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44강(렘48:6-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년 1월 21일(월)
여호와께서는 모압 왕국이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는 이유와 그 부흥운동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렘48:6-10)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모압 왕국이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지적하십니다;
(1) 첫째, 모압의 왕이 자신의 업적과 왕국의 보물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렘48:7a);
1) 주전 850년경 모압 왕 메사는 북진하여 아르논 강 이북의 영토를 수복합니다. 주전 15세기에 상실한 이북의 땅을 되찾게 되자 모압 왕 메사의 후계자들은 모압 왕가의 업적을 온 천하에 자랑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신 그모스를 주신으로 섬겼기에 그러한 국토 수복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참으로 싫어하시는 소위 권력자들의 세상적인 업적에 대한 자화자찬입니다.
2) 모압은 목축업과 포도농사가 유명합니다. 극상품의 포도주와 포도를 생산하여 이웃나라에 수출을 하면서 그 품질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털도 아주 질이 좋습니다. 강대국들은 모압의 양털을 조공품으로 얻기를 원하고 있을 정도입니다(왕하3:4). 그렇게 농업과 목축업이 발달하고 있는 물이 좋은 모압 땅이기에 살기가 좋은 곳이라고 이웃나라에 소문이 나고 있습니다(룻1:1). 그러한 번영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모압 사람들은 농사의 신 바알을 브올의 성지에서 극진히 모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산(多産)의 축복을 위하여 여사제들과의 혼음을 계속하여 즐기고 있습니다. 자연히 모압 사회에서는 성적인 타락이 심합니다.
(2) 둘째, 인간이 만든 우상에 불과한 전쟁의 신 그모스를 수호신으로 극진히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렘48:7a); 패전의 기색이 완연해지면 모압의 왕은 왕자를 그모스 신상에 번제로 바침으로 말미암아 전세를 뒤집고자 합니다(왕하3:25-27). 그와 같은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되는 적군들은 기겁을 하여 후퇴를 하고 맙니다. 그러나 미구에 닥치게 되는 신바벨론제국의 정예병인 갈대아 군대의 침략은 그것으로 극복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상인 그모스와 바알에게 인신제사까지 드리면서 전쟁의 승리와 풍년을 갈구하고 있는 모압 사람들의 우상문화를 차제에 씻어버리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미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렘48:3-4).
(3) 셋째,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하고 있으며 국방을 게을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렘48:10);
1) 롯의 큰 딸이 남편의 자식이 아니라 아비의 자식을 얻어서 도망을 가서 홀로 키운 곳이 모압 지방입니다(창19:36-37). 그러므로 모압의 자손들은 그 역사의 시작부터 여호와의 영생의 말씀보다는 혈통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종족의 세속적인 번영이 언제나 여호와신앙보다 앞서고 있습니다.
2) 모압 왕국은 작은 나라이면서도 물이 좋아서 그런지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압 사람들은 부자의 안일함에 젖어서 그만 문약(文弱)해지고 맙니다. 전쟁과 같은 험한 일은 가급적이면 암몬 왕국처럼 돈을 주고 아람의 용병을 고용하여 그들에게 맡기고자 합니다(삼하10:6). 그 때문에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모압 왕국이 쉽게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그에 따라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모압 왕국은 반드시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미리 예언으로 모압 사람들에게 알려주시는 이유는 그 사실을 알고 사전에 왕과 귀족과 백성들은 자녀들을 남방으로 보내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조국의 부흥운동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렘48:6, 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여 광야의 노간주나무 같이 될지어다. 네가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요, 그모스는 그의 제사장들과 고관들과 함께 포로되어 갈 것이라”(렘48:6-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여 광야의 노간주나무 같이 될지어다”(렘48:6);
1) 모압 왕국이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의 침략으로 멸망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여”(렘48:6a). 그러므로 전란 가운데 모압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남쪽의 광야로 들어가서 ‘노간주나무’(the Juniper tree)처럼 야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렘48:6b).
2) 모압은 본래 동쪽에서 사해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강물이 풍성한 고장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작은 왕국이지만 농업과 목축업이 발달하여 있습니다. 사막과 광야를 지나고 있는 대상들에게 있어서는 오아시스와 같은 나라입니다. 자연히 대추야자를 비롯하여 좋은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좋은 나무들은 신바벨론 황제의 차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옥한 조상들의 땅을 전부 황제에게 빼앗기게 되는 모압의 자손들은 장차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3) 그 대답을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광야의 노간주나무 같이 될지어다”(렘48:6b)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노간주나무’(the Juniper tree)는 특이하게도 비옥한 땅에서나 석회질의 척박한 땅에서나 모두 자랄 수가 있는 수종입니다. 물론 물이 좋은 고장에서는 곧게 자랍니다. 하지만 물이 거의 없는 광야에서는 비틀어지게 자랍니다. 그 높이는5-8m이고 침엽수인데 측백나무의 일종입니다. 그러므로 지름이 60cm정도입니다.
4) 그러한 노간주나무의 특성을 참조하면, 여호와의 말씀은 모압의 자손들에게 부디 척박한 광야에서 비틀어지는 아픔과 고통을 당할지라도 반드시 생육하면서 조국의 부흥운동을 전개하는 강인한 종족으로 거듭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세상적인 자랑을 이제 내려놓고 여호와신앙으로 돌이키라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는 창세기 제21장에 등장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에셀나무’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창21:33).
(2) “네가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요, 그모스는 그의 제사장들과 고관들과 함께 포로되어 갈 것이라”(렘48:7); 여호와께서는 모압의 멸망이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섬기며 살지를 아니하고 세상적인 것 3가지 곧 모압 왕가의 업적과 왕국의 보물 그리고 수호신 그모스를 의지하여 살아갔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십니다. 그 3가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첫째, 모압 왕가의 업적은 오랜 모압의 역사 가운데 한번도 왕가의 혈통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계속 이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일본의 천황가나 태국의 왕가가 자랑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압의 왕은 에돔의 왕과 더불어 그 역사가 무척 오랩니다(창36:31, 민22:4). 주전 15세기에 벌써 왕이 등장을 하고 있으므로 이스라엘의 왕보다는 500년 이상 앞선 것입니다. 더구나 주전 15세기에 상실한 아르논 강 이북의 땅을 주전 9세기에 모압의 왕이 수복하였으니 그들의 왕가는 모압 백성들의 찬양을 받고 있습니다.
2) 둘째, 모압의 자랑거리는 사막 가운데 물이 풍성한 오아시스를 그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물과 같은 땅입니다.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이 풍부하므로 가뭄이 들지 않습니다. 농산물의 소출이 많고 포도열매가 질이 좋아 자랑거리입니다. 사막을 지나는 대상들이 모압 땅에서 쉼을 얻고 과일의 맛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 땅이 보배라고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모압 땅을 탐내어 침략을 한 종족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전세를 뒤집고 승리를 한 나라가 모압입니다. 따라서 모압의 용사들의 용맹함이 대외적으로 소문이 나고 있습니다(렘48:14). 그러나 오랜 번영의 세월을 누리다가 보니까 그만 모압의 국방정책이 문약(文弱)해지고 맙니다. 전쟁은 돈을 주고 아람의 용병을 사서 맡기고자 합니다. 그리고 전쟁의 승리는 그모스 신에게 인신제사를 드려서 얻고자 합니다. 그 결과 모압 왕국은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이끄는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렘48:7).
4) 참고로, 혹자는 그 멸망의 시기가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침략하는 주전 582년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보다는 빠른 것으로 보입니다. 예레미야 제40장에 ‘암몬의 왕’이 아니라 그 망명정부의 수반인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렘40:14)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한 주전 586년에 모압 왕국 역시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망한 것으로 추론이 되는 것입니다(렘48:7).
둘째로, “파멸하는 자가 각 성읍에 이를 것인즉, 한 성읍도 면하지 못할 것이며, 골짜기가 멸망하였으며, 평지는 파멸되어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로다. 모압에 날개를 주어 날아 피하게 하라. 그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기에 사는 자가 없으리로다”(렘48:8-9);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파멸하는 자가 각 성읍에 이를 것인즉, 한 성읍도 면하지 못할 것이며, 골짜기가 멸망하였으며, 평지는 파멸되어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로다”(렘48:8);
1)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가 얼마나 야만적인가 하는 사실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압의 비옥함과 그 문명을 참으로 증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압의 모든 성읍을 하나도 남김없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파괴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주후 12세기의 징기스칸의 정복전쟁을 미리 보는 것과 같습니다.
2) 그와 같이 모압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골짜기의 성읍을 전부 불태워서 멸망시키고 물이 좋은 평지의 농토와 오아시스를 구태여 파괴하여 버리고 마는 신바벨론 황제의 정복정책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그것은 유목민인 게르만족이나 몽고족처럼 초지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 유목민들과 달리 신바벨론제국은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의 중심 갈대아 우르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3) 기본적으로 느부갓네살 황제는 중근동에 있어서 유일한 문명국가는 메소포타미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자신들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국의 통치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변방의 나라들은 정복하는 대로 모조리 파괴하여 농사와 목축만 경영하는 미개한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세상의 문명과 학문을 독점하고 땅의 소출을 독식하고자 하는 바벨론의 엄청난 야욕이 본문 가운데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모압에 날개를 주어 날아 피하게 하라. 그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기에 사는 자가 없으리로다”(렘48:9);
1) 그와 같이 파괴적이며 야만적인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의 정복전쟁을 여호와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비롯하여 여러 이방나라들의 우상의 섬김과 죄악상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흉포한 갈대아 군대를 동원하여 인정사정없이 빨리 멸망시키고 싶어 하십니다. 그와 같은 참혹한 전쟁 가운데에서도 한가지 살길을 예언의 말씀으로 제시하십니다.
2) 그것은 모압의 땅에 미련을 두지 말고 훨훨 날아서 아라비아 광야로 피신을 하라는 것입니다; “모압에 날개를 주어 날아 피하게 하라. 그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기에 사는 자가 없으리로다”(렘48:9). 모압의 성읍들이 어차피 사람들이 살 수가 없도록 모조리 파괴가 되고 남은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갈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그것보다는 척박한 아라비아 광야라고 하더라도 멀리 그곳으로 도망하여 그 옛날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다시 여호와신앙을 배우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진군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로다”(렘48:10);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렘48:10a); 여호와의 종 가운데 두 부류가 있다는 사실을 훗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1) 하나는, 주님께서 맡기신 달란트를 사용하여 주인의 이익을 최대로 얻어 드리기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힘써는 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소위 ‘달란트 비유’를 따르게 되면,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받아서 그만큼의 이익을 더 남겨서 원금과 함께 주인에게 내놓은 종들이 그에 해당합니다(마25:16-17). 그들은 똑같이 주인의 칭찬을 받고 더 큰 사명을 부여 받으며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마25:20-23).
2) 또 하나는,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등한히 하면서 자신의 세상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종입니다. 그러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 ‘1달란트’를 받아서 그것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땅에 파묻어 놓은 종에 해당합니다(마25:18). 그자는 주인에게 변명을 합니다; ‘주인께서 맡기신 달란트를 잘못 사용하다가 원금을 손해볼까 두려워하여 아예 확실하게 깊이 보관하였다가 이제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마25:24-25). 그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 무엇일까요? 원금을 축내지 아니한 그 종을 칭찬하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달란트를 깊이 파묻어 두고서 자신의 세상적인 일만 한 그 종을 혼내시는 것일까요? 전자가 아니고 후자입니다.
3)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①첫째, 달란트는 은행에 맡기더라도 이자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마25: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에게 그것을 맡기고 장사를 하여 이문을 얻으라고 하는 것은 다른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그 뜻은 단순하게 장사를 하여 이익을 얻는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많은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일을 감당하라고 달란트를 주어 자신의 종을 이 세상에 심으셨다는 것입니다(렘42:10, 마25:26, 막3:4, 요6:39). 설혹 그 달란트를 모두 생명 살리는 일에 사용하여 세상적인 이문을 얻지 못하고 원금마저 까먹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마25:40, 눅10:34-35).
4)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대속의 삶을 살아간 그리스도의 인생을 기뻐하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간 주님의 제자인 성도들의 삶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마16:24, 롬12:1-2). 따라서 그러한 복음의 일꾼으로 전혀 살아가지 아니한 자들은 여호와의 저주를 받고 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렘48:10a, 마25:30). 그러한 저주의 모습이 바로 본문에서는 여호와께서 갈대아 군대를 동원하여 모압 왕국을 멸망시키는 역사적인 심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5) 그러므로 신바벨론과의 전쟁에서 피난하여 아라비아로 가서 망명정부를 세우고 부흥운동을 하고자 하는 모압의 백성들은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더 이상 세상이익을 얻는 일에 바빠서 여호와께서 맡기신 일을 태만하게 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렘48:10a).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 신실한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모압 백성들의 결의가 있을 때에 그들의 부흥운동은 빛을 발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2)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로다”(렘48:10b);
1)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넣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2). 그런데 본문에서는 칼을 사용하여 자신의 왕국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렘48:10b). 그 의미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2) 첫째, 칼로써 원수를 갚거나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원수 갚는 일은 주님께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롬12:19). 그리고 주님의 일은 원수된 것을 화목의 제사 곧 대속의 은혜로 풀고자 하는 것입니다(롬3:25-26). 칼로써 그 원수를 갚는 것은 죄악의 재생산이 될 뿐 근본적인 생명살림의 복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아니하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으며 십자가 앞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들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3) 둘째,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족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국방을 튼튼하게 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이리에게 동족의 생명과 재산을 먹이감으로 던져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적이 약탈을 하고자 쳐들어 오는데 칼을 버리게 되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맡겨 주신 가족과 동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렘48:10b). 따라서 적에게 강도의 기회를 주지 아니하고 가족과 동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국방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4) 다만, 그 강력한 국방력으로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약탈을 하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그 국병력은 철저하게 자위적(自衛的)인 조국의 수호에만 사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압 왕국의 말기는 마치 암몬 왕국처럼 그 국방을 튼튼하게 하는 일을 돈으로 쉽게 해결하고자 하고 있습니다(삼하10:6). 많은 돈을 주고 아람에서 용병을 구하여 모압의 국방의 상당부분을 그들에게 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5) 그 옛날 모압의 용사들처럼 자신들의 칼을 사용하여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풍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렘48:14). 그 때문에 갈대아 군대의 공격 앞에 맥없이 모압 왕국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저주스러운 모압 왕국의 말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아라비아로 피난하여 망명정부를 세우게 되면 모압의 자손들은 스스로 무술을 연마하여 신바벨론의 군대와 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모압 왕국처럼 세상임금이 다스리는 왕국들이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멸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멸망을 당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왕국은 어떻게 건설해야만 할까요? 그 해답이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로다”(렘48:10)라는 구절 가운데 다음과 같이 들어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우선적으로 실천하는 신실한 종들의 나라가 영원한 성도들의 나라입니다(단7:18).
(2) 둘째, 주님께서 맡기신 형제와 자매를 구원하고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악한 세력과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때 악한 영들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게 됩니다(눅11:20).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의로운 복음의 용사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광야에서 힘들게 자생하고 있는 노간주나무의 모습)
석회질 토양의 광야나 바위가 많은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노간주 나무(Juniper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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