 개간하고 소출을 얻어서 매년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는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렘39:10).
3) 그와 같은 고난의 세월이 모압 왕국의 멸망과 더불어 그 백성들에게 미구에 닥치게 된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 고난이 속히 닥치리로다”(렘48:16b). 그것은 선민과 이방인 구별이 없이 이제는 모든 세상의 왕국과 백성들에게 임하게 되는 여호와의 진노이며 재앙입니다.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대신 섬기며, 세상적인 자신들의 이기적인 소원성취만을 우상에게 빌고서 온갖 죄악을 행하고 있으므로, 도저히 더 이상 그러한 왕국과 백성들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여호와께서는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과 그의 갈대아 군대를 동원하여 그러한 나라와 백성들을 차례로 징벌하십니다. 그러므로 모압 주변의 왕국과 그 백성들이 멸망을 당하고 있는 모압을 위로하고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운명이 자신들에게도 곧 밀어닥칠 것이므로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본문에서는 “그의 사면에 있는 모든 자여, 그의 이름을 아는 모든 자여, 그를 위로하며 말하기를”(렘48:17a)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어찌하여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부러졌는고 할지니라”(렘48:17b);
1)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모압 왕국이야 말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나라입니다. 국토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주위의 광야 및 사막과 비교하면 모압의 땅은 오아시스 그 자체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라는 표현에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국토인 것입니다. 그리고 비옥한 땅을 지키고 있는 모압 종족은 본래 용맹한 용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웃나라들이 함부로 모압 땅을 침범할 수가 없습니다.
2) 역사적으로 모압 왕국이 강대국에게 스스로 머리를 조아리고 조공을 바친 적은 있지만 전쟁에서 패한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닥치게 되는 갈대아 군대의 침략은 그 유가 다른 것입니다. 모압의 용맹도 그 국토의 아름다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적들은 그 아름다운 땅을 무자비하게 불태워버리고 초토화시키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그 처참한 전쟁의 결과를 바라보고서 미구에 주변의 족속들이 “어찌하여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부러졌는고 할지니라”(렘48:17b)고 말할 것입니다.
둘째로, “디본에 사는 딸아, 네 영화에서 내려와 메마른 데 앉으라. 모압을 파멸하는 자가 올라와서 너를 쳐서 네 요새를 깨뜨렸음이로다. 아로엘에 사는 여인이여, 길 곁에 서서 지키며, 도망하는 자와 피하는 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을지어다. 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 너희는 울면서 부르짖으며, 아르논 가에서 이르기를, 모압이 황폐하였다 할지어다”(렘48:18-20);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디본에 사는 딸아, 네 영화에서 내려와 메마른 데 앉으라. 모압을 파멸하는 자가 올라와서 너를 쳐서 네 요새를 깨뜨렸음이로다. 아로엘에 사는 여인이여, 길 곁에 서서 지키며, 도망하는 자와 피하는 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을지어다”(렘48:18-19);
1) 민수기 제32장을 보면 모세에 의하여 아르논 강 바로 북편의 땅을 얻게 되는 갓 지파가 그곳에 3개의 성읍을 요새지로 건설하고 있습니다; “디본과 아다롯과 아로엘”입니다(민32:34). 그것은 모압의 군대가 아르논 강을 건너 북침을 하는 경우에 그것을 격퇴하기 위하여 건설하고 있는 성읍이며 요새지입니다. 그 땅을 갓 지파는 훗날 르우벤 지파에게 양도하고 자신들은 얍복 시내 가까운 좋은 땅을 대신 받게 됩니다.
2) 그런데 주전 850년경에 모압 왕 메사가 북진을 하여 그 지역과 르우벤 지파의 땅을 모두 점령하고 맙니다. 모압 왕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 옛날 주전 15세기에 아모리 시혼 왕에게 빼앗긴 국토를 수복한 것이지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르우벤 지파의 땅을 완전히 모압 왕국에게 강도 맞은 것입니다. 이제 26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주전 588년에 북쪽에서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가 쳐들어와서 아르논 강 이북지역을 완전히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땅을 지키는 최후의 요새지 ‘디본’이 적에게 함락을 당하고 그 주민들은 사로잡히거나 피난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렘48:18).
3) ‘디본’ 산성을 동남쪽으로 내려오게 되면 아르논 강을 만나기 전에 마지막 요새 ‘아로엘’이 나타납니다. 그곳의 주민들은 ‘디본’ 산성의 전투의 결과가 궁금합니다. 모압의 병사들이 그곳에서 수성에 성공을 하게 되면 자신들은 안전합니다. ‘디본’ 산성의 모압 용사들이 적군의 남하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디본’ 산성이 함락이 되면 ‘아로엘’은 평지의 요새이므로 도저히 갈대아 군대의 남침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아로엘에 사는 여인이여, 길 곁에 서서 지키며, 도망하는 자와 피하는 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을지어다”(렘48:19)라는 구절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뜻은 ‘디본’ 산성에서 남으로 피난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아로엘’ 주민들이 필사적으로 산성 전투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패전이면 빨리 피난길에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2) “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 너희는 울면서 부르짖으며, 아르논 가에서 이르기를, 모압이 황폐하였다 할지어다”(렘48:20); 아르논 강 이북의 최후의 산성 ‘디본’이 갈대아 군대의 공격으로 함락이 된다는 여호와의 예언입니다. 그 소식을 동남방 평지에 위치하고 있는 ‘아로엘’ 요새의 주민들이 남쪽으로 피난을 하면서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르논 강 이남의 모압 백성들에게 울부짖으며 패전의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 너희는 울면서 부르짖으며, 아르논 가에서 이르기를, 모압이 황폐하였다 할지어다”(렘48:20). 북쪽에서 쳐들어온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는 인정사정 없이 아르논 강 이북의 땅을 전부 정벌하고 성읍을 깡그리 불태우며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압 왕국이 시작이 된 후 천년 만에 맞이하고 있는 가장 비극적인 멸망의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심판이 평지에 이르렀나니, 곧 홀론과 야사와 메바앗과, 디본과 느보와 벧디불라다임과, 기랴다임과 벧가물과 벧므온과, 그리욧과 보스라와 모압 땅 원근 모든 성읍에로다. 모압의 뿔이 잘렸고, 그 팔이 부러졌도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48:21-25);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심판이 평지에 이르렀나니, 곧 홀론과 야사와 메바앗과, 디본과 느보와 벧디불라다임과, 기랴다임과 벧가물과 벧므온과”(렘48:21-23);
1) 아르논 강 이북이 먼저 갈대아 군대에게 점령을 당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정복이 되고 있는 성읍은 평지에 있는 것들인데 그 이름이 “홀론과 야사와 메바앗”입니다(렘48:21). 그런데 그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평지의 성읍들을 지키고 있는 산성 요새지의 이름이 열거가 되고 있습니다; “디본과 느보와 벧디불라다임과, 기랴다임과 벧가물과 벧므온과”(렘48:22-23). 여기서 처음 세 요새지는 높은 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다음 세 요새지는 중간 높이의 산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갈대아 군대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쳐들어오고 있으므로 모압의 군대는 북쪽의 산성에서부터 그들을 막아야 합니다. 그들의 침공을 저지해야 비옥한 평원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수비선이 다음과 같이 제1선과 제2선 그리고 제3선으로 구분이 되고 있습니다; ①제1저지선은 서에서부터 동으로 벧여시못, 느보, 그리고 헤스본입니다. ②제2저지선이 기랴다임과 벧디블라다임입니다. ③제3저지선이 디본, 아로엘, 그리욧입니다.
3) 특히 마지막 저지선인 그리욧은 동쪽의 국경지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곳에는 전쟁의 신 그모스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번제단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구에 쳐들어오는 갈대아 군대는 그모스 신의 능력으로도 절대로 막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신앙을 완전히 버리고 있는 모압 왕국과 그 백성들에게 진노하시고 갈대아 군대를 동원하여 이제는 지상에서 지워버리고자 결심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4) 참고로,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지명 가운데 상당부분의 운명에 대하여 선지자 에스겔은 다음과 같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모압의 한편 곧 그 나라 국경에 있는 영화로운 성읍들, 벧여시못과 바알므온과 기랴다임을 열고 암몬 족속과 더불어 동방 사람에게 넘겨 주어 기업을 삼게 할 것이라. 암몬 족속이 다시는 이방 가운데에서 기억되지 아니하게 되려니와, 내가 모압에 벌을 내리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겔25:9-11). 갈대아 군대가 모압의 북쪽 국경도시들 곧 벧여시못과 바알므온과 기랴다임을 쳐부수게 되면 그 다음부터 아르논 강 이남지역은 손쉽게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압 왕국은 물론 암몬 왕국까지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을 당하게 되어 지상에서 사라지고 만다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5) 그들 국경도시들은 본래 이스라엘 르우벤 지파가 아르논 강 이북의 자신들의 기업을 지키기 위하여 만든 요새지입니다; “르우벤 자손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기랴다임과 느보와 바알므온들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바꾸었고 또 십마를 건축하고 건축한 성읍들에 새 이름을 주었고”(민32:37-38).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은 성읍들이므로 그 운명에 대하여 여호와의 관심이 지대하십니다. 주전 850년에 르우벤 지파가 그 땅을 지키지 못하고 모압 왕국의 군대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그라고 주전 587년경에는 모압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면서 그 모든 요새지가 완전히 파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대아 군대는 요단 강 동쪽에 있는 암몬 왕국도 벌써 완전히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6) 롯의 자손인 모압과 암몬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왕국의 멸망을 쉽게 받아들일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요르단 지역에서 풍요를 누리던 그 비옥한 터전을 결코 잊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황량한 아라비아 광야에서 조국을 수복하기 위하여 절치부심을 하게 됩니다(렘40:14). 마치 그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조상들의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기 위하여 모세에게 매어 달리듯이 그렇게 모압과 암몬의 망국의 백성들은 광야생활 가운데 망명정부를 세우고 새로운 왕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신바벨론제국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말미암아 거대한 신바벨론제국의 안보에 구멍이 뚫리게 됩니다.
7) 제5대 황제 나보니더스가 10년간 아라비아의 반란을 진압하고 반군세력을 토벌하는 도중에 그만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의 기습공격으로 주전 539년에 수도 바벨론이 함락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단5:30-31). 바사의 젊은 왕 고레스는 내치를 메대의 늙은 왕 다리오에게 일단 맡겨 두고 그의 군대를 이끌고 아라비아로 진격합니다. 신바벨론의 나보니더스 황제를 치기 위한 것입니다. 치열한 전투의 결과 고레스가 승리를 하고 바벨론으로 회군합니다. 신바벨론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려고 획책을 하던 다리오 왕은 맥없이 무릎을 꿇고 맙니다(단6:1-2). 그 결과 주전 536년경 페르시아제국이 탄생하고 고레스는 황제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칙령을 내려서 유다 포로들에게 자유를 주고 원하는 자들에게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제2성전을 짓도록 조서를 내려주게 됩니다(스1:1-4).
(2) “그리욧과 보스라와 모압 땅 원근 모든 성읍에로다”(렘48:24); 모압 왕국은 동쪽 메소포타미아에서 오는 적들을 막기 위하여 동쪽 국경에 있는 성읍 그리욧에 전쟁의 신 그모스의 신상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인신제사를 드리고 있지만 갈대아 군대를 결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갈대아 군대를 동원하여 모압 왕국을 완전히 없애 버리고자 결심하셨으므로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그모스 우상이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에돔의 수도 보스라에서 전쟁의 신에게 인신제사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렘48:24). 암몬이나 모압처럼 그들도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맞이하고 마는 것입니다.
(3) “모압의 뿔이 잘렸고, 그 팔이 부러졌도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48:25);
1) 모압은 그들의 높은 산과 중간 높이의 산에 건설이 되어 있는 산성의 견고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압 용사들의 용맹을 상징하고 있는 뿔과 같습니다(렘48:25a). 그러나 모압 왕국 천년의 역사에 있어서 그들의 모든 뿔이 잘려져 나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갈대아 군대를 동원하여 치시는 것이므로 모압의 용사들과 그모스 우상이 어찌 그것을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렘48:25c)
2) 모압의 견고한 산성들이 지키고 있는 비옥한 들판은 모압의 팔과 같습니다(렘48:25b). 그러나 그 머리와 뿔이 먼저 잘려져 나가자 모압의 팔은 적군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모압의 평지에 건설이 되어 있는 성읍들은 적의 공격에 취약하기 그지 없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어째서 모압 자손들은 그 조상인 롯의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풍요만을 즐기고자 한 것일까요? 그들은 자신들이 잘나서 오아시스와 같은 모압 땅을 차지하고서 잘 살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이 농사의 신 바알브올을 잘 모시고 또한 국난을 극복하게 해주는 그모스 신이 자신들의 수호신이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란이 찾아올 때에는 왕자를 번제로 바쳐서 그모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승리를 얻고자 합니다.
그렇게 인신제사로 우상을 섬기면서 세상적인 번영만을 추구하고 있는 모압의 자손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십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모압 땅을 주었더니 그 은혜를 알고서 여호와신앙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그 반대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여호와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신한 모압의 자손들입니다. 따라서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를 동원하여 그들을 섬멸하시는 여호와의 역사가 본문에서 두렵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는 그들의 악행의 장소가 무려 13군데나 열거가 되고 있으며 그 모두가 초토화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모압과 같은 비극을 경험하지 아니하도록 세상적인 풍요와 번영 이전에 여호와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사사들의 활동기간과 이스라엘을 압제한 나라들)
이름 | 지파 및 특징 | 본문 | 통치기간 | 압제국 | 압제기간 |
1.옷니엘 | 유다지파, 갈렙의 조카 | 3:7-11 | 40년 | 메소보다미아(구산왕) | 8년 |
2.에훗 | 베냐민지파 왼손잡이 | 3:12-30 | 80년 | 모압 (에글론왕) | 18년 |
3.삼갈 | 납달리지파, 소모는 막대기 사용 | 3:31 | |||
4.드보라 | 에브라임지파, 여성 사사 | 4-5장 | 40년 | 가나안 (야민왕) | 20년 |
5.기드온 | 므낫세 지파 | 6-8장 | 40년 | 미디안 | 7년 |
6.돌라 | 잇사갈 지파 | 10:1,2 | 23년 | ||
7.야일 | 길르앗 지파, 30의 아들을 둠 | 10:3-5 | 22년 | ||
8.입다 | 기생의 아들 | 11:1-12:7 | 6년 | 암몬 | 18년 |
9.입산 | 스불론(?) | 12:8-10 | 7년 | ||
10.엘론 | 스불론 지파 | 12:11,12 | 10년 | ||
11.얍돈 | 에브라임 지파 | 12:13-15 | 8년 | ||
12.삼손 | 단 지파 | 12-16장 | 20년 | 블레셋 | 40년 |
(모압의 지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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